1232화 이번 주 놀아라 (2)
“종괴?”
수혁이 굳이 직접 때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현종이 모난 눈을 굴리면서, 그 눈으로 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눈으로 패는 게 뭔 소린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냥 교수도 아니고 석좌 교수인 사람이 바로 코앞에서, 그렇게 호감형으로 생긴 것도 아닌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걸 마주치게 된다면 정말 처맞는 느낌이 들 터였다.
꼭 대학 병원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보수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아마 다들 공감할 수 있으리라.
“아니……. 그.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뭐가 죄송해? 지금 설명하는 게 나도 아닌데?”
더욱이 이현종은 심장 관련한 질환에 있어서는 약간…… 정신을 놓는 편이었다.
본인이 심장의 ‘ㅅ’만 관련이 있어도 싹 다 공부를 해 버리는 인간이니 뭐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지금도 설명하는 사람이 수혁이 아니었다면 바로 인터셉트해서 지랄하기 시작했을 터였다.
허나 지금 막 무대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수혁이지 않나.
해서 이현종은 간신히 불만 가득한 마음을 잠재운 채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고 해서 주치의에게 마냥 다행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었느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그래, 죄송할 건 없지.”
너무 똑똑한 사람들의 특징 아닌가.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걸 모를 때 참지 못하는 거.
‘근데 이 사람은…… 좀 다르지.’
수혁도 비슷한 면모가 있기는 했다.
어찌 보면 그게 너무나도 정당한 일이긴 했다.
다른 교수들조차 수혁에 비하면 천재성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있어서 빛이 팍 바라기 마련이니까.
허나…….
수혁은 자신이 정한 선 같은 게 있는 사람이었다.
이건 레지던트 레벨에서는 알 수 없다, 이건 알 수도 있다, 알아야 한다, 모르면 뒤진다 등등의 선.
수혁이 아닌 이상 정확히 그 선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만, 대개 지금과 같은 경우라면 알아야 한다 수준에 속할 터였다.
‘질환명까지 맞히길 기대하시진 않을 거야.’
아, 알아야 된다는 게 꼭 진단명을 뜻하는 건 아니긴 했다.
그저…….
레지던트 2년 차라면 응당 그럴싸한 추론 정도를 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곧 틀려도 되긴 하는데, 대신 논리는 만들어서 틀리라는 뜻이었다.
정확한 진단명을 맞히는 것보다야 당연히 더 쉬운 일이긴 한데…….
‘이수혁 교수님의 마음에 들려면…… 이게…… 하아.’
레지던트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 또한 통합진료센터를 돌아 봤고, 또 돌아야 하는 사람 아닌가…….
그 와중에 꽤나 수련을 받아 왔다, 이 말이었다.
“환자는 최근 반년 동안 대략 10kg 정도의 체중 손실이 있었고, 기침 및 호흡곤란…… 그리고 잦은 코피를 주소로 내원하였습니다.”
“그래. 거기서 중요한 점은요?”
“잦은 코피가 주된 호소 증상이었기 때문에 잦은 코피를 중요하게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했죠?”
“그…… 비인강 내시경을 통해 비인두 부분의 종괴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바이옵시를 했고…….”
“거기서 뭐가 나왔죠?”
꽝이 나왔다.
꽝이 나왔어…….
암이 나와야 하는데 꽝이 나와 버렸어…….
아, 이게 뭐 환자가 암이길 바라는 그런 악독한 마음은 아니다.
그런 것보다는 암이 나오는 쪽이 보다 통계적으로 합당한 일이다, 뭐 이런 뜻이다.
근데 어쩌겠나.
현실에서는 꽝이 나와 버린 것을.
‘하지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있나?’
그렇다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추론을 이어 나가야 할 텐데…….
아쉽게도 배경 지식의 부재로 인해 그게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서 주치의는 그냥 이쪽으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뭐…….
답을 원하지는 않고 있을 테니까.
애초에 교수님들도 아직 모르고 있거나 숫제 틀린 케이스 아닌가.
그걸 갑자기 주치의, 그러니까 레지던트 2년 차가 맞히는 것도 예의는 아니잖아?
“일단…… 환자가 10kg이나 체중이 빠졌습니다. 이는 급속도로 자라나는 무언가에 의해 환자의 열량이나 이런 것이 손실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요?”
“환자의 나이가 아직 31세에 불과하긴 하지만…… 흡연력이 있는 점, 그리고 알코올 섭취도 꽤 많은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여전히 암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합니다.”
“조직검사에서 꽝이 나왔는데요?”
아마 암 아닐 거다.
암이었으면 이수혁쯤 되는 사람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리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직진하는 게 사나이, 아니, 레지던트다.
몰라도 된다.
레지던트는!
“네, 하지만…… 비인두암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조직검사에서 꽝이 나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리고 암인데 암이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나중에 암이 진단되었을 때 환자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암에 준해서 워크업을 해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문장이 없었다면 솔직히 뭐라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암 환자를 암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환자의 예후를 생각한다면…….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도 있지 않나.
심지어 의학은 담보로 삼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다 보니 더더욱 오버해서 봐야 할 필요도 있었다.
물론 검사라는 게…… 그 자체로 위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으니, 쓸모없는 건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좋아.”
아무튼, 레지던트 선에서는 이 정도면 뭐 썩 괜찮은 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나중에 이놈이 나가서 2차 병원 과장이라도 하고 있을 때, 혹은 군 병원에 있거나 사단 의무대에 있을 때 사고 칠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 않나?
뛰어난 진단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사고 치는 의사보다는 그냥저냥한 진단력을 지니고 있어 진단에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사고는 안 치는 의사가 더 나은 판인 것을 감안하면 뭐…….
[잡아 올 거예요?]
‘얘기나 해 보지, 뭐. 근데 2년 차 중에서는 이민정 선생이 최고 같아.’
[하긴, 그만한 똘끼는 적지.]
‘그러니까.’
하여간, 수혁은 이제 혼낼 생각을 접고 본격적인 설명에 돌입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몸이 아프다 보니 좀 힘들기도 하고…….
갈 길이 멀어서이기도 했다.
이것만 얘기할 거면 또 모르겠지만, 오늘 나름대로 찾아낸 케이스가 더 있지 않던가.
“자……. 아까 체중 얘기를 했는데. 일단 그것부터 얘기를 해 보죠.”
수혁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뜨신 물을 가져다준 덕에, 열 때문에 메말라 가던 목구멍을 조금이나마 적실 수 있었다.
“이 환자분의 체중이 원래 얼마였죠?”
“어…….”
주치의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까 10kg이나 빠졌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딱히 말라 보이거나 하진 않았던 거 같아서였다.
“다이어트 중이었던 건 아닙니까?”
“어…….”
“30대 초반 여성 중에 다이어트 중인 사람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10kg이라는 것이 정상 체중에서 빠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과체중 또는 고도 비만에서 10kg 빼는 것은, 물론 그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꼭 감안을 해 봐야 하는 지점입니다.”
“아…….”
체중 손실.
암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지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있다고 해서 바로 암과 연결 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암을 놓치는 것도 물론 문제지만, 괜히 환자를 불안에 떨게 하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것 또한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 않겠나.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더 중점적으로 봐야 할 것은 호흡곤란입니다. 기침은 코 뒤로 염증이나 피가 넘어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증상이죠. 하지만 호흡곤란은…… 어떻죠?”
“코가 막히면…….”
“물론 그렇죠. 하지만 코피로 인해 코가 막히려면 코피가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근데 비인강에서 코피가 나면 어떻게 되죠?”
“아…….”
“실제로 내시경 소견을 보세요. 다른 외래에서 시행했던 것부터 봐도…… 코안은 오히려 깨끗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지금 수혁이 띄워 놓은 환자 기록을 봐도 그랬고.
그렇다는 건…… 확실히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그리고 CT를 보면…… 여기 폐의 병변들. 임상적으로도 그렇고, 영상의학과 판단도 그렇고 폐렴 흔적 또는 이미 있었던 섬유화된 병변으로 보이는 병변이죠? 하지만…… 이 환자 나이가 어떻죠?”
“31세…….”
“거주지는 서울이고, 직장은 사무직입니다. 대학원까지 나왔고…… 상당히 유복한 집안 출신입니다. 보통 저런 식의 반흔을 남기는 질환은 결핵 또는 아주 심각한 폐렴인데, 안타깝게도 이 두 질환 모두 사회 경제적 지위와 연관이 있죠?”
“아, 네. 아무래도…… 그렇게 심하게 앓았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그렇죠. 그럼 이번에 생긴 질환이라고 생각을 해보죠. 거기에 대동맥 뿌리 부분에도 종괴가 있습니다. 자……. 비인두에 종괴를 형성하고, 폐에 다발성 병변을 일으키고, 대동맥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뭐가 있을까요?”
뭐가 있을까?
주치의는 이런 생각만 들었다.
자신만 그런가 해서 옆을 보니, 이현종 그리고 대머리 안대훈과 우하윤 정도를 제외한 모두가 그런 것 같았다.
듣고 보니 다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소견이어서 부끄러움이 한없이 몰려오던 와중이었는데, 그 꼴을 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휴.’
안도의 한숨까지 나온다, 이 말인데…….
그래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모르는 건 잘못이란 점이었다.
“음……. 뭐, 모를 수 있지. 아니, 아빠는 손 내리고요. 뭘 아빠가 나서.”
“주책이냐……?”
“네, 주책이죠.”
“그래.”
수혁은 이현종을 침묵시킨 후, 입을 열었다.
“베그너 육아종증. 이걸 모를 거 같진 않은데?”
“아……. 압니다, 저도.”
“근데 왜 말을 안 했어요?”
“그…… 보통 이렇게 보이진…….”
“그렇지. 보통은 이렇게 나타나지 않죠. 하지만 다발성혈관염을 동반하는 경우, 진행이 빠른 상태인데 우연히 초기에 발견한 경우에는 이렇게 보이기도 해요.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폐 병변이 좀 미약해서 헷갈릴 텐데…… 아, 방금 다시 찍고 왔나 보네. 볼래요?”
“아…….”
타이밍 좋게 새로 올라온 CT에서는 환자의 폐 병변들이 눈에 띄게 자라나 있었다.
종괴 형태는 아니었다.
이건 염증이었다.
다시 말하면, 수혁의 추론이 100% 맞았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