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33화 (1,233/1,303)

1233화 이번 주 놀아라 (3)

“아…… 이게…….”

“전격성 형태다 보니 더 빠르게 자라는 건데…… 이렇게 되면 곧 객혈도 하고 시력도 떨어지고, 신장도 망가질 수 있어요. 실제로 치료가 더 늦어지면 사망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 그럼!”

베그너 육아종증.

류마티스 질환이고, 일종의 괴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를 한다고 해도 사람이 죽어 나갈 수도 있는, 그런 병이긴 한데…….

그렇다 해도 암보다는 훨씬 나았다.

보통은 그랬다.

허나 전격성이 붙으면 이게 또 얘기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간염도 보통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데, 전격성이 되면 죽어 나갈 수 있어서 그랬다.

“아, 진정하시고.”

그러한 사실은 레지던트도 아주 잘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젊디젊은 환자인데 어이없게 사망하거나 간이식 대상자가 되곤 한다는 걸 태화 의료원처럼 큰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차례 보게 되기에 그랬다.

급한 마음에 몸이 들썩이는데, 그걸 수혁이 말렸다.

“네?”

“이미 처방 들어갔어요. 스테로이드랑 면역 억제제 들어가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아…….”

“전격성이라고 해도 아직 그렇게까지 진행된 것은 아니니, 보통은 약을 이렇게 쓰면 관해율(Remission Rate)이 90%가 넘어가니까 일단은 보시고. 문제 생기면 그때그때 일단은 대증치료하면서 따라가야죠.”

“아,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런 거 하라고 교수 하는 건데. 자, 그리고…….”

수혁이 케이스 설명을 서둘러 한 이유가 괜히 있겠나.

하나 더 있어서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아, 열 오른다.’

[타이레놀 하나 드시죠.]

‘약까지 먹어 가면서 잘난 척하면 그게 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이미 수액 라인 꽂고 있는 시점에서 이상해 보이는 건 피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 맞네. 나 수액 맞고 있지?’

수혁은 잠시 자신의 수액을 바라보다가 이내 약을 까먹었다.

타이레놀, 그러니까 아세트아미노펜인데 이게 열 내리는 데에는 거의 최고라고 보면 되었다.

진통 소염제처럼 실제 염증을 가라앉히지는 못해도…….

어차피 지금 수혁이 열이 나는 건 편도염 때문이다 보니 별 상관없다, 이 말이었다.

꿀꺽.

그렇게 수혁은 타이레놀을 먹고 환자 기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방은 조용했다.

수혁의 행동에 어떤 광기 비슷한 것을 느껴서 그랬다.

‘미친…….’

‘저렇게까지 하신다고?’

‘아니……. 나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약간 열감이 있는데?’

‘오전에 쓰러졌었대.’

수혁은 유명인이지 않나.

이제 원내 아니라 내과 학회 아니 외과에서조차 수혁의 이름을 아예 한 번도 못 들어 본 사람은 없을 정도다.

그런 사람이 쓰러져서 소변줄도 꼽히고, 내시경도 하고 했으니 이 삭막한 병원에서 얼마나 좋아할 만한 가십거리였겠나.

다들 너무 좋아서 떠들고 재꼈더랬다.

그렇다 보니 지금 수혁의 상황을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덜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지금 수혁의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어디, 여깄다. 이 환자는…….”

[좋지 않죠.]

아까 환자도 뭐…….

베그너 육아종증이라는 진단명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암보다는 낫다.

확실히 환자도 아까 그 말 듣고는 엄청 좋아하지 않았나?

비인두암이건 뭐건 간에 ‘암’보다는 대개의 질환이 훨씬 낫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환자는 감염내과에서 이쪽으로 온 환자죠?”

“아……. 네. 제가 주치의입니다.”

“제가 지정의고요.”

“아, 박 교수님도 계시네요?”

“네네. 교수님.”

“잘됐네요. 제 생각에는 지금 진단명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그에 비해 지금 이 환자는 딱히 바뀐 진단명이 더 좋다고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한다면 적어도 지금 진단명에 맞춰 가느라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그런 생각에 수혁은 무려 교수도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반발이 있긴 했을 터였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좋아하진 않았을 거다, 이 말이었다.

‘아닐 수도 있다고? X 될 뻔했다, 이건가?’

지금?

지금은 오히려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안도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사실 교수면, 그것도 태화 의료원쯤 되는 병원의 교수면 한 분야의 대가까지는 아니어도 전문가 수준은 아득히 넘은 사람이고 그에 따른 자부심도 있기 마련이지만.

이제 와서 수혁보다 못한다고 슬퍼할 만큼 모자란 사람은 없어서 그랬다.

“이 환자분은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찍은 영상에서 종양 소견이 보여서 이쪽으로 온 거죠?”

“아……. 네. 사실 암에 대한 증상은 아예 없었습니다. 우연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보통 폐암이 증상이 없긴 하죠. 아무튼, 지금 진단은 파종성 전이성 폐암이죠?”

“네. 사실 아직 폐렴이 진행 중이라 아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빨리 항암 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염증이 있는 상황이라…….”

염증이 있는 상황에서 항암을 때리면, 보통은 그 염증 때문에 잘못되기 마련이다.

물론 암이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때리겠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다.

심지어 두경부암 같은 경우에는 방사선 치료하기 전에 충치 치료를 하거나 발치를 하기도 한다.

그냥 두고 방사선 치료를 하면 충치 있던 부위가 훨씬 더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되고 심한 경우 턱뼈까지 다 녹아 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축농증도 증상이 없는 상황이라면 원칙적으로 치료가 불필요하지만, 이식이나 암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싹 치료를 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니 다른 염증도 아니고 폐렴인 상황에서는 일단 두고 보는 것이 일반적일 터였다.

“조직검사도 못 하신 거죠?”

“아……. 네. 그렇습니다. 근데 이게 사실…….”

“파종성 전이성 폐암이면 무리해서라도 보는 게 맞죠. 그렇다고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상황이고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파종성 전이.

씨뿌리는 듯한 전이가 일어난다는 건데, 이것만 해도 느낌 오지 않는가?

최악이다, 최악.

헌데 그게 폐암이라면…….

더더욱 무섭다.

“그냥 보기엔 사실 파종성 전이성 폐암으로 보이긴 합니다. 다만 환자의 병력을 보면 담배도 안 피고……. 나이도 30대 중반이라 일반적인 파종성 전이성 폐암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 그렇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좀…….”

“거기에 더해 젊은 환자에서 폐렴이 생겼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죠. 폐암이 있다면 그 주변으로 생길 수는 있겠는데, 양상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 그건 그렇습니다. 분명 암 주변으로 폐렴이 있기도 하지만 전혀 무관한 병변도 있어요. 다만 파종성이라면…….”

“그렇죠.”

암이 그냥 씨 뿌리듯 번지겠나?

보통은 피를 타고 뿌려지는 법이었다.

그렇다 보니 폐처럼 물렁한 장기에서는 진짜 씨라도 뿌린 것처럼 쫘아악 전이가 된다.

헌데…….

“지금 환자의 폐렴이 그렇게 심각하진 않죠?”

“아……. 네. CT는 찍어 볼 만한 소견이긴 했는데, 확실히 젊어서 그런가……. 아마 종괴 없었으면 입원도 안 하고 갔을 겁니다.”

“CT도 우리 병원 간호사라 찍은 거고요.”

“네, 맞습니다. 그게……. 아휴, 어린 나이에.”

의료진이라고 해서 병이 피해 가는 법은 없다.

오히려 얄궂은 경우가 더 많다.

호흡기내과 교수가 폐암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걸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곤 할 터였다.

아무튼,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빨리 CT를 찍게 된 덕에 뭔가 발견하게 된 셈이란 말이었다.

“이게 어디선가 전이가 되었다면 환자 상태가 저러지 못할 겁니다.”

“아…….”

“보통의 암이라면 그렇겠죠. 뭐 어제 입원한 거고, 전과를 오늘 받으셨으니 깊이 생각하실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아, 뭐. 딱히 그렇지는…… 그래도 일단 염증 낫는 거 보면서 워크업을 더 해 보려고…… 어? CT를 찍으셨네요?”

“네.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하다 싶어서요. 논리적으로 전이라거나 혹은 그렇게 심한 폐암이라고 한다면 환자 상태가 더 나빠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폐렴도 그렇고 해서 복부 CT를 찍어 봤습니다.”

“근데 이건…….”

수혁의 처방으로 찍은 복부 CT에는 이상 소견이 있었다.

바로 간의 종양이었다.

“간암입니까?”

“아, 아뇨. 그랬으면 환자 아마 지금쯤 중환자실로 갔어야 했을 겁니다.”

“아, 그렇지. 참. 그럼 이건……?”

“여기 잘 보시죠. 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간도.”

“아, 그렇네요? 그럼 진짜 암은 어디……? 아니, 이상한데요?”

흉부와 복부.

사실상 인간의 장기가 거의 다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되었다.

거기 뭔가 원발 병변이 없으면 이제 오리무중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 경우가 아예 없다면 또 모르겠는데…….

드문드문 있다는 것이 진짜 커다란 문제였다.

“간의 우엽에도 다발성 병변이 있죠. 그리고 잘 보면…… 폐는 뭐 폐렴 병변 때문에 자세히 잘 보이질 않는데, 비슷한 병변이에요. 아마도 같은 종류의 종양일 겁니다. 혹시 어떤 질환일지 짐작이 가시나요?”

“으음…….”

태화 의료원 교수는 야바위해서 따는 게 아니다.

그중에서도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정말이지 지겹도록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니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그게 아니라 수혁이 이렇게 대놓고 묻는 것만 아니라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이게…….”

“천천히 생각하세요. 대신 이거 하나만 확답해 주시죠.”

“어떤……?”

“제가 사실 김진실 교수님하고 얘기를 나눈 참입니다. 조직검사를 해 달라고 하면 지금 바로 해 주실거예요.”

“어디…… 아, 간이요?”

“네. 염증이 있는 상황이니 폐가 아니더라도 부담이 가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간이라면 좀 낫겠죠? 환자 상태가 사실 아주 심각한 것도 아니고요.”

“으음.”

그 상황에서 조직검사 얘기까지 들어 버렸다.

그러자 약간 패닉 상태가 되었는데, 다행인 것은 수혁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단 점이었다.

같은 교수로서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죠.”

해서 교수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수혁의 손을 들어주었고, 수혁은 즉시 김진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까 말씀드린 환자분…… 해 주시면 좋겠어요.”

“염증 있다고 했죠. 약간 부담이 되긴 하는데…….”

“잘하시잖아요. 귀신같이.”

“뭐, 그렇긴 하죠. 알겠어요. 해 보죠.”

“네, 그럼 내리겠습니다. 교수님은 환자 다시 돌아오시기 전까지 한번 어떤 병인지 맞혀 보세요. 모를 병은 아닐 겁니다.”

“아.”

전화와 동시에 수혁은 두 교수에게 미션을 걸었다.

김진실 교수의 미션도 어려운 편에 속하겠지만…….

혈종 교수는 정말이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제야 여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눈에 들어와서 그랬다.

‘아니, 오늘 뭔 날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나중에라도 조태진이 벌인 일을 알게 된다면 아마 싸움 한번 벌어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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