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35화 (1,235/1,303)

1235화 집에 가 그냥 (1)

“수혁아!”

“몸 좀 괜찮냐!”

신현태와 조태진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한날한시에 수혁의 병실로 뛰어들 수 있었다.

연구실에서 잘까 하다가 병실에 있던 수혁으로서는 말 그대로 날벼락이었다.

[복수를 했는데도 딱히…… 불행해 보이지가 않네요?]

‘그러니까. 왜 이렇게 행복해 보여?’

날벼락이라기보다는 좀 의아했다.

볼 환자가 다 없어졌는데 왜 이렇게 기뻐 보인단 말인가.

의사가 환자가 없으면 우울해야지 마땅한 거 아닌가?

-다들 들었음? 감염내과랑 혈종 환자가 씨가 말랐대.

-잉? 뭐 사고 남?

-아니, 이수혁, 이현종 교수님 두 분이서 환자 다 보고 처방에 계획까지 다 세워서 냈대.

-이벤트야?

-모르겠는데…… 뭔가 화를 내면서 봤다는데?

-화를 내면서 일을 해 줘? 내기에서 졌나?

-암튼 개부럽다……. 나 혈종 돌 때는 진짜 개빡셌는데.

-지금 애들 벌써 다 나감. 당직 빼고 다.

-씹…….

-엌……. 나 밖. 개꿀.

병원 인트라넷에 이런 말이 나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는 둘이었다.

인트라넷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 둘이 이상한 거니 앞으로도 모를 게 뻔했다.

아무튼, 조태진과 신현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수혁을 향해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을 들이밀었다.

“갈비다, 갈비. 이거 벽X갈비다!”

“아, 아니……. 벽X갈비라고요?”

“그래. 설화 생갈비에 양념도 있어.”

“미…… 미친. 이 비싼 걸…….”

신현태가 내민 갈비는 재벌 말고는 아무도 제 돈 주고 사 먹을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벽X갈비의 설화였다.

일 인분에 무려 16만 원…….

대한민국 고깃집에서 1인분이라는 게 말이 1인분이지, 1인분 먹고 배부를 성인 남성이 어딨나.

보통 2인분은 먹는다 치면 인당 32만 원이다.

아니, 맛있으면 보통은 원래 양보다 더 먹기 마련이니만큼…….

인당 48만 원으로 가자.

“어떠냐, 삼촌의 씀씀이가.”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마음이 사르르 녹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소고기 하나에 소변줄 꽂힌 굴욕을 잊는다고? 금붕어예요.]

‘일단 처먹기나 해 봐라.’

[으읏.]

‘어때.’

[용서가…… 용서가 돼 버렷.]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싶겠지만.

남이 사 줄 때는 굳이 돈 계산할 필요 없지 않나.

딱 맛만 생각해서 먹어 보면 진짜 맛있긴 했다.

수혁도 바루다도 한 방에 신현태를 용서하고 거기에 더해 용서를 구하게 될 지경이 되었다.

“미안하다니? 몸 관리 못 해서? 그래, 네 몸이 어디 너 하나만의 것이니. 우리 모두의 것이지.”

“아니, 아니. 환자 다 봐서요.”

“뭔 소리야, 얘가?”

그런 와중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 보니 신현태는 일단 손등으로 열부터 재 보았다.

약 먹고 어쩌고 했다 해도 밤이 다가오고 있다 보니 열이 오르고 있긴 했다.

“이거 먹다가 괜히 체하는 거 아닌가?”

“아, 아뇨. 먹어야죠.”

“근데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럼 미안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일단 손 놓으세요.”

“어……. 그래.”

해서 치울까 했더니 애가 눈이 돌아갔다.

조금 무서웠다.

‘진짜 현종이 형 아들 같네, 이럴 때는.’

신현태는 잠시 옆에 있던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맛있는 거라면 정신 못 차리는 양반이 의외로 가만히 있었다.

눈은 수혁의 젓가락질을 따라 고기만 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들 사랑 미쳤네.’

아픈 아들에게 소고기를 온전히 먹이고 싶은 저 마음…….

신현태는 약간 감동했다.

그래, 이쯤 되면 양자 아니고 친자 해도 될 거 같았다.

솔직히 이만큼 닮은 부모 자식 간도 드물지 않던가?

얼굴이야 좀 다르다지만 엄마 닮았다고 치면 되고.

“자자, 빨리 먹고 이거 먹어 봐.”

“소고기 먹잖아요, 형.”

“어…….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네.”

먹을 것에 집착하는 모습도 비슷했다.

조태진은 과일 건네려다가 깨갱 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냥 과일도 아니고 엄청 비싼 딸기인데…….

‘나도 갈비나 살걸.’

조태진은 후회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역시…… 괜히 원장 노릇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소고기도 굽고 사람 마음도 구워삶을 줄이야…….

‘난 아직 멀었구만그래.’

다행한 것은 수혁의 배에 후식 배가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고기를 무려 2인분도 넘게 드신 주제에 딸기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기회가 온 셈 아닌가.

조태진은 곰살맞게 씻어 둔 딸기를 탁 건넸다.

“이게…… 품종 개량한 건데 엄청 달어. 원래 고기 먹고 단 거 먹으면 딱이잖아.”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초콜릿을 먹더라고요, 바비큐하고.”

“걔네들이야 국제적인 맛잘알 아니냐.”

“그러니까요. 아, 맛있네. 좀 살 거 같긴 하다…….”

“그래, 그래. 다 먹어. 다.”

“네네.”

수혁은 그렇지 않아도 입맛이 돌던 참이었다.

아픈데 내시경 한다고 앞뒤로 게워 가지고 아침 날렸지.

점심에는 복수한답시고 왔다 갔다 하다가 거의 못 먹었지.

사실상 제대로 된 첫 낀데…….

그걸 소갈비로 먹었으니 입맛이 없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에 후식으로 딸기까지.

행복한 저녁인데…….

“그래서 수혁아.”

“이번에는 학회 말고 휴가를 같이 가면 어떨까?”

“애 아픈데 뭔 휴가 얘기를 벌써 해. 근데 가면 어디로 갈 건데?”

그를 둘러싼 대화가 끝나질 않고 있었다.

[이 사람들…… 술 한잔 안 먹고 벌써 3시간 동안 떠들고 있네요.]

‘나 슬슬 힘든데…….’

[자요, 그냥.]

‘시끄러워서 못 자겠어. 도와…… 으읏.’

[그러게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너도 처먹었잖아!’

[먹은 건 수혁이죠. 저는 맛만 봤는데요?]

‘그게…… 그거야말로 책임 없는 쾌락 아니냐?’

[그렇죠. 그래서 안 말렸습니다. 그리고 수혁은 이제 그 업보를 청산할 때가 오고 있군요]

‘배변으로 해결이 될까?’

[되겠습니까? 체한 건데?]

‘망할…….’

피곤한데…… 잠이 제대로 오진 않았다.

시끄럽고, 환한 데다가 배까지 불편하니 어쩌겠나.

거기에 더해…….

“어디로 가긴. 좋은 데로 가야지.”

“유럽? 미국?”

“아니, 아니. 그런 데는 학회로 가잖아.”

“아, 형은 갑자기 왜 끼어들었어.”

“그러니까요.”

“이 새끼들아. 수혁이 가는데 나를 빼고 가?”

묘하게 신경 쓰이는 대화이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레지던트 되고 나서 제대로 된 휴가를 가 본 적이 없긴 했더랬다.

학회로야 해외도 가고 했지만…….

그게 휴가인가? 말 그대로 학회지.

물론 가서 잠깐 시간 나면 뭔가 보기도 하고 못 먹던 거 먹어 보기도 하긴 하지만…….

수혁은 가면 늘 발표가 있고 또 거기 사람들하고 엮이는 것도 모자라 진료까지 보아 온 탓에 일이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었더랬다.

아무튼, 크게 반발하고 나서는 이현종을 조태진과 신현태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그게 너무 뻔뻔하다 보니 이현종조차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원래 미친놈 다스리는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더 미친놈 데려오는 거란 말도 있지 않나.

요즘 들어 눈앞의 둘이 아주 빠르게 또라이화 되고 있다 보니 이현종도 좀 벅찰 때가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휴가에 센터장까지 휴가 가면 센터는 누가 지켜.”

“아니……. 학회는 가잖아.”

“그건 학회고. 그리고 국내 학회잖아.”

“전에 국제 학회도…….”

“그때야 아직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이었으니까 그렇지. 지금은 하루에도 외부 의뢰 환자만 수십인데 그거 애들한테 맡기고 간다고? 형 그렇게 책임감 부족한 사람이야? 언제는 일제 시대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하다 죽었을 거 같다며.”

“그게 이거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이놈아!”

“상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납득했겠지. 이제.”

“으읏.”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사이, 신현태가 논리정연한 말로 이현종을 침몰시켰다.

억울하고 분했다.

아들의 휴가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라니!

“이렇게 생각하시죠.”

거기에 염장 지르는 조태진을 보며 이현종은 주먹을 내질렀다.

“뭐 하세요?”

허나 이현종은 이제 늙었고, 조태진은 젊은 사람 중에서도 체격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분명 이쪽은 때린 건데 상대는 그냥 주먹 모양을 한 손으로 민 줄 알고 있었다.

여러모로 서글퍼진 이현종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상심에 빠진 그를 향해 조태진이 말을 이었다.

“아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아버지. 멋지지 않습니까?”

“음.”

그 말이 좀 멋지긴 했다.

확실히…….

있어 보이는 말이다.

“그 빈자리를 형이 채우면 안 되냐?”

“저요? 저는 안 되죠. 혈종만 보는 사람인데…… 의뢰 환자들 중에 암 환자는 거의 없지 않아요?”

“그럼 삼촌이 채워!”

“아……. 나는 NEJM도 못 쓰는 무능력자라…….”

“이 새끼가! 이번에 냈잖아!”

“케이스로 냈잖아. 수혁이한테 빌붙어서. 진또배기로 턱턱 내는 이현종과는 아무래도 격이 다르달까.”

“하아.”

하지만 있어 보이는 말이 다 무슨 소용인가!

아들하고 함께할 수 없는데.

게다가 신현태가 하는 말을 듣고 보니, 역시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할 뿐 실상은 놀리는 것이었다.

“니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 휴가…… 너네 가족이랑 안 가?”

“가족이랑도 가고, 수혁이랑도 가는 거지. 애초에 수혁이랑 나도 가족이야.”

“조태진, 너는! 너는 금슬 좋다며!”

“원장님도 금슬은 좋습니다. 근데 수혁이랑도 좋아요. 금슬.”

“금슬은 부부끼리 쓰는 말이야, 인마…….”

“아, 그래요? 제가 무식해서.”

이현종은 실로 오랜간만에 가슴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혈압이 높은 사람이었으면 이쯤에서 뇌출혈이라도 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면 심근경색이 오거나.

‘이런 기분들이셨나, 다들?’

이현종은 때아닌 공감에 빠지다가, 이 자식들이 괜히 오늘 와서 이 난리 법석을 피우는 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오늘?

오늘 때문인가?

그래, 정말 말한 것처럼 환자 봐 준 걸 꿀이라고만 생각했으면 왜 여깄나.

다른 싹수 노란 레지던트 놈들처럼 밖으로 나갔지.

허나 이놈들은 여깄다.

‘누가 뭐라 해도…… 이 두 놈은 우리랑 동류야.’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환자 보는 걸 좋아하는 놈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 개고생을 해 가면서 태화에 남아 있는 거다.

헌데 와서 수혁에게는 잘하고 나한테는 이래?

“니네 뭐야. 오늘 왜 이래!”

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신현태가 진중한 얼굴을 하고 답했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었는데, 수혁이 추천해서 본 만화에 나오는 놈…….

아X젠 소X케 같았다.

“몰라서 물어?”

“뭘 몰라.”

“오늘 하루 종일 수혁이랑 둘이서 놀았잖아. 나랑 태진이 따돌리고.”

“놀긴 뭘 놀아, 환자 본 건데.”

“즐거웠어, 안 즐거웠어.”

“즈, 즐겁긴 했지.”

“그럼 논 거지. 맞지?”

“그…….”

할 말이 궁색해졌다.

둘이 너무 무섭게 노려보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 죗값을 치러라, 이현종.”

이 말을 끝으로 수혁은 드디어 잠이 들 수 있었다.

뒤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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