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37화 (1,237/1,303)

1237화 뒤지게 굴린다 (1)

원래의 통합진료센터 일과는 빡세다기보다는 알차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진짜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당직을 제외하면 대개 출퇴근을 할 수 있어서 그랬다.

물론 다른 내과 분과도 퇴근이 있긴 하지만…….

주치의들은 퇴근을 해도 온전한 퇴근이 아닌 때가 참 많았다.

환자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 환자가 안 좋아졌을 때 다들 그에게 묻기 마련이라 그랬다.

더더군다나 환자가 안 좋아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집에 막 가는 것도 좀 그랬다.

자기 환자니까.

‘우리는 그런 경우가 없어서 참 좋았는데…….’

특히 환자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경우라면 더 그랬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일 수도 있고 또는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당직의한테 홀랑 맡기고 집에 갈 수 있겠나?

밖으로 나간다 해도 그 걱정에 온전히 오프를 즐길 수 없었다.

허나 통합진료센터는 이수혁, 이현종 거기에 더해 안대훈으로 대표되는 괴물 같은 펠로우, 임상 강사들이 있다 보니 대개 정규 시간에 환자들이 해결이 되는 편이었다.

혹 질환의 한계로 인해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예상은 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무엇보다 환자 본인과 보호자도 자신의 질환이나 경과를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니 부담이 아무래도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게 대체 무슨…….’

허나 이제 보통의 하루는 없다.

적어도 수혁이 돌아올 때까지는 그렇다.

이미 오후까지 환자를 다 봤다.

있는 환자, 없는 환자 닥닥 긁어서 다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센터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밥?

밥도 이현종이 도시락을 시켜 줘서 센터에서 먹고 있다.

‘야, 그래도 이거…… 좋은 건데?’

‘그렇긴 한데……. 나 집에 가고 싶은데…….’

맛잘알 아재 이현종이니만큼 도시락 하나를 시켜도 허투루 하는 법은 없었다.

게다가 이현종은 버는 돈을 딱히 쓸 데가 없는 사람이지 않나.

물론 쓰려고 마음먹고 쓴다면야 한참 모자라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차도 안 몰고 사치품도 사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도시락도 한정식집에서 알음알음 아는 사람에게만 준비해 주는 것으로 오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던트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눈치 챙겨. 무려 석좌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누, 누가 뭐래냐? 조용히 얘기하잖아, 조용히.’

‘집중하라고, 집중.’

‘알겠다…….’

이민정을 제외하고는 그랬다.

“자……. 오늘 봤던 질환들 중에 특이했던 것부터 보자. 먹으면서 들어. 나는 방금 다 먹었으니까.”

사실 불만을 품기에 애매한 분위기이긴 했다.

전임 원장, 현직 센터장에 태화 의료원에 단둘뿐인 석좌 교수 이현종이지 않나.

그것으로도 좀 모자라다 여겼는지…….

“나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석좌 교수 중 하나인 김승규가 왔다.

딸꾹.

다들 최선을 다해 그쪽으로 고개를 안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괜히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누군가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

김승규 얼굴에 익숙한 외과 애들이라고 해도 갑자기 마주치면 무서운데 내과 친구들은 어떻겠나.

당연하게도 딸꾹질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이현종도 더 말을 잇지 못했을 터였다.

-이수혁 교수가 무리해서 쓰러졌는데……. 다시는 그럴 일 없도록 공부를 시키고 싶다, 이거지?

-그래, 근데 분위기가 안 잡힐 수도 있으니까…….

-나보고 앉아 있어 달라?

-어, 화난 거 아니지……? 나 지금 너무 무서워.

-아냐. 진지한 거야. 그래, 내 도와주지. 이수혁 교수……. 가뜩이나 비리비리한데 무리해서 요절이라도 하면 안 되지.

-아빠 앞에서 아들 요절 얘기를……. 아냐, 아니다.

허나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다름 아닌 이현종이었다.

김승규를 토템으로 가져다 놓았다는 말인데…….

과연 효과는 미쳤다.

‘흐…….’

‘앞 보자, 앞.’

일부러 맨 뒤에 앉혀 놓았다.

시계 있는 쪽에.

그랬더니만 교육만 시작되면 일 초가 멀다 하고 시계만 보던 놈들이 전부 앞만 보고 있다.

속으로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에 이렇게 보기만 해서는 초집중 중이었다.

이현종으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었다.

“간. 간은 아주 중요한 장기지? 비단 통합진료센터에 오지 않는다고 해도 평생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 장기야.”

그렇게 분위기를 잡은 이현종은 거침없이 강의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말마따나 간이 중요한 장기이긴 하지만 이현종의 전공은 심장이라는 걸 감안하면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걸 제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건 역시나 김승규였다.

‘역시 괜히 석좌 교수 받은 게 아니구만……. 저래서 원장도 한 건가? 그래, 확실히 내 얼굴 때문에 원장을 안 시켜 준 건 아닐 거야?’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고 있긴 한데…….

자기 분과도 아닌데 저만큼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다행히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간에 있어서 가장 빈번하게 문제를 일으키던 비형간염의 유병률은 크게 떨어졌어. 예방 주사를 맞히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알코올성 간경화는 아직까지 크게 줄어들고 있진 않지만……. 지금 가장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건 지방간이야.”

그래, 지방간.

큰 문제다.

간에 지방 좀 끼는 게 뭐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이거 때문에 간 이식까지 가는 경우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는 걸 보면 정말이지…….

“대사질환의 증가와 동반해서 증가하는 거다 보니 당연한 일이야. 미국에서는 유병률이 30%니까……. 당연히 비만이 영향을 미치는데, 그 외에도 알코올, 당뇨, 약물 등이 영향을 미쳐. 드물게는 낭포성 섬유증이나 공장 유관 우회술, 임신도 있지.”

중요한 질환이다, 이건데…….

그래도 저걸 아무 준비도 없이 저렇게 떠들어 재낄 수 있다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다 싶달까?

아, 이 경우에는 그 자식에 그 애비라고 해야 하나.

‘왜 저렇게 무섭게 웃지?’

그 생각에 씨익 웃는 김승규를 보면서 이현종은 애써 좋은 생각을 했다.

주로 이기자와 수혁 생각이었다.

이 둘을 제외하면 김승규의 외모를 잊게 할 만한 요인이 이 세상에 없었다.

“이렇게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진짜 잘 알아야 해. CT, MRI, 초음파에서 각각 어찌 보이는지 알아야 된다 이 말이야.”

“네.”

이현종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아까 봤던 환자의 기록을 띄웠다.

환자는 60세 여성.

3개월간 지속된 명치 통증을 주소로 소화기내과에 내원했다.

“이 환자는 딱히 병력이 없어. 하지만 환자의 두 자매는 각기 유방암, 대장암에 걸린 병력이 있고 어머니도 유방암이었지. 암의 가족력이 있다는 건데……. 아무튼, 환자가 내원하고 시행한 검사에 따르면 환자는 bmi가 29야. 상당히 높았지.”

bmi 29.

미국 기준으로 하면 고도 비만은 아니다.

하지만 아시아 태평양 기준으로는 고도 비만이다.

왜 차별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게 인종별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췌장 크기부터가 다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단순 bmi만으로 비만을 가르기엔 근육량 등에 대한 고려가 있긴 해야겠지만…….

일부 운동인을 제외하면 별 의미 없는 얘기이기도 했다.

“혈액검사에서 약간의 간 수치가 증가해 있었지? 그 외에는 뭐……. 빈혈이 좀 있고, 그거 말고는 괜찮았어. 아무튼, 간 수치가 증가해 있는 데다가 암 가족력도 있고 외래 본 양반이 초음파 덕후다 보니까 그날 바로 봤지? 자, 어때?”

화면에 뜬 것은 초음파 영상이었다.

딱 사진만 따온 것이 아니라 그냥 녹화된 영상 전체를 틀어 두었다, 이 말이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보는 게 제일 좋긴 했다.

단지 소견만 보는 게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대고,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기에 그러했다.

물론 어차피 태화 의료원이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학 병원급에서 일할 거면 초음파를 봐 줄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외래 보면서, 또 회진 돌면서 매번 의뢰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나?

“간 비대가 있습니다.”

“그래, 전반적으로 커져 있지?”

“그리고…… 약간의 결절 소견이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초음파에서 결절 소견이 보인다.

간의 결절.

이건 사실상 초음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견 중 거의 최악이라고 보면 되었다.

암 또는 간경화를 시사하는 소견이니까.

심지어 여기서는 암처럼 보였다.

“그래서 CT와 MRI를 찍었어. CT부터 보지. 어떻게 보이지?”

“조영 증강 없이…… 인접한 간보다 어두운 소견의 다발성 결절이 보입니다.”

“그래, 그렇지. 이럼 뭘 의심해야 하지?”

간암은 조영 증강이 잘되는 암이다.

달리 말하면 밝은색을 띤다는 뜻.

헌데 이건 반대로 어둡다.

“전이된 암을 가리킵니다.”

“그래, 보통은 그래. 그럼 MRI를 보자.”

김승규는 이쯤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지방간 얘기하다가 갑자기 전이가 왜 나와?’

그는 수술하는 사람 아닌가.

진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미 진단이 된 환자에게 치료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낯설었다.

기분 나쁜 낯섦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진단이라는 행위는 추리에 가깝고, 추리란 재밌는 일이니까.

물론 의학적인 추론은 대개 사람 생명과 연관이 있다 보니 잘 안 풀릴 때면 사람을 돌게 만들긴 하는데…….

지금은 케이스 강의다 보니 그렇게 골 깨질 일도 없었다.

근데 갑자기 너무 다른 방향으로 튀고 있다 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저 새끼 또 왜 저래. 무섭게.’

이현종은 최선을 다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MRI를 띄웠다.

그러자 아까 답하지 않았던 펠로우가 손을 들고 그 소견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MRI에서는 1cm 미만의 어두운색의 결절들이 있고, 동맥 페이즈에서 아주 약간 조영 증상을 보입니다. 포털 베인 페이스에서는 일반적인 간 피질에 비해 어두운 소견을 보이는데 그 어두운 정도가 지방 세포와 일치합니다.”

“잉.”

그 설명을 들은 김승규가 저도 모르게 잉 소리를 냈다.

갑자기 결절이 지방과 일치한다고 하니 놀라워서 그랬다.

“힉.”

방금 말을 꺼냈던 장종원은 잠시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 실제로 멎었다.

너무 무서워서.

김승규에게 결례를 범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단순 오해였기 때문에, 또 이현종은 장종원이 나중에 자신은 모르는 모종의 이유로 김승규에게 맞아 죽을지언정 빨리 설명을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의는 진행되었다.

“그래, 이런데도 간 전이 의증을 두고 있었지? 근데 지방간이 결절 형태로도…… 드물게 나타날 수 있단 말이야. 실제로 오늘 한 조직검사에서 어떻게 나왔지?”

조직검사는 당연하게도 김진실 교수가 해 주었다.

귀신같은 솜씨로.

“지방간이 나왔습니다.”

“그래. 뭐……. 이렇게 심한 지방간이면 간경화가 올 가능성이 높긴 해. 하지만 아직 아니지. 그러니 무리해서 검사를 하기보다는 지방간에 대한 치료를 해야 하는 게 맞지. 흔한 질환의 드문 형태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케이스였어. 자……. 다음은…….”

그렇게 케이스 강의를 마친 이현종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한 두 시간은 족히 가르침을 베풀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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