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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38화 (1,238/1,303)

1238화 뒤지게 굴린다 (2)

강의 듣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제일 어린 친구 나이가 27살이고, 김성진 같은 경우엔 37살이지 않나.

27살이야 뭐 어떻게 어떻게 견딜 수 있다고 해도 마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 2시간 내내 강의만 듣는 건…….

게다가 오전도 아니지 않나.

밤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거야…….’

슬슬 좀이 쑤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뛰쳐나가는 놈이 나와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레지던트 놈들 중에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놈들이 몇 놈 있었다.

하지만 펠로우 이상, 그러니까 진짜 통합진료센터의 식구라 할 수 있는 놈들은 전혀 흔들림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걸 보고 있는 김승규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놈들만 골라 뽑았지?’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란 말이 있지 않나.

이 상황에서 쓰기엔 좀 그런 말이긴 한데, 아무튼.

원래 열심히 하던 놈이 결국, 후에도 열심히 하는 법이다.

당연히 이현종, 이수혁과 같은 교수가 영향을 미치기도 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애초에 잘 뽑아야 했다.

괜히 무협지에서 제자 뽑을 때 이거 보고 저거 보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특히 외과는 손을 쓰는 영역이고, 또 간 이식 수술처럼 큰 수술은 손뿐만이 아니라 환자를 순간순간 파악하는 감각이 필요했다.

즉 재능이 필요하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재능 중 최고는 역시 성실성이지.’

처음에 탁 튀고 나가는 녀석은 매년 있다.

레지던트 수준에서도 그렇고, 펠로우 수준에서도 그렇다.

남들보다 유난히 러닝커브가 가파른 녀석이 있다는 말인데…….

끝까지 가서 보면, 그러니까 간이식 수술과 같은 메인 수술을 혼자서 집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서 보면 오히려 저 뒤에 가 있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튀던 놈이 끝까지 묵묵히 해 나가면 도달하는 지점 자체가 다르긴 하겠지만…….

‘나 같은 놈을 매년 바라는 건 욕심이야.’

결국, 의사는 사람을 살리면 그만 아닌가.

의사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세밀한 차이가…… 뭐가 중요하겠나.

제대로 수술해서 남의 간을 환자의 배 속에 무사히 정착시키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김승규가 보기에 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가장 큰 재능은 역시 성실성인데,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그 성실성을 규격 외의 수준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안대훈이야 원래 그런 줄 알고 있었더랬다.

저 자식은 좀…… 이상하잖아?

헌데 나름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놈들조차 의학에 대한 열정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탐이 난다.

이제 와 이것들을 뺏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년 놈들 뽑을 때부터는 흉내라도 내야 할 것 같았다.

‘이따 물어봐야지.’

김승규가 그런 생각에, 즉 대한외과학회 전반에 걸쳐 별로 좋지 못할 생각에 도달할 때쯤이 되어서야 이현종의 강의가 끝이 났다.

다룬 케이스만 4개에 거기서 파생한 배경 지식 강의 또한 4개였다.

이쯤 되면 사실 이현종이 제일 지쳐야 정상이었다.

나이가 60을 훌쩍 넘은 사람 아닌가.

물론 내과 중에서는 나름 험한 과라 할 수 있는 순환기내과를 선택했고, 또 거기서 한자리해 먹은 만큼 타고난 체력이야 있겠지만 김승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자자. 그럼 응급실 콜 온 거 없나?”

헌데 이현종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환자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이놈 봐?’

덕분에 김승규는 제자뿐만 아니라, 이현종에 대해서도 조금 놀랐다.

원래 똑똑한 놈인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강단이 있던 놈인가?

솔직히 말하면, 이현종에 대해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백강혁 앞에서 빌빌 싸던 모습이었다.

‘나도 싸긴 했지, 그때는.’

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백강혁 앞에서 비굴한 모습 보이는 건 딱히 흠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인간은 좀…….

응, 그렇잖아.

“나도 같이 가지.”

애초에 제자 뽑는 것도 물어볼 생각이 들었던 데다가, 회춘한 듯한 이현종의 기세가 마음에 든 김승규는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섰다.

‘아니……. 왜?’

이현종은 그런 김승규가 달갑지 않았다.

일단 얼굴부터가 좀 그렇다.

그 얼굴을 이용하려고 부른 것이긴 한데…….

아까까지는 사실 수혁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집에 갔으면 싶어지고만 있었다.

“어, 그래. 그래.”

하지만 이 얼굴을 보고 어찌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나.

진짜 조폭이나 뭔가 다른 직업을 택했어야 했다.

북파 공작원 같은 거 했으면 통일이 앞당겨질 수도 있었을 거란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 콜 하나 와 있습니다.”

“언제?”

다행인 것은 김승규도 여기가 외과가 아닌 내과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주제넘게 나서는 대신 얼굴을 굳히고 뒤에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여기 있는 모두가 평소보다 훨씬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게 되었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김승규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딱딱 돌아가고 있는 센터 사람들을 보면서, 외과를 어떻게 굴릴 것인가 해한 심도 있는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그렇게 대악마를 뒤로하고, 이현종의 말에 레지던트가 답했다.

“한 20분 전이요.”

“20분? 급한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센터 메인 콜도 아니긴 하고요. 혈종 콜인데……. 혈종에서 좀 이상하다고 이따 시간 되면 와서 봐 달라고 했습니다.”

“혈종이라…….”

암 환자일 터였다.

신규 진단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암 진단받으면 밤 10시 가까운 시간에 응급실로 오는 환자는 없으니까.

물론 다른 곳에서 진단받은 사람이 불안한 마음에 세컨드 오피니언을 원해서 오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긴 한데…….

그런 경우는 트리아지 간호사 선에서 정리되기 마련이었다.

태화 의료원쯤 되는 응급실은 정말 응급한 사람만 보기에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어떤 환잔데?”

머릿속을 정리한 이현종의 말에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기 시작했다.

“호지킨 림프종으로 본원 내원 중인 환자입니다. 진단은 3년 전에 받았습니다.”

“완전 관해 상태야?”

“1차 항암 치료 시 조혈 모세포 이식까지 받았습니다만……. 6개월 전 재발 소견 보여 다시 항암 치료받고 경과 관찰 중입니다. 아, 아니……. 경구 항암 치료 진행 중에 있습니다.”

“허……. 그래?”

“네.”

“하긴 호지킨 림프종이……. 만만치 않긴 하지.”

림프종은 전반적으로 고형암, 즉 위암이나 폐암, 간암과 같이 장기에 발생하는 단단한 암에 비하면 항암제 효과도 좋고 그나마 정복 가능성도 어느 정도 보이는 암이긴 했다.

하지만 종류가 워낙에 다양하다 보니 예후 또한 무척 다양했다.

치료하고, 또 치료받는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온 거래? 열나나?”

특히 항암 치료가 이렇게 지속되는 경우에는…….

피할 수 없는 면역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애초에 감염내과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두 개 아닌가.

하나는 팬데믹 질환, 또 하나는 면역저하자에 발생할 수 있는 질환.

전자는 기후 변화나 글로벌화와 같은 사회 현상이 원인이라면, 후자는 얄궂게도 현대 의학의 발전에 의해 이전 같았으면 죽었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간신히 살려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종류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대개 심각해지기 마련이었다.

“아, 아뇨. 우측 팔이 저리고 힘이 안 들어간다는 것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응……? 재발했나? 또?”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동일한 증상으로 열흘 전에 외래 봤고, 3일 전 외래 처방으로 시행한 PET CT상……. 이거 정식 판독은 아닌데요. 우측 상완 신경총 부근에 과대사성 병변이 있다고 합니다.”

“영상 띄워 봐.”

“네.”

“으음…….”

확실히 들은 대로였다.

환자의 우측 상완 신경총, 그러니까 팔로 들어가는 신경 다발 주변으로 뭔가 있었다.

전에 찍은 영상과 비교를 해 보니,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역시 재발이었다.

이상한 건…….

“이걸 왜 우리한테 의뢰했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혈종 당직도 의아해하긴 했습니다.”

“당직이 의아해했다고? 걔가 의뢰한 거 아냐?”

“그 친구가 의뢰한 건 맞는데……. 조태진 교수님이 노티 받고 통합진료센터 확인 한번 받아 보라고 하셨답니다.”

“지는 뭐 하고?”

“내일부터 학회라 지금 지방 내려가고 있다고……. 이거 수혁이 아니, 아니! 이수혁 교수님이 좋아할 케이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답니다.”

“으응……?”

조태진이……?

‘조태진……. 그 자식.’

이현종은 조태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빈말로도 스마트하게 생겼다고 할 수는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조태진은 지금 혈액종양내과, 그중에서도 림프종에 있어서는 대가 소리를 듣기 시작한 놈이었다.

수혁이랑 놀려고 공부하다 보니 얻어걸린 느낌이 크긴 한데, 이유가 뭐가 되었건 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 이현종……. 일하는 데 있어 사심을 섞지 않는 사내지.’

이현종은 그러한 점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레 레지던트를 밀어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기록을 깠는데, 이상했다.

“이거 조태진 환자 아닌데?”

“아……. 네. 근데 지금 담당 교수님은 연락이 안 돼서 그 밑에 조태진 교수님한테 연락했다고 합니다.”

“조태진이 거기 제일 주니어인가……? 아직도?”

“아……. 그게, 조태진 교수님이 매월 레지던트 턴할 때……. 다른 교수님 연락 안 되면 그냥 바로 자기 부르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보든지 아니면 수혁이 아니, 아니! 이수혁 교수님한테 물어보겠다고 하시면서요.”

“미친놈이구나, 걔도.”

혈종 환자가 다 콜 받으면서 생활이 가능한가?

그 환자 많다는 태화 의료원 중에서도 제일 많은 곳이 혈종인데…….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녀석도 수혁에 대한 애정도만큼은 진심이라는 걸, 이현종은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기록을 계속 돌렸다.

그냥 봤다면…….

사실 딱히 느끼는 게 없을 터였다.

담당 교수, 그러니까 조태진보다 몇 년 위 교수 또한 명의 소리 듣는 녀석이지 않던가.

기록만 봐도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유려하게 환자를 봐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태진이 분명히 수혁이가 좋아할 케이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우리 수혁이가 의외로 여린 구석이 있지.’

그 자식…….

내과 의사 주제에 아직도 환자의 죽음이나 나쁜 예후를 대하는 데 있어 너무 깊이 들어가는 면이 있다.

조금 뒤로 물러서야…… 오래 할 수 있는 게 내과 의사이지 않나.

너무 곧은 나무는 부러지듯이, 너무 공감하는 의사는 깨지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고로 수혁은 암 재발이나 신규 진단과 같은 케이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과정이 제아무리 흥미롭고 어려웠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거 암이 아니란 얘긴데?’

흐음.

이현종은 다시금 손을 까딱거리면서 기록을 헤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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