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0화 아프다 (1)
이현종이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을 무렵, 수혁은 집에 있었다.
집이라고 해 봐야……. 딱히 익숙한 느낌이 있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보다는 연구실에서 훨씬 많이 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빈집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진 않았다.
적어도 매주 한 번씩은 청소 도우미가 오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불도 열흘에 한 번쯤은 갈아 주고 있어서 그랬다.
“음…….”
[머리가 아프네요. 이것이 두통이군.]
그렇게 깔끔하게 쫙 깔린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수혁은 체온을 재고 있었다.
“38.8도…….”
[열이 나면 이런 느낌이군요. 더 높아지면 어떠려나?]
“여기서 더 높아지면 그건 좀.”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런 기회가 드물긴 한데. 약 한 번만 쉬어 보지?]
“이 새꺄……. 나 가지고 실험하려고 하지 마.”
[하지만…….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양질의 데이터가 팍팍 쌓이고 있습니다.]
체온계를 들여다보던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확실히…….
뭔가 뭔가긴 했거든.
지금까지 아팠던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아니긴 한데……. 사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기저질환조차 없는 성인 남성이 아프면 뭐 얼마나 아프겠나.
진짜 열심히 살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 왔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다른 레지던트들에 비하면 훨씬 안온한 삶을 살아오기도 했더랬다.
적어도 하루 6시간 정도는 꼬박꼬박 잘 수 있었으니 뭐…….
원래 이 나이 때는 잠 잘 자고, 밥만 제때 먹고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법이었다.
‘어떻게 보면 고마운 건가?’
[혼잣말할 기회도 흔치 않은데 그냥 계속 말로 하지, 왜.]
‘아니, 그래도……. 내가 방금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떠올려 봤는데 너무 미친놈 같았어.’
[야빠리 닝겐와 오모시로이……. 쓸데없는 짓을 잘도 하는군요. 열이 올라서 그런가? 그나저나 뭐가 고맙다고 하는 겁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이제 한참 전의 일처럼 여겨지는…….
그러나 놀랍게도 아직 오늘이었던 때를 떠올렸다.
-야야! 수혁이가 아프다!
-내시경, 내시경!
-소변줄!
-열이 난다!
-혈압이 흔들려!
미친놈들…….
그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아니…….
모여든 놈들이 19세기 의사 놈들도 아니지 않나.
최근 바루다마저 재밌고 유익하다는 평을 내린 의학의 역사라는 유튜브를 보면서, 야, 그래도 현대에 태어나 다행이다, 저 때 태어났으면 바루다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환자가 된 심정을 21세기 때 고스란히 느끼게 될는지는 몰랐다.
아무튼, 그 덕인지 탓인지 오전보다 지금이 훨씬 아픈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데이터화할 만한 자료가 많이 생기고 있다, 이 말이었다.
[아……. 그런 뜻이었나.]
‘응. 근데 이거 이러다가 더 아파지면 어쩌지? 나 정말 잘못되면 어째?’
[편도염에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지금 항생제도 먹고 있지 않습니까?]
‘항생제야 먹고 있지만……. 지금 타겟으로 하고 있는 세균은 대개 1세대 세파 정도란 말이지.’
[그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닙니까?]
바루다는 시큰둥했지만, 이 자식은 암만 인간같이 군다고 해도 인공지능 깡통 아닌가.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진짜 인간에 비하면 공감 능력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공감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말이었다.
‘세상에 죽음이라니.’
미친.
죽어?
비합리적인 생각이라는 건 수혁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이과 아니랄까 봐 맨날맨날 합리적인 추론만 하고 있는 놈이지 않나.
하지만 이 공포는 합리적인 것에 기인하지 않는다.
본능에 가까운 문제니까.
“생각해 봐. 나는 대학 병원에서 일하잖아.”
[모르지 않죠. 나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리고 최근 일주일 동안의 내 행적을……. 역학 조사해 봤거든.”
[언제 했대?]
“아까 뻗었을 때. 비몽사몽 간에 하니까 이것도 재밌는 작업이더만.”
[음.]
아마 제정신 박힌 사람이 들었다면 미친놈이란 말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사람도 아닌 바루다뿐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뭐…….
영 이상한 대화라고 해도 전혀 막힘없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보니까 내가 병원 밖에 두 번 나갔는데. 한 번은 밖이라기도 좀 뭐해. 산책이었어. 병원 정원.”
[아……. 우하윤이랑? 그랬지. 그때 새로 나온 핫도그라고 하면서 뭘 사 왔더라. 데이터에서 지워 버려서 모르겠네.]
“편해서 좋겠다. 오이 핫도그.”
[으, 으으으으.]
“끔찍하긴 했지만 그게 내 편도염을 일으켰을 거 같진 않고……. 다른 한 번은 나가서 저녁 먹었지. 근데 가게가 일반적인 노포가 아닌 파인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다른 손님들과 접촉은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으음……. 그러니까 유의미한 접촉은 병원에서만 일어났을 거다, 이 말인 거죠? 지금?]
바루다는 수혁의 안색을 살폈다.
말 그대로 밖에서 봤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부에서 지금 이 인간의 혈색이 어떨지를 살폈다는 얘기였다.
어설픈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의외로 이게 더 정확할 때가 많았다.
조명이나 화장에 의해 마스킹 될 여지가 아예 없으니까.
그 결과, 바루다는 수혁이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집에 오기로 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상태로 병원에 있었다면 뭐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사고를 쳤을 게 뻔했다.
“응. 근데 문제는 내가 통합진료센터에 있다 보니……. 내가 접하는 환자들이 대개는 괴질이잖아? 감염병 환자들도…… 그렇고.”
[그렇죠.]
그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답하는 것이 영 성의가 없어져 버렸다.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 하게 된 지도 오래다 보니 원래 같으면 대번에 알아차려야 할 일인데…….
역시나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그저 주절대고 있었다.
“그러니……. 일반적인 지역 사회 감염에서 볼 수 있는 균이 아니라 다른 균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럼 지금 내가 먹고 있는 항생제는 안 듣지 않을까?”
[으음……. 재미있는 추론이네요.]
“재미있는 게 아니라, 인마. 내 자신에 대한 추론이라니까? 더없이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네네.]
이쯤 했으면 사실 바루다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할 텐데…….
수혁은 그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바를 떠들고 있었다.
바루다 또한 적극적으로 그걸 말리진 않았다.
수혁 정도 되는 의사라면 설령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추론이라 할지라도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서 그랬다.
사실 맨날 병원에서 환자 보고 하다가 적막한 집에 와 있으려니 좀 심심하기도 했더랬다.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면……. 세파 1세대 항생제로는 지금 균 컨트롤이 안 될 거야. 실제로 나 지금……. 오전보다 더 아파.”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내시경, 소변줄 어택에 당한 데다가, 그런 주제에 쉬는 대신 환자를 보러 돌아다니지 않았나.
업보 스택이 쌓였으니 아프고 싶든 것이 사실 당연한 일인데…….
바루다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딱 수혁이 하는 말만 들어보면 그럴싸하게 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의사가 환자를 문진하는 과정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사람은 자기의 시선에서 말을 하게 되지 않나?
결코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설령 그것들이 자신을 둘러싼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기본적인 진료 스킬인 문진에서조차 비틀림이 심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루다는 역설적이게도 의사인 이수혁의 말을 들으면서 비로소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게 진행하게 되면……. 편도와 농양이 되겠지. 내친김에 입 벌림 테스트나 해 볼까……. 으음……. 이건 아직 괜찮네, 다행히. 주기적으로 해야겠어. 확실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그렇네요. 병원 내 감염이라면 사실 지금 쓰고 있는 항생제는 밀가루나 다름이 없으니……. 게다가 수혁의 평소 생활 습관을 미루어 보면 그렇게 건강체는 아닌 만큼 편도와 농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이런 망할……. 편도와 농양이 되면 이제 경부 깊은 쪽으로 파고들겠지, 염증이……. 그러다 종격동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사망률이 절반이야. 나머지 절반이라고 해도, 멀쩡히 살아나는 것도 아니지.”
[흐음……. 깊은 경부감염이라……. 보기 힘들어진 질환이지만 여전히 꽤 있는 병이긴 하죠.]
공교롭게도 얼마 전에도 봤다.
이게 좀 슬픈 일인데…….
모든 병이 다 사회경제적인 지위와 연관이 있지만, 감염병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깊은 경부감염 같은 병으로 실려 오는 사람들은 대개 수도권 외곽 또는 그보다 먼 쪽의 거주자인 경우가 많았다.
단순한 의료 접근성의 문제도 아니었다.
사실 보건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서, 대한민국의 도서 산간 지역 의료 접근성은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좋기 때문이었다.
물론……. 의전이 도입되면서 군대를 다녀온 채 의사가 되는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중보건의사 숫자가 줄면서 최근 좀 어려움이 생기긴 했지만…….
[그러나 그런 분들은 기저질환 관리가 잘 안 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게다가, 나이가 훨씬 많고요. 감염원 또한 단순 접촉이 아니라 생선 가시 등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고요.]
“합리적인 얘기야. 하지만……. 모든 깊은 경부감염이 그런 환자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나도 생선 먹은 적이 있다고.”
바루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반론을 펼쳤다.
지금까지 나름 추론을 잘해 왔으니 그래도 그럴싸한 말로 반박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였다.
장기나 체스처럼 수 싸움을 하고 싶다 이 말인데…….
방금 것은 살짝 우기기였다.
해서 실망하려는 찰나, 수혁이 말을 이었다.
“설령 생선 가시가 걸렸었다는 기억이 없다 해도…….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돼.”
[그건 왜 그렇죠?]
“내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가 되니까.”
[아…….]
점입가경이구나 싶었다.
바루다는 이제 슬슬 잠이나 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입 터진 수혁을 잠재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고작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떠드는 것이다 보니 그 동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적인 편도염이라기엔 내 생활 습관이 문제가 되지.”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나는 마스크를 끼고 있어. 환자를 보거나 할 때. 직접 접촉이 거의 없다는 거야. 회진 돌 때나 회의 시에는 아니지만……. 그때 만나는 사람들이 다 어떻지?”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병원 말고는 집 밖에 안 가는 사람들이죠. 다들 손 잘 씻고, 마스크도 잘 끼고……. 어?]
“그래, 지역 사회에서 획득 가능한 감염일 가능성이 거의 제로야.”
[어……?]
이제 말려질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있었다.
바루다 또한 슬슬 설득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