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화 여름 (1)
주말이 지나고, 수혁은 쌩쌩해졌다.
‘이렇게 쉬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주말이고 평일이고 없이 매일매일 병원에 나가지 않았나.
사실 이상한 일이긴 했다.
어떻게 사람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단 말인가.
허나 막상 대학 병원에서만 있던 사람들은 이상한 점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데다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태도 또한 취하고 있기에 그랬다.
‘개운하구만.’
[그러니까요. 흐음……. 역시 사람은 가끔 쉬어 주긴 해야겠군요.]
그러다 정신 차리게 되는 시점이 보통 연수 가면서다.
남자 같은 경우 군의관 또는 공보의를 하면서 세상을 배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사실 커리어가 완전히 끊기는 상황이다 보니 쉰다는 느낌보단 도태된다는 느낌이 더 강하기가 쉬워서 그랬다.
아무튼, 해외 연수를 가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인생이 그렇게까지 치열하게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몸서리치게 느끼게 된다.
안 그런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미국의 삶이라는 게 한국에서의 삶보다 무조건 낫지는 않더라도 ‘여유’의 측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우월한 면이 있지 않던가.
‘으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어야겠어.’
[뭐……. 적당히 쉬는 것 정도는 저도 이제 허용을 하긴 해야겠군요. 대신 운동을 하죠, 그날.]
‘그게 쉬는 건가?’
[이번에 쓰러진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바디 쉐이프를 보시고요.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운동이 점점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수혁은 아무래도 보통의 대학 병원 의사들보다도 훨씬 빡세게 살아왔기 때문인지, 딱 이틀 쉰 것만으로도 현실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뭐 수혁이 깨달았다는 현실조차 진짜 현실에 비하면 혹독하기 그지없는 현실이지만…….
수혁은 물론이거니와 바루다 또한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
일단 몸도 문제였다.
노화가…… 진행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뭐, 성장이 끝났으면 노화가 시작되는 게 당연한 진리라고는 하지만, 머리로 알던 것을 몸으로 체감하게 되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수혁만 체감했다면 그저 느낌일 거라 치부할 수도 있겠는데 바루다까지 동의하게 되었다는 건 의학적 팩트에 한없이 가깝다고 봐야 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느끼긴 했어. 망할…….’
[지방의 프로포션이 늘어난 것도 늘어난 것인데……. 그보다는 전반적인 근육량이 줄어든 것이 큽니다.]
‘아니, 너는 네가 알아서 나 관리해 준다고 하지 않았냐?’
[최근에 연애하는 거 구경하느라 소홀히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사과 박으니까 뭐라 하기도 어렵네.’
[그리고 큰 병 생기는지 아닌지는 대강 보고 있어요. 뭐……. 자율신경계 톤만 보고 판단하는 건 어렵긴 하지만, 어차피 매년 건강 검진받고 있지 않습니까.]
근육량이 준다.
30대 초반인데 준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어? 웬일로 계단으로 가요?”
해서 일단 주 1회 각 잡고 운동을 하기로 했다.
PT를 끊었다 이 말이었다.
거기에 더해 평소 신체 활동을 늘리기 위해 일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 운동을 좀 해야 될 거 같아서요.”
“얘기는 들었어요. 쓰러졌다고.”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요. 편도염이었습니다.”
“그래요? 이현종 교수님하고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말이 있던데…….”
“그……. 아닙니다. 근데 그건 어디서 들으셨어요?”
“유튜브에 있어요.”
“네?”
“혀기후니? 거기.”
“아…….”
이 미친놈.
안대훈……!
스승의 목구멍과 똥구멍에 내시경을 처넣는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그따위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느낌이 그럴 뿐, 딱히 아까에 비해 빨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 해도 다친 다리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 그랬다.
사고 터지고 초창기에 백강혁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와 뭐 어쩌겠나.
“후…….”
이게 마냥 단점만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워낙에 긍정적인 인간이어서가 더 크긴 할 텐데, 하여간, 천천히 오르다 보니 화는 어느새 가라앉았다.
대신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계단으로 다니는 사람 왜 이렇게 많냐.’
[그러니까요, 건강 관리에 너무 안일했던 거 같군요.]
‘그러니까. 생각보다 이 사람들 건강에 진심이네.’
[근데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건강 관리하라고 하면 환자들이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의사들이 술 더 먹고, 담배 더 피운다는 말 같은 거 말이다.
허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옛날에야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그냥 나라 전체가 딱히 건강이나 오래 사는 것에 관심이 덜하지 않았나?
웰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튀어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하긴……. 맨날 아픈 사람 보는데 관리 안 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이번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 힘내십쇼.]
‘너 감각 끊은 거 같은데?’
[굳이 불쾌한 감각을 느낄 필요는 없으니까요.]
‘망할 놈.’
그럼 요새는 어떠한가.
수혁이 보는 대로였다.
아니, 보는 것보다 훨씬 더했다.
병원 헬스장만 해도 엄청 몰리지 않던가.
술, 담배?
흡연자 보는 건 꽤 어려운 일이 된 지 오래였다.
술도 두주불사가 되도록 먹는 건 나이 많은 교수들 정도지, 젊은 교수나 레지던트 수준으로 내려오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끼익.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센터였다.
이렇게 말하니까 엄청 높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기껏해야 3층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뭔가 좀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앞으로 병동 투어 할 때도 다 걸어 다니게 되면…….
어쩌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나.
“잉.”
“무슨 일이야, 이게.”
수혁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그랬다.
계단 쪽 문을 열고 나타나는 수혁이라니.
안대훈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뭐라 말이라도 한두 마디씩 보태고 있는 데 반해 녀석은 그저 눈만 끔뻑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좋은 아침. 후…….”
그렇게 다들 놀라고 있는 가운데 수혁은 인사를 건네고, 스테이션을 향해 걸었다.
평소에도 그런 수혁을 위해 길을 깔아 주는 센터 일동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말로 다 하지 못할 위엄이 느껴졌다.
뭐랄까.
죽다 살아난 사람이 귀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실은 편도염이었고, 얼싸안고 울었던 것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는 것을 머릿속으론 다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여기 커피요.”
하윤이 그런 수혁에게 다가와 커피를 건넸다.
센터 내 모든 사람들이 커피를 쥐고 있었는데, 이게 일종의 문화라고 보면 되었다.
카드는 이현종 카드를 쓰지만 사 오는 건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다.
모두 아메리카노였고, 모두 샷이 추가되어 있었다.
전날 밤이 아무리 개같은 밤이었다 해도 오늘 아침엔 일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카페인을 들이부어야 했다.
“오, 고마워.”
수혁은 사실 전날 같이 마리오 영화도 보고 헤어진 하윤을 보면서, 커피를 받아 마셨다.
[흐…….]
쉬면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더니 꼴랑 이틀 만인데도 불구하고 느낌이 남달랐다.
원래도 잘 쉬어서 준비 만반이었던 뇌에 부스터가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괜히 바루다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환자 보자. 빨리.”
이 느낌이 가시기 전에 환자를 보고 싶었다.
해서 수혁은 사람들을 채근했다.
뭐…….
유별나다는 느낌 따위는 없었다.
원래 이런 사람 아닌가.
환자 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이틀이나 쉬고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봐야 했다.
“음……. 이 환자는 이따 보고. 이 환자는 여기 봤어? 별문제 없을 거 같은데…….”
허나 스테이션 앞에서 대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오늘 뭔가 다르단 느낌을 받게 되었다.
너무 빠르다고 해야 하나?
원래도 빨랐기 때문에 속도감 있는 진료에는 충분히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레이싱인가?’
‘뭐지?’
일반적인 녀석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주님……. 소인……. 오늘 또 감복 또 감복 하나이다.’
원래 유튜브 건으로 한바탕 푸닥거리해야 했는데 수혁이 환자 보는 데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무사히 넘어가게 된 안대훈 또한 놀라고 있었다.
이현종 등이 하도 지랄하는 바람에 더 이상 교주 같은 소리는 공개 석상에서는 참고 있는 그인데, 지금은 저도 모르게 그 소리가 팍팍 나오고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이건 찍어야 되는데…….’
안대훈은 슬쩍 하윤을 바라보았다.
하윤도 비슷한 생각인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오래 꾸물거린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미 늦었다 싶었다.
벌써 컴퓨터 앞에서 떠드는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갈까.”
수혁은 어느새 성큼성큼 병실을 향해 걷고 있었다.
‘미친…….’
‘뭐야, 이거. 왜 레벨업을 했지?’
안대훈도 안대훈이지만, 하윤도 놀란 상황이었다.
딱히 뭐 공부를 한 것도 아니지 않나.
토요일에는 그냥 내내 자고 목욕하고 먹고 했다고 들었다.
일요일에는 잠깐 데이트하고 또 가서 자고 목욕하고 먹고 했다고 했고.
근데……. 왜?
‘공부 잠깐 한다고 실력이 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해.’
바닥에서 올라간다면야 그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혁 레벨에서는 이상한 거 아닌가?
‘쉬는 것만으로 더 머리가 잘 도는 건 아니네.’
[네. 확실히…….]
다들 놀란 채로, 영문을 모르는 채로 수혁을 따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수혁도 약간 놀란 상황이었다.
컨디션이 좋다는 거야 뭐 일어나자마자 알았다.
설령 바루다가 없었다고 해도 알 수 있을 만큼이나 명확했으니까.
지금 놀라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열이 나면 그래, 이렇게 되지.’
[약을 먹고 내리면 이런 반응이고요.]
‘심장이 열 때문에 뛸 때는 좀 달라.’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 명확하지가 않았죠.]
자신이 직접 아파 보니, 그 아픈 증상을 데이터화하고 보니 뭔가 달랐다.
환자를 볼 때 더 세밀해지는 것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덕에 실제 대면 회진도 평소보다 더 빨리 끝났다.
파악이 빠르고 정확해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음.”
아쉬웠다.
다 끝나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반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확실히 컨디션이 올라와서 그런가, 전혀 지쳤다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의욕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수혁은 원래 환자 볼 때 그랬는데요?]
‘아, 하긴. 그렇지.’
원래도 그랬긴 한데 오늘은 더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한 속내를 하윤과 안대훈 그리고 기타 등등은 바로 읽어 냈다.
당연하게도 다트가 대령되었다.
“자, 여기.”
“좋아…….”
원하는 곳에 던질까.
아니면 우연을 노릴까.
[우연이 좋겠습니다. 오늘 같아서는 어딜 가도 확인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병원 밖으로 나가도…….]
‘그것도 그렇긴 하다.’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휙 하고 다트를 던졌다.
꽂힌 곳은 영상의학과 초음파 검사실이었다.
좀 황당했다.
애초에 이런 곳을 왜 넣어 놨나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