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화 여름 (2)
영상의학과.
환자를 직접 보지 않는 과다.
서비스 파트라고 하는데, 그중 거의 대표적인 과라고 보면 된다.
물론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 전부라 해도 좋을 만큼 진단이나 치료 계획 수립, 치료 결과 판정 등 거의 모든 의사 결정에 영상 검사를 동원하고, 영상의학과의 판독에 의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병원 모든 환자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봐도 되는 과이긴 했다.
그 때문에 서비스 파트 과임에도 불구하고 원내 주요 보직을 꿰차는 과이기도 했고.
그러나 거기 가서 환자를 본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으음.”
“으으음.”
그러니 센터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씩 미묘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대체 가서 뭘 보려나?
뭐 이런 생각이야 다 하고 있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안대훈은 속으로나마 다시 던지시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걸 감히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은 이수혁 무오론에 반기를 드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리라.’
대다수의 사이비가 그러하듯 원래 있던 종교를 섞어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 제일 과잉 충성의 모습을 보일 놈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일행은 아주 자연스럽게 영상의학과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초음파실이라면 지금 검사 중인 사람들이 있긴 하겠네.’
[그보다 어쩌면 거기 직원들이…… 나올 수도 있고요.]
‘그렇기도 할 거야. 엄청 많던데? 사람이?’
[요새 큰 병원치고 영상의학과 안 키우는 병원이 어딨습니까. 당연한 일이죠.]
‘하긴……. 영상 판독 능력이 명의의 조건처럼 되어 가고 있으니…….’
[근데 애초에 그 판독만 하는 사람들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니까요. 몸값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무엇보다 수혁이 딱히 초음파실로 향하게 된 것에 별 불만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가서 없으면 휴대용 다트 또는 돌림판을 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어차피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방금 다 끝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아마 다른 교수들이 보면 참 허탈할 터였다.
사실 회진이라는 게…….
막상 도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 있어도, 그 회진을 위한 고민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수술 과라면 아예 재수술이 잡혀서 그나마 남아 있던 여유 시간이 통으로 날아가는 경우도 있고.
“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려 했던 레지던트 1년 차는 수혁이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계단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야, 눈치 챙겨. 건강 챙기시잖아.”
허나 펠로우 이상급들은 벌써 바뀐 수혁에게 적응한 지 오래였다.
그중 하나가 레지던트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부리나케 계단으로 향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상의학과 초음파 검사실은 본관 1층에 있다 보니 계단을 그렇게까지 많이 안 타도 되었다.
탁.
수혁은 지팡이를 부지런히 짚어 가며 초음파실로 향했다.
암센터에서 별관을 지나쳐 본관으로 가는 길엔 오가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 일행처럼 열 명에 가까운 의사들이 한데 모여 움직이는 무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선이 몰릴 일은 아니긴 했다.
일단 행인들에게 그럴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지도 않았다.
허나 이제는 얘기가 좀 달라진 지 오래였다.
이수혁.
“어……. 저 사람.”
“왜? 아.”
“우리나라 최고 아냐?”
“저렇게 젊은데…….”
한때는 태화에서 진심으로 언플을 동원했던 적도 있다.
실력에 대한 확신이야 있었지만 나이도 그렇거니와 경력도 짧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허나 이젠 아니었다.
학회 내에서의 평판 또한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수준으로 뻗어 나가고 있지 않나.
거기에 더해 혀기후니 유튜브, 또 수혁은 알지 못하는 인스타와 같은 SNS 수단 등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더해진 지 오래였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 또한 상당했다.
특히 환우회에서의 유명세는 현존하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역사를 뒤져 봐도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와……. 진짜 어리구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제자들…… 이겠지?”
“중년도 있어 보이는데.”
“배움의 열정이 대단하시다.”
여기가 강남역이나 압구정 로데오였으면 그럼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을 터였다.
하지만 병원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태화 의료원.
대한민국에서 제일 아픈 사람이 많은 곳이면서 동시에, 크게 아픈 사람 또한 많은 곳이다.
그렇다 보니 유명한 의사에 대한 관심도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함부로 다가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이미 진단이 되어 치료 중인 사람에게 통합진료센터는 그리 커다란 도움이 되진 못해서 그랬다.
“저, 저기!”
거의 없다는 건 곧 있긴 있다는 말이지 않나.
오가던 환자 중 한 명이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안대훈은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그 사이를 몸으로 가로막았다.
요 몇 년 있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면서 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나름 육중한 느낌을 주었다.
“큿. 저 다름이 아니라! 제 병 때문에요.”
“대훈아.”
“네, 교수님.”
그렇게 덜컥 길이 막혀 버린 환자는 당황한 나머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마치 예수님께 나오는 간절한 신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안대훈은 그런 모습에 약하지 않은가.
약하다 못해 지금은 새로운 교를 창시하기 직전이었다.
거기에 수혁의 말까지 더해지다 보니 부리나케 몸을 비켜서게 되었다.
덕분에 환자는 금세 수혁과 마주하게 되었다.
환자 개인에게야 상당히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순간이겠지만, 그럼에도 수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가 보는 시야는 남들과는 아예 다르니까.
‘안색은 좋지 않지만……. 그 외 근육량이나 걸어오던 속도, 자세 등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질환이 있다 해도 만성으로 넘어가진 않은 거 같군요.]
‘그러니까.’
[그래, 어떤 병일까요.]
아직 사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입원 환자는 아니다.
외래 베이스로 다니고 있다 이 말인데…….
마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환자 얼굴이 너무 좋지 못했다.
그 말은 지금 진단되어 있는 병명이 아주 심각하다는 얘기일 터였다.
“제가 췌장암으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인데…….”
“그렇군요. 증상은 어떤 것이 있었죠?”
“딱히…… 없었습니다.”
“지금도요?”
“네. 아예……. 아니, 지금은 좀 배가 불편한 거 같기도 하고…….”
“그렇군요.”
이전 같았으면 통증이 있구나 내지는 적어도 불편감은 있구나 라고 판단했을 만큼 리얼한 표정 변화가 있었다.
한번 아파 봤더니 보다 세밀한 분석이 가능하게 되어서 그랬다.
‘마음의 병 같은데…….’
[그럴 겁니다. 다만 증상이 아예 없다고 해도 췌장암은 배제할 수 없긴 합니다.]
‘그건 그래. 정말 망할 놈의 병이니까.’
20세기까지 인류는 암에 패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여전히 암은 인류를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지만, 불과 20년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정복되거나 그에 준하는 치료가 가능한 암들도 나왔고…….
아직은 아니지만 이러한 추세로 가다 보면 슬슬 정복이 되긴 하겠구나 싶은 암도 있다.
하지만 고형암, 그중에서도 췌장암은 예외였다.
이놈의 암은 조기 진단도 어렵거니와 치료는 더더욱 어려웠다.
“혹시 뭐 자료라도 가지고 계세요? 아니면 등록 번호라거나.”
“아……. 네. 제 등록 번호는 20230523입니다.”
“네.”
뒤에 있던 하윤이 패드에 등록 번호를 입력해서 자료를 띄웠다.
때아닌 복도에서의 진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었다.
복도가 넓은 것이 다행이었다.
워낙에 길다 보니 한쪽 옆으로 아예 쉬었다 가라는 목적의 카페테리아를 만들어 놨을 정도 아니었던가.
통행에 방해될 일은 없다, 이 말이었다.
“뭐야?”
“뭔데?”
“갑자기 진료해.”
“응? 뭔 소리야. 노상 진료라고?”
딱 일행만 놓고 본다면 그래야 할 텐데, 사실 좀 방해가 되긴 했다.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 때문이었다.
뭐라 할 일도 아니었다.
얼마나 신기한가.
갑자기 병원 복도에서 진료라니.
일단 의사들은 적어도 원내에서는 잠깐 멈추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워낙에 바빠서 그랬다.
헌데 여긴 열 명에 가까운 의사들이 한데 모여 환자 하나를 보고 있었다.
‘으음……. 신체검사에서 진단이 된 거구나. 하필이면 췌장 미부…….’
[CT에서는 저밀도 결절입니다. 조영증강은 상당히 잘되는 편이고.]
‘좋지 않은데. 근데 으음.’
[췌장 미부에 있긴 한데…….]
‘약간 애매하지? MRI 없나?’
[아, 있네요.]
시간이 평소보단 더 걸렸다.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그냥 패드가 느려서 그랬다.
영상 띄우는 데만 한세월이었다.
수혁도 답답했지만 그걸 보고 있는 환자는 더했다.
일단 진료 시간에 늦을 수도 있는 데다가…….
‘이 사람……. 초신속 진료던데…….’
미스터 초밥왕 식으로 하면 거의 뭐 일수법 수준이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이 쥐는 것보다 맛있는…….
전설의 초밥왕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환자가 스시야에서 일하는 셰프다 보니 머리가 자꾸 이쪽으로만 돌았다.
‘이렇게 느리게 보고 있는 걸 보면……. 미안해서……?’
그뿐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터였다.
좀 부적절한 비유긴 해도 우울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암 진단받은 환자가 어디 그렇게 되나?
그중에서도 특히 췌장암 같은 병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앞에 놓여 있던 레일을 치운 느낌이 들 터였다.
진단받은 날은 괜시리 진단한 의사가 밉기도 할 것이고, 괜히 황당해서 헛웃음도 나올 터였다.
가지고 있던 계획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든지 간에 관계없이 모두 의미 없게 되는 날이니까.
환자는 아직 진단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인 만큼,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이후 제대로 잔 날이 단 하루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MRI로 보니까……. 흐음. 혈액 공급이 아주 풍부해.’
[선암과는 양상이 많이 다른데요?]
‘그래. 악성 아닌 거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아, 김진실 교수님이 판독하셨네, 오늘 이거 보러 온거구나?’
[PET CT 보고 악성, 양성 판단하자는 의견을 줬군요. 저등급 악성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수혁은 바루다 덕에 픽셀 단위의 판독이 가능하다.
물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또 생각보다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경우가 많이 없어서 잘 안 하긴 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보면 암이 아닌 거 같다.
그리고 컨디션이 유독 좋은 상황이다.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된 상황이기에, 수혁은 바루다의 동의하에 조금 무리를 해 보기로 작정했다.
“저……. 혹시 나쁜 거면…….”
“잠시. 교수님 바쁘십니다.”
“네?”
“이럴 땐 건드리면 안 됩니다.”
머릿속에서 위잉 소리가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실제로 날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빨리 머리를 굴린다면…….
“음.”
약간의 어지럼증까지 동반할 정도지 않나?
아무튼, 그렇게 영상을 들여다본 수혁은 마침내 웃을 수 있었다.
“이거 비장이네요.”
“네?”
당연하지만 환자가 당장 알아들을 수는 없는 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