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45화 (1,245/1,303)

1245화 여름 (4)

‘크윽……. 하늘은 왜 나를 남자로 낳았단 말인가.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이수혁 교수님에게 꼭 맞는 배필이 되었을 텐데!’

안대훈은 수혁과 하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네가 있는 그곳이 내 자리였어야 하는데!’

눈에 아주 그냥 불똥이 튀고 있었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의사가 의학에 열정을 보여야지, 수혁의 옆자리에 열정을 보이는 건…….

게다가 안대훈이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또한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대훈아.’

‘네?’

이대로 두면 아마 진료가 끝날 때까지 투덜거릴 게 뻔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대훈에게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미 외모 때문에라도 첫인상에서 평가가 박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간신히 딛고 일어나 이제 드디어 태화 의료원 내과의 차세대 일원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지 않았나?

헌데 이런 모습을 센터 사람들 앞에서만이 아니라 영상의학과에서 보이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양심 좀 챙기자.’

‘네? 왜요. 저 머리 길 때 나름 미소년이었습니다.’

‘웃기지 마라……. 말이 되니?’

‘이것 보십쇼.’

‘응? 아니, 왜……. 왜 잘생겼었어?’

해서 그나마 안대훈에게 말이 통하는 사람 중 하나인 김성진이 나섰다.

사실 직속 선배라 하면 김인수이긴 한데, 김인수는 안대훈을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이 광기라니…….

허나 김성진은 안대훈과는 결을 달리하긴 하지만, 아무튼, 진짜 미친놈 밑에 있다 온 사람 아닌가.

차라리 순수하게 완전히 미친놈이 나쁘게 적당히 미친놈보단 훨씬 나았다.

그런 생각으로 나선 것인데…….

‘아니……. 이렇게 생겼었다고?’

안대훈이 내민 자기 사진은 진짜 미소년 그 자체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 7년 전이긴 한데…….

사실 20대가 6, 7년 만에 망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환골탈태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러니까 지금의 안대훈처럼 변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아니……. 진짜 악마랑 계약이라도 했나.’

그렇지 않아도 안대훈에 대해 도는 소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개는 좀 이상하다는 말이나, 그래도 뛰어나다는 말이라 다행이긴 한데.

이건 다행이 아닌데 싶은 소문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어느 시점을 통과하면서부터 안대훈의 실력이 크게 늘었단 얘기였다.

수혁처럼 인턴이 끝나고 레지던트 1년 차가 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그냥 내과가 잘 맞는 거 아닌가? 인턴 때 똘똘한 모습을 보이는 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잖아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겠는데, 안대훈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 이후로 수혁은 오히려 점점 훈남이 되어 가고 있는 것에 비해 안대훈은…….

“뭔 생각하세요?”

“아니, 아냐. 아무튼, 이젠 아니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흐으……. 그래요. 하지만 회귀하게 된다면 그땐 반드시 여자로 태어날 겁니다.”

“응? 뭘 한다고?”

“회귀 모릅니까?”

“아……. 그…….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송중기가 한 거……?”

“네.”

“그, 그래.”

다른 놈이 회귀 운운하면 그냥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구나 할 거다.

실제로 웹소설 그거…….

한번 잡기 시작하면 시간 까먹는 맛집 아닌가.

김성진도 군의관 때 갇혀 지내면서 웹소설 봤던 기억이 있어서 안다.

하지만 안대훈이 말을 하니까, 이게…….

뭔가 좀 영험해 보인달까?

어쩐지 다른 평행 세계에서는 안대훈이 회귀해서 여자가 된 일도 있을 거 같았다.

그 옆에는 수혁이…….

‘우욱.’

김성진이 지나치게 디테일한 상상력으로 인해 구역질을 하고 있는 동안, 수혁은 양해를 구하고 초음파실 안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마침 환자는 이제 막 자리에 누웠던 상황이다 보니 진료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니까……. 여기 멍울이 느껴진 게 한 6개월 되셨다는 거죠?”

“아……. 네.”

“6개월 전이면 크기가 더 작았을 텐데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환자는 50세, 여자였다.

그녀는 수혁의 질문에 슬쩍 얼굴을 붉히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그이가…….”

“그이요?”

“남편이요.”

“아……. 남편이 발견하셨군요.”

되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헌데 사실 그렇게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실제로 기혼자 같은 경우엔 배우자에 의해 먼저 발견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되어 있어서 그랬다.

나라별로 다르긴 하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는 좀 적긴 한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말이었다.

“근데 왜 병원에 안 가셨어요?”

“아무 증상도 없고……. 저는 가족력도 없거든요.”

“가족력이 없어도……. 혹시 암이면 빨리 치료하는 게 유리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겠죠. 근데 어디서 그러던데요? 유방암은 유전이라고.”

“어, 어디서요?”

“아는 언니가…….”

이번에도 환자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수혁도 그래야 맞다고 생각했다.

아니…….

세상에 유전이라니.

뭐, 가족력이 중요한 암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가족력이 없는 사람은 암에 안 걸리는 건 아니지 않나.

생각보다 암에 있어서만큼은 환경적인 요인도 무척 중요한 법이었다.

[나중에 훈계하시죠. 사실 지금 검사할 시간인데 무단으로 들어온 거니, 조금은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래.’

바루다가 나서지 않았다면 멘탈 챙기기 위해 시간을 좀 보냈을 텐데, 이젠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옆을 보니 확실히 검사에 나선 교수님이 좀 불편해 보였다.

수혁의 위세에 밀려서 그렇지 아마 다른 놈이었다면 한바탕 지랄이라도 했을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초음파 검사는 워낙에 중요한 검사다 보니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지연이 되면…….

‘하아.’

한숨이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뭐, 괜찮았다.

수혁은 뻔뻔하니까.

“아무튼, 6개월 뒤에 오시게 된 건데, 그럼 이번에는 왜 오게 되었어요?”

“아……. 이게 더 단단한 느낌이 있다고 해서요.”

“그것도 배우자?”

“네.”

“으음…….”

어지간히 둔한 사람이다 싶었다.

왜냐면, 우측 유방 상부에 자리한 듯한 종괴는 육안으로 슬쩍 봐도 어느 정도 보일 정도로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뭐…….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육안만으로는 파악이 어렵겠지만, 수혁은 예민한 정도가 아니라 원한다면 픽셀 단위 분석이 가능한 사람이다 보니 한번 눈에 띄고 난 후로는 거슬린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자, 제가 한번 촉진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촉진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네네.”

“혹시 다른 앓고 있는 병은 없으세요?”

“아…….”

당연하겠지만 수혁은 환자가 유방암 의증이라고 해서 거기만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통합진료센터의 기본이라 그랬다.

처음 이 센터가, 이 학회가 출범할 때만 해도 미친 거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더랬다.

펠로우 뽑는다고 할 때는 괜히 애들 커리어 썩힌다는 말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어떤가?

지나치게 세밀하게 분류된 현대 의학의 진료 체계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진단이 되지 못하는 질환이 많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단지 학회뿐 아니라 그냥 내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거 좀 개선할 필요가 있는 거 아니냔 말이 슬슬 나오고 있다, 이 말이었다.

“하윤아, 환자분 눈이 어때 보여.”

“아……. 나빠 보입니다.”

“그래, 그렇지. 특히 왼쪽 눈은 시력이 거의 없어.”

“네. 초점이 빗나갑니다.”

통합진료센터는 이미 환자를 통합해서 보는 훈련을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해 대고 있는 곳 아닌가.

수혁과 하윤은 이미 다른 문제 또한 파악하고 있었다.

그제야 영상의학과 의사도 환자의 왼쪽 눈동자가 약간 옆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시가 있다 이 말인데, 한쪽 눈의 시력이 크게 떨어지면 이런 식의 움직임을 아주 흔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발은 어때.”

“약간 찹니다. 다행히 감염은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 그리고 또?”

“팔뚝에 있는 상처……. 아주 가벼운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고 있습니다. 미약한 감염 소견도 보이고요.”

“그래……. 그렇다면 뭘 의심할 수 있을까.”

“당뇨입니다.”

환자는 촉진하면서 이 양반들이 뭔 대화를 하고 있나 하다가, 당뇨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 당뇨 앓은 지 얼마나 되셨죠?”

“아……. 한 20년……?”

“젊은 시절부터 있었네요?”

“아, 네. 근데 그때는 뭐 그냥 당뇨기가 있다고 들어서…….”

“치료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죠?”

당뇨는 무서운 병이지만 제대로 치료를 유지한다면 20년 정도는 합병증 없이 버틸 수 있는 법이었다.

허나 제대로 치료를 유지하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이다.

일단 사람이라는 게 약 먹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뇨는 경우에 따라 인슐린 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인슐린은 주사다.

먹는 약도 안 먹는 사람이 주사를 맞겠나?

“한……. 10년?”

“그렇군요.”

당뇨가 있는 채로 10년이나 방치가 되었다라.

그 시간이면 동양인의 작은 췌장쯤은 뻗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 치료는 어떤 걸로 받고 있어요?”

“약 먹고 있어요. 근데 그게……. 지금 이거랑 상관이 있을까요?”

인슐린이 필요할 것 같은데, 먹는 약이라.

아마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겠지만 그렇다고 관리가 잘되고 있는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딱 들었다.

그런 수혁의 추론과는 별개로 환자는 슬슬 불쾌했다.

원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그걸 지적받을 때 불쾌해지는 법이라 그랬다.

게다가 그 때문에 몸도 여기저기 아픈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네, 상관있습니다.”

“아, 네.”

그러나 여긴 병원이다.

상대는 흰 가운을 걸치고 있는 의사고.

암만 봐도 어려 보이지만……. 일단 영상의학과 의사보단 높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서둘러 움직이던 사람이 방해를 받고 있는데도 저리 가만히 있을 턱이 없으니.

“어디……. 당화 혈색소가 아, 8. 좌측 눈은 치료받은 거예요? 망막병증으로?”

“아, 네……. 근데 그때 이미 늦어서.”

“그때부터 당뇨 치료 시작한 거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꾸준히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평범한 의사에게는 사실상 마법처럼 여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추론이었다.

허나 수혁은 이미 그다음 스텝으로 나아간 후였다.

‘약간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

[그러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추론이라기보다는 상상에 가깝습니다.]

‘뭐……. 여기 초음파실이잖아?’

[그렇죠.]

수혁은 바루다와 잠시 의견을 교환한 후, 환자를 눕혔다.

자연스레 초음파 프로브를 쥔 채였다.

“검사를 해 볼까요?”

“아……. 네.”

“제가 잠시 해도 괜찮겠죠?”

“네? 아…… 네, 뭐.”

양해는 구했다.

이게 양해인지 강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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