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46화 (1,246/1,303)

1246화 여름 (5)

‘흐음…….’

영상의학과 교수는 수혁을 주시했다.

-이수혁 교수? 천재지. 아,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드는 그런 수준 말고. 진짜……. 천재.

김진실 교수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사실 브레스트 파트 교수가 보기엔 김진실도 천재였다.

그 나이에 벌써 논문 점수가 몇 점이란 말인가.

심지어 논문 점수를 위한 논문을 내 온 것이 아니라, 진짜 논문을 내 온 사람이었다.

세상에 그럼 가짜 논문도 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지만, 약간 결이 다른 논문들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단 말이지……?’

성격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긴 했다.

칭찬에 딱히 인색하지 않은 캐릭터들.

병원엔 드물긴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김진실 교수는 쿨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보니 칭찬보다는 혼내는 게 훨씬 익숙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브레스트 파트 교수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흐음……. 어디 보자.’

김진실 교수라는 사람을 떠올리기 전에, 영상의학과라는 과만 놓고 봐도 딱히 내과에 밀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한때 내과야말로 현대 의학의 꽃이라는 말이 돌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1등이 내과를 가?

그 친구 뭐 내과에 사채 빚이라도 졌냐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에 비해 영상의학과는 사정이 아예 달라서, 지금 의국만 뒤져 봐도 다른 학교 1등 출신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얼마나 잘하는지…….’

성적만으로 과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좀 너무 대한민국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나?

줄 세우는 문화에 익숙하다 못해 절여진 사람인데.

본인이 의식하기 전에 벌써 중하위권 과 주제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혁을 마냥 무시하기엔 수혁의 명성이 너무나 대단하긴 했지만, 브레스트 파트 교수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촉탁의다 보니 여전히 마음속에 삐딱함이 얼마간 남아 있었다.

툭.

그렇게 의심을 품고 있는 사이, 수혁이 집어 든 초음파 프로브가 환자의 가슴에 닿았다.

거의 곧장 병변으로 향했는데, 일단 초음파 창 잡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누가 알려 줬어, 이거?’

이미 초음파 잡는 것에 익숙하다.

아니, 훈련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에 병변 창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도……. 해석하는 건 또 다른 얘기긴 하니까…….’

유방 초음파는 유방이라는 조직 특성상 사실 윈도우 잡는 건 다른 조직에 비해서는 쉬웠다.

실제로 복부 초음파는 어렵지 않던가.

간, 췌장, 비장, 신장 등 안에 들어가 있는 장기의 숫자도 숫잔데 그 중요도 또한 어마어마했다.

위치도 안쪽 깊숙이 들어간 것들이 많아서, 환자도 힘들었다.

숨 들이쉬고 참으세요, 내쉬세요, 배 불룩 내밀어 보세요 등등 요구 사항이 좀 많은가?

그에 비하면 유방은…….

“우측 유방 상반부에 불균일한 저에코 결절이 보이네요. 경계도 불분명하고……. 크기는 촉진했을 때와 같이 대략 6cm가량 됩니다.”

“으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돌연 수혁의 말을 듣고 나니 자기도 모르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판독하고 있던 바를 똑같이 말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수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변……. 액와를 보면, 림프절 비대는 전혀 없습니다. 이거 확실히 이상한 일이네요.”

“네?”

“임상적으로 이만큼 거대해진 유방 종양에서 액와 림프절 비대가 아예 없다는 건…….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긴 하지만…….”

“물론 그렇게 보이지 않는 종류의 종괴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경우에는 대개 피부 병변을 동반하기 마련이죠.”

“아.”

“역시나 좀 이상한데……. 후방 에코 감쇠가 확실하게 관찰이 되는군요. 제가 알기로 이거 유방 촬영술도 이미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수혁은 상대가 놀라거나 말거나 여상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도리어 인상을 쓴 것은 환자였다.

유방 촬영술이란 단어 때문일 터였다.

그냥 사진 찍는 게 아니라 최대한 압축해서 찍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게 조직을 압축한다는 게 말이 쉬워 압축이지, 사실상 쥐어짜는 느낌이기에 그랬다.

환자는 안 그래야지, 안 그래야지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당시 고통이 생각이 나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사이 하윤은 부리나케 움직여 여기 오기 전에 찍은 유방 촬영술 사진을 띄워 두었다.

수혁은 자연스레 그 영상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종괴가 잘 눈에 띄지 않네요. 아주 치밀한 유방 조직으로 덮여 있다는 얘긴데……. 이게 정상은 아니죠?”

“아……. 네.”

브레스트 파트 교수 또한 이 영상은 방금 본 참이었다.

초음파 보면서 확인하려고 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봤다, 이 말인데 과연 수혁의 말대로였다.

확실히 비정상적으로 치밀한 조직에 둘러싸여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알고 보면 육안으로도 대강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커다란 종괴가 저렇게 단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상하긴 하네…….”

결국, 브레스트 파트 교수의 입에서도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허나 거기까지였다, 아직은.

그 이상 추론은 불가했다.

소견들이 하나하나 있긴 하지만 아직 선으로 잇기엔 무리가 있어서 그랬다.

굳이 표현하자면 망망대해에 암초처럼 몇 개의 바위섬이 떠오른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걸 가지고 여기가 어느 곳인지 밝혀내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상하죠. 종합해 보면……. 환자는 당뇨가 있는데 진단받고 10년간은 그냥 방치를 했다가……. 한쪽 눈에 망막병증이 발생하고 나서야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도 딱히 당뇨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을 거 같진 않아요. 기저질환에 심각한 당뇨가 있다는 얘기죠.”

“아……. 네.”

그렇기 때문에 수혁이 당뇨 얘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다시 정리해 주는구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하윤은 좀 달랐다.

‘당뇨랑 연관이 있나……? 근데……. 당뇨가……. 뭔 상관이 있지, 유방이랑?’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당뇨란 병은 전신질환이기 때문에 모든 부위에 영향을 미치긴 할 터였다.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딱 유방이랑 연관된 질환명이 떠오르진 않았다.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긴 한데, 딱히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뭔지 모르겠네.’

이런 생각이었으니.

결국, 브레스트 교수나 하윤이나 도긴개긴이란 뜻이었다.

“그걸 염두에 두고 환자의 종괴를 보면 크기가 크고, 통증이 없으며 고정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완전 악성이죠. 초음파상 보이는 소견 또한 불규칙적이고, 경계도 불규칙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후방이 잘 보이지 않는데, 유방 촬영술에서 보니 치밀 조직에 둘러싸여 있죠. 말이 치밀 조직이지, 섬유화된 조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자, 이쯤 되면 떠오르는 질환이 하나 있을 텐데요.”

“으음.”

떠오르는 질환이 있어?

뭐지?

뭔 질환이지?

브레스트 파트 교수는 마치 뭔가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사실은 전혀 떠오르는 게 없었다.

뭐지?

[모르는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아마 상대가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절대 눈치채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이지 않나.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그래서 사람 파악하는 데 도가 터 버린.

그렇다 보니 10년 넘게 대학 병원에서 구르면서 침착함과 침착한 척하는 스킬을 습득한 사람의 표정마저도 다 간파가 되었다.

굳이 그걸 여기서 깰 생각은 없었다.

무슨 원한이 있다고 깨나.

한 명뿐이라 어차피 잘난 척할 대상도 거의 없는데.

무엇보다 여긴 환자가 같이 있는 상황이지 않나.

괜히 입 놀렸다가 다른 의료진들과 라포 깨지면 병원 손해였다.

-안 돼에에에에에!

원장인 신현태가 비명을 지르게 될 거다, 이 말이었다.

워낙 수혁과 연관된 일에 진심이라 감이 안 오겠지만, 실제로 신현태는 원장으로서의 일에 열심을 다 하고 있었다.

이현종에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행히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태화가 원탑이 되었기 때문에 자유 시간이 좀 있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요. DMP.”

“음. DMP.”

DMP?

뭐여, 그게?

수혁의 말에 영상의학과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DMP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속으론 뭔가 하면서였는데, 그래도 공부를 헛으로 한 사람은 아니다 보니 DM, 즉 Diabetes mellitus(당뇨)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단 생각은 들었다.

허나 p가 뭔지 전혀 모르겠기 때문에 그 외에 달리 말을 덧붙이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행히 수혁은 한번 정답을 논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타입의 인간이었고, 이번에도 딱히 예외를 두지 않았다.

“Diabetes mastopathy. 당뇨병의 합병증인데 아주 드문 합병증이죠. 유방조직의 비후, 섬유화, 석회화가 특징이에요. 그리고 유방촬영술에서 보면 확실히 섬유화가 진행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초음파상에서는 암처럼 보이긴 하죠.”

“아……. 그렇군요. 확실히 이 케이스랑 아주 잘 맞는 느낌이 있는데요?”

“그렇죠? 뭐, 검사를 하려면 조직검사를 해야 할 거 같고……. 바늘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조직이 워낙 치밀하다 보니까 이게.”

“아……. 그럼 계획을 어떻게?”

“제가 외과 쪽으로 의뢰를 넣어 두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부위 또는 절개를 최소화해서 하는 절제생검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다만 치료가 좀 애매하긴 한데……. 그건 임상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니, 외과에서 고민하게 두는 것이 좋긴 하겠습니다.”

“아……. 네. 그럼, 그……. 감사합니다.”

이러지는 수혁의 말에 브레스트 교수는 저도 모르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저, 저 그럼 암이…….”

“검사를 해 봐야 하긴 할 텐데, 아마 괜찮을 겁니다. 미리 걱정하진 마시죠.”

“와……. 감사합니다.”

“아직 감사는 이른데……. 일단 두고 보시죠.”

“네네. 감사합니다.”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유방암이라는 게…….

고형암 중에서는 예후가 아주 나쁜 암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나.

유방절제술이라도 하게 되면…….

환자로서는 최악의 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인간은 자신의 외형에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그랬다.

‘좋아. 오늘 좋구만!’

[벌써 두 개나 해결했군요.]

다른 케이스라면 모르겠는데, 암이라 했다가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된 케이스이지 않나.

수혁에게도 특별한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해서 외과에 부탁할 때도 껄껄 웃으면서 부탁하게 되었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탁받은 외과는 숫제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굴었다.

김승규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신 제 수술도 한 번만…….’

수혁이 수술방 들어가 주었던 교수들 모두 실력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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