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51화 (1,251/1,303)

1251화 총동문회 (3)

비행기는 전세기였다.

총동문회 회비로 빌린 건데,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비행기에 비하면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즈니스급은 아니지만 이 돈이면 일본도 날아가긴 하겠다 싶은 수준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숙소랑 골프비 그리고 식사비까지 모두 무료니까.

이런 말 쓰면 좀 상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진짜 개이득이었다.

“저는 왜 여기 있는 걸까요?”

모두가 좋아서 온 건 아니었다.

김성진의 동기이자 피부과로 크게 성공한 원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막말로 그는 동문도 아니고 동문회랑 딱히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랬다.

“돈 댔잖아요.”

“아니, 그건…….”

수혁이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대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일단 돈을 댄 것도 자발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 않았나.

뭐……. 은혜를 입은 게 맞긴 했다.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제주도 일 이후로 골프 선수들이 꽤나 찾아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의 팬인 돈 많은 아저씨들도 오기 시작해 원래도 잘되던 병원이 더 잘되게 된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돈을 더 대 줄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그래, 우리 수혁이가 생각해서 불러온 거 아냐. 너 에잇브릿지에서 안 칠 거야?”

“치…… 치죠. 쳐야죠.”

대뜸 전화가 와서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어물쩡 돈을 주고야 말았다.

그것도 상당한 액수로.

구체적인 금액을 얘기하는데 그럼 뭐 어쩐단 말인가.

아무튼, 내고 치우려고 했더니 여기 끌려왔더랬다.

“좋아. 가자고.”

“네, 아빠. 근데 나도 가도 되는 거예요?”

“네가 이거 다 잡았는데 그럼 안 가?”

피부과 원장에게는 조폭이라도 되는 양 굴던 이현종은 수혁의 말에 그가 지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밝고 선한 얼굴을 하고서 되물었다.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마주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센터가…….”

“해외도 아니고 제주도 아니냐. 원격으로 다 되니까 걱정 말고. 꼴랑 이틀이야. 뭣하면 다시 날아와도 되고.”

“으음…….”

“그리고…… 지난 봄, 여름 동안 애들 진짜 개고생했어. 내가 가르친 마당에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많이 늘었어.”

“하긴……. 그건 그래요.”

그렇게 한참을 대화를 이어 나간 후에야 수혁은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늘긴 늘었지?’

[늘었죠. 확실히. 그래도 어려운 환자 오면 어쩌진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그래도…….’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조태진 꼬셔다가 학장 만든 게 누군데 입 닦으면 안 되죠.]

‘입 닦은 건 아니지. 막말로 내가 이거 다 잡았는데?’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요. 제대로 잘 설득하는지도 봐야죠. 커리큘럼이 그게 좀 그렇긴 하지 않습니까?]

속으로는 여전히 바루다와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였다.

처음엔 센터 걱정이 컸다.

이현종이 괜한 말 하는 사람이 아닌 만큼 실력이 늘긴 했다지만 그래도 온전히 센터 운영을 맡기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겠나.

뭐…….

언제가 돼야 수혁이나 이현종 눈에 찰 만한 실력자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건 아직은 아니었다.

그런 애들에게 센터를 단 이틀이라도 맡긴다…….

걱정이 어찌 안 되겠나.

‘그건…….’

[역작이죠.]

허나 그러한 걱정조차 지난 두어 달간 조태진이 만들어 낸 커리큘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수혁뿐 아니라 바루다조차 역작이니 뭐니 할 지경이었다.

고3 때보다 더 빡세게 굴릴 작정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3 때는 자율 학습 위주로 돌아갔다면, 이건 그것도 아니었다.

그룹을 짜든지 아니면 교수랑 매칭이 되든지 해서 굴러갈 작정이었다.

“이야아……. 전세기는 또 처음 타 보네.”

“자리는 이코노미잖아.”

“이코노미보단 좀 큰데?”

“돈 낸 거에 비하면….”

“이 돈으로 인마 에잇브릿지 가면 2홀도 못 쳐.”

“그건 그렇지. 좋아서 하는 소리야, 좋아서.”

그런 줄도 모르고 여기 와 있는 모두는 희희낙락이었다.

동문회에서 무슨 얘기가 있을 거다, 뭐 이런 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동문회 부르면서 ‘실은 이런 얘길 할 작정입니다’라는 말을 대체 왜 한단 말인가.

동문회장 이하 대부분은 그저 이번에 학교와 병원이 꽤나 성의 표시를 하고 있단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 행사만이 아니라 학부모 초청 행사 등 2학기에도 이런저런 행사들이 줄줄이 잡혀서 그랬다.

‘교수님들이 좀 힘들겠지?’

[돌아가면서 할 건데요, 뭐. 그리고 힘들기로 따지면…….]

‘사실 우리가 지옥이긴 해.’

[그러니까요. 뭣도 모르는 놈들 가르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사실 없긴 한데…….]

‘그래도 그렇게 해서 나중에 좀 똑똑한 애들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면 신나지 않냐?’

[그거야 좋죠. 그래, 멀리 봐야겠죠.]

그게 다 이 살인적인 커리큘럼을 납득시키고자 또는 강제적으로라도 참게 만들고자 하는 짓이라고는 감히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을 제주 공항까지 안전하게 모실 기장 박찬혁입니다. 우리 비행기는 이제 곧 이륙 예정입니다.”

“와아아아아!”

그저 골프 치고 먹고 마실 생각에 들떠 있을 뿐이었다.

해서 기장의 말에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양반들이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박수갈채마저 보낼 지경이었다.

비행시간이라도 길면 또 모를 일인데, 제주도까지는 뜨고 내리는 시간 제외하면 2~30분 내외 아니던가.

심지어 그 시간 동안 괜히 전세기가 아니라는 듯, 웰컴 드링크로 스파클링 와인까지 돌았다.

그냥저냥 한 것도 아니고 떼땅져 녹턴이었다.

뭐……. 지금 비행기에 탄 사람들의 사회적인 위치를 고려하면 아예 못 먹어 볼 만한 물건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주 먹을 만한 것도 아니다 보니 기분이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고조되고만 있었다.

“오늘 일정은 대회 신청하신 분들 대상으로 저녁 먹기 전까지 총 184분 골프 라운딩 및 대회 또는 나머지 분들 대상으로 하는 한라산 등반 및 올레길 탐방이 있습니다.”

새벽같이 도착한 제주 공항은 한산했다.

덕분에 순식간에 내려서 짐 찾고 나오니 이번 행상 총책임자를 맡은 조태진의 아내가 익숙한 태도로 또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대회 상금은 우승자에게 500만 원 상당의 하와이 여행권 및 에잇브릿지 티 예약권, 준우승자에게는 300만 원 상당의 괌 여행권 및 에잇브릿지 티 예약권, 그 외 성적 우수자 8분에게 에잇브릿지 티 여행권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으아아아아아!”

아마 유치원생이 나섰어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였다.

골프에 빠진 인생치고 저 상금이 욕심나지 않을 사람은 없어서 그랬다.

아니, 딱히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저건 욕심이 나기 마련이었다.

‘티 예약권 팔면 얼마라고?’

[적어도 100만 원은 넘죠.]

‘내가 쳐 보고 싶네.’

[네?]

‘아냐.’

[제가 도와줘도…… 운동 신경을 아주 크게 개선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다리가…….]

‘아, 안다니까.’

수혁조차 실없는 소리를 할 정도니 뭐 말 다 한 셈 아니겠나.

단적인 예로 딱히 대회에 나서지 않는 이들 중에서도 한라산 등반이 아니라 그냥 구경을 택한 이들이 절반은 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보니 평소 티 운영 방침을 접고 10분 단위로 올리는 상황이다 보니 실력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민폐 골프가 되지 않겠나?

해서 본인 스스로 돌이켜 봤을 때, 실력이 달린다 싶으면 알아서 비켜서기 마련이었다.

“근데 형은 진짜 나가?”

“내가 나가야지.”

“제일 최근에 필드 나간 게 언젠데?”

“한 반년 됐지.”

“에잇브릿지 같은 데서 쳐 본 적은 있고?”

“없지.”

그래서 신현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실력도 애매하거니와 원장이지 않나.

조태진을 강제로 학장 시켜 놨으면 돕기라도 해야 했다.

높은 사람들 만나서 설득하는데 땀내 풀풀 풍기면서 하는 것보다는 산뜻한 향수 냄새 풍기는 게 더 좋지 않겠나.

“근데 왜…… 나가?”

“못 쳐 봤으니까. 내가 언제 쳐 보겠냐, 막말로.”

이현종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이 양반도 센터장인 데다가, 조태진을 밀어붙인 장본인이니까.

실제로 초반에는 신청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당당히 신청을 해 두었더랬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정하면 나중에 한 번은 칠 수 있겠지.”

“나중나중 하다가 인마 뒤져. 내 나이가 몇인데.”

“대한민국 평균 나이로만 산다고 쳐도 10년은 훌쩍 더 남았잖아.”

“그래, 그냥 치고 싶었어. 왜.”

“아니……. 이게 이렇게 당당할 일인가?”

“뭐 죄 졌어? 나 잘 쳐 인마.”

“싱글 간당간당했던 양반이…… 요샌 연습도 못 하면서.”

“괜찮아. 난 천재니까.”

“천재긴 하지만…….”

이현종은 신현태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어느새 도착한 에잇브릿지를 내려다보았다.

2층 본관에서 내려다보는 골프장의 전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라 할 수 있었다.

‘좋아…….’

그는 골프채를, 최근에 거금을 들여 다시 개인 피팅까지 싹 새로 한 패를 내려다보면서 지난 두어 달을 떠올렸다.

-그러다 죽어…….

아무래도 아내의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실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으니까.

애들 가르치고 몰래 와서 골프 연습을 했다.

아는 놈에게 부탁해 정말 꼭두새벽에 필드 열어다가 친 적도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필드에 나가 친 것이 아까 신현태에게 말했던 것처럼 반년 전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어제다, 이 말이었다.

그것도 어제만이 아니라 최근 두 달간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부탁한다. 파천.’

그동안 이름도 붙여 준 드라이버를 쓰다듬으며, 이현종은 심기일전했다.

수혁은 그 옆에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니 골프를 치겠나 아니면 한라산을 가겠나.

그냥 아빠 골프 치는 거나 구경하다가, 저녁에 열심히 입이나 털 작정이었다.

“자, 다음 팀 가서 대기하겠습니다. 벌써 지연이 30분 이상 되고 있으니까 서둘러 주세요.”

“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순서가 왔다.

원래 이렇게 골프장 일찍 도착하면 맥주라도 한 잔씩 돌리고 하기 마련인데…….

이현종이 마주하게 된 팀 일원들은 붉기는커녕 침착하기만 했다.

“우승은 제 몫입니다, 의원님.”

“하하……. 회장님…… 농담도. 저 아니라 여기 최 원장도 있는데요.”

동문회장, 국회의원, 종합병원 원장.

이현종은 자기는 죽어도 언급하지 않는 세 명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그래 뭐…… 거의 준프로급이다, 이거지?’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만은 다르리라.

깡.

그렇게 칼을 간 마음만큼이나 첫 드라이버가 잘 맞았다.

‘좋아! 파천!’

하늘도 부술 만큼 날리겠다는 각오로 지은 이름인데, 이름이 그래서 그런가. 진짜 쭉쭉 뻗었다.

다음 우드도, 그다음 7번 아이언도, 샌드도 다 좋았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다리가…… 다리가 아픈데, 이거……?’

단순 컨디션 저하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아팠다.

어느 정도냐면.

‘아빠 좀 이상한데?’

[그러니까요?]

뒤따라가면서 구경하던 수혁과 바루다마저 알아차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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