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5화 왜들 이렇게까지 (1)
수술이라고 해 봐야 시술에 가까웠던 수준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게다가 수혁은 바루다 덕에 움직임 하나하나 고민이 거의 없었던 데다가 그에 따른 시행착오 또한 아예 없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절개부터 봉합까지 불과 15분밖에 안 걸렸다, 이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수혁은 다리의 통증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치진 않았다.
얼마 전 아프고 나서 깨달은 바에 따라 규칙적인 휴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었던 덕이었다.
“가시죠.”
“아, 네.”
“야, 아빠는?”
신현태가 물었고, 수혁은 답했다.
[괜찮습니다, 이현종은.]
‘응 딱히 뭐…… 그리고 저 두 분은 별로 도움이 안 될걸.’
[그렇죠. 감염과 암…… 모두 골프장에서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질환과는 관련이 적죠.]
속으로 이미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여서 가능한 답이었다.
“삼촌이랑 형이 좀 봐 줘요. 두 분이면 믿고 맡길 수 있죠.”
물론 너무 정없이 답하진 않았다.
바루다의 조언도 있고 또 수혁도 이제 꽤나 사회생활을 해 온 참이지 않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어떤 배려 같은 것을 녹여 낼 수 있었다.
“오…….”
“그, 그래. 최선을 다할게.”
물론 그 빈도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보니 오히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효과가 더 컸다.
저놈이 계산해서 말할 수 있는 놈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셋을 남겨 두고 둘은 골프장 직원을 따라 카트에 탔다.
먼저 간 곳은 3번 홀이었는데, 강북에서 가장 큰 내과 병원 원장님이라는 분이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경색?’
[아뇨. 날카로운 통증…… 좌측 아래입니다.]
‘부러졌구나.’
[이건 흉부외과에 맡기죠. 둘이라고 했으니, 하나 더 있을 겁니다.]
‘그래.’
수혁도 수혁이지만 흉부외과 교수도 딱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저거 갈비뼈 골절이구나’라는 걸.
“제가 볼게요.”
“네.”
“아휴, 다행이네요. 저희도 나름 응급 질환 발생 시 매뉴얼이 있긴 한데……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든든합니다.”
해서 흉부외과 교수는 탁 하고 튀어 나갔다.
그사이 직원은 칭찬인지 넋두리인지 모르겠는 말을 하고 나서 카트를 몰았다.
목적지는 9번 홀이었다.
골프장 크기가 워낙에 큰 곳인 데다가 홀마다 다른 전략이 있어야 할 정도로 디자인이 잘된 곳이다 보니 3번홀에서 카트 타고 곧장 달리는 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시간이 뜨는 김에 수혁은 직원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환자 주된 호소 증상이 뭐였죠?”
“아……. 두통입니다.”
“두통이라……. 어디 부딪친 건 아니고요?”
“네, 아니에요. 일단 캐디들이 베테랑이라 그런 일은 일절 없습니다.”
“근데 갑자기 아프시다는 건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상당히 아프시다고 합니다.”
“흐음.”
두통.
하필이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드는 증상이라 할 수 있었다.
뭐 거의 대부분의 증상이 그렇겠지만, 두통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부터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질환까지 다 일으킬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외상은 아닌 듯한데…….
그걸 배제한다고 해도 남는 질환이 너무 많았다.
뇌경색이나 출혈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같은 팀원 중에 신경과 의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그걸 놓치겠나 싶었다.
“아, 저기 있습니다.”
고민을 하는 사이에 카트가 9번 홀에 도착했다.
애매한 그린 옆에 여럿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주저앉은 채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아는 얼굴이었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수혁은 카트를 타고 좀 더 이동한 후, 환자에게로 향했다.
“아, 왔네. 일단 카트 타자고.”
“으응. 아이고…….”
제아무리 수혁이라고 해도 그린 위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는 없지 않겠나.
급한 건 이송이었기 때문에 일단 카트에 환자를 태웠다.
앞자리에는 신경과 의사가, 옆자리에는 수혁이 탔다.
“머리 부딪친 건 아니시죠?”
“아…… 네.”
상대는 수혁보다 연배가 더 위였지만, 일단 수혁이 교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존대로 대응했다.
사실 동문회는 그 분위기상 선배면 후배에게 편하게 말 놓는 편이긴 한데, 진료받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반말이 쉬이 나가지 못하는 법이었다.
“네, 저도 확인했어요.”
“그렇군요. 머리가 언제부터 아프셨죠?”
“그게…….”
이어지는 질문에 환자는, 그러니까 청담에 개원했다는 정신과 의사는 잠시 멈칫거렸다.
나름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너튜브도 찍고 TV에도 나오고.
어지간히 그런 거 안 보는 수혁도 알 정도니 뭐 말 다 한 셈이었다.
“한 3일……?”
“3일? 이런 양상이었어요?”
수혁은 환자의 얼굴을 살폈다.
사실 통증 정도에 따른 표정 변화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었다.
살다 보면 엄살이 심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나?
그럼에도 얼굴을 살피는 이유는, 통증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통증 크기가 아니라 주관적인 통증 정도여서 그랬다.
어차피 객관적인 통증은 잴 수도 없지 않나.
‘8점……. 네가 보기엔 어때?’
[저도 7점에서 8점 사이로 보입니다.]
해서 NRS 통증 스케일 또한 주관적으로 보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 7, 8점이면 대단히 높은 것이었다.
아마 환자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수준의 통증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게, 점점 더 심해집니다.”
“아, 그렇군요. 흐음……. 발병 일시는 3일 전이고요?”
“네.”
“뭐 혹시 앓고 계시는 질환은 없어요?”
“없어요. 딱히…….”
“검진은 제대로 받고 계시는 거 맞죠?”
“네, 매년 받습니다. 오래 살고 싶어서.”
근데 이 정도 머리 아픈 사람이 골프를 치러 왔나 싶긴 했지만, 수혁은 일단 진료하는 순간에는 환자를 어떤 식으로건 간에 비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갔다.
“3일 전에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어요?”
“음……. 개원의가 다 똑같죠.”
“똑같다?”
“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료하고 밥 먹고 집에 가고……. 결혼이라도 해야 되는데. 아.”
“뭔가 있었어요?”
“아뇨. 요새 이거 때문에 매일 연습을 하긴 했습니다.”
“아…….”
수혁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운동 대회에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본업이 의사라는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의업에도 이렇게 진심인가 싶기도 했고.
허나 비난은 참았다.
대신 추론을 이어 나갔다.
‘골프가 이게 생각보다는 격렬하지?’
[격렬하다기보다는 관절이나 근육에 좋지 않은 운동이라는 게 맞죠.]
‘하긴 그게 맞는 표현이겠어. 이거 한다고 칼로리 소모가 많지는 않으니까.’
골프는 기본적으로 몸을 틀었다가 푸는 운동이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인체에 있어 비대칭이 얼마나 좋지 못한 일인지 안다면, 골프만 운동으로 삼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아무튼, 수혁은 그 외에 또 다른 두통에 대한 기본적인 문진도 이어 나갔다.
속으로는 추론을 하면서, 신경학적 증상, 메스꺼움, 구토, 광선공포증 또는 소리공포증 등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말이었다.
“편두통이나 뇌경색, 출혈 등의 징후는 없어 보이는데…….”
“네, 네. 이거 그냥 긴장성 두통 아닐까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거 같은데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와 함께 수혁은 바루다를 이용해 환자의 상태를 보다 면밀히 살폈다.
운동 실조뿐 아니라 감각에 대한 검사도 하기 위해 여기저기 만지면서였다.
신경과 의사도 했을 텐데, 미안한 얘기지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훨씬 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바루다는 사기템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우수한 툴이라 그랬다.
“약간 다른 거 같기도 하고……? 아닌가?”
“으음. 애매해요?”
“네.”
심지어 환자 본인은 애매하다고 하는 것도 바루다는 잡아내었다.
[좌우측 손가락 감각에 차이가 있습니다. 반응이 미세하게 달라요.]
‘좋아. 그럼 좌측이 살짝 떨어진다는 건데…….’
[하지만 여전히 경색이나 출혈이라고 하기엔 너무 경미한 이상 소견입니다.]
‘그래. 걷는 건 어때 보여?’
마침 카트가 멈춰서 센터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현종처럼 다리가 아픈 상태는 아니어서 환자도 걸었는데, 사실 반쯤은 일부러 그렇게 시킨 것이었다.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이상하긴 한데……. 아주 경미한 보행 실조 또는 통증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입니다.]
‘나도 그렇게 보여. 그럼 이건 큰 이상은 아니라고 봐야 되나.’
[네. 그렇습니다.]
‘으음……. 이게 왜 이러지?’
왜 이럴까?
수혁과 바루다 모두 짧은 시간이나마 고민했지만 아직은 짚이는 바가 없었다.
외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더 헷갈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기엔 이른 상황이었다.
이럴 땐 또다시 해야 할 절차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지 않나.
“아까 부른 구급차가 올 때가 됐거든요?”
“아……. 네.”
“어차피 갈비뼈 부러진 분도 타야 되니까, 같이 타고 가시는 게…….”
“네네.”
수혁은 일단 상황 설명을 해서 안심시켜 준 후,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의사가 환자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그렇듯 문진이라서 그랬다.
“3일 전에 아프기 시작했다고 하셨죠?”
“아, 네.”
“그때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으음…….”
“사소한 것도 좋아요. 아시겠지만.”
“제가 지금 계속 레슨 중이거든요. 근데 그 날은 레슨 선생님이 못 한다고 해서 혼자 쳤습니다.”
“이건 너무 사소한데요?”
수혁의 말에 환자는, 정신과 의사는 민망해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 혼자 치니까 좀 이게 잘 안되더라고요.”
“여전히 사소한데…….”
“그러다 혼자 스윙 체크하느라, 오른쪽으로 이렇게 팔을, 아.”
그러곤 백스윙 흉내를 내다가 신음을 흘렸다.
수혁은 이 사람은 그냥 여기서 보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었다가, 지금은 못 들겠는데. 아무튼, 제대로 들었나 싶어서 팔 쪽을 보는데 목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그만 치고 왔는데……. 그 후로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픕니다.”
“아.”
허나 딱 다음 말이 이어졌을 때, 눈 앞이 환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을 그냥 보냈으면 큰일 났겠단 생각도 들었다.
외상으로 인한 혈관 손상이 의심되는 상황이니까.
생각보다 나이가 들면 몸은 점점 더 뻣뻣해지기 마련이지 않나?
게다가 평소 운동을 안 하거나 또는 뻣뻣한 몸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특히 골프처럼 몸을 비트는 운동을 너무 정석대로 하려고 하다 보면 이런 사달이 발생할 수 있었다.
단순히 목을 푼답시고 뼈 소리 낼 때도 혈관이 찢어질 위험이 있는데 그것보다도 더 급격한 비틀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주 심할 것 같진 않은데…… 가면 일단 자기공명혈관조영술 찍죠. 아니, 제가 같이…….”
해서 마침 도착한 앰뷸런스에 같이 타려는데, 또 다른 직원 하나가 달려왔다.
“화, 환자가 하나 더!”
골프 대회를 연 것인지 아니면 극기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