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8화 왜들 이렇게까지 (4)
“으…… 으.”
들것에 실려서일까?
환자는 앰뷸런스 안으로 들어온 후, 정신을 차렸다.
그래 봐야 신음이나 흘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듣기엔 끔찍해도 의료진들에게는 오히려 위안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의식이 있다는 것이니까.
‘소리가 난다는 건…….’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호흡을 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
그 말은 곧 당장 넘어가진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수혁도 삽관할 플라스틱 관을 든 채 잠시 대기했다.
“근데, 이거…… 머리 문제는 아니겠죠?”
침착하다 못해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혁을 보면서, 친구가 물어 왔다.
돌아보니 본인이 의사라는 사실은 이제 잠시 제쳐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골프를 쳐야 하네 마네 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더니…….
그런 것도 다 잊을 만큼이나 걱정이 되는지 어두운 낯빛으로 의사라면 하지 않을 법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뭐…… 뜬금없이 머리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긴 하지. 그렇긴 하지만…….’
[이 환자 같은 경우엔 외상도 없고, 무엇보다 확실한 실신 요인이 있습니다. 흉부 쪽 동맥 출혈로 인한 실혈과 혈종 형성으로 인한 흉부 압박이죠.]
‘그렇지.’
[뭐…… 실혈이 너무 많아지면 그 때문에라도 머리 쪽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다고 하기엔 아직 빨라. 아무리 동맥이라고 해도, 내출혈은 외부로 흐르는 건 아니니까.’
[그렇죠.]
출혈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사실 수혁이 외과 의사만큼의 경험이나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동맥 출혈처럼 심각한 출혈을 수혁이 대체 어디서 봤겠나.
수술방에 들어간 적이 꽤 있다고 해도…….
수술 도중에 동맥 끊어 먹는 일 같은 건 아예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게 무방했다.
물론 암이 동맥을 침범한 증거가 명백할 경우에는 자르긴 하는데, 그것도 미리 다 계획하고 들어가는 거라 앞뒤 묶고 자르는 것만 봣다.
그러니 지금 수혁이 하는 말은 그저 추론의 결과일 뿐이었다.
물론 다른 누구의 추론이 아니라 수혁의 추론이다 보니 거의 사실과 같다고 보면 되었다.
‘인체 내부 압력이라는 것도 무시할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혈압이 꽤 높기는 하지만…….
결국, 내출혈이 지속 되면 내부 압력도 올라가긴 때문에 점점 출혈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간단한 질문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추론을 끝마친 수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흉부 압박에 의한 호흡곤란이라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 그런가……. 근데…… 사, 삽관은요?”
“아직…… 이렇게 의식 있을 때 하면 아파요. 괜히 아파서 혈압 올라가면 피만 더 나죠.”
“그, 그렇죠.”
그게 딱히 의미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환자야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고 친구도 친구가 아파서 그런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다.
수혁은 이제 확실히 그렇다는 걸 납득했기 때문에 딱히 더 말을 섞지 않았다.
대신 환자를 관찰했다.
“끕…….”
아닌 게 아니라, 환자가 내뱉는 소리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드디어라는 말도 이상하고 마침내라는 말도 이상하지만 하여간,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 말이었다.
“어……. 산소 포화도 떨어집니다!”
그때 친구가 외쳤다.
그 말에 운전하던 응급구조사도 뒤를 돌아보았다.
사실 응급처치는 그의 몫이어서 그랬다.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 더 데리고 왔지!’
응급구조사가 설마하니 앰뷸런스 운전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겠나?
응급실에서 의사나 간호사를 도와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뿐더러, 이런 응급 상황에서는 119 요원처럼 단독으로 어느 정도의 처치도 가능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약물 주입도 할 수 있었다.
헌데 아까 회사에서 전달받기를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으라고, 축구도 아니고 골프라고 하는 바람에…….
“아직 90이잖아요.”
“98이었다가 90이 된 건데요?”
“아직 의식이 있어요.”
“아니, 그러다 완전히 넘어갔는데 안 들어가면 어쩌려고……!”
“환자 체형이나 목 생김새를 좀 보세요. 안에 구조가 이상할 거 같으세요?”
“그…….”
해서 차를 멈춰 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는데 대화가 계속 들려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걸?
전형적인 의사라고 해야 하나?
병원 오가면서 자주 들었던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내용이었다.
‘하긴 의사지……? 그러니까 도와달라는 말도 안 하지……. 근데, 그래도 사고 나면 내 책임이…….’
갈등이 뒤섞임과 함께 차량 속도가 줄고 있었다.
“일단 밟아 줘요! 응급 처치는 제가 하면 되니까! 여기 환자랑 나머지 둘 다 의사예요! 일단 걱정 마요!”
그러자 채찍질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외침이 있었다.
“아, 아 네!”
갈등이 휙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환자까지 의사라는데 뭐 어쩔 거야.
해서 응급구조사는 그대로 차를 밟았다.
그렇지 않아도 울퉁불퉁한 길이었는데 속도까지 나자 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친구는 덜컥 겁이 났다.
‘이거 이 상황에서 넣을 수가 있나?’
이제 산소 포화도도 80이었기 때문이었다.
간당간당해도 잘도 버틴다 싶었는데,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대로 쭉이었다.
원래 호흡이라는 게 그렇긴 했다.
액세서리 근육까지 다 써서 헐떡거리다가 그것까지 다 지치고 나면 바닥이 없다는 얘기.
이건 또 의사다 보니 디테일한 회상이 가능해서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한 공포가 엄습했다.
‘이수혁……. 유명한 의사긴 하지. 근데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진단하는 거 말고 술기도 잘하려나……?’
어쩐지 자기한테도 순번이 넘어올 것 같았다.
나름 산부인과긴 했다.
바이털을 다루는 사람이다, 이 말이었다.
그러니 여차하면 꽂을 줄은 알았다.
‘하이씨……. 할 줄 아는 정도인데……?’
하지만 산부인과 중에서도 실제 산과 의사다 보니 시스템이 갖추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수련이야 태화에서 받았으니 당연히 직접 삽관할 일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이 도처에 있는데 왜 하겠나.
그럼 사고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다 보니 벌써부터 손에 땀이 줄줄이었다.
‘70.’
[66.]
‘62.’
그사이에 벌써 산 소포화도는 더 떨어졌다.
이제 간간이 들려오던 끕끕 소리도 없었다.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움직임도 아예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같이 보일 지경이었다.
“어, 어! 이거!”
저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게 되었다.
여기가 병원이었다면 여느 때처럼 침착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 그럴 수 있겠나.
친구가 죽어 가는데.
그 와중에 자기가 뭔가 해야 할 거 같은 분위기인데…….
내심 자신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나오는 게 비명뿐이었다.
“왜, 왜요! 멈춰요?”
“밟아요! 친구분은 좀 조용히 하시고!”
“아, 네!”
응급구조사는 이제야말로 나설 때인가 하다가 다시 밟았다.
목소리가 익숙한 게 그냥 병원 사람인 것 같진 않아서 곰곰이 생각해 본 까닭이었다.
‘이수혁 교수잖아, 저 사람!’
명의다.
그냥 명의도 아니고 미친 수준의 명의!
그런 사람이 그냥 가라는데 왜 멈춘단 말인가.
부우웅.
그저 최선을 다해 밟을 뿐이었다.
허나 앞 자리에 탄 응급구조사와는 달리 뒤에 있는 친구는…….
“가, 가만있으라니! 애가 이제 의식이!”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정신 잃을 거라고.”
“아……. 아니, 그래도.”
“보조해 주시죠. 이제 40…… 어지간한 자극에는 정신 못 차릴 겁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거…….”
자칫하면 죽는다.
산소 포화도 40이라는 게…….
말이 좋아 40이지, 이쯤 되면 그냥 0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 몸이라는 건 의외로 허약해서 조금이라도 항상성이 깨져 버리면 그대로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40이면 망가지기 시작하는 시점도 아니고 한참 지난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허나 수혁은 여전히 침착했다.
사실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이상했다.
정신을 잃을 거라는 건 골프장에서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필 그 타이밍이 덜컹거리는 차 안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자, 이거 신호하면 줘요.”
“아…… 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뭐 어쩌겠나.
말하면 들어야지.
친구는 수혁이 건네준 플라스틴 관을 홀린 듯 집어 들었다.
그사이 수혁은 환자의 입을 벌리고, 후두경으로 혀를 누른 채 기도를 노출시켰다.
덜컹.
차가 더럽게 흔들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목이 너무 짧거나 두꺼웠다면 또 모를 일이겠으나, 환자는 지극히 보통 체형이었다.
수혁은 동그란 기도가 보일 때, 딱 손을 내밀었다.
긴장한 채 그러기만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바로 튜브를 건넸고, 쑥 하는 느낌이 있다 싶더니 이내 환자의 목 안에 튜브가 들어갔다.
“고정.”
“아, 네!”
꼭 움직이는 차 안이 아니더라도, 근이완제와 마취제가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의 응급 기관 삽관에서는 환자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고정하지 않으면 어렵게 넣은 관이 빠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 친구는 서둘러 테이프를 잘라다 튜브를 고정했다.
직접 해 본 경험은 적었는데 신기하게 잘됐다.
“좋아요. 그럼 이거 좀 짜 주세요.”
“아, 네네.”
“얼마나 남았죠?”
“이제…… 한 10분 남았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삽관을 마친 후, 아무렇지도 않게 각각 오더를 내리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혈종은 수술을 해야겠지……?’
[그렇죠.]
‘여기서 될까?’
[흉부외과 교수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명색이 대학 병원이니까요. 문제는 수술방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냐인데…….]
‘안 되면 우리 인력으로라도 해야 되지 않나? 이거 오래 끌어서 좋을 게 단 하나도 없어.’
[그것도 그렇죠.]
의학적인 고려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걱정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 에잇브릿지?”
허나 그건 다 기우였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 의사가 다가오면서 이것부터 물었다.
“어, 맞아요.”
“그렇구나. 오늘 거기 뭐 대형 재난 선포된 수준이라던데, 진짜네요?”
“아…… 누가 그래요?”
“이현종 교수님이요.”
“아빠? 쓸데없는 소리를…… 지금 어딨는데요?”
“환자 보고 계셔요.”
“네?”
이유가 뭔가 하고 보니 역시나 기인 이현종 때문이었다.
‘역시’라는 말을 쓰기엔 수혁조차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을 만큼 이상한 말이 이어졌다.
환자를 본다니?
당장 처치 안 했으면 다리 자를 뻔했던 양반 아닌가?
“네?”
해서 다시 한번 ‘네?’라고 했더니 응급실 의사가 흐흐 웃었다.
말이야 그냥저냥 했지만 그 사람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쉬시라고 했는데……. 고집을 부리셔 가지고요. 저기 가시네요.”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쭉 뻗은 손가락 끝을 바라보니, 휠체어를 탄 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현종이 있었다.
“아…….”
역시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었다.
약에서 깨자마자 일하고 환자부터 보고 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