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59화 (1,259/1,303)

1259화 동문회의 밤 (1)

이현종은 자신의 건재함을 응급실에서부터 과시했기 때문에, 병원으로 실려 갔던 사람들 중 첫 번째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사실 실려 갈 때도 뭐 다른 문제 없는지 확인하러 가기 위함이 더 컸기 때문에 어찌 보면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당연하다고 보기엔 못 나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일단 뇌 내 정맥혈전이 생겼던 환자나 방금 실려 갔던 내유동맥 파열 환자는…….

오늘이 아니라 아마 일주일 정도는 제주 대학교 병원에 있어야 할 터였다.

-네?

-뭔…….

-골프하다가 다치셨다고요?

-허어…….

그들이 근무하는 병원에 따로 연락을 했을 때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였다.

세상에 총동문회 보내면서 사람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심지어 무슨 극기 훈련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골프 치러 가는데 왜 다친단 말인가.

그냥저냥한 부상도 아니고 둘 다 듣기만 해서는 죽을 뻔한 것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멀쩡히 복귀한 이현종은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건데…….

어쩌겠나, 마음이 그런 것을.

“거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물론 오늘 칼로 다리를 째 놓은 탓에 걷지는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유……. 그러니까 너무 무리를 하시더라.”

그걸 본, 아까 같이 치던 멤버 셋이 다가와 한마디씩 건넸다.

이현종은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나빴다.

‘다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우승인데…….’

이놈의 다리 떄문에 탈락한 건데 그것도 모르고 와서 이토록 여유로운 얼굴들이라니…….

진짜 부탁받은 것만 없었으면 한바탕 뒤집어엎고도 남았을 텐데…….

-형. 오늘 진짜 중요해.

-그게 문제냐! 다리가 다쳤는데!

-골프를 그러니까 왜 나갔어? 동문회 목적이 뭐야! 태화의 영원한 집권! 이거 아냐!

-그, 그건 그렇지.

평소 화를 거의 안 내는 신현태가 이렇게 나올 정도면 일단 들어 주는 게 맞았다.

게다가…….

‘태화의 영원한 집권…….’

뭐 독재라도 할 생각이신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독재 아니라 더한 것도 하고 싶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의대는 이미 질서가 무너진 지 오래라 그랬다.

기업형 병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만큼 지원을 받기 어려운 대학 병원들은 빛이 바랬다.

결국에는 칠성, 아선 그리고 태화로 대표되는 세 병원과 그 의과 대학들이 엎치락뒤치락 싸우게 되었는데 그런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기업들이야말로 그들끼리 서열에 진심이라서 그랬다.

‘이젠 손에 잡힐 듯하지.’

돈을 들일 때마다 서열이 바뀌곤 하다 보니, 계속 뒤바뀌었다.

그만큼 투자에 아낌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그와 함께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 또한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패스트 팔로워, 그러니까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지에서 나오는 치료법을 빨리 따라가는 데 그쳤던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헬스와 결합해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기도 하고 수술에 있어서는 숫제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정도였다.

해서 어딘가에서는 셋끼리의 서열보다는 국제 서열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는…….

이현종 생각에는 패배자스러운 말을 하기 시작했을 정도였는데…….

‘영원한 집권이라…….’

돈으로는 안 되던 일이 수혁이 등장하고부터는 가능해져 버렸다.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올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있으니까 일단 제일 절박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몰려서 그랬다.

처음에는 우리나라만의 얘기였지만 이젠 외국 환자들도 꽤 오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수혁도 사람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제아무리 바루다 덕에 연산 속도가 빠르면 뭐 하나?

일단 몸은 하난데.

그렇다 보니 슬슬 통합진료센터 전체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현재 병원 원장단의 생각이었다.

‘그래, 그러려면 후학 양성이 되어야지. 적어도 안대훈 수준의 놈들이 매년 하나는 나와야 해.’

안대훈…….

이현종은 휠체어에 앉은 채, 가만히 자신의 대머리 제자를 떠올렸다.

머리카락을 희생한 것으로 보이는 녀석의 실력은 이현종조차 놀랄 만큼 대단해져 있었다.

그 위에 김성진도 있고 하지만 현시점에서 이수혁, 이현종을 제외한 센터 제일의 실력자는 안대훈이지 않겠나?

그런 놈이 매년 나오리라고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조태진이 들고 온 학제 개편안을 보고 나서는 어쩌면 욕심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버렸다.

“하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고통이 뒤따를거다.

성장에는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 고통이 좀 과할지 모르고 그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태화 의과 대학은 기숙 학원인가?

-대화 의과 대학은 대학인가 아니면 공부 감옥인가.

개편안을 보면 아무래도 언론에서 이런식으로 깔 것 같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 봐야 사립 학교에 법적인 제약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자꾸 그런 기사가 나면 인기가 떨어질 수 있다.

동문회에서는 당연히 싫어할 것이고.

이번 행사는 바로 그때를 위함이었다.

방패막이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치료가 잘되었습니다. 뭐 우리 센터에서 파견 나온 인원이 제때 진단을 한 덕이죠.”

“아……. 들었어요. 운동으로 인한 급성 구획 증후군이었다고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이현종은 대단히 차분한 말투로 답을 이어 나갔다.

아들이니 뭐니 하면서 호들갑도 떨지 않았다.

대신 센터 인원이라고 했다.

왜냐면…….

‘아쉽지만 수혁이 개인의 우수성을 너무 강조하면 후학 양성에 대해 말하는 게 신뢰성이 좀 떨어지지.’

이러한 계산 때문이었다.

아무튼, 상대도 전직 국회의원이긴 해도 어찌 되었건 의사는 의사다 보니 말 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네, 엄청나게 드문 상황입니다.”

“그러니까요. 이걸 어떻게 골프장에서 그냥 보고 치료까지……. 이수혁이라고 했죠? 우수하다 우수하다 하더니……. 역시 천잰가 봅니다.”

안타까웠다.

이때 단순 천재라니!

무엄한 놈!

이러면서 뭐라고 했어야 하는데.

“하하……. 과찬입니다. 사실 센터 내의 교육 프로그램 덕입니다.”

이따위 말도 안 되는 거짓부렁이나 늘어놓아야 한다니.

이현종은 마음에도 들지 않을뿐더러 당연하지만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말을 잘도 씨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륜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보니 듣는 입장에서는 진짠가? 싶을 만큼 진중했다.

“교육이요……?”

“네. 얼마든지 우수한 인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뭐. 이수혁 교수가 똑똑한 편이긴 하지만……. 의대 올 정도면, 그중에서도 태화에 올 정도면 다들 똑똑하지 않겠습니까?”

“하. 하하. 그렇긴 하죠.”

그래?

뭐가 그렇냐!

대가리를 부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맡은 임무가 있는데.

게다가 이게 다 멀리 보면 자식을 위한 길이었다.

당장 옳은 말 하겠답시고 백년대계를 망칠 수는 없단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우리 때랑은 달리 들어올 때는 우수했던 친구들이 오히려 의사가 되고 나서는 빛이 확 바래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그렇게 들었습니다.”

꼰대 치고 라떼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자고로 나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라면 ‘요즘 것들이’라는 말로 시작했을 때 말문 막힐 일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보면 30대 아니라 20대도 ‘요즘 10대는……’이라고 운을 띄울 정도니 60대인 이들의 이러한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다…… 세태가 변해서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 태화가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현종은 우리 태화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에잇브릿지에서의 연회다 보니 진짜 어마어마하게 화려했다.

대리석 기둥에 은제 카트에 실린 고급스러운 도자기 그릇들 하며, 음식들도 어찌나 이쁘고 정갈하게 담았는지…….

맛은 몰라도 향과 생김새는 그야말로 ‘고급짐’을 형상화한 느낌이었다.

평소 애교심이 없던 사람이라 해도 그 중앙을 가로지르는 태화 의과 대학 총동문회라고 쓰인 현수막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 것 같은 풍광인데, 하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원래도 애교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현종을 따라 시선을 돌렸던 전직 국회의원은 당연히 우리 태화는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문입죠. 근데 무슨 묘책이라도……?”

“다행히 요새 의대가 인기지 않습니까.”

“의대는 언제나 인기였죠.”

“그건 그렇죠.”

사실 그네들이 들어올 때랑 IMF 이후에 들어올 때랑은 인기가 차원이 다르긴 했지만, 그게 뭐 중요하겠나.

상대도 띄워 주고 자기도 띄워 줄 수 있다면 이런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여간, 그래서 우수한 인재를 모집하는 건 문제가 없어요. 그렇다면 그렇게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왔을 때, 졸업하고 나서까지 우수한 인재로 남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오.”

“더 말씀해 주시죠.”

이제 대화에 총동문회장까지 끼어들었다.

이 역할을 이현종이 과연 해야 하냐, 할 수 있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더랬다.

아무래도 현직 원장인 신현태가 나서거나 차기 학장인 조태진이 나서는 것이 사고뭉치 이현종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이 말이었다.

“거봐.”

“그러네요.”

허나 신현태가 이현종을 밀었다.

할 땐 하는 형이지 않나.

경찰 앞이나, 너무 높은 사람 앞에만 안 가면 된다.

그럼 저 놀라울 정도의 뻔뻔스러움을 십분 발휘해서 소기의 목적을 늘 이루어 내곤 했더랬다.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게 이번에 저희가 생각 중인 스케줄입니다.”

“네?”

“아니, 이건…….”

“과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화는 영원히 일등이어야 합니다. 국내 제일이 아니라 세계 제일을 꿈꾸어야죠.”

“그래도…….”

“이게. 이러면 학부모들도 들고일어날…….”

고3도 아니고 0교시부터 10시까지 스케줄이 있었다.

물론 숨통 틔워 준답시고 일주일에 이틀은 엑스트라 일정이 없지만…….

의대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빡세지 않던가?

“그럴 수 있죠. 우매한 사람들은.”

“네?”

“아니…….”

“하지만 교수들의 의지가 충만합니다. 자율 학습이 아니에요.”

“어……? 그러고 보니.”

“아니, 그럼 이걸 우리 교수님들이 감내하신단 말입니까?”

교수들도 빡세긴 매한가지였다.

말이 교수이지, 그냥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니 당연했다.

막상 수업은 잡일 취급하는 교수들도 많을 정도인데, 여기 나온 스케줄대로라면 교수들의 희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걸 해냈다면…….

‘원래 허락보다 용서가 쉽지.’

해내진 않았다.

그냥 저지르는 중이다.

허나 알 게 뭔가?

동문회장과 전직 국회의원은 눈앞의 휠체어에 탄 이현종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았다.

이런 사람이 거짓말을 왜 하겠냐는 생각만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 주시면 저희도 밀어줘야죠.”

“네, 학부모들 불만이나…… 그로 인한 동문회 불만이 나오면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해서 이런 말이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