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61화 (1,261/1,303)

1261화 산부인과 (1)

“에휴, 븅신들…….”

성격 괄괄하기로 소문난 산부인과 과장 홍혜리가 욕설을 내뱉었다.

총동문회에 부르길래 거기에서 뭔가 승부를 볼 줄 알았더랬다, 내심.

헌데 막상 가 보니 골프나 치라고 할 뿐, 딱히 이현종파…… 아니, 이제는 이수혁파라고 분류해야 될 것 같은 놈들은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와서 보기는 했지만, 인사나 나눌 뿐이고 다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포부만 컸을 뿐, 별일을 하진 않을 건가 보다 하고 있었더랬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오해해서 약간 미안한 마음까지 가졌다.

허나…….

-최낙필 과장 이하 열다섯 개 과 정도가 이미 넘어갔다는데요?

-뭐, 미친놈들이?

-소아과도 말만 안 하지……. 이기자 교수님이 계셔서 아마…….

-하아……. 외과는?

-김승규 교수님이 으름장을…….

-아이고.

공략이 될 만한 놈들만 딱 골라서 공략을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겁쟁이 놈들이 나한테는 암말도 못 하고 말이야…….’

이게 대체…….

뭔 개 짓거리란 말인가.

과장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된다면, 그때부터는 홍혜리 아니라 홍혜리 할머니가 와도 안 된다.

게다가 홍혜리 과장 본인도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정해지기 전까지는 저항을 해 보겠지만, 일단 하기로 했으면 언제 반대를 했냐는 듯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얘기였다.

그렇게만 보면 사실 이번 일도 그냥 두고 보는 것이 맞을 수 있겠지만…….

‘너무 뒤통수 맞는 느낌이 강하단 말이지.’

이건 기분이 나빠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달리 방법이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최낙필…….

그 인간이 쪽도 못 써 보고 돌아선 것이 컸다.

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생긴 것만 상남자 스타일일 뿐이지, 속내는 밴댕이 소갈딱지 아니던가.

전형적인 권력을 탐하는 교수요, 자기 앞일을 위해서라면 과 팔아먹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놈이란 얘기였다.

아마 일제 시대에 태어났으면 매국노가 되지 않았을까?

‘어쩌지?’

어쩐다.

어째야 이걸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아니, 이 일에 불만이 있다는 걸 알릴 수나 있을까?

산부인과 과장이 될 정도면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원장단이 괜히 원장단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느낌이랄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네, 들어갑니다.”

과장이 골머리 썩는 동안에도 다른 산부인과 의사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일단 과장부터가 방금 수술 하나 끝내고 교수 대기실 안마 의자에 앉아 있는 상황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옛날엔 인기과였던 산부인과가 언제부터인가 비인기과가 되더니 이젠 기피 과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애 낳는 것과 연관이 있는 산과는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대학 병원으로 어마어마하게 밀리는데…….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다고 해서 인력을 늘려 주냐?

그건 아니었다.

-적자 과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과장으로서 책임지고 난리를 쳐 보았지만, 인력 확충에 상당히 긍정적인 신현태 원장조차 이렇게 말하곤 내뺐다.

할 만큼 했지만 윗선에서 자른다는 얘기도 보태면서였다.

사실 그럴 것 같긴 했다.

부인과를 늘리면 늘렸지, 산과를 왜 늘려 주겠나.

아이를 낳으면 낳을수록 적자 폭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절대 무리라고 보는 게 옳았다.

그럴수록 민간 병원은 줄고 대학 병원으로 로딩이 가해지고 동시에 산부인과 지원자는 소멸하고 있으니 개선은 해야겠지만…….

“네, 환자분. 오늘 수술이네요.”

정작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 낼 시간은커녕 갈려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산부인과 조교수 박태식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 네.”

“긴장되시죠?”

첫 수술 후딱 끝내고 중간에 짬 내서 회진 온 그는 오늘 수술 예정인 환자 손을 잡아 주었다.

‘월경과다…….’

40대 중반이라, 사실 곧 월경이 끝나긴 할 터였다.

하지만 경질 초음파상에서 점막하 자궁근종이 꽤 커다랬다.

이미 헤모글로빈 수치가 7인데, 이대로 더 지나가다가는 큰일이 날 게 뻔했다.

실혈로 인한 빈혈은 오래 방치하게 되면 심장이나 기타 다른 장기에도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저혈압까지 올 정도니 뭐.’

첫 외래 내원 시 혈압이 100에 70이었다.

사람들이 하도 고혈압, 고혈압 하고 떠들어 대니까 고혈압만 문제고 저혈압은 오히려 좋은 줄로만 알지만…….

사실 저혈압도 너무 낮게 방치되면 뇌기능 저하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었다.

해서 오늘 자궁경하 근종 절제술을 하기로 했다.

사실 나이를 고려하면, 자궁 절제술을 하는 것이 안전하겠으나…….

환자나 보호자가 원치 않고, 의학적으로도 필수적인 상황은 아니다 보니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

“환자분 지난 두 달간 매달 3회 용량의 성선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 작용제를 투여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박태식 교수는 환자에 대한 대강의 정보는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었다.

방금 레지던트, 즉 환자의 주치의가 말한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근종 크기를 줄이기 위해 투여했다.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아서 2cm 정도 되는 걸 두 개만 떼면 된다.

물론 단순 자궁 절제술보다는 절차가 복잡하기에, 이렇게 수술 텀 사이에 올라온 것이었다.

“미소프로스톨이라는 약을 드릴 거예요. 이유는 외래에서 설명드렸다시피, 수술을 자궁경으로 할 거라 그래요.”

“네, 네네.”

“이 약을 드리면 자궁경부가 이완이 되어서 들어갈 때 상처가 잘 안 생기거든요.”

“그…… 문제는 없겠죠?”

“문제요? 무슨?”

박태신 교수의 말에 환자와 보호자는 걱정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지 않나?

해서 박태식은 보다 자세히 말해 보시라는 뜻에서 되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런저런 걱정이 튀어나왔다.

일단 약에 대해서도 걱정이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약 부작용은…….”

“아, 미소프로스톨이요?”

“네……. 약 쓰는 게 좀 찜찜해서. 양약은.”

중간에 양약이라는 의사들이라면 별로 안 좋아하는 단어가 나오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는 담당의에게 뭐든지 물어볼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법이었다.

그게 뭐 인격 모독 수준의 질문이 되어서야 안 되겠지만…….

이 정도면 뭐,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많이 쓰는 약이에요. 저희도 쓰는데, 원래는 궤양 치료제예요. 속 보호제로 많이 씁니다. 저희야 다른 목적으로 쓰는 거고 이 목적 때문에 산모한테는 금기지만…… 뭐,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복통이나, 약간의 출혈, 떨림, 발열, 설사는 있을 수 있는데, 부작용이 생기면 저희가 그에 맞춰서 약을 드릴 겁니다.”

“네네.”

환자는 그 외에도 수술에 대한 궁금한 점도 물어보았다.

뒤에 서 있던 주치의는 그건 어제 다 설명했던 건데 싶어서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원래 수술을 앞두다 보면 들었던 것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고 그런 법 아니겠나.

레지던트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겠지만, 집도의에게 듣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환자들이 여전히 레지던트는 의사가 아닌 줄 알아서이기도 하고, 원래 사람 마음이 그래서이기도 했다.

해서 한참 설명을 해야 했던 박태식은 그대로 수술방 대기실로 내려갔다.

“약 넣고, 내려. 알았지?”

“네, 교수님.”

조금이라도 더 체력 보충을 하기 위함이었다.

레지던트는 박태식 교수가 내려간 다음, 바로 환자에게 가서 약을 주었다.

경구로 줘도 되겠지만 지금은 목표가 궤양 치료가 아닌 자궁경부 이완 및 자궁 수축에 있었기 때문에 질정으로 투여했다.

“어…….”

그렇게 하나만 들어갔을 땐 환자는 별다른 불편감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게 아예 불편하지 않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닐 터였다.

이미 불편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데다가,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참을성이 좋다 보니 약간 불편한 것 정도는 그냥 참는 편이었다.

허나 두 번째 약이 들어가고 나서는 환자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어, 왜 그러세요?”

그럴 수 있는 약 아닌가.

워낙에 효과가 좋아서 쓰는 것이지만, 부작용이 없는 약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해서 옆을 지키고 있던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되물었다.

보아하니 약간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발열까지 있었다.

“그…… 몸이 좀.”

“네네. 걱정 마세요. 약 드릴게요.”

발열이야, 뭐 흔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해열제를 정맥 주사로 주었다.

그러자 30분 내로 열이 떨어졌다.

그래도 좀 불안하다 보니 수술방으로 같이 이동했는데, 환자의 떨림 증상은 딱히 좋아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환자를 보지 못했더라면 레지던트도 불안해할 텐데, 이미 본 적이 있다 보니 그럭저럭 침착할 수 있었다.

“흐음…….”

그렇게 수술실에 닿았을 때, 마주하게 된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수혁이었다.

[다트에서 수술 대기실이 뜰 줄이야.]

‘아니, 그걸 대체 왜 만들어 둔 거야?’

[애들이 성의껏 만든 거니까 뭐라고 하진 말고 나중에 지우죠.]

‘그래야겠어. 여기서 뭔 환자를 볼 수 있다고…… 뭐,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 나는 김에 골프장에 갔지 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주치의로서는 절대라는 표현을 써도 될 만큼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게다가 뭐…….

‘과장님이 화가 이따만큼 나셨지.’

안 그래도 무서운 사람이 기본적으로 화가 나 버렸다.

귀하디귀한 레지던트인 자신에게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할 만큼이나.

그렇다 보니 가까이 갈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으음?”

되도록 멀리하고 싶다, 이 말인데…….

저쪽에서 오는 건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평소 특이해 보이는 환자가 있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것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치의는 당황하지 않았다.

불편하긴 했지만…….

“아, 이제 수술 예정이라서요.”

“몸을 떠는데요?”

그걸 표정과 말투로 티를 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수혁은 환자만 보고 있었다.

“아……. 미소프로스톨이 들어가서요.”

“아하……. 흐음……. 혈압도 좀 낮은데요?”

미소프로스톨의 부작용을 모르는 의료진도 많았다.

안 쓰는 과라면 모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수혁은 천재라 그냥 알았다.

그럼에도 질문은 이어졌다.

저혈압이니까.

“아……. 자궁근종 때문에 실혈이 좀 심해서요.”

“흐음……. 그렇다고 이렇게?”

“그게. 일단 지금 들어가야 합니다.”

“아……. 네네.”

“어……. 왜……?”

근데 그렇다고 90까지 떨어지나?

수축기 혈압이?

그런 생각에 수혁은 슬그머니, 마취과 사무실에서 뭔가 빼 가지고 수술방으로 향하는 길에 합류했다.

레지던트가 왜냐고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만 으쓱했다.

‘괜히 또라이가 아니로구나.’

레지던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은 추호도 상상하지 못한 채, 떨떠름한 얼굴로 수술방으로 향했다.

뒤에 혹처럼 따라붙은 수혁을 달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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