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화 산부인과 (2)
‘분위기 안 좋은데…….’
레지던트는 제발 그냥 좀 가 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남겨야 할 때가 생각보다 참 많지 않던가?
지금이 딱 그 시점이었다.
그래서 닥치고 있었다.
눈치가 있으면 가 주시겠지 하면서였는데…….
‘갈 생각이 아예 없는데?’
수혁은 그저 환자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안 그래도 수술을 앞둔 참이라 불안해하던 환자는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솔직히 그냥 봐서는 레지던트나 수혁이나 거기서 거기로 보이긴 했다.
그러니까 나이나 연륜 같은 것이 그렇게 보인다는 건데…….
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상당히 높은 사람 같았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 전에는 정말 큰 도움 받았습니다!
게다가 마취과 선생님들이 다들 보면서 인사도 하고…….
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아무튼, 왔으면 활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저…… 괜찮은 거죠?”
해서 물었다.
딱히 안 괜찮은 것 같아서는 아니었다.
증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몸도 떨리고…….
배도 부글거리고, 열감도 있고, 무엇보다 배가 꽤 아팠다.
하지만 다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이고 심지어 그렇게까지 드문 것도 아니라니까 그런갑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질문의 목표는 ‘네, 괜찮습니다’를 듣는 데 있었다.
“아……. 아니긴 한데, 제가 괜찮게 만들어 드릴 거예요.”
“네에?”
“네?”
수혁이 있건 말건 수술은 진행해야 하지 않겠나.
여느 때처럼 수술방은 톱니바퀴 돌 듯해야 간신히 일과를 마칠 수 있게 수술이 빼곡히 들어와 있었다.
그 어떤 곳보다 응급이라는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대학 병원에서 변수가 아예 없어야 가능한 스케줄을 매일 밀어 넣는 게 말이 되나 싶긴 한데…….
아무튼, 바쁘다 이 말이었다.
해서 약을 밀어 넣었다.
“아, 벌써…… 넣었어요?”
“네. 근데 무슨…… 문제라도?”
“아니, 이게 뭔…….”
마취과 의사도 당황스러웠지만, 환자만큼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취약제에 의해 의식이 꺼지는 느낌을 받고 있으면서도 불안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봐야 날아가는 의식을 붙잡는 건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수면 마취라도 해 본 사람은 아마 어떤 기분인지 알 텐데, 이미 머리가 쿵쿵거리는 느낌과 함께 툭 꺼져 가고 있었다.
“이제 확실히…… 약물 부작용으로 보이는데…… 미리 말을 할 걸 그랬나.”
“아, 부작용이요? 그건 보고받았습니다. 미소프로스톨은 원래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그런 흔한 거 말고요.”
“아, 안 돼.”
마지막으로 ‘안 돼’를 외치고, 환자의 의식은 완전히 꺼졌다.
감긴 두 눈 틈새로 눈물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원래 눈에는 눈물이 있는 법이라, 이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우는 것처럼 보일 뿐.
하여간, 마취과 의사도 산부인과 의사도 흔한 게 아니란 수혁의 말에는 정신이 번쩍 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허나 제일 먼저 되물은 이는 박태식 교수였다.
자궁경 수술은 아무래도 마취만 제대로 되면 레지던트가 먼저 준비할 것이 적지 않겠나.
수술 스케줄을 끼워 넣은 당사자이니만큼 본인이 제일 서둘러야만 했다.
해서 미리 들어와 있었는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은 참이니 말이 툭 튀어나가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있겠나.
‘다른 놈이면 또 몰라…….’
다른 놈이면 여기 들어올 생각도 안 하긴 했겠지만…….
아무튼, 수혁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태화에 있겠나?
아니, 이제 대한민국 의료계에는 더 이상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무시를 해?
말이 안 된다.
머리가 달린 놈이라면 ‘감히’ 그럴 수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미소프로스톨의 흔한 부작용이…… 상황을 좀 헷갈리게 만들 수 있는데요.”
“네, 아니, 근데 손에 쥔 건…….”
“어, 어! 혈압이!”
해서 뭔 일이냐고 묻는데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취과 쪽이었다.
드문 일이었다.
마취과란 수술방의 선장임을 자처하는 이들이니까.
게다가 여긴 산부인과 수술방이지 않나.
인간은 골반은 좁은데 머리는 큰 동물이다 보니 출산 자체가 위험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만 전문으로 하는 과에는 당연하게도 응급이 수두룩했다.
헌데…….
그런 마취과가 비명을……?
“뭐야! 60?”
해서 고개를 돌려 봤더니만 글쎄 수축기 혈압이 60이었다.
말이 좋아 60이지, 이대로 가다간 환자가 그대로 죽는다고 봐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취 유도제가 들어갔으니 위험은 더 올라갔다.
이완까지 시키는 약이니까.
“매, 맥박수 120!
“추, 출혈인가?”
“그런…… 그런 소인은 없습니다! 생리 중도 아니었고요!”
마취과, 집도의, 주치의 모두 우왕좌왕했다.
그러면서도 훈련 받은 대로 움직이긴 했는데, 일단 산소 포화도를 재면서 동시에 동맥혈 검사가 나갔다.
수술 예정이었던 만큼 이미 잡혀 있던 수액 라인도 확인했다.
하지만 왜 이러는지에 대한 파악은 아직 불가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우선…….”
오직 하나, 수혁만이 표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액 때리고.”
생리 식염수 속도를 조절하는가 싶더니, 아까 마취과 사무실에서 들고나온 주사기를 라인에 찔러 넣었다.
“에피 들어갑니다.”
“네?”
“에피?”
“네. 약물 부작용이라고 했잖아요. 아나필락시스예요, 이거.”
“아나필락시스……?”
“미소프로스톨이 그런 부작용도 일으킵니까?”
마취과, 집도의 모두 그런 수혁을 돌아보았다.
뭐라 할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이미 약이 들어갔는데 뭐라 하나.
대신 설명만 제대로 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일단 둘은 처음 듣는 경우였으니까.
아마…… 여기 다른 사람이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네, 드물지만 일으킬 수 있어요. 일단 경과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떨림과 고열…… 흔한 부작용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사실 아나필락시스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죠. 복통도 그렇고, 설사도 그렇죠.”
“아니……. 근데 그거.”
“네. 저도 처음에 이걸 케이스에서 봤을 때, 암살하려고 만든 약인가 했었습니다. 흔한 부작용 거의 전부가 아나필락시스의 과정이거든요. 마스킹이잖아요? 그러니 지금처럼 그냥 수술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많죠. 아, 제가 본 케이스에서는 환자 사망했습니다.”
“허……. 미친…….”
대화를 하는 사이, 에피네프린과 수혁이 밀어 넣은 용액으로 인한 부피 확장의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혈압이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말은 맞는 처치를 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진단이 옳았다는 말도 되었다.
“수술은 이제 진행하셔도 될 겁니다. 에피네프린 때문에 자궁경부 수축이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하실 수 있다면요.”
“할 수는 있는데, 이거 괜찮은 걸까요? 혹시 다른 원인이…… 이 환자 전에 뇌동맥류 파열이 있었는데.”
“뇌출혈이요?”
“네네. 그럼 이거 수술할 게 아니라…….”
“아뇨. 뇌출혈이었으면 에피 준다고 이렇게 돌아오지 않죠. 게다가 경과 자체도 아주 전형적입니다. 나머지 처치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수술하실 수 있으면 수술하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이라.
집도의는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면 하기 싫었다.
제아무리 경험 많은 의사라 해도, 이런 일을 겪었는데 힘이 나겠나?
오히려 진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뒤에 수술도 다 취소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테이블에서 환자 잃을 뻔했으니…….
‘얘기 들어 보면 그럴 건 아니었지만…… 난 진짜 그렇게 느꼈다고.’
산과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겪는 일이기에 더더욱 현실감이 있었다.
손써 볼 새도 없이 환자 혈압이 쭉 떨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테이블 데스로 이어지던 경험을, 박태식도 해 봤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때 은퇴할까도 고민을 했었는데…….
주변에서 너 아니면 대체 누가 이런 수술을 또 하겠냐는 위로 아닌 위로에 여지껏 지키고 서 있었다.
“걱정 마세요. 혼자가 아니니까.”
“그…….”
그러던 차에 오늘이 날이구나 싶었다.
원래 사람 생명 다루는 의사들은 저마다의 잔이 있는 법 아니겠나.
안 좋아지는 환자를 볼 때마다 잔이 차오르고, 좋아지는 환자를 볼 때마다 잔이 비는데…….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차오르는 속도가 비워지는 속도보다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딱 채워지는 순간 같았는데…….
어째서일까?
일면식도 제대로 없던 수혁의 말에 갑자기 새 잔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든든한 잔을.
“그…… 그래. 수술 시작하지.”
“네?”
“못 들었어? 하자고.”
주치의는 오늘 교수님 술 상대를 해 드려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환자들이야 가운 입은 교수 모습만 보니까 이 사람도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테지만…….
당연하게도 같은 사람 아닌가.
맡고 있던 환자가 예상치 못하게 안 좋아지거나 하면 멘탈이 깨지는 것은 물론 다시는 메스를 못 잡게 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아…… 네.”
박태식은 꽤나 좋은 교수다 보니 레지던트도 씁쓸해하고 있었는데, 그냥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술이 재개되었다.
‘흐음…….’
[손이 좋네요?]
‘그러게. 이게 쉬운 수술일 리가 없는데.’
[원래 뭔 경, 뭔 경 붙은 수술치고 쉬운 수술이 없죠.]
‘그것도 그렇긴 하지.’
손 좋은 친구라면 레지던트 때도 가능한 갑상샘 절제술도 내시경 하 갑상샘 절제술이 되면 난이도가 급상승하지 않던가.
시야도 움직임도 모두 제약이 발생해서 그런데, 박태식 교수는 마치 그런 걸 아예 못 느끼는 사람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음의 부담이 사라져서 그렇다는 걸, 정작 그 부담을 날려 버린 수혁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장인의 수술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정말 다른 문제가 없는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술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는 것이 더 알맞은 이유였다.
‘산부인과 수술은…… 좀 다르네.’
[다르겠죠. 신경외과, 흉부외과 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당연한 말이긴 한데, 새삼스러워.’
[해부학에 따라 수술도 달라지는 게 재밌긴 하군요. 외과 분야도 이렇게 보면 마냥 무시할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 줘야 하는 일이지. 다 나처럼 진단만 내리면 치료는 누가 해.’
[그것도 그렇군요.]
뼛속부터 내과 프라이드로 가득한 사람과 깡통 덩어리답게 삐딱한 말투를 이어 나가고 있긴 했지만.
누가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관찰하는 태도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보니 오히려 저 양반은 내과 의산데 수술을 참 경건하게 본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누가 제일 감동을 받았냐면, 당연하게도 박태식이었다.
수혁이 처음 보는 종류의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의식하지 못한 새에 흐음, 호오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우리 과장님이 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덕분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
그러니까 홍혜리 과장을 먼저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