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63화 (1,263/1,303)

1263화 산부인과 (3)

똥 마려울 때랑 싸고 나서랑 마음이 달라진다던가.

수술 한창 할 때까지만 해도 멋있게 과장님이랑 한판 뜨는 상상을 하고 있던 박태식 교수는 딱 수술이 끝나자마자 역시 그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그냥 과장도 아니지 않나.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이수혁 교수가 그걸 원했던 것도 아니지 않나.

“아뇨. 뭐…… 저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어서요.”

회복실에 나와 진짜로 다 회복된 환자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걸 보고 있자니, 그래, 저게 저 사람에 대한 보답이지 하는 생각만 들었더랬다.

원래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에 대한 소문이야 대단하지 않던가.

환자 보는 데 진심인 것을 넘어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 알았다.

“이거 그럼 케이스 발표를 해도 되는 건일까요?”

“아……. 뭐, 국내 학술지라면 얼마든지 되죠.”

“좋네요. 야, 네가 해라.”

“네, 교수님.”

하여간, 덕분에 논문도 하나 해결했다.

자기 건 아니고, 레지던트 것으로.

전문의 시험 보려면 각 과마다 나름의 자격이 필요한 법이지 않나.

산부인과처럼 기피 과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인 과라면 그런 걸 다 없애 버려야 될 것 같겠지만…….

그렇게 하기엔 또 너무 중요한 과였다.

사람 생명과 직결이 되어 있는 게, 또 산모랑 태아다 보니 전문의 질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이거…… 이 은혜를 어찌…….”

해서 레지던트들은 케이스 리포트라면 두 개, 오리지널 아티클이라면 한 개를 써야 하는데, 취지는 좋지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걸 해결해 준 거다.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었다.

“괜찮습니다. 뭐 어려운 환자나 있으면 그거나 알려 주세요.”

“아.”

해서 말을 했더니만 돌아오는 답이 진짜 가관이었다.

컨셉인가 싶을 정도로 심하지 않나?

하지만 컨셉이라 해도 그게 몇 년 이상 계속되었다면 더 이상 컨셉이라 매도할 수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이 표정을 보라.

이게 컨셉 잡고 하는 거라면…….

이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연기를 했어야 한다.

‘어려운 환자라…….’

어려운 환자야 뭐 늘상 있지 않나?

원래 그런 환자 보라고 있는 게 태화 의료원 같은 거대한 병원이다 보니, 여기 일하면서 어려운 환자를 보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이 양반이 원하는 건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는 걸, 방금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해 알아 버렸다.

“그…… 음. 아직 확진이 되지 않은 환자가 하나 있긴 합니다.”

“그래요?”

“근데 그게 교수님 생각에 맞는 환자인지 어떤지는…….”

“괜찮습니다. 원래 한 열 케이스 보면 그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법이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요. 어려운 케이스가 뭐 그리 흔한 건 아니니까요. 오늘 본 이 정도면 흥미로운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또 어렵다고 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하하.”

해서 병동 환자 중 하나를 쥐어짜 내서 알려 주었다.

허나 이어지는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무래도 실망할 것이 뻔해 보였다.

왜냐면…….

박태식 교수 입장에서는 오늘 방금 본 환자도 진짜 어려운 환자였기에 그랬다.

근데 그 정도가 고작해야 흥미로운 수준이라면…….

‘질에 생기는 암이 진짜 드물긴 하지만…….’

지금 보니까 드물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지 않나.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아까…….

그 수술방에서 남들은 다 당황하고 우왕좌왕했지만 수혁만큼은 홀로 고고했더랬다.

아마 수술방 처음 따라 들어올 때부터 이미 다 알고 들어왔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에피네프린을 미리 준비했을 수 있겠나?

게다가 디에페드린도…….

“그럼 가 보겠습니다.”

“네네. 주치의는…….”

“병동에 담당 간호사 있지 않나요?”

“있죠.”

“그럼 됐습니다. 수술해야죠.”

“아, 네.”

뭐, 어쩌겠나.

상대가 너무 우수해서 생기는 일인데.

게다가 박태식 교수는 왜인지 모르게 의욕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새로 수술을 시작하게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걸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자, 갈까.’

[네. 그래도 수술방치고는 썩 괜찮았죠?]

‘응. 오늘 느낌이 좋아.’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기분을 박태식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뭐, 수혁이야 원래 기본 기분 톤이 높은 편이다 보니 거의 매일 이렇긴 하지만…….

하여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산부인과 병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혼자서였다.

하윤도 대훈도 바빠서 그랬다.

특히 하윤은 여름 휴가를 못 썼기 때문에 가을에 휴가를 가야 하는데, 그걸 수혁과 맞추기 위해 스케줄 딜을 쳐 놓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외래도 당직도 몰아 서고 있는 중이었다.

대훈?

‘그 새끼는 왜 바쁘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뭐…… 나쁘게 바쁜 건 아닐걸요.]

‘그렇겠지. 일이나 공부나 하고 있겠지.’

수혁도 잘 알 수가 없는…….

그런 놈이다 보니 이해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하여간, 덕분에라고 할지 아니면 때문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혼자 움직이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홀가분하기만 하진 않았다.

이제 수혁도 나름 혼자만의 삶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서 그랬다.

하지만 뭐…….

그래도 어쩌겠나.

환자는 봐야지.

“흐음.”

“아…… 안녕하세요, 이수혁 교수님.”

해서 산부인과 병동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섰다.

그런 그를 보면서 산부인과 병동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

태화 의료원이 크다고 해도 도시급은 아니지 않나.

돌아다니면서 환자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밖에 없다, 이 말이었다.

그래도 산부인과는 좀 성격이 다르지 않나?

지금까지 우연인지 뭔지 접점이 적기도 했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여긴 안 오나 보다 했는데…….

“10호실이 어디죠?”

“아, 저기…… 근데 어떤 분 보시러 오신 거예요?”

간호사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였다.

제일 높은 시니어가 책임감에 물었고, 돌아오는 답에 말없이 일어섰다.

“강지영 환자분이요.”

“아, 네.”

나구나 싶어서 그랬다.

직급에 관계없이 수간호사 이하로는 병동 간호사는 모두 환자를 봐야 하지 않나.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니만큼 의사들도 간호사들 체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만만치 않게 바쁘단 점이었다.

그런 곳에서 ‘시니어’라는 직급까지 오르려면 꽤나 많은 경험과 각오가 필요한 법이었다.

‘오…….’

[강인해 보이는군요.]

바루다가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원래도 빡센 병동 중에서도 더 빡센 곳이 있기 마련인데 산부인과면 그중에서 탑티어다 보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잘된 일이었다.

대학 병원에서 강인하다는 건, 책임감이 강하다는 걸 지칭할 때가 많으니.

“강지영 환자분은 어떤 환자분이에요?”

수혁은 늘 그렇듯 오면서 이미 환자에 대해서는 좀 본 상황이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물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의료진의 현장감 넘치는 말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아서 그랬다.

“41세고, 한 2년 전부터 질 내에 덩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2년이요?”

“네.”

“아니……. 그 정도면 되게 불편했을 거 같은데……? 아닌가?”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고추에 2, 3cm 정도 되는 덩이가 있다면 되게 불편할 것 같았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불편했을 거예요. 근데 뭐 2년 동안 변함이 없어서 그냥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딱히 정기적인 파트너도 없어서 그렇게까지 큰 불편감은 없었다고 하고요.”

“파트너?”

“그…….”

“아, 아아. 네.”

이전 같았으면 못 알아들었겠지만, 이젠 그래도 연애를 시작한 몸 아닌가.

그래 봐야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애들 소꿉장난 같은 연애지만…….

손주 낳는 얘기까지 하려면 일단 상상의 테두리 안에 어른들의 사랑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때 동기화 끕니다…….]

‘어, 그래. 제발.’

[촉각은 진짜 이상하다고요…….]

‘응, 그래.’

[근데 그러니까 그냥 좀 하면 안 됩니까? 요즘엔 다 한다던데.]

‘부끄러워.’

[이러다 헤어지지.]

바루다는 왜 아직도 상상의 테두리 안에만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무튼, 지금은 알아들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럼 이번에 오신 건? 파트너가 생기셨나?”

“아, 아뇨. 갑자기 내원 열흘 전부터 덩이가 커져서요.”

“아……. 얼마나요?”

“거의 8cm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흐음……. 원래 있던 종양이 자라났다?”

“어젯밤에 외래 통해서 입원하셔서 검사가 거의 안 되어 있긴 한데……. 들어 보니까 악성 전환이 아닌가 하시더라고요.”

“그럴 수 있죠.”

양성 종양에서 악성으로 변하는 거…….

드물긴 하지만, 대학 병원에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경우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별로 좋지 못한 경우이기도 했다.

그 예후 좋다는 갑상샘암조차 anaplastic 형태로 바뀌게 되면 말 그대로 손써 볼 틈도 없이 죽게 되지 않던가?

‘그럴 수 있지만…….’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그런 상황이라면 수혁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단을 성공적으로 내린다 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죽을 사람에게 가서 아, 당신 확실히 죽겠군요 라고 떠들게 되는 일이 뭐 즐겁겠나.

“음.”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괴사를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것 또한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종양에서 괴사가 왜 생기겠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종양이 너무 빨리 자라서 겉에까지 혈관이 미처 닿지 못하는 것이 가장 빈번한 이유였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빠르게 자라는 건 역시 악성인 경우가 많았다.

“어…….”

환자는 처음 보는 의료진에 살짝 당황했다.

아마 수혁이 남자이기 때문도 있을 터였다.

아무리 아픈 상황이라 해도, 또 상대가 의사로 온 것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본능적인 불편은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다행히 수혁은 여기서 당장 환부를 직접 살필 생각은 없었다.

담당 간호사가 환부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 주었다.

이것만으로 불충분하다면 직접 봐야겠지만…….

‘흐음…….’

[이게 외부로 삐져 나왔네요?]

‘엄청 불편하겠는데……? 겉으로 군데군데 괴사 된 부분이 있어. 아프기도 할 거야.’

[확실히 악성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이는 소견입니다.]

‘만약 악성이라면…….’

[예후는 나쁠 거 같군요.]

병력과 생김새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암이라면 침윤성 자궁경부암종이거나 횡문근육종일 텐데…….

환자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암의 국소 병기가 벌써 이 지경이라면 살아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예전보다 암 치료가 훨씬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종류에 따라서는 여전히 가장 무서운 병이 바로 암이니까.

“흐음…….”

수혁의 입에서 꽤나 오랜만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즐거운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침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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