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4화 산부인과 (4)
“초음파를 해 보죠. 병동에도 있나요?”
“아……. 네. 옆 병동에. 거기가 산모 대기실이라서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네, 교수님.”
담당 간호사는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와 옆 병동으로 향했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태화는 동, 서로 나누기에 동 병동에서 서 병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뭐 엄청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중앙에 엘리베이터와 공용 화장실 및 병동 환자, 보호자 휴게실 정도만 지나면 바로 반대편이었다.
“환자 내려갑니다!”
“자, 잠깐! 응급으로 들어가는 환자 있대요! 이따가, 이따가!”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 딴판이었다.
저쪽 병동은 출산이 아닌 다른 분야를 주로 보는 병동인 데 반해 여기는 딱 출산만 보는 곳이라 그랬다.
그래 봐야 다 같은 산부인과인데 뭐가 그리 다를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산과와 부인과는 해부학적인 동일성을 제외하면 아예 다른 과라고 봐도 무방했다.
‘역시……. 몇 안 되는 마취과 컨펌 없이 밀고 들어가도 되는 과답네.’
시니어 간호사도 처음엔 여기서 커리어를 시작했더랬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옮기긴 했지만…….
아무튼, 익숙하게 움직여 초음파를 끌고 나왔다.
“옆 병동에 잠깐만 쓰고 바로 갖다 드릴게요!”
“아…… 네.”
병동 소유의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빌리는 게 어렵진 않았다.
아니, 사실 빌린다는 말을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차피 다 산부인과 자산이니.
“무슨 응급이래?”
“몰라. 원래 우리 병원 다니던 산몬데 양수 터졌나 봐.”
“그거 그냥 분만실로 가면 안 되나?”
“태아 포지션이나 태반 위치 문제가 있겠지.”
“아, 하긴…… 그렇겠네. 저, 환자분!”
게다가 너무 바빠서 뭐라 할 시간도 없었다.
당장 제왕절개 환자 내리려다가 집도의가 다른 응급 환자 때문에 급히 들어간 상황이지 않나.
“아……. 얼마나요?”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휴우…….”
“죄송합니다.”
의료진끼리야 얼마나 급하면 다른 수술 다 밀고 들어갔겠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일반인 아니, 환자 입장에서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지 않나.
심지어 일반인 중에서는 산부인과가 얼마나 위험한 과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당장 맹장 수술과 제왕절개를 같은 선상에 두고 보는 사람이 태반인 것을 넘어 심평원이나 보험 공단에서도 그렇게 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괜히 모성 사망률로 각국의 의료 수준을 가늠해 보는 것이 아닌데…….
“알겠어요. 그럼 들어가요?”
“네, 죄송합니다.”
출산 앞둔 사람 앞에서 그따위 얘기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이번 산모는 그리 예민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대로 병실로 돌아가 주었다.
시니어 간호사는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뒤로하고 급히 수혁에게로 향했다.
전에 저기서 일하던 경험 때문에 잠깐 과몰입했는데, 생각해 보면 지금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 또한 충분히 안 좋은 상황이었다.
드르륵.
그 생각을 하고 나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군요. 흐음……. 통증은 원래 없었다가 이제는 있다는 거죠?”
“네.”
“밑이 끌리는 느낌도 있고요?”
“네. 정말 갑자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바로 병원에 오지 않으신 건……?”
“만져지긴 해도 지금처럼 이러진 않았어요.”
그사이 수혁은 환자와 대화 중이었다.
말이 대화지, 환자나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사실상 문진이었다.
‘진행이 빨라.’
[뭔가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니면…….]
‘안쪽에서 서서히 커졌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을 수 있어. 그러다가 지금처럼 감염과 괴사로 구조가 무너지면서 툭 튀어나오니까 놀라서 왔을 가능성이 사실 가장 높지.’
[네, 동의합니다.]
덕분에 추론을 보다 더 진행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종양이 갑자기 커졌다기보다는 수혁이 말한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인간의 내부 감각은 생각보다 둔하기 때문에 가능한 해석이었다.
실제로 여러 암이나 양성 종양들이 복강처럼 넓은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엔 아주 거대해지기 전까지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왕왕 있지 않던가.
“여기…….”
“네, 감사합니다.”
하여간, 초음파가 도착했으니 이제는 초음파를 확인해 볼 차례였다.
수혁은 초음파 프로부를 환자의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자궁부터 보였는데, 이건 정상이었다.
‘전혀…… 이상 소견이 없어.’
[네. 자궁 경부 근처에도 덩이가 있긴 한데…….]
‘거기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진 않아. 그냥 닿아 있을 뿐이야.’
[안이 좁으니까요.]
‘그렇지. 흐음……. 하필이면 이게 근데 외부랑 맞닿은 곳이라 감염이 이 있는 거 같은데…….’
[얼룩덜룩하군요. 초음파로는 더 정보를 얻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임파선도 보이긴 하는데 전이인지 감염으로 인한 반응성 변환이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바루다의 마지막 말 때문에 알아낸 것이 아주 적어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검사마다 알아내야 할 것이 정해져 있지 않나.
초음파는 영상 검사 중에 제일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는 검사일뿐더러…….
내부 상태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검사였다.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단 자궁 내부가 괜찮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 하나와 거기에 더해 자궁경부 또한 정상이라는 것까지 해서 둘이었다.
“영상 검사는 한 게 있나요?”
“아……. 네. 근데 어제 오셔서 아직 판독은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그건 괜찮아요. CT랑 MRI 다 찍었나요?”
“아, 네.”
“좋군. 그것 좀 보죠. 아……. 그리고 항생제는 뭐 들어가요?”
“아……. 오구멘틴입니다. 외래에서 처방받았던…… 오늘 상태 보고 변경할 거라고 하셨어요.”
“컬쳐는 그럼 전에 나간 거죠?”
담당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기록을 뒤졌다.
주치의가 남겨 둔 것이 있어 답하는 데 그리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아, 네. 외래에서…….”
“좋아. 그럼 일단 바꾸죠. 이렇게.”
“아……. 네.”
수혁의 말에 토를 달진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수혁의 얼굴 보는 게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나, 시니어 간호사쯤 되면 각 병동에 지인들이 꽤나 쌓이기 마련 아니겠나.
거의 모든 병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병동에서 수혁은 신이었다.
‘신…….’
세상에, 신이라니.
독실한 기독교인인 시니어로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경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나.
병원에서만큼은 실력 있는 의사가 왕이다, 왕.
아니, 신이라고 해도 좋았다.
아무도 모르던 병 진단해 주고, 아무도 못 고치던 병 치료해 주면 그게 신이지 달리 신이겠나.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또 진단 툴이 발전하면서 상향 평준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명의는 있기 마련이었다.
‘이수혁 교수님 말이라고 하면 면피도 되겠지.’
교수들의 교수라고 해야 할까?
산부인과 쪽이야 딱히 그런 말이 없었지만, 외과에서도 이수혁이라고 하면 믿고 맡긴다고 하니 뭐 괜찮을 터였다.
게다가 수혁이 낸 처방은 딱 봐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오랜 경험을 지닌 시니어가 보기에 왜 이걸 처방하는지 의도가 보인다고나 할까.
“흐음…….”
그렇게 간호사가 수혁이 낸 처방을 시행하는 사이에, 수혁은 어젯밤 사이 그리고 오늘 새벽에 찍은 영상을 살피고 있었다.
CT와 MRI 둘 다 찍었는데, 아무래도 CT는 이런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MRI를 찍은 마당인 데다가 근육과 같은 조직을 볼 때는 MRI가 가장 효과적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CT로 본 게 아주 없진 않았다.
‘확실히 임파선은…… 반응성 임파선 비대로 보이네.’
[네. 전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국소 종양이 이렇게 큰데…… 주변으로 아예 임파선 전이가 없다…….’
[이상한 일이죠. 어쩌면 암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비로소 미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수혁은 우선 MRI를 위주로 보게 되었다.
MRI는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은 만큼 보기 어려운 검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이 많은 교수 중에서는 MRI를 아예 못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나이가 젊은 교수라고 해도 판독을 받아 보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였다.
CT랑은 아무래도 좀 난이도 차이가 있었다.
‘T2 이미지에서 보면 상당히 불규칙한 모양인데…….’
[괴사와 감염이 동반되어 있어서 망가진 상태일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보다는 안쪽 신호 강도를 보다 면밀히 봐야 합니다.]
‘그렇지. 음……. 근육에 비해 훨씬 강도가 높아. T1에서는 비슷해 보이고. 불규칙한 조영증강 강도를 보이긴 하지만…….’
[암보다는 감염으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환자가 덩이가 있는 것을 인지한 게 2년 전이라고 했지.’
[네, 인지한 것이 2년 전이니 발생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겁니다.]
영상과 지금까지 확인한 정보를 토대로 바루다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수혁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아까처럼 감정이 뒤섞인 한숨은 아니었다.
그저 생각을 이어 나가기 위한 발판 정도였다.
‘T2에서 조영증강이 대체적으로 높게 나타나지만…… 더 낮은 부위도 있어. 높은 부위는…… 사진과 초음파, CT와 대조해서 보면 괴사되었거나 감염된 부위야.’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히려 조직의 온전한 상태에 대해서는 조영증강이 낮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T1에서도…… T2에서 조영증강이 낮게 보이는 곳을 보면 상대적으로 더 낮게 보여.’
[동의합니다. 흐음……. 거기에 환자의 병변은 상당히 오래되었죠.]
‘여전히 횡문근육종과 같은 암종을 의심해야 하지만, 단순 평활근종에 궤양이 진행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만약 그렇다면 단순 절제만으로도 완치를 꾀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평활근종에서 변이가 일어났다면 육종이지.’
[그렇다면 잔순 절제만으로는 한참 부족하죠.]
수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시니어 간호사와 환자는 그런 수혁을 보며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이제 와 새삼스럽게 위엄을 느꼈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뭔가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으음?”
그걸 깬 것은 박태식이었다.
“어? 교수님?”
그의 등장에 제일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시니어 간호사였다.
아직 끝나려면 한참 남지 않았나?
아까처럼 수술 전에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그럴 만한 환자는…….
“어?”
이상하다 싶어 하다가 보니 그제야 보이는 게 하나 있었다.
담당 환자 보느라 몰랐는데, 오늘 수술 예정이었던 환자들이 다 없었다.
“수술 일찍 끝났어.”
박태식 교수는 수혁을 보면서 답했다.
‘이 사람이…… 아까 왔다 간 이후로 뭔가 달라졌다.’
벽을 깬 느낌이랄까.
오늘 유독 널럴한 날이라 가능한 거긴 했지만, 아무튼, 벌써 끝난 건 처음이었다.
“아무튼, 환자 보셨네요. 어떤가요?”
그 덕에 마음이 푸근했다.
뭔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과 함께, 박태식은 수혁에게 환자에 대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