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5화 산부인과 (5)
수혁은 환자를 돌아보았다.
환자는 그렇지 않아도 큰 병원에 암이 의심되는 케이스로 입원한 데다가 애초에 종양에도 감염이 발생한 상황이다 보니 얼굴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니, 안 좋았다.
암이 아니라 해도…….
사실 이게 보통 아픈 상황은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말이 생식기이지, 남자나 여자나 비뇨기 계통을 공유하지 않던가.
거기에 커다란 종양이 있는 상황이다 보니 소변 배출이 용이하지 못할뿐더러 그렇게 소변을 볼 때마다 종양의 감염도 더 악화되고 있었다.
‘왜……?’
환자 또한 수혁을 올려다보았다.
아래에서 본 수혁은 그저 건강해 보였다.
사실 건장함과는 거리가 먼…….
평소라면 여느 환자들보다 훨씬 몸이 약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의사 가운을 입고 있으면 체형도 어느 정도 가려지는 데다가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일단 두 발로 땅 디디고 서 있으면 건강해 보이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냥 이 사람이 대체 날 왜 보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만이 가득한 상황이다 보니 딴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하지만 환자 앞에서 하기엔 부담이 됩니다. 90%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래……. 그렇지.’
수혁은 영문을 몰라 하는 환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박태식 교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멀리 떨어진 컴퓨터를 가리켰다.
표정도 그렇거니와 말투도 그렇거니와 행동도 자연스럽다 보니 환자는 자신을 배제하고 대화를 하기 위해 멀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지 모니터를 좀 보면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 모니터가 하필이면 멀리 있는가 보다 할 뿐이었다.
그렇게 멀어져 간 의료진 일행은, 특히 박태식 교수는 살짝 심각해졌다.
일부러 환자를 등지고 서 있을 정도로.
“뭐…… 안 좋습니까? 예상은 했습니다.”
아직 젊다.
대학 병원 기준으로는 어리다라는 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젊다.
19세기면 몰라도 21세기 아닌가.
40대 초반이면 아직 죽음을 염두에 두기에는 일러도 한참 이른 나이라고 봐야 했다.
비록 아직까지 라포가 많이 쌓인 환자는 아니지만, 의사가 뭐 처음 본 환자라고 홀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환자는 어디까지나 환자, 즉 공감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아, 아뇨. 반대입니다. 근데 반대일 확률이 90%밖에 안 되는 게 문제죠.”
“응?”
각오하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말은 정반대의 말이었다.
모든 것이 다 예상과 다르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일반적이지가 않다고 해야 할까?
‘90% 뒤에 ‘밖에’라는 단어가 오는 게 맞나?’
보통은 90%나 라고 표현하지 않나……?
뭔 소리지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환자 병력, 증상, 종양의 형태, 초음파, CT, MRI를 종합해서 보면…… 다분히 제가 좀 희망적으로 분석한 것도 있습니다만.”
“네네. 계속하시죠.”
환자를 진단할 때 병력, 증상, 형태 등등을 고려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레지던트 레벨에서 이런 말을 했으면 새꺄 떠오르는 게 있으면 빨리 말하라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수혁이라서 그럴까?
당연한 말도 대단히 그럴싸하게 들렸다.
일단 얼굴 표정이나 말투 등등부터가 바루다에 의해 보정을 받고 있다 보니, 그랬다.
“우선 종양의 형태…… 육안으로 봤을 때의 형태를 보면 겉면이 괴사가 있고 감염이 있습니다.”
“그렇죠. 상당히 심한 편이죠.”
냄새부터 고약했다.
원래 여성의 질 내부는 산성이라 감염에 아주 강한데, 이놈의 종양은 그 바깥까지 삐져나올 정도로 자라난 데다가 겉은 괴사 되어 썩고 있으니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환자도 통증뿐 아니라 냄새 때문에도 고통받고 있을 터였다.
“그 때문에 악성이 강하게 의심이 되죠.”
“네, 저도…… 거의 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래서…… 초음파부터 봤죠.”
“초음파?”
“네. 자궁내부 또는 자궁경부에서 기인했다면 사실 암일 가능성이 99%일 테니까요.”
“아……. 그렇죠. 확인하는 게…… 근데 초음파로 그게 완전히 구분이 됩니까?”
박태식 교수가 무식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이게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초음파는 간편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지만 더럽게 어려운 검사라서 그랬다.
사실 영상의학과가 아니고서는 응급이냐 아니냐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보는 게 대부분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특히 산부인과에서는 골반 내 감염 같은 상황이 있다 보니 그런 것을 감별하는 데 도가 트기 마련이었다.
대신이라고 하면 좀 뭣한데, 하여간, 종양의 기원이 어딘지 보는 건 어려웠다.
“네, 이론적으로는 되죠. 다행히 이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보이시죠?”
“아……. 네. 와……. 초음파 윈도우 진짜 잘 잡으시네요……?”
박태식은 수혁이 모니터에 띄워 둔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냥 정상 해부일 때도 어려울 것 같은데, 안에 종양이 커다란 게 있어서 왜곡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딱 구분이 되게끔 잡아 놓았다.
대단하다는 말도 모자라다 할 수 있었다.
“아……. 네, 뭐. 연습했죠.”
“산부인과를 왜……?”
“통합진료센터니까요.”
“아……. 하긴.”
이 사람들, 진짜 진심이구나 싶었다.
사실 내과랑 산부인과는 아예 다른 과 아닌가.
그나마 다른 과들은 전신질환으로 연관이라도 있지…….
산부인과나 비뇨기과는 각기 세상 절반은 가지지 않은 장기를 다루는 과다.
그중에서도 산부인과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질환이 있다 보니 전문의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헌데…….
“아무튼, 보시면 구분이 되어 있죠? 질 내 기원이라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자, 그럼 괴사, 감염, 질 내 기원이라는 정보가 생겼죠. 그 상태에서 CT를 보면…… 옆으로 임파선들이 있죠.”
“아, 네. 근데 이건…… 전이성 임파선이라고 보기엔 좀.”
“네. 반응성 임파선 비대입니다. 전이가 아니죠.”
“아, 단언할 수 있을 정도입니까?”
“네. 그러니, 7cm가 넘게 자란 국소 종양이 있는데 임파선 전이는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아하.”
수혁의 추론 과정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져들게 된다더니만…….
박태식 교수는 왜 그런 말이 도는지, 그리고 딱히 다른 교수를 존경할 필요 없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 왜 수혁에게는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소견을 잡아내는 것도 신기하고 그걸 하나하나 쌓아서 길을 제시하는 것도 신기했다.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종합해서…… MRI를 보죠.”
“아, 네.”
“그냥 보면 조영 증강 정도가 얼룩덜룩합니다.”
“네. 이렇게 보니까 악성 같은데요? 횡문근육종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죠. 하지만 괴사한 부분과 감염이 된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수혁은 마치 영상의학과 교수처럼 팍스 시스템을 다룰 수 있었다.
그 결과 딱 보고자 하는 부분만 남겨서 띄울 수 있었는데, 그렇게 보자 상당히 균일한 조영증강 정도를 보이는 부분이 떴다.
“이 외에 감염, 괴사가 있는 부분의 조영증강 정도를 보면…….”
그리고 반대편 모니터에는 그 외에 다른 부위를 띄웠다.
이렇게 보자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감염과 괴사가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부위는 조영증강 정도는 동일했다.
그 말인즉슨 동일한 양상의 조직이라는 말이었다.
허나 감염과 괴사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부위의 조영증강 정도는 다른 부위에 비해 높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각기 제각각의 조영증강 정도를 보이고 있었다.
“아…… 여긴…….”
“감염 정도, 괴사 정도에 따라 다 다릅 겁니다. 만약 암이라면, 얼룩덜룩할 수 있을지언정 이보다는 훨씬 더 균일하게 나타나야 하죠.”
“그럼……?”
“제 생각입니다만, 평활근육종인데 감염과 괴사를 동반하는 종양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렇다면 양성…… 종양만 제거하면 되겠군요.”
“다만, 10% 정도에서 퇴행성 평활근종일 가능성이 있어요. 이 경우라면 안에 악성 변화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죠.”
“아, 그래서 환자 앞에서…….”
박태식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에게 함부로 전하면 안 되는 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식선에서 조절해야 하는데…….
암이니 뭐니 하는 나쁜 소식을 조심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경험이 필요한 사례도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였다.
생각보다 사람은 좋은 소식인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훨씬 더 절망하는 법이니까.
문제는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건데, 다행히 대학 병원에는 무서운 교수들이 많아서 실수하기 전에 뒤지게 혼나기 마련이었다.
박태식도 다르지 않았기에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뭐, 덕분에 환자에게 큰 실수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마냥 안 좋은 기억이라고 하기도 뭐했다.
“네, 그러니…… 수술 계획은 양성에 맞춰서 짜시되, 설명은 동결 절편이라도 보고 정하시죠.”
“으음……. 양성에 맞춘다라…… 90% 이상 확신한다는 거죠?”
“네. 나머지 10%도 영상에선 보이지 않는, 세포 단위의 변화 때문에 잡은 겁니다.”
“흐음.”
박태식은 잠시 고민했다.
오늘 이상하게 수술이 잘되어서 2시 전에 다 끝나 버리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서 악성 종양 수술까지 하나 더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나 시간이 남은 건 아니긴 했다.
무엇보다 산부인과다 보니 또 너무 커다란 수술 들고 가는 건 마취과 사무실에 할 짓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시도 때도 없이 수술 들어가는 거 다 배려해 준다는 거….
그거 왜 모르겠나.
‘하지만…… 양성이라면…… 질 내 접근으로 다 뗄 수 있어. 재건술도 크게 필요치 않을 거 같고……. 흐음……. 어차피 여기서 암이라고 해 봐야…… 자궁경부와 구분이 되어 있다고 하면 그렇게 커지지 않아. 항암 방사선이 추가되겠지만…… 일단 조직 검사를 날려 보고 범위 결정해도 되는 문제 같은데?’
박태식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치의를 돌아보았다.
“지금 환자 금식 중이지?”
“아……. 네. pet CT 때문에. 곧 찍을 예정입니다.”
“그럼 일단 수술방으로 내리자.”
“네?”
“어차피 수술 전 검사는 다 되어 있잖아. 검사 한두 개 나간 것도 아닌데.”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마취과에서 불쾌해할 가능성이…….”
“그렇다고 수술하지 마? 필요한 수술이면 해야지. 그리고 이수혁 교수님 말대로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아. 정규 수술 시간 전에 끝낸다고 말해.”
“제가요?”
“그럼 누가 해?”
그러게요.
주치의는 속으로 욕과 함께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식은 그렇게 계획을 잡은 후, 수혁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수술 같이 들어가 주실 수 있습니까? 꼭 해 주셔야 되는 건 아닌데…….”
수혁도 마침 그러고 싶었던 참이었다.
언젠가부터 밑에 애들이 스스로 몸을 갈아 내기 시작한 탓에 정작 센터에는 환자가 지금 거의 없어서 그랬다.
“그러죠.”
이수혁과 산부인과의 진한 만남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정작 이를 이루어 낸 둘은 몰랐다.
이게 다른 외과 계열, 특히 이제 막 꿀 냄새를 맡게 된 흉부외과 쪽의 질투를 엄청나게 일으키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