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6화 산부인과 (6)
마취과는 좀 황당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금 수술 끝났다고 해서 다 끝난 줄 알고 있었더니만…….
갑자기 병동에 있던 다른 환자를 내리겠다고 하고 있는 거 아니겠나.
물론…….
산부인과는 그래도 되는 과이긴 했다.
마취과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4년 차 치프 레지던트 또한 원래는 바로 내리려고 했다.
“산모이신 거죠?”
산모라면, 어쩔 수가 없는 일 아니겠나.
수술과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맨날 마취과 입장에서는 맨날맨날 응급이네 뭐네 하면서 떠들어 재끼지만 사실 응급이 아닌 경우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모는 마취과도 인정이었다.
어어 하다가 진짜로 갑자기 훅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아뇨.”
“네, 그럼 내…… 네?”
“산모는 아니시고 질 내 종양 환자분입니다.”
“어…… 뭐 바이털이 흔들리고 그러시나요?”
“그건 아닙니다.”
마취과 레지던트는 잠깐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해서 전화기를 다시 바라보았다.
바이털이 안 흔들린다고 해서 반드시 응급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대부분 괜찮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던가?
근데…….
뭐?
그건 아냐?
“그럼 뭐…… 다른 응급 사유가 있나요?”
답답하기는 산부인과 레지던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태식 교수님…… 나한테 왜 그러냐 진짜…….’
어?
왜 그러냐고.
왜…….
이런 곤란한 전화를 하게 만드냐고.
‘자기는 귀신같이 빠져나갔지?’
보통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하게 되면, 자기가 좀 해결해 주고 그러지 않나?
근데 이 양반은 그러기는커녕 휙 빠져나가 버렸다.
“그……. 없습니다. 응급은 아닌데.”
“그럼 정규 수술 시간도 아닌데…… 이걸 왜……?”
“아…… 그…….”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나?
아니다.
산부인과의 응급은 대부분 인정해 주는 편이라 밀고 들어가는 게 수월하다고 해도…….
워낙에 응급 상황이 많다 보니 임기응변의 달인이 되어 가기 마련이었다.
다행히 이번엔 팔아먹을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수혁 교수님 요청 상황입니다.”
이수혁…….
전임 원장의 아들이자, 현직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병원 사람들은 오금이 저리게 되기 마련인데…….
거기에 더해 이수혁은 두바이 왕자, 싱가포르 로열패밀리 그리고 김다현 회장 등등 쟁쟁한 백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수혁 교수님이요…….”
뉴욕 학회를 시작으로 해서 수혁의 뒤를 따라다니게 된 소문이 하나 더 있지 않던가.
바로 태화 일가의 숨겨 둔 자식이라는 소문.
헛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빨리 클 수도 없을뿐더러 재산 또한 설명이 안 된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이현종 아들이라는 소문과 정면으로 충돌하지만…….
병원에서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제정신이 아니게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만에 하나 사실이면 앞날이 어찌 되겠나.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태화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하진 않겠죠?”
“아니죠. 금방 끝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려 주시죠.”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환자는 수술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수혁은 환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렇다 보니 마취과에서 확인하거나 하는 시간 또한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저…… 괜찮은 거죠?”
“뭐, 생각하시고 계시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네……. 그,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죠.”
수혁은 중간중간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동시에 바루다와의 토의도 이어 나갔다.
‘그래, 확실히…… 환자 몸 상태가 만성적으로 암을 앓아 온 것처럼 보이진 않지?’
[네, 그렇습니다. 저 덩이가 설령 최근에 악성으로 변화한 상태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환자의 지금과 같은 활력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환자에게 활력이 넘치시네요 라고 하면 얻어맞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심리적인 고려 따위는 전혀 없는 말이라서 그랬다.
하지만 딱 의학적인 것만 놓고 보자면, 바루다의 말이 맞았다.
근육량뿐만 아니라 근육과 지방의 분포 및 살가죽의 두께 등…….
여러모로 미루어 볼 때 환자가 암일 가능성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한 95% 정도는 괜찮을 거 같네.’
[네. 그럴 거 같습니다.]
수혁이 그렇게 양성 종양일 가능성을 상향 조정하는 사이, 마취과가 마취를 시행했다.
질 내 접근을 통한 절제술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인 데다가, 수혁도 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보니 박태식 교수 또한 금방 안으로 들어왔다.
금방이라고는 해도 산부인과 레지던트와 펠로우가 워낙에 숙련된 사람들이다 보니 벌써 환자의 포지션을 잡고 있는 와중이었다.
적어도 수혁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실습 학생일 때 산부인과를 돌긴 했지만…….
동의를 얻어야 볼 수 있는 과이니만큼, 기회는 극히 적다고 봐야 했다.
무엇보다 질 내 종양은 상당히 드물다 보니 아무리 수과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흠……. 소독은 일단 아랫배까지는 다 하고…….”
“네.”
“그렇다고 수술 확대할 생각은 없으니까 너무 표정 굳히지 마시고.”
“네? 에이……. 제가 언제…….”
사실 박태식 교수도 이런 종양은 처음이었다.
좌우로 벌려진 다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흉측한 종양이라니…….
질 내 접근을 통해 제거를 하겠다고 말은 해 놨지만, 막상 이렇게 또 직접 마주하게 되니 살짝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박태식은 집도의인데.
집도의란, 늘 침착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기 위해 농담도 던진 그는 이내 드랩이 완료된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벌릴 거.”
“네.”
“좋아……. 으음……. 이거…… 흐음……. 일단 칼.”
한 번에 이쁘게 뚝 떼고 싶었지만, 모든 종양이 다 그렇게 제거가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악성보다는 양성 종양일 경우, 훨씬 수월한 편이긴 한데…….
지금처럼 질 내부에 짓눌려 있는 경우라면 예외라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조각내서 떼는 것도 일단은 피해야 했다.
그렇게 했다가 만약 악성이라고 뜨기라도 한다면…….
인위적인 전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진행하시죠.”
“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의 조언이 있었지만, 90%라는 말이 이미 뇌리에 박힌 지 오래였다.
해서 박태식 교수는 겉으로 삐져나온 종양 일부만 살짝 떼서 조직검사실로 보냈다.
그렇게 한 10여 분이 지난 후, 양성 소견이지만 괴사된 조직이 많아 정확한 판단은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음.”
동시에 고민이 되었다.
‘괴사……. 그래,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냐. 하지만…….’
여기서 더 가?
더 했다가 암이면?
그럼 어쩐단 말인가.
치료하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될 수도 있었다.
“교수님.”
“네?”
겉으로는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수혁이 말을 걸어왔다.
[갈팡질팡하는군요.]
다 알아서 그랬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또 모를까, 심리 파악의 대가가 되어 버린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진행하시죠.”
“일단……?”
“네, 충분히…… 한 번에 절제하실 수 있으시지 않습니까? 박태식 교수님.”
그렇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었다.
아니, 일단 박태식에 대해서는 아는 게 좀 더 있긴 했다.
태화다 보니 뭐 다들 그렇기야 할 텐데…….
박태식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 무섭다는 홍혜리 과장이 박태식이라면 그래도 휴가 때나 유사시에 자기 환자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했으면 말 다 한 셈이었다.
“음…….”
거기에 더해 이 사람, 병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뿐. 자기 실력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이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밀어붙이면 해낼 수 있을 거란 말이 되었다.
[아까 수술하는 것도 보지 않았습니까.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케이.’
말로만 들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눈으로 보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수혁도 잠깐의 망설임을 뒤로하고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해 보시죠. 아까 영상 보시면서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던 거…… 그거 실은 수술 계획 아니었습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저도 제가 산부인과 의사고, 그중에서도 제 뜻대로 손이 움직이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수술을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으으음…….”
경지에 오르면 그렇게 할 거다라.
다른 사람이라도 이런 소리를 해 준다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상대는 태화 제일의 천재요, 기린아라는 평가를 받는 수혁이지 않나.
외과는 아니고 내과긴 하지만…….
-이수혁? 산부인과에서는 눈독 들이지 마. 그런 얘기 들으면, 넌 죽어.
김승규…….
그 괴물이 인정했다.
그 사람이 뭐 아무나 인정하는 사람이라던가?
아니…….
오히려 그에게 인정받은 외과계 의사가 드물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를……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했다.’
박태식 교수는 심호흡과 함께 다시 벌림개와 집게를 집어 들었다.
그래, 영상과 수혁의 말을 종합해 보면 질 내 어딘가에 이 종양이 시작하는 부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위가 아주 광범위하진 않을 거다.
그렇다면 뗄 수 있다.
‘너무 부추겼나.’
[그래도…… 이런 수술을 어디 가서 보겠습니까. 실수할 사람도 아니고……. 괜히 방치했다가 염증 더 번져서 골반 내 감염으로 가 보기라도 해 보십쇼. 그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긴…… 부인과 감염 질환이 예후가 별로 좋지 못하지.’
[별로 안 좋은 게 아니라 요새도 죽을 수 있는 질환입니다.]
‘그렇긴 해.’
수혁은 박태식 교수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었다.
‘여기…… 이 안으로?’
“흐으음…….”
‘아니……. 아냐. 옆으로.’
“호오…….”
수혁의 ‘호오, 음’도 시작되었는데, 박태식 교수로서도 처음부터 이게 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술을 진행하면 할수록 모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수혁…….
손은 모르겠지만 눈은 자신보다 훨씬 좋았다.
마치 내비게이션이라도 틀고 수술하고 있는 것처럼 딱딱 올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좋아. 여기다.”
“호오.”
몇 번 고집을 부려 봤지만, 그때마다 얻은 것이라고는 쓸데없는 출혈뿐이었다.
해서 수술 중반 이후로는 수혁의 말을 금과옥조와도 같은 교훈 삼아서 달렸는데, 그 결과는 대단했다.
“자, 종양 나갑니다.”
“어……? 네?”
본의 아니게 끌려와 있던 마취과조차 벌써 끝나나 하고 놀랄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같이 수술 중이던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실력 좋은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건…….’
‘괴사가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깔끔하다고?’
불가능한 수술이 가능하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뭐, 수혁이 없었더라도 시간문제이지, 떼긴 떼었을 테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수술이 방금 끝났단 확신이 들었다.
아마 다시는 이렇게 못 하시리라.
“녹화…… 했지?”
펠로우가 덜덜 떨면서 레지던트를 바라보았고, 레지던트는 눈동자를 달달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