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8화 아직 한 발 더 남았다 (2)
병동에 왔어?
왜 왔을까?
일반적인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을, 당연한 말이지만 홍혜리 과장도 했다.
“왜?”
“그게…… 원래 좀 이상한 사람으로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 세상에 이현종보다 이상한 사람이 또 있을 줄이야.”
이현종의 말이 현실이 되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늘 이상하게 살면 사람들이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봐준다는 명언.
실천하기란 무척 어렵지만, 일단 한번 실천만 하면 확실히 효력을 발휘하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홍혜리 과장도 더 묻는 대신 일단 병동으로 향하기로 했다.
박태식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진짜 수술이 빨리 끝나서 정규에 더해 응급 수술까지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저녁 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차피 병동 환자들은 우리 담당 교수라는 사람은 저녁 먹고 나야 회진을 온다는 걸 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응급이라도 터지는 날에는 10시, 11시 넘어서도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흐음…….”
그 시각 수혁은 정말로 병동에 있었다.
산과 쪽은 아니었다.
그쪽은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데다가, 별 관련도 없는 사람이 요청도 없던 상황에 가 있어도 별일 없을 만한 분위기가 결코 아니어서 그랬다.
계속 애가 나오고 또 그럴 상황이 되고 응급이 터지는 곳이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수혁이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어지간한 종류의 응급은 어마어마하게 강한 강도로 훈련을 받아 온 산부인과 측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한 연고로 인해 수혁은 지금 부인과 병동에 있었다.
“왜…… 그러시는지.”
혼자 있는 건 아니었다.
산부인과 주치의랑 함께 있었다.
교수는 외래에 들어간 상황이라 혼자 병동을 커버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운이 없던 것인지 아니면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수혁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좀 이상해서요.”
“이상하다는 게…….”
“일단 좀 조용히 해 줄래요? 방금 그거 말 걸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아, 네. 교수님.”
질문 세례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입을 다물라고 했다.
닥치라는 말을 좀 부드럽게 한 느낌이긴 하지만…….
똑똑한 교수일수록 질문은 날카롭고 그로 인한 상처 또한 날카로운 법 아니겠는가.
레지던트는 닥치라고 했어도 감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당장의 고요함을 즐기기로 했다.
‘3년 전에 유관 상피내암으로…… 우측 부분 유방 절제술을 받았어.’
[그 후로는 경과 관찰 중인데, 최근에 찍은 추적 관찰 검사에서 난소 종양이 관찰되었군요.]
‘당연히 전이로 생각해서 외래에서 바로 입원시킨 건데…….’
[CA-15-3은 정상 범위이군요.]
‘무엇보다 유방에 재발한 흔적이 아예 없어.’
[그렇네요. 흐음…….]
수술은 외과에서 했다.
경과 관찰도 외과에서 했고.
그러다 난소에 종양이 발견되자 산부인과에 의뢰를 넣은 것이고, 하필 산부인과 쪽 의료진의 지인이다 보니 이쪽으로 입원을 시킨 참이었다.
외과 진료도 당연히 필요한 상황이다 보니 그쪽으로 협진 의뢰가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을 좀 쓸 만한 환자다 보니 입원 당일에 벌써 유방 초음파까지 했는데, 거기선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혹시 모른단 생각에 수혁도 당시 촬영한 영상을 봤는데, 역시나 깨끗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을 해도 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
[네, 64세……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새로 발견되는 종양은 악성일 가능성이 높죠.]
환자의 나이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방암 자체도 성질이 그러했다.
뭣도 모르는 사람들은 유방이라는 조직이 밖으로 노출이 되어 있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류가 최초로 절제술을 시행한 암이라는 이유로 치료가 쉽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재발도 잦고, 전이도 잦고 무엇보다 유병률도 상당히 높은 암이다 보니 환자나 이를 직접 보는 의료진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말만 안 할 뿐, 참 개같은 병이라는 생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흐으음…….”
환자는 이미 폐경이 된 지 오래고, 환자 자신도 이럴 거면 차라리 깔끔한 치료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술 계획이 이미 잡혀 있었다.
상당히 러프한 계획이었지만, 자궁 절제술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에 더해 지금 종양이 새로이 발생한 우측 난소 및 난관까지 다 절제할 예정이었다.
종양의 성상에 따라 수술은 더 커질 가능성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건 언제 찍은 거예요?”
“오늘입니다. 이거 때문에 지금 대장 내시경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난소 종양이 관찰된 것은 초음파에서였고, 이를 더더욱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 찍은 영상에서 뭔가 다른 것이 보였다.
CT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건 아니긴 했지만…….
직장 쪽에 종양 비슷한 것이 보였다.
환자가 마지막으로 시행했던 건강 검진은 1년 전인데, 그때는 없었던 종양이었다.
새로이 생긴 종양이다 이건데…….
“교수님은 그냥 영상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다고 했지만, 찜찜해서요.”
“뭐…… 그럴 수 있죠.”
수혁은 그럴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바루다를 탑재한 그의 판독 능력은 아예 차원이 다르지 않던가.
픽셀 단위로 판독이 가능한 그가 보건대 이건 단순 영상 오류가 아니라, 실존하는 종양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면 유방암이 난소와 직장으로 전이가 되었다는 얘긴데…….
‘대장이 아닌 직장으로 가는 건 드문 일이지.’
[게다가 부분 절제술만 한 경우인데, 유방은 그대로 두고 이렇게 먼 장기로 단독 전이가 일어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입니다.]
‘드물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할 여지는 충분히 있죠.]
‘그렇지.’
고민과 함께 턱밑을 쓸어 담고 있을 무렵, 박태식과 홍혜리가 병동에 도착했다.
“내시경실에서 내려오시랍니다!”
때마침 이송 요원도 도착했다.
그 바람에 박태식과 홍혜리는 들킬 뻔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박태식이 날래게 움직여 기둥 뒤로 숨었다.
홍혜리도 함께였다.
“운동했어?”
“아뇨. 그냥 본능적으로.”
“근데 우리 왜 숨어? 여기 우리 병동인데.”
“어…….”
그러게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이미 수혁이 이송 요원과 함께 떠나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뭔 환자인지는 둘 다 알 수가 없었다.
자기 환자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가서 기록부터 확인했는데 보니까 이거 참 골 아픈 환자였다.
“이 교수님 지인이 이분이었구나.”
“아니…… 근데 직장에도 전이가 있네요?”
“그럴 수 있긴 하지. 유방암이 이게…… 진짜 개같은 병이라니까.”
“내시경 하러 간 거 같은데…… 저걸 따라가네요?”
“흐음…….”
홍혜리와 박태식은 이미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버린 수혁 쪽을 응시했다.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괜한 일에 몸을 움직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게다가 수혁은 천재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소문을 보라.
-이수혁 교수님이 이상하다고 하면, 제기랄 그건 이상한 거야.
-아무리 봐도 암인데 이수혁 교수님이 아니라고 하면 제기랄, 그건 암이 아니야.
24시 잭 바우어와 같은 밈이 괜히 돌겠나?
다 이수혁이 평소 해 놓은 짓이 있으니까 도는 거다.
무엇보다 모든 의사는 꼭 자기 환자가 아니더라도, 환자라면 원래 생각했던 병보다 덜한 병이었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이 교수는 산부인과의 대부격인 사람이었고, 홍혜리 과장도 그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미 마음을 정하기 전에 발걸음을 절로 옮기게 되었을 정도였다.
“역시 가서 보시게요?”
“그래. 괜히 가는 건 아닐 거 아냐. 오늘처럼 시간 뜨는 날도 좀처럼 없기도 하고.”
“저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그래? 오늘 뭐 수술 많다고 오전에 징징거렸잖아.”
“그게…….”
자초지종은 나중에 말하기로 했다.
홍혜리가 무섭긴 하지만 또 화끈한 면이 있지 않나.
같은 편이라거나 하여간, 긍정적인 판단이 들어서게 되면 그 이후로는 뭘 해도 오케이였다.
선 넘어도 오케이였다.
여러 번 같은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그랬다.
“운이 좋았죠.”
게다가 이건 거짓말도 아니었다.
요청해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순전히 우연히 들어온 것이었으니까.
“뭐, 그런 날도 있지.”
집도의라면 누구나 운수 좋은 날이 또 있기 마련 아니겠나.
홍혜리 과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덕분에 둘은 이제 막 장강명 교수와 대면하게 된 수혁을 몰래 훔쳐볼 수 있었다.
“왜…….”
장강명 교수 또한 갑자기 나타난 수혁이 당황스러웠다.
대체 왜 여기 나타났단 말인가.
산부인과 환자인데.
그것도 지인이라 부탁받은 환자인데.
설마 이수혁의 지인이기도 한가 싶었지만, 산부인과 이 교수님은 내년 정년이다.
환자 나이 또한 64세고.
“왜 온 거예요.”
“좀 이상해서요.”
“이상해? 그럴 게 없던데……?”
“일단 보시죠.”
“음……. 뭐, 그래야지.”
아, 그렇구나.
이상해서 따라왔구나.
뭘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애초에 그걸 왜 들여다보게 된 건지,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어떤 궁금증은 그냥 남겨 두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일 때도 많은 법이었다.
적어도 이수혁이나 이현종과 연관된 경우엔 그랬다.
아마 뭐라고 하면 그때 내 대장 뚫었지 하면서 역공할 것이 뻔했다.
아예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에게 먹힐 변명은 아니었기 때문에 장강명은 그냥 성실히 대장 내시경 준비나 하기로 했다.
“환자분.”
“네.”
“내시경 하실 텐데…… 그냥 주무시고 일어나면 됩니다. 혹시나 불편하면 바로 손을 들어 주세요. 아시겠죠?”
“아……. 네. 그래도 이거 꽤 해 봤어요. 저는 잘하는 편이라고 하던데요.”
다행히 환자는 무난하기 그지없었다.
그 덕에 장강명은 빠르게 환자를 재우고, 대장 내시경을 항문 쪽으로 진입시킬 수 있었다.
병변은 예상대로 직장에 있었지만, 이게 실제로 있는 이상 꼴랑 이것만 보고 관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해서 장강명은 빠르게 대장 전체를 훑고 나서, 다른 곳은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빠져나오면서 직장 쪽 용종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흐음.”
아까는 몰랐는데, 정확히 보려고 하니까 신음부터 나왔다.
모양이나 생김새 등등이 일반적으로 그가 보아 왔던 거랑은 좀 달라서 그랬다.
‘이수혁은 알려나……? 알겠지? 알 거야, 아마. 소화기내과는 아니지만…….’
모르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장강명 정도면 그래도 명의 소리 들을 정도 아닌가?
실제로 EBS 명의에도 나왔다.
근데 모르겠다.
더 희한한 건 그걸 수혁은 알 거란 확신이 든다는 점이었다.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수혁은 이미 눈을 감고 뭐라 뭐라 하고 있었다.
[용종양 자궁내막증으로 보이는군요.]
‘그래, 용종이 아냐. 용종처럼 보이는 거지. 역시…… 약이 문제였나?’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사례가 있었어요?]
‘모르겠는데…… 동시에 나타난 건 세계 최초일걸.’
뭐라 하는진 모르겠지만, 얼굴에 살며시 뜬 미소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나쁜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