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화 흉부외과도 배우고 싶다 (1)
보통 대학 병원 과장이라고 하면 보통 기업에서는 부장급 그 이상이 될 터였다.
태화 의료원은 다른 대학 병원들보다 연봉도 훨씬 센 편이다 보니 제아무리 적자 과인 흉부외과라고 해도 과장 보직 연봉이 더해지면 1억 5천도 넘어가기 마련이니, 그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터였다.
그럼 보통은 이제 위로 올라가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외과 의사는 칼 다루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숙명 같은 것이 있었다.
바로 수술 실력을 키우는 것.
허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내 나이에서…… 피크 찍지.’
이제 갓 50 좀 넘은 몸이었다.
몸 관리 잘한 사람이라면 아직 40대 수준의 피지컬을 보유하면서 동시에 10년간 더 쌓인 경험을 결합해 발휘할 수 있다.
곧 집도의로서 절정의 실력을 발휘하는 시점이란 말이었다.
슬프게도, 그 말은 곧 이 정도가 자신의 끝이라는 말도 되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뭐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 정도면 그래도…… 개흉수술 꽤 하는 편이지.’
꽤라는 게 그냥 뭐 일반인들과 비교해서 꽤 한다는 말은 아니지 않겠나?
같은 흉부외과, 그중에서도 심장을 다루는 사람들 중에서의 말이다 보니 어마어마한 실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아직 목이 말랐다.
비록 분야는 다르다고 해도 외과의 김승규가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아직 심장 쪽에서 세계 최고급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좀 있지 않던가?
얼마 전 은퇴한 교수님은 이게 다 이현종이 깝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수술까지 다 관상동맥 시술로 해 버리는 바람에 케이스가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그건 좀 추한 변명이야.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더 몰리고 있긴 하단 말이지…….’
과 전체를 생각하면 좀 안된 말인데, 하여간, 더 이상 중소 병원에서는 적자를 감수하고 심장 수술하는 흉부외과 의사를 고용하지 못하게 되고 있다.
수가 정상화를 떠들어 봐도…….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는 어느 것 하나 도입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누군가 건강보험료를 팍 인상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치기 어린 어린 시절에야 왜 그걸 안 하나 했을지 몰라도, 과장까지 해 먹고 보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어느 정도 위에 올라가다 보면 위보다 아래 압력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특히 지지를 받아야 계속 정치를, 즉 당선이 되어 군림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라면 더더욱 함부로 당장 욕먹을 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을 터였다.
“과장님?”
자기 실력 생각하다가 나이 든 사람의 특징처럼 어느덧 국가 전체를 생각하던 흉부외과 과장은 주니어 교수의 말이 있고 나서야 간신히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내 실력이지?’
김승규야 뭐 원래 저 위를 노닐던 사람이니 그렇다 치는데…….
장준혁 그놈이 갑자기 팍 치고 올라간 건 뼈아픈 일 아니었던가.
갑자기 하늘에서 재능을 뚝 떨어뜨려 주었을 리는 만무하니…….
뭔가 계기가 있긴 했을 것 같았는데,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이수혁일 가능성이 상당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 나이 50쯤 넘어 살다 보면 원래 세상을 다 이해하려 드는 건 무리라는 것도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어어. 그렇다고 삼보일배를 할 수는 없는데……?”
의미가 있으면 하겠는데, 없을 것 같다.
이수혁에 대한 소문이 굉장히 많고, 그중에서는 남 괴롭히는 거 좋아한다는 말도 있지만…….
다른 과보다 훨씬 더 오래 이수혁과 같은 부류, 그러니까 이현종과 지지고 볶아 온 흉부외과 과장이 보건대 이수혁은 그냥 악의 없이 그러는 것일 터였다.
그냥 자기 할 일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괴로워지는…….
어찌 보면 순수악 같은 존재랄까.
“그렇죠. 김승규 교수님도 삼보일배를 하진 않았습니다.”
“그분이야…… 협박…… 하지 않았을까?”
병원이 크긴 해도 수만 명씩 있는 병원은 아닌데 왜 이리 소문 도는 사람이 많은 걸까.
아무튼, 김승규에 대한 소문도……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중 절반 아니, 십 분지 일만 사실이라고 해도 이수혁은 죽을 고비를 넘겼을 터였다.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케이스를 줬다고 합니다.”
“응……? 그러니까 그게 협박 아냐?”
“아뇨, 아뇨. 춘계 때 이수혁 교수가 외과 학회 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 어어 그랬지. 그랬다고 들었어. 확실히.”
“네. 그때 과장 회의가 있었는데, 케이스 찾아다가 이수혁 교수한테 바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운 케이스를…… 갖다 던지는 게 아니라, 갖다 바친다고?”
뭔 소리야?
어려운 케이스라는 게…….
확실히 어려운 수술을 하게 되면 집도의로서 가슴 벅찬 순간이 있긴 했다.
하지만…….
괴로움이 훨씬 컸다.
아무래도 환자가 잘못될 가능성이 훨씬 크고, 그 결과를 집도의는 손끝에서부터 직접 느끼게 되기 마련이니.
“이현종, 이수혁…… 돌림판에 다트 돌려 가면서 환자 보러 다니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 하긴. 연쇄 진단마들이지.”
허나 그 심적인 타격 또한 어찌 보면 재능이었다.
어려움을 겪다 보면 망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같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어느새 극복하고 저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러한 견지에서 보면 이현종, 이수혁은 숫제 괴물 그 자체였다.
확실히…… 그렇잖아.
세상에 돌림판에 다트라니.
“그러니 어려운 케이스를 주면 수술방에 참관하러 들어올 거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내과 의사한테 수술방 들어와서 있으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니까요.”
“그것도 그렇긴 해. 확실히…… 이상한 일이지.”
당장 자신한테 저기 내과 진료실 가서 두고 보다가 이상하면 알려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아니다.
지금 이들이 부탁하려는 건 그 정도도 아니다.
거의 수술방 토템 취급을 하려는 거 아닌가.
꽂아 두면 아군 버프 받는 용도로.
꽂고 가 달라고 해도 이상한데, 와서 생체 토템 노릇 하라고 하면…….
‘나는 뒤집어엎을 거야. 그런 걸 어려운 환자 몇 명 주고 해 준다고 하면…… 이수혁 교수, 사실은 천사인가?’
슬금슬금 자신들이 하려는 짓이 어떤 짓인지 명확히 깨닫게 된 과장은 과연 뭐든지 해야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주니어에게 말했다.
“그럼 어려운 케이스를 좀 주지 그래.”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 또한 하고 있었다.
그제야 주니어 교수는 역시 우리 과장도 꼰대였구나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꽉 막히고 자기중심적일 수 있단 말인가!
자기가 지금 이 정보를 어떻게 들고 온 건데.
프락치 노릇 한 거다, 사실상.
총동문회에서 아마도 두 번 다시 없을 좋은 기회로 에잇브릿지를 섭외했는데, 정작 자신은 응급 대기나 하면서!
“그 어려운 케이스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물론 주니어 교수는 자신과 과장님 사이에 있는 격차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계속 심장 만지면서 살려면 태화에 남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잠시 치밀어 올랐던 화를 억누르고는 차분히 물을 수 있었다.
“응? 그거 뭐…… 우리도 이건 좀 헷갈렸다, 이 정도…… 이 정도가 아니겠군…….”
게다가 과장도 말이 아예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꼰대 정도지 개꼰대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물론 수혁이나 이현종을 잘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긴 했다.
“가뜩이나 천잰데 이현종이 심장 전문이지…….”
“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수혁도 심장에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아빠가 하면 좀 대충 하지…….”
“옆에서 떠들면 바로 배우는 타입인 거죠.”
“그럼 어쩐다. 나 당장 생각나는 게 없는데…….”
“김승규 교수님조차도 몇 달 걸렸다고 합니다.”
“몇 달…….”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직 어린 조교수는 이해하지 못할 기분이었다.
저 나이 때 몇 개월은 그냥저냥 흘러가는 세월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몇 개월이 아쉬운 게 아니라 두렵다.
말 그대로 시시각각 늙어 가고 있어서 그렇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하루하루 다르다고 하는 스승의 말을 엄살이라고 여겼던 벌이라도 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러기 싫은데.”
“네?”
해서 투정을 부려 봤지만 조교수는 뭐야 이 새끼 하는 얼굴로 돌아볼 뿐이었다.
재빨리 표정 바꾸긴 했지만…….
과장이라고 해서 왜 높은 사람 앞에서 억지로 웃는 낯을 해야만 했던 세월이 없었겠나.
경험이 있는 사람 눈에는 놀랍도록 이러한 것이 잘 보이는 법이었다.
“아니, 아니…… 그래. 그럼 어쩐다. 김승규 교수님은 어떻게 했대?”
“거기는 외과 학회를 동원했죠. 힘으로.”
“그건 기각. 딴 데는?”
“다른 외과계는 아직 움직임이 없어요.”
“그래? 왜?”
“외과에서 효과 본 사람들이 외과만 꿀 빨자고 했다니까요.”
“아……. 그렇지. 그럼 우리도 재빨리 움직이긴 해야겠네. 흐음…….”
그리고 어리고 힘없는 사람들은 감히 생각도 못 할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국제 흉부외과 학회는…… 아직 이수혁 교수를 모르지?”
“네? 아…… 알 거 같진 않습니다. 내과면 몰라도.”
“그 나이 교수를 벌써 내과에서 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니까…….”
“네, 근데…… 그건 왜 말씀하시는 건지.”
“아아, 신경 쓸 거 없어. 아는 사람들 연락 좀 돌려서 어려운 케이스…… 특히 아직 해결 안 된 케이스 있는지 물어보려고 해. 해외까지 다 하면 꽤 있긴 할 거야. 어차피 다른 과에서는 종종 이수혁 교수한테 국제 협진도 의뢰하잖아?”
“아…… 그렇구나. 네네. 하죠, 합니다.”
“좋아.”
과장은 조교수의 얼굴에 다시 존경심이 채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딱히 이게 만족스러워서 미소를 짓지는 않았다.
조교수가 그럼 과장을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게 맞지, 아닌가?
그보다는…….
몇 개월이 가기 전에 어쩌면 자신의 칼 앞에 놓인 벽을 뚫어 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미소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과장님이 이렇게 웃는 거…… 나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저도 자각하지 못한 채였다.
그렇게 과장은 일단 모임을 파하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의사 된 입장에서는 도저히 다행이라는 말을 할 일은 아니긴 한데…….
역시나 세계 도처에서는 아픈데, 왜 아픈지 모르고 죽어 가는 환자가 참 많았다.
심지어 유수의 의사들이 들러붙은 상황인데도 그런 경우도 꽤나 있었다.
뭐…….
놀랄 일은 아니긴 했다.
원래 병이 그러니까.
괜히 오랜 세월 아픈 환자를 보아 오던 의사들이 병을 두고 병마라고 하겠나?
어떤 거대한 악의마저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 이수혁 교수님!”
하여간, 그는 그렇게 엄선해 낸 케이스 하나를 들고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나는 모른다……. 근데 이거 이수혁 교수는 알려나……? 모르는 거 아냐?’
약간 발칙한 걱정까지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