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2화 흉부외과도 배우고 싶다 (2)
과장은 속으로 후후 웃었다.
왜?
이번 케이스는 진짜 더럽게 어려워서 그랬다.
얼마나 어렵냐면 과장뿐만 아니라 이 케이스를 의뢰해 온 친구 녀석을 포함한 유수의 흉부외과 교수들 모두 아직까지 오리무중인 케이스였다.
“네, 과장님.”
수혁은 별생각이 없었다.
흉부외과에서는 딱히 환자 의뢰를 해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현종 때문에 사이가 아주 돈독한 편도 아니었던 데다가…….
사실 가슴을 열어젖히고 수술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궁금하면 열어야지, 그걸 뭘 묻고 앉아 있단 말인가.
해서 기대감 없는 얼굴로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예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케이스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아주 어려운 케이스인데, 이거.”
“오? 그래요? 어디에 계세요?”
“우리 병원 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자료는 다 받아 왔습니다.”
“오……. 어디로 갈까요.”
환자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어려운 환자를.
수혁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지 않겠나.
비록 오늘 하루 통합진료센터에 의뢰 온 환자들을 포함해서 산부인과 환자들도 몇 명 보는 바람에 상당히 즐겁고 보람차긴 했지만…….
그럼 뭐 하나?
이미 다 봤는데.
원래 밥이 먹고 나면 배고파지고, 먹고 나면 배고파지고 하는 것처럼 케이스도 보고 나면 보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아……. 그, 제 연구실로 오시죠. 나름 세팅해 놨습니다.”
그 적극적인 태도에 막상 수혁을 불렀던 흉부외과 과장도 조금 놀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심장 뛰는 거 바로바로 수술하는 사람인데 놀라면 뭐 얼마나 놀라겠나.
심지어 놀란 후에 침착을 회복하는 것도 빨랐다.
게다가 준비도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자식 놈이 도움이 될 때가 다 있군그래…….’
시대가 암만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의대 교수인데 자식이 인터넷 방송을 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땐, 솔직히 속으로나마 실망을 했더랬다.
겉으로야 응원을 해 주었지만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그게 마음인가?
헌데 녀석이 인터넷으로 바로 소통할 수 있는 디스이즈코드라는 프로그램을 깔아 주고 또 세팅까지 해 준 덕에 지금 이렇게 이수혁 초빙이 가능해져 버렸다.
심지어 혹 뭔가 에러라도 나면 원격으로 즉각 도와준다고도 했기 때문에 든든했다.
‘그래, 인성이 제일이지. 게다가 뭐…….’
요새 그 녀석 돈도 제법 벌지 않던가.
게임 리뷰랍시고 그냥 게임 플레이한 영상에 느끼한 목소리 더빙한 게 다던데, 그걸 사람들이 좋다고 보는 게 너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건 게임 회사에서 돈까지 주면서 자기네 게임 리뷰해 달라고 한다는 점이었다.
적극적으로 알아본 결과, 나름대로 작은 게임 회사들 사이에서는 아들놈이 유명인이라고 들었다.
게임 개발사 이사인 친구 놈에게 그럼 너네도 광고 좀 주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도 가관이었다.
-야…… 니네 아들 콧대 높아. 우리 회사 게임은 광고 안 해 준대.
-왜? 리X지가 최고 아냐?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좋아하진…… 않더라고.
말을 들어 보니 이미 몇 번인가 광고 제안을 했고, 그때마다 번번이 아들이 깐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로는 더 이상 아들놈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남들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대기업에 갑질도 한다는데 걱정은 무슨 놈의 걱정이란 말인가?
똑똑.
장성한 자식 키우는 부모들이 다들 그러하듯 과장 또한 기승전 자식 자랑으로 사고를 불태우는 사이 수혁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부탁해야 하는 입장에서 감히 다리도 성치 못한 사람을 불렀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부리나케 달려 문을 열어 주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
일단 뒤에 선 대머리…….
이놈은 흉부외과 과장도 익히 알고 있는 놈이었다.
‘안대훈…….’
앞으로 통합진료센터를 이끌어 나갈 인재라 불리는 녀석이지 않나.
그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솔직히 말해서 그냥 또라이 같은 놈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우수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머리가 번쩍거리는 것이 아니로구나 싶어졌더랬다.
‘우하윤…….’
그에 비해 그 옆에 선 이 친구는 외모부터가 아예 달랐다.
보기 드문 미인에 활기 넘치는 표정까지…….
거기에 더해 머리까지 좋다 보니 학생일 때부터 유명했다.
대체 어떤 사람과 교제를 할까 싶었는데 이수혁과 사귄다는 소문을 얼마 전에 들었다.
뭐…… 나름 선남선녀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이라면 또 몰라도, 요즈음의 수혁은 썩 괜찮은 외양을 갖추게 되지 않았나?
원래 사람이 하고 싶은 일 하고, 또 그 일을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딱히 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빛이 나는 법이라서 그랬다.
“이쪽으로 오시죠.”
“네. 세 명 다 앉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물론이죠.”
이를테면 통합진료센터 유명인들 중 대부분이 온 셈이다, 이 말인데…….
과장은 당황하는 대신 일단 자리부터 건네주었다.
“여기…….”
그러곤 친구 녀석에게 받은 자료를 보여 주었다.
서류로 뽑은 것이 아니라 그냥 화면에 띄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혁을 비롯한 세 명의 고개가 모니터를 향하게 되었다.
저마다 중얼중얼하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과연 통합진료센터는 펠로우 이상 급부터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환자를 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걸, 이 자리에서 또한 실감할 수 있었다.
제일 빠르고 바쁜 것은 당연히 수혁이었다.
‘31세 남성…… 한 달 전부터 지속된 흉부 및 허리 통증이라…….’
[통증도 상당히 심했군요. 그쪽 부분으로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면…….]
‘그랬을 거 같네. 로컬 의원에서 묘사한 것을 보면 딱히 겉에서 보는 데 문제가 있었던 거 같진 않아.’
[진통 소염제만 처방했군요.]
‘그거야 뭐…….’
[합리적인 처방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31세면 굉장히 젊은 나이긴 했다.
비특이적인 통증이 있기엔 더더욱 그러하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편측으로 심각한 통증이 있는 경우라면, 우선 의심해야 할 질환명이 있다.
바로 대상포진.
물집도 없는데 뭔 놈의 포진인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원래 통증부터 나타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4일 후에 통증이 심해져서 왔구만.’
[이때부터는 열도 있었네요.]
‘발진이나 수포는 전혀 없었고…….’
보내온 자료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처음부터 수혁에게 의뢰를 하기 위해 기록을 했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렇다기보다는 흉부외과 과장이 하도 안달복달하다 보니 그쪽 레지던트들이 갈려 나간 덕이라고 보면 되었다.
‘청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흉막 염증을 의심해야겠네.’
[항생제 포함해서 처방을 다시 받고…… 어디야. 아……. 칠성으로 갔구나.]
게다가 그냥저냥 하는 병원도 아니고 칠성급 레지던트들이 갈려 나갔으니 자료는 훌륭할 수밖에 없었다.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병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괜찮은 병원을 후지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나?
수혁이나 바루다가 쓸데없이 감정에 휘둘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라면 어떤 병원에서 보고 있는지조차도 데이터화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객관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CT 영상이 있나요?”
“아, 네. 근데 벌써 거기까지……?”
“네, 뭐.”
수혁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의 활발한 토론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흘러간 시간은 초 단위였다.
때문에 과장은 굉장히 놀라면서도, 일단 준비하고 있던 CT 영상을 보여 주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CT가 돌아갔다.
이걸로 보라는 건 아니고 이렇게 굴리면 된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과장은 마우스를 수혁에게로 건네주었다.
허나 그 마우스는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아하…….”
“네?”
이 사람이 왜 고개를 끄덕일까?
하는 생각을 과장이 하는 사이, 수혁은 아까 지나간 영상을 두고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좌측 폐동맥 폐색이 있는데……?’
[밑으로 하부 동맥들도 다 그렇습니다. 특히 하엽 쪽으로 그렇습니다.]
CT 소견을 종합해 보면 폐동맥 색전증이었다.
폐동맥 안으로 피가 굳어서 차 버렸다 이 말인데…….
생각만큼 드물기만 한 질환은 아니었다.
장시간 비행기 타면 생기는 이코노미 증후군 또한 시작은 다리 측의 혈전이지만 최종적으로는 폐동맥 색전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니, 흔하진 않더라도 종종 볼 수 있는 질환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 환자가 혹시 증상 발생하기 전에 해외여행 다녀온 적은 없어요?”
수혁이 질문을 던질 때까지도, 흉부외과 과장은 이 사람이 왜 영상을 안 보나 하고 있었다.
아까 자신이 마우스 드래그한 것은 그냥 영상이 제대로 찍혔다는 걸 보여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지 않았나.
헌데 돌아오는 답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건 영상을 통해 소견을 파악했어야만 이 가능한 질문이었다.
“어…….”
“모르세요?”
“아, 아닙니다.”
물론 여기까지 파악하는 건, 흉부외과 전문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과장은 별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심부 정맥 혈전증도 없었습니다.”
“그래요? 흐음…….”
보통 폐색전증이 바로 생기는 법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어디서 날아온 혈전이 막아서 생긴다고 봐야 하는데…….
대개는 심부 정맥, 즉 다리 쪽 혈전이 범인이었고, 이에 대해서는 적어도 폐색전증을 다루는 과에서는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병원 밖에서야 이코노미 증후군이 위험하겠지만, 병원에서는 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라서 그랬다.
다리 수술이나 부상을 입게 되면 다만 며칠이라도 다리를 못 쓰고 누워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휠체어를 타야 하거나.
그러다 상태가 호전되어서 일어나 걷게 되면 종종 그쪽에 쌓여 있던 혈전이 툭 하고 떨어져 나와 폐색전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걸 협진 형태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가장 자주 보는 것이 흉부외과일 텐데 없다고 하니 믿어야 하지 않겠나?
‘그럼 이상한데…….’
[네. 확실히.]
전구 증상이라 할 수 있는 심부 정맥 혈전증도 없고, 그 외에 달리 그럴 만한 병력도 없다.
그럼에도 역시 1번 진단은 색전증을 들고 와야겠지만…….
‘보면 이미 그에 대해 치료를 했어. 근데 호전이 두드러지지 않아.’
[호전이 되긴 했습니다. 퇴원은 했으니까요.]
‘하지만 외래로 다시 왔을 땐…… 거의 이전으로 돌아가 있어. 치료를 지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그렇다 해도 여전히 색전증을 의심할 수는 있습니다만…….]
‘병력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야. 다른 것도 의심을 해 봐야 해.’
[영상을 다시 볼까요?]
‘그게 좋겠는데.’
병력과 경과가 딱 맞아떨어지질 않았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인 의사라면 뾰족한 수가 있진 않을 터였다.
어떤 병은 진단하는 데 있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 법이니까.
하지만 바루다를 탑재한 데다가, 그 덕에 세상의 별의별 병을 다 보게 된 수혁은 달랐다.
그는 그제야 아까부터 공허히 바닥을 헤매던 마우스를 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영상을 들여다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