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73화 (1,273/1,303)

1273화 흉부외과도 배우고 싶다 (3)

“흐음…….”

수혁의 날카로운 눈이 영상을 향했다.

그러자 하윤과 대훈 또한 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 여전히 수혁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실력이고 또 여기서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수혁만큼 실력을 쌓을 수 있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듣는 풍월이 있지 않겠나?

그 덕에 스스로 추론을 완벽하게 이어 나갈 수는 없어도, 힌트를 들으면 어느 정도 추론을 완성할 수 있게는 되었다.

‘아까 해외여행에 대해서 물었지.’

‘그랬더니 흉부외과 과장님이 색전증의 증거는 없었다고 했어.’

‘그 말은…… 흐음, 과연. 폐색전증이 있으면 통증이 있을 수 있지.’

‘이상한 건 지금 영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인데…….’

영상을 다시 본다는 건, ‘색전증이 아닐 수도 있어서다’라는 생각까지 왔다는 말이었다.

해서 둘은 수혁이 영상을 들여다보는 것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영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과장?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태화 의료원에서 교수를 넘어 과장까지 순탄하게 해 먹으려면 머리만 좋아서 될 일은 아니지 않겠나.

눈치도 있어야 했는데, 그 덕에 과장 또한 폐색전증이 아니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셋이 그러한 증거를 바로 찾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셋은 머릿속에 ‘?’만 띄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혁이 몇 번인가 드륵거리나 싶더니만 떡하니 막혀 있는 좌측 폐동맥을 띄워 놔서 그랬다.

그렇게 보고 있으려니 역시나…… 이건 폐색전증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물론 셋이 그렇다는 얘기였다.

수혁은 조금 달랐다.

‘흐음…….’

[으음…….]

픽셀 단위의 분석을 시전하고 있었다.

오전이었으면, 그러니까 밤에 충분히 자고 또 카페인까지 벌컥 마셔서 뇌 가동 풀피 상태였으면 더 빨랐을 테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카페인 같은 걸 먹으면 수면에 방해가 될 타이밍이지 않나.

뭐, 예전 같았으면 알 바인가 하고 카페인을 잔뜩 먹었겠지만…….

한번 아프고 난 후로는 여러모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살짝 느렸다.

‘흐으음…….’

[으으으음.]

그렇다고 해서 뭐 판독이 안 되고 있다든지 하는 건 또 아니었다.

느리지만 확실히 판독은 진행되고 있었다.

‘약간 이상한 데가 있네.’

[그러니까요.]

그렇게 3분여를 같은 창만 띄워 놓고 있던 수혁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와 함께 영상 한 컷이 비로소 넘어갔는데,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숨넘어갈 지경이었다.

원래 영상이라는 게…….

물론 뭐 너무 중요한 컷이라면 한참 두고 보기도 하겠지만 슥슥 굴리면서 판독을 하는 게 보통이지 않나?

게다가 지금 마우스를 쥔 사람이 빠르게 보기로 유명한 수혁이라면 더더욱 그러한 모습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지금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뭔가 아주 중요한 컷이라는 얘긴데…….’

‘교수님이 단순 폐색적증 때문에 이럴 리가 없어.’

‘오빠라면 뭔가 봤을 건데……?’

과장, 안대훈 그리고 하윤 모두 뭔가 있다는 건 애저녁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뭔가가 뭔지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폐색전증이니까.

게다가 이 근방에서 저 비슷한 형태를 이룰 수 있는 다른 질환의 가능성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도 그래. 확실히 폐색전증 중 일부는 색전증이 아닌 거 같은데?’

[네, 조영증강의 정도가 약간 차이가 있고…… 그 부위가 혈관 벽에 일부 침투해 있습니다.]

‘명확한 침투인가?’

[이 정도면…… 그렇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아마 영상의학과에서도 폐동맥 내부에 원발성 종양이 의심이 된다는 임상 소견 한 줄만 있으면 그렇게 판독을 줄 겁니다.]

‘지금은 아니잖아?’

[말이 없으면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니까요. 애초에 폐동맥에 원발성 종양이 흔한 것도 아니고.]

‘흔하지 않다기보다는…… 엄청 드물지.’

[그렇죠. 진짜 드물죠.]

셋과는 달리 수혁은 한 단계 나아간 상황이었다.

처음엔 약간의 의심에 불과했지만…….

드륵.

컷이 하나하나 더 쌓일수록 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확신이 되었다, 이 말이었다.

“이거…… 색전증이 아닌 거 같은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수혁이나 바루다가 확신 운운할 정도면 사실상 그냥 사실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나.

게다가 영상의학적 검사를 기반으로 한 확신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수혁의 말에 대훈과 하윤은 그저 감탄만 했다.

아무리 봐도 색전증 같은데 그 증거로 보이는 영상을 띄워 놓고 아니라고 하는 그들의 교수가 너무 멋있어서 그랬다.

“아……?”

그에 비해 믿음이 부족한 흉부외과 과장은 뭔가 애매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몰라서 수혁을 부른 것이고, 더 나아가서 이런 케이스 뇌물을 통해 수술 실력을 키운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게…….

‘지금 영상은 너무 색전증인데요?’

하필이면 딱 폐색전증 그 자체로 보이는 영상을 띄워 놓고 이러고 있으니, 사실 수혁교가 아닌 사람이라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수혁교인 사람이라고 해도 아마 조금은 의심이 들 터였다.

‘이거 설마…… 지록위마, 뭐 이런 건가?’

환관 조고였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들이 위세에 눌려 동의했다는…….

지금도 그렇지 않나?

색전증을 가리키면서 아니라니?

‘부센터장의 힘을 보여 준다, 뭐 이런 건가? 아니면 폐색전증인데 불렀다고 시위……?’

아니라고 했으면 빨리 말을 잇든지 해야 하는데, 이럴 때의 수혁을 일부러라도 한 3초 정도 멈추고 있다가 말을 잇기 때문에 그동안 말 그대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선 환자는 32세입니다. 기저질환도 없어요. 물론 흡연력이 있다고 하지만, 그 흡연력이라는 것도 21세 때 군대 가서 잠깐이고 후로는 금연입니다. 뭐…… 100%는 아니겠지만 대개 금연 후 10년 정도 지나면 폐암에 걸릴 확률도 비흡연자와 비슷해질 정도로 낮아지죠. 단순 흡연력만으로 건강했던 성인에서 폐색전증이 생길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이 다소 산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 수혁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전반적인 설명부터였다.

뭐…….

여기까지는 의학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미 감탄할 준비 만반인 대훈과 하윤이 아닌 흉부외과 과장도 저항감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게다가 환자는 심부 정맥 혈전증이 생길 만한 다른 병력도 없습니다. 장시간의 비행 이력도 없고…… 하다못해 다리 사진을 보면 정맥류도 없습니다. 그 외에 다른 혈관질환이나 면역 관련한 질환도 없습니다.”

“그렇긴…… 합니다.”

“병력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혈액 검사 결과 또한 면역 질환의 가능성이 없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얘기는…… 혈전이 저절로 생길 만한 요인이 전무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가 모르는…… 감염의 가능성은 있지 않겠습니까? 열이…….”

“아, 감염이 있으면 혈전이 발생할 수도 있긴 하죠. 하지만 반대로 혈전이 있으면 열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긴 한데…….”

뭐가 되었건 간에 혈전이 생겼다는 거 아닌가?

선후 관계가 있을 뿐이지 않나……?

아니, 이걸 선후 관계라고 할 수는 있나?

흉부외과 과장은 혼란스러워졌다.

대훈과 하윤도 이번에는 조금 위기였지만, 둘이 수혁과 함께했던 시절이 대체 얼마인가.

이까짓 말에 믿음을 잃기엔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 주었던 이적이 너무나 대단했다.

“게다가 감염의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합니다.”

“여기 보니까 치과 협진까지 봤던데, 그래도 못 찾았습니다.”

“네네.”

흉부외과 과장도 불러 놓고 그거 아닌 거 같은데요? 라고 할 만큼 사회성이 파탄 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화는 여전히 부드럽게 진행 중이었다.

무엇보다 감염의 증거가 없다는 말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드물지만 간혹 있으면 심장에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치과 쪽 감염도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문외한이 입안을 슥 들여다보고 내린 결론도 아니고, 원내 치과에서 제대로 본 결과였다.

“그 말은 곧 우리가 이 환자를 봄에 있어서 색전증 외에 다른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색전증일 가능성이야 여전히 있겠지만…… 너무 희귀한 케이스가 됩니다.”

“그, 그렇군요. 근데…… 다른 질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있죠. 영상을 보세요.”

“네.”

흉부외과 과장은 영상은 당신 오기 전에도 봤고, 당신이 볼 때도 봤고, 사실 설명하고 있는 중간중간에도 혹시 하는 생각으로 봤다는 말을 간신히 참았다.

아마 상대가 수혁이라고 해도 수술방이었으면 못 참았을 터였다.

집도의가 된 이래 수술방에서는 왕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긴 과장실이었고, 과장은 대개 화를 내기보다는 참아야 하는 일이 많은 직함이다 보니 이번에도 참는 게 가능했다.

“여기 보시면…… 이 부위의 조영증강 강도가 조금 다르죠?”

“음.”

다르다고?

뭐가…… 다르지?

다르다니까 다른갑다 하고 보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팅을 조금 바꿔 보면 확실해 질 겁니다.”

허나 수혁이 조영강도 차이가 극명해지는 세팅으로 바꾸자,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

동시에 이 사람이 지금까지 이 세팅을 바꾼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잖아……?’

아니었다.

수혁은 그냥 봤다.

“그리고 여기 보시면 이렇게 조영증강이 조금 다른 부위의 이 종양은 혈관 벽을 뚫고 나가 있어요.”

“어……?”

“여기요.”

“아……? 그럼 이거…… 이게 방금 말씀하신 대로 종양이라고요?”

“네.”

“폐동맥 내부에 종양이…… 생기나……?”

흉부외과 교수로서 살아오면서 심장 수술을 대체 얼마나 했던가.

물론 이현종 저 개새끼가 점점 관상동맥 중재 시술이니 심장 내 시술이니 뭐니 하면서 영역을 침범해 오는 바람에 점점 줄긴 했지만, 그래도 적게 한 편은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태화 의료원이라는, 국내에서 가장 커다란 병원 중 하나에 일해 온 덕이었다.

허나 폐동맥 종양은 수술해 본 경험이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듣도 보도 못했다.

“생길 수 있죠. 지금까지 아마 100례 이상 보고되었을 겁니다. 대개 폐색전증하고 헷갈리는 모양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종양처럼 종양 때문에 혈류 흐름이 느려지기 때문에…… 색전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아…… 그래서 저희가 이걸…….”

“네, 문제는…… 악성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데…… 그 상황에서 이렇게 헷갈린 채로 시간이 지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부검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아마 그래서 직접 임상에서 보지 못했을 겁니다.”

“아……. 그럼 이거 수술로 제거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완전 절제가 원칙이죠. 그렇게 되면 그래도 예후가 아주 나쁘진 않아요.”

“아니, 그럼 이게 단순 종양도 아니고, 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혈관 벽을 침범한 양상을 보면…….”

“허어.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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