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4화 흉부외과도 배우고 싶다 (4)
종양.
그중에서도 악성이라면 수술이 가능할 때 수술하는 것이 최선일 터였다.
무엇보다 지금 이 환자에게서 발생한 종양은 폐동맥 내부에 발생한 것이니만큼, 이미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암 덩이가 떨어져 나가게 되면…… 그대로 전이 아닌가?’
보통의 전이는 임파선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연하게도 혈관을 통한 전이도 가능하다.
물론 혈액은 유속도 빠르고 애초에 혈관 내부로 암세포가 들어갈 만한 상황이 임파선보다는 훨씬 적긴 하겠지만, 이놈의 암은 애초부터 혈관 내부에서 발생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잘 모르겠는 환자였기 때문에 그 환자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왔는데…….
태화 의료원 흉부외과 과장의 말을 듣고 나서는 숫제 수술 생각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이수혁 교수가 진단했다고 했지……?’
그냥 과장 놈 하나만의 말이었다면 오버한다고 치고 무시하겠는데…….
상대는 이수혁이었다.
‘이수혁…….’
흉부외과의 철천지원수라 할 수 있는 이현종의 아들이자 칠성의 원수 태화의 보검.
원래 친구는 가까이하고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말도 있지 않나?
비유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칠성 측에서는 오히려 더 이수혁, 이현종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봐도 다른 쪽 실력은 다들 비슷한 거 같은데 확 밀리는 게 다 통합진료센터 탓이란 판단이 서서 그랬다.
무엇보다 칠성은 태화에 원장부터 굴복했다 보니, 밑에서 불만이 많아 오히려 더 충실한 조사가 되어 있었다.
‘그 사람 말이면 허투루 넘길 게 아니지.’
대개 이러한 경우 조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아, 이 새끼 이거 과장이었네, 허풍이네 하면서 평가 절하되기 마련이겠지만…….
이수혁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였다.
칠성의 일부 레지던트들 사이에서 수혁은 거의 신화적인 존재가 다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흉부외과 과장의 의뢰로 어려운 케이스를 보냈던 교수 또한 신화적인 존재로 숭배까지 하는 건 아니어도 대단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었다.
“박 선생.”
“네, 교수님.”
해서 레지전트를 통해 수술을 잡았다.
마취과에서 싫어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산부인과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라 해도 흉부외과 또한 환자가 심장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는 비슷한 권한을 쥐고 있었다.
당장 죽게 생긴 것과 다름없는데 뭐 어쩌겠나.
다른 예약 수술을 밀고서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이 개흉 수술이었다.
“어떤…… 환자예요?”
그렇게 밀고 들어온 환자를 힐끔 바라보던 마취과 교수가 주치의에게 물었다.
마침 마취는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치의도 별 부담 없이 답할 수 있었다.
“폐동맥 색전증으로 워크업 하려고 입원한 환자였거든요?”
“색전증? 그걸로 수술할 정도면…… 뭐 토탈인가?”
“아, 아뇨. 편측이요.”
“잉.”
이 새끼들 또 명의병 도져 가지고 오버한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면 내가 가만두지…….
마취과 교수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무렵, 개흉 수술이다 보니 수술 준비가 오래 걸리는 탓에 마취가 된 후에도 한참 후에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통인 흉부외과 교수가 불현듯 나타나 대신 답을 해주었다.
“그게 혈전이 아니라 암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암……? 혈관 내부에요?”
암이라는 데도 화를 내면 그건 미친놈이지 않겠나?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더니만 흉부외과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태화 의료원 이수혁 교수 말이라 무시하기가 좀.”
“아, 그 사람.”
칠성이나 아선이나 수혁에게 된통 당한 적이 꽤나 많은데, 그중에서도 칠성 마취과는 정말이지 큰일을 겪지 않았나.
마취 가스 감염으로 태화 나락 보내려다가 역으로 당해서 진짜 다 날아갈 뻔했더랬다.
그걸 밝혀낸 최초의 의사가 이수혁이라는 아주 신빙성 있는 정보를, 적어도 칠성 병원 마취과는 들고 있었다.
적개심과는 별개로 그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걸 그래서 더더욱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동시에 반발심 때문에 자기 병원 환자를 굳이 안 좋은 길로 이끌 만큼 멍청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있었다.
“와서 직접 본 거예요?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아……. 아뇨. 그냥 원격으로.”
“근데 진단이 됩니까? 동맥 내부 암이면…… 모르긴 해도 엄청 드물 거 같은데……?”
“드물죠. 문제는 문헌에서 본 적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랑 맞춰 보니까 아무래도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 그래도 이거 아니지 않겠어요?”
“뭐……. 그렇다 해도 물리적인 혈전 제거가 환자에게 도움이 될 상황이기는 해서요.”
“겸사겸사하는 거군요. 그래, 이수혁이 무슨 괴물도 아니고.”
“하긴 그렇긴 합니다.”
약간의 반발?
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위이잉.
당연하겠지만 수술이 시작되고 나서도 그따위 생각을 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감히 환자를 앞에 두고 부정 타게 불경한 생각을 한다느니 하는 차원의 말은 아니었다.
그냥 물리적으로 그러기가 어려웠다.
간단한 수술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이건 개흉 수술이지 않나.
자기 가슴뼈도 아니고 생판 남의 가슴뼈 여는데 딴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의사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택해야 했을 터였다.
“자…… 절제 들어갑니다. 준비됐죠?”
“네.”
마취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비인후과 수술이었으면 솔직히 마취만 제대로 걸어 놓은 상태에서는 귀만 열어 두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뭔 일이 날 일도 거의 없고, 난다면 수술과 잘못일 테니까.
피 나 봐야 솜으로 닦으면 되는 과에서 바이털이 대체 왜 흔들린단 말인가.
하지만 흉부외과쯤 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수술 과가 아무리 잘해도 심장을 건드리는 수술인 이상 바이털이 흔들리는 건 필연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리는 바이털을 부여잡고 환자를 수술이 끝날 때까지 살려 두는 건 수술방의 선장 마취과의 일이었다.
서걱.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환자의 폐동맥이 잘려 나왔다.
다행히 반대편 폐동맥은 완전히 멀쩡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담은 덜했다.
게다가 막상 들어와 보니 완전히 틀어막힌 부위가 아주 크지도 않아서 폐동맥 절제라기보다는 부분 절제 후 패치로 복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제거된 폐동맥 일부를 기구대 위에 내려놓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비단 이 방 안에 있던 사람들만의 시선만의 일도 아니었다.
-어때요?
이 모든 것을 영상 통화로 들여다보고 있던 태화 의료원 흉부외과 과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제대로 설치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곤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의 윗모습뿐일 텐데도 중간중간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또한 이수혁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대단히 궁금한 모양이라고 흉부외과 교수는 생각했다.
뭐, 궁금하기로 치면 이쪽도 결코 덜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둘러 폐동맥 내부를 갈라 보았다.
그때 알았다.
‘이거…… 혈전 아니다…….’
칼끝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부터 달랐다.
착각일까?
그럴 수는 없었다.
슬X덩크의 서X웅이 자유투를 수천, 수만 번 던졌다면, 이쪽은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하여간에 착각할 만큼 적게 가르진 않았다.
“종양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성상은 병리과 검사를 받아 봐야겠지만…… 종양이에요. 혈전 아닙니다.”
“아.”
-아…….
그의 말에 마취과도 흉부외과 과장도 탄식을 터뜨렸다.
짧은 음절 속에 담긴 감정이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았는데, 특히 태화 흉부외과 과장이 그러했다.
물론 태화의 일원이 이토록 우수하다는 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다.
허나…….
‘진짜 괴물들이구나, 그 부자는…….’
그보다 더한 열패감에 휩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평생 제 잘난 맛에 살아온 대형 병원 교수, 그중에서도 자기 손과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 없으면 택하지 못할 과인 흉부외과 교수인데 자기 분야에서 내과에 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뭐…… 어쩌겠어.’
다행히 흉부외과 과장은 이러한 일을 평생 처음 겪는 게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의대에 진학하면서부터 겪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1등은 당연한 일이었건만, 모두 1등 출신인 의대에 와서 보니 자기보다 훨씬 잘난 애들이 즐비했더랬다.
1등?
10등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흉부외과로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수가 되기까지는 위에 교수 그리고 동기들과의 경쟁이었다면, 교수가 된 후로는 태화가 벌써 거대해진 다음이다 보니 해외 교수들과의 경쟁이었다.
세상엔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인 지 오래란 말이었다.
-역시 이수혁 교수님이로구만. 기왕 이렇게 실력 알았으니까 어려운 케이스 있으면 또 연락 주시죠.
“네? 아니, 저기. 이렇게 끊는다고?”
자기가 진단한 것도 아니면서 잘난 척을 하면서 전화를 끊은 과장은 양측 검지를 툭툭 부딪치면서 수혁을 떠올렸다.
‘이제 하나…… 두 개만 더 갖다 바치면 적어도 나는 수술 첨삭 강의를 받을 수 있어. 무조건 개흉으로 불러야겠지? 효과가 없어도 그만이고, 효과를 본다면…… 나도 장준혁 그놈처럼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질투?
그런 걸 왜 하나.
애초에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다른데.
뭐 아예 질투심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저 자기 발전에만 힘을 쓰면 될 일이었다.
사실 이것만 똑바로 해도 어디 가서 대가 소리 듣는 데 지장이 없지 않던가.
생각보다, 어떤 일을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이 적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실 과장 또한 상당한 재능의 소유자라고 보면 되었다.
위이이잉.
그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아선 병원이었다.
칠성보다야 사이가 괜찮은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별일 없이 전화하고 그럴 사이는 아니지 않나?
‘옳거니.’
달리 말하면 무조건 별일이 있어야 전화를 하는 사이라는 얘기였다.
그 말은 곧 오늘 말한 케이스 의뢰에 관한 건일 것이라는 얘기도 되었다.
확신을 품은 과장은 일이 참 쉽게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아, 네. 교수님.”
-네네. 오전에 말씀하신 것 때문인데요.
역시나 케이스에 관한 전화가 맞자, 과장은 하마터면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하지만 이렇게 각 병원에서 순순히 케이스를 건네주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는 그는 침착을 가장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 이수혁 교수가 그런 실력까지 있는 줄 알면 다이렉트로 갖다 바치겠지?’
안타깝게도, 이수혁은 환자가 있다고 하면 거기가 칠성 아니라 원수의 병원이라고 해도 일단 가긴 갈 놈이었다.
“네, 말씀하시죠.”
-이걸 왜 모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좀 어려운 케이스 하나가 와서요.
“네네. 듣고 있습니다.”
때문에 과장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면서, 차분히 통화를 이어 나가야만 했다.
빨리 수혁에게 이걸 던지고 수술 실력 늘릴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그리 어려운 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