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6화 이건 진짜 좀 (2)
신경성 종양.
말 그대로 신경 조직에서 기인한 종양임을 뜻하는데, 이런 녀석들의 특징은 거의 한결같다고 보면 되었다.
대개 양성이고, 대개 느리게 자란다.
동시에 주변 조직을 잘 부수지 못한다.
‘근데 기흉을 일으켰다고……?’
[크기가 아주 커다란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건 너무 작아요. 1cm짜리 양성 종양이 기흉을 일으킨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게다가 이건 후종격동에 딱 붙어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수혁이 괜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쓸데없는 제스처를 취하기 마련이고, 아마도 후에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달하여 안드로이드가 나오게 되면 그네들이 그런 식으로 인간과 그들을 구분할 거라는 말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는 걸 넘어 오해 살 수 있는 행동을 숨 쉬듯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원래 내려져 있던 진단명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말이었다.
“왜…… 그러시죠?”
흉부외과 과장은 그런 수혁을 잠시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혹 생각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제법 기다린 후의 일이었다.
보통 이쯤 되면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 알아서 말을 해 줘야 하는데 계속 눈 감고 중얼거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수혁은 이럴 때면 대개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말 없이 눈을 떴다.
“아……. 이게 아닌 거 같아서요.”
“이게 아니라는 게……?”
“신경종이 아닌 거 같다는 말입니다.”
“아……. 근데 이게 양측에서 다…….”
“양측?”
“태화에서도 판독을 이런 식으로 줬습니다. 비공식이지만요.”
“아…….”
수혁은 흉부외과 과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지.’
흉부외과 과장이면 뭐 수술을 얼마나 잘하겠나.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아웃소싱을 해야 하긴 할 터였다.
그중에서도 영상은 태화의 든든한 전문의들이 포진하고 있는 만큼 더더욱 그럴 만한 분야였다.
질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교수진들의 수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 태화는 다들 알아서 자기 인생 갈아 넣고 있는 사람들도 가득한 만큼, 영상의학과 교수들도 갈아 넣고 있다 보니 물어보면 즉각 답이 왔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거까지 챙기느니 자기가 진짜 잘해야 하는 분야에 대해 열심히 하는 게 맞긴 할 터였다.
‘하지만……. 아쉽긴 하네.’
[뭐……. 현대 의학의 기조가 이러니까요.]
다만 그렇게 철저한 분업을 이루다 보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법이었다.
아직 현대 의학이 이렇게까지 발전하지 못해 애매한 수준에 머물고 있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부작용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지도 이미 한참이었다.
사람의 몸은 자동차처럼 부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랬다.
장기별로 뭔가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한 몸이지 않은가.
임상 의사의 지식과 경험, 무엇보다 현장에서 환자를 본 사람의 감을 가지고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오진율은 당연히 떨어질 터였다.
‘그렇다고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없고…….’
[다 저를 머리통에 박으면 되겠지만, 그건 안 되겠죠?]
‘그 과정에서 한 99%는 죽을걸.’
[그건 안 되겠군요.]
바루다는 50% 정도면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나?
수혁 정도 되는 의사라면 다른 평범한 의사 몇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99%는 아직 좀 그랬다.
나중을 기약해야겠다고 판단한 바루다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수혁은 과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영상을 보시면 신경성 종양에 가까운 소견이긴 합니다. 상당히 균일하죠? 경계도 아주 분명하고. 무엇보다 등 쪽이니 신경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이긴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근데 왜……?”
“네, 뭐……. 영상만 고려하면 합리적입니다만 이렇게 작은 신경종이 기흉을 일으킨다는 건 너무 이상한 일이라는 걸 간과한 진단이기도 합니다.”
“으음……. 하긴, 신경종은 상당히 얌전한 종양이 대부분이죠.”
“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흔한 질환의 드문 타입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진짜 너무 드물어요. 무엇보다 영상에서 보이는 양상 자체가 드문 타입도 아니고요.”
“그래서 다른 진단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거군요?”
“네, 그렇죠.”
수혁의 이어지는 말 아니, 설명을 들은 흉부외과 과장은 조금은 수혁의 흐름을 알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다고 하면 될까?
진료 과정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당연하다고 여기고 넘어갈 모든 과정을 수혁은 한 번 더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만 한다면 성가신 과정이 되겠지만…….
수혁은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번뜩이는 사고력으로 그 과정 속에서 뭔가 다른 길을 찾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며칠 또는 몇 달에서 몇 년을 허비해서 돌아갈 길의 지름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이거 정말 오랜만에……. 두근거리네.’
수술을 포함하면 빈말로도 오랜만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진단만을 생각하면 오랜만이라고 해도 되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진단만으로 두근거린 건 숫제 처음이었다.
뭔가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보일 수 있는 종양 중에 기흉을 일으킬 수 있는 종양을 찾아보도록 하죠.”
“으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뭔가 떠오르는 게 있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수혁의 추론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근육에서 기원한 근종을 생각해 볼까요? 이런 식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좀 다르군요.”
“네, 그렇죠. 게다가 근종도 악성화된 상황이 아닌 이상, 딱히 기흉을 일으키진 않아요.”
“그럼 악성……?”
“아뇨. 악성이라기엔 영상에서 너무 얌전해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소견이 있는데 그걸 놓치신 거 같아요.”
“네?”
지금도 보라.
중요한 소견이라는데 수혁의 드르륵 소리와 함께 영상을 움직이는 동안에도 별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조차 없지 않은가.
심지어 지금 수혁이 보여 주는 뷰는 아예 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더랬다.
허나 딱 보여 주니까 왜 봤어야 했는지는 알 거 같았다.
‘내가 너무……. 그쪽만 봐 달라고 해서 영상에서도 안 봤구나……!’
수혁이 가리키고 있는 건 종양이 있는 동측 폐의 아래쪽……. 그러니까 횡격막 부근이었다.
아주 소량이지만 물이 쌓여 있었다.
아니, 물이라기엔 조금 진해 보이는 액체긴 한데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싶었다.
저런 게 저기 있고, 자신은 그걸 놓쳤다는 게 중요했다.
영상의학과를 탓하는 마음이 잠시 들긴 했지만 출근하는 사람 전화로 붙들어 놓고 이 영상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준 결과물이라는 것이 떠올라 다시 자기반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개 흉강 내 삼출물이 관찰되는 경우라면 파괴된 폐 조직이나 또는 흉막 등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좀 다르죠.”
“어떻게……. 다르죠?”
전심전력으로 따라가도 벅찬 것이 수혁의 추론이지 않나.
그것도 통합진료센터나 수혁교 등지에서 수혁식 추론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따라가는 것이지, 아니면 어려운 일이었다.
헌데 과장은 속으로 딴생각까지 하고 있다 보니 따라가기는커녕 중간중간 텅 빈 구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끌려간다는 말이 딱 어울릴 지경이었다.
“기흉이 발생한 지점을 보세요. 굉장히 작아요, 손상이. 그러니까 경과 관찰을 하자고 했겠죠? 그것도 두 번이나.”
“아……. 그렇죠. 여기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은 적죠.”
나오긴 할 거다.
하지만 인체는 언제나 항상성(恒常性)을 추구하지 않는가.
뭐가 나와도 양이 적으면 그때그때 흡수가 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환자는 나이도 꽤 젊지 않나.
노인이라면 몰라도 젊은 사람은 그런 경향이 훨씬 강하기에 저 정도 기흉에서 소량이라고 해도 영상에서 보일 정도로 남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요, 그럼 이 액체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어…….”
과장은 하마터면 글쎄요? 라고 물을 뻔했다.
누가 언제 말해도 멍청해 보이는 말이지 않나?
그간 심장 수술로 단련된 심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상황이긴 했겠지만, 과장은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물론 표정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로 단련을 했건 간에 이미 수혁의 설명에 홀린 이상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종양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좋겠죠. 그렇다면 단서가 하나 더 늘어난 셈입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소견이죠. 영상에서 이렇게 보이고, 기흉을 일으킬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삼출액을 ‘분비’하는 종양……. 뭐가 있을까요.”
수혁은 그런 과장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당연히 알지?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분명 사리에 맞는 추론이긴 했다.
뭔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보니 확실히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전혀 모르겠어.’
한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계속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을 어떻게 하겠나.
다행히 한번 참은 참이라 그런가. 입 다무는 건 쉬웠다.
수혁은 그런 과장을 보면서 이 인간 진짜 모르는구나 하는 판단이 섰지만, 굳이 말로 떠들지 않았다.
‘그래야 또 들고 오지.’
[그렇죠. 잘난 척은 잠깐이지만 케이스 주머니는 영원합니다.]
예전보다 성장한 덕이었다.
이걸 성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영악해졌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혁은 속으로 영 좋지 못한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표정은 별 변화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과장은 이 친구가 자기가 아직도 모른다는 걸 모르는구나 하고 안심했다.
당연히 또 케이스를 가져오는 데 있어 부담감도 덜었다.
지금까지만 해도 좀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뭐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으니 괜찮지 않겠나?
무엇보다 이후 주어질 당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골수 외 조혈이 있죠.”
“골수 외……. 조혈? 아, 그렇지. 나도 이걸 생각했네.”
그렇게 방심하고 있다가 훅 들어온,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진단명에 잠시 당황했지만 여하간에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일단 수혁의 표정이 변화가 없어서 그랬다.
‘위기였네.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몰랐다는 표정을 짓지.’
[수술 실력이 좋은가 봅니다. 당황할 일이 적은 모양이에요.]
‘그런가……. 잘된 건가, 그럼?’
[태화에는 잘된 일이죠. 어차피 지금 이거 이런 식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니까요.]
‘하긴……. 나로서도 시간이 꽤나 걸렸으니까.’
[실로 건방진 말이지만…….]
‘오직 나만이 원격으로 이 질환을 진단할 수 있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긴 합니다.]
실은 수혁이 이미 자아도취 단계로 넘어가서 그랬지만, 아무튼 방 안 분위기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