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77화 (1,277/1,303)

1277화 이건 진짜 좀 (3)

“골수 외 조혈을……. 과장님께서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죠?”

수혁은 속으로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우선 과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분명 골수 외 조혈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 비슷한 것도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일단 듣지 않았나.

흉부외과 과장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그걸 듣고 나서는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짤 수 있을 터였다.

그래야만 했다.

“아…….”

물론 흉부외과 과장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방금 듣고 나서야 그런가? 하고 있는데 그걸 왜 떠올렸냐고 하면 당황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나.

허나 수혁의 기대가 얼토당토않은 것은 또 아니다 보니 과장 또한 애를 써서 머리를 굴린 결과를 즉시 내놓을 수 있었다.

‘이상한데……?’

말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약간 사리에 맞지 않는단 느낌을 받아서 그랬다.

“사실 골수 외 조혈은……. 골수가 피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을 때 주로 발생하죠.”

“그렇죠.”

“대개는 비장이나 간, 부신에서 발생하는데……. 흉부에도 생기긴 합니다.”

“맞아요. 흉부에도 생기죠. 아마 여러 차례 보시긴 했을 겁니다.”

“봤죠. 몇 번 정도지만.”

자신이 말한 대로였다.

골수 외 조혈은……. 이게 사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겠나.

골수가 아닌 다른 곳에서 피를 만들게 되었다는 건, 몸이 어지간히 빈혈로 인해 고통을 받지 않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일이었다.

발생한다고 해도 주로 비장이나 간, 부신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흉부외과에서는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아마 작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영영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태화에서 일한 덕분에 직접 본 일이 말 그대로 몇 번이나 있었다.

‘근데 그 환자들……. 골수섬유화증이나 구상적혈구증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마 모르긴 해도, 다른 케이스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피가 제대로 안 만들어지는 병을 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왜 골수 말고 다른 곳에서 피를 만들겠나.

헌데 이 환자는…….

‘내 기억이 맞다면…….’

어제 새벽까지 나름대로 환자를 열심히 보지 않았나.

뭐 수혁처럼 남의 병원에 쳐들어가서 볼 만큼 미친 사람은 아니다 보니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넘어온 자료는 진짜 성심성의껏 봤더랬다.

“하지만 후종격동에 발생한 건 처음 보셨을 거예요. 그렇죠?”

“어……. 네.”

“자, 들어 보시죠.”

그렇게 좀 이상하다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그러니까 본인이 골수 외 조혈을 생각한 장본인이라기엔 너무나도 수상쩍은 반응을 보이고 있으려니 수혁의 말이 이어졌다.

표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방금까지 답한 것들이 나름대로 사리에 맞는 답들이라 그랬다.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흉부외과? 걔들은 가슴뼈 자르는 거 원툴이야.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수혁일지라도 오랜 세월 지속된 이현종의 가스라이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흉부외과 과장은 딱 여기까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원래 이다음, 그러니까 진짜 위대한 발걸음은 내과 의사의 몫이지 않겠나.

이따위 생각만 하고 있다 보니 수혁은 별말 없이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부터 이어질 추론은……. 통합진료센터에서도 이현종 정도나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뭐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했다.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면……. 정상이죠. 특히 빈혈을 비롯해서 혈액질환을 의심할 만한 소견은 아예 없어요.”

“그, 그렇습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골수 외 조혈을 배제하곤 하는데, 사실 골수 외 조혈은 두 가지 기전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기전이죠. 골수 자체의 조혈 과정이 부족해져서 발생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데 우연히 골수 조직이 골수 외 조직으로 뻗어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우연?

과장은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사실 그럴 만한 일도 아니긴 했다.

원래 의학적인 문제는 대개 우연히 발생하니까.

통계적인 인과 관계나 이론적인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이 의사의 일이긴 해도…….

결국, 그 모든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까지 ‘우연’이라고 해야 옳은 것이 현대 의학의 한계이지 않겠나.

“우연히라는 말을 써서 그렇지, 생각보다 이쪽 기전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도 두 가지 기전으로 나뉘어요.”

“아…….”

과장은 아까까지만 해도 골수 외 조혈을 자신도 떠올렸다는 기조를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골수 외 조혈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자기가 알고 있던 지식은 오히려 이 환자가 골수 외 조혈일 리가 없다는 추론까지만 가능했기에 그랬다.

그에 비해 수혁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새로웠고 동시에 탄탄했다.

덕분에 과장은 이런저런 생각을 멈춘 채 그저 수혁의 얘기만 듣고 있었다.

일종의 맞장구 인형이 되었다, 이 말이었다.

뭐, 이렇게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혁도 그리 놀라진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게 말을 이어 나갈 따름이었다.

“하나는 늑골의 피질 부분이 깨지거나 혹은 부족해지면서 거기서 직접 골수의 과형성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네, 환자는 뼈와 별 상관이 없죠. 다른 하나의 기전에 해당하게 되는데, 그 기전은 안쪽 골수의 조혈 세포가 포획이 되어서 늑간 정맥에서 이런 식으로 자라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 그럼 이 환자는 이거겠군, 확실히.”

“그렇죠. 사실 대개 가슴 쪽에서 발생하는 건 이 경우가 많아요. 지금까지 만약 혈액질환이 있었을 수 있는데 사실 이 경우가 아주 드문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케이스만 보셨다면 그게 우연입니다.”

“아.”

흉부외과 과장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역시 이수혁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과 교수가 그렇겠지만,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교수들은 특히 자기 과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의료계 안팎으로 악재가 쌓이고 있는 흉부외과다 보니 자부심 없는 사람은 교수 아니라 전공의도 안 하는 실정이다 보니 더더욱 그런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과도……. 이렇게 날카로운 느낌을 줄 수 있구나.’

외과 교수들 중에 심한 사람들은 내과를 약간 수술 셔틀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수술할 수 있게 몸 상태를 조절해 주는 게 내과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흉부외과는 이현종이라는 이레귤러 때문에 거기까진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과에 대해 은연중에 깎아내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수십 년을 간직해 온 편견이 박살 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후종격동에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긴 하죠. 거기에 더해 다른 혈액 이상이 없는 것도 이상하고, 하지만…… 삼출액을 볼까요?”

“으음.”

제대로 된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편견이 깨지고 있는 마당에 그렇게까지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머릿속이 더 바빠진 만큼, 이어지는 수혁의 말에 집중하는 것만 해도 힘들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영상에서 보면…… 단순 물이 아니죠. 조직액도 아닙니다. 피예요.”

“아…….”

“이 환자가 증상이 아예 없는 상황이라면 딱히 별거 안 하고 관찰만 해도 되겠지만 증상이 있기 때문에 치료를 해야겠죠?”

“하지만 이런 경우엔 조직검사가 어려워서 수술 계획을 어찌해야 할지…….”

들어 보니 조혈 조직이 나온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아니라면 어쩐단 말인가.

다른 종양이라면…….

양성처럼 보이긴 하지만 악성이면?

폐와 심장을 담고 있는 흉강의 악성 종양을 두고 넘어간다는 건 사실상 살인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조직검사를 하기엔, 수혁의 말이 맞다고 칠 경우 너무 위험했다.

자기 환자가 아니다 보니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제 너무 늦게까지 골몰하느라 잠도 못 잔 데다가 수혁의 추론에 깊이 빠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자기 환자로 착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수혁은 그렇게 절박해진 흉부외과 과장을 보면서 후후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골수 추적자로서 111 indium transferring scan을 해 보면 어느 정도 감별이 될 겁니다.”

“아……. 골수 추적…….”

“네. 조직 검사는 위험하니까요, 교수님 말씀대로.”

“그렇군……. 그럼 그걸 빨리 전달해야겠군그래.”

“네. 그리고 그게 맞다면 수술은 VATS 정도로 충분할 겁니다.”

“아하. 그래, 그렇겠군요.”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에 홀린 듯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수혁은 할 일을 마쳤으니 밖으로 나왔는데 그렇게 나가는 수혁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린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화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수혁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네……? 진단을 과장님이 하신 게 아니에요?”

“아. 아아. 그게.”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미친!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데!’

이러다 이거 이수혁이 황금 고블린이라는 걸 다른 병원 흉부외과에서도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나.

물론 태화와 나름 의리가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의리보다는 환자 보는 걸 더 중요시하는 놈이었다.

흥미로운 케이스를 들고 우쭈쭈 하면 따라갈 거라는 말이었다.

다 큰 교수를 두고 너무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취급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환자 보는 일에 한정하면 이게 맞았다.

“아, 아니. 내가 했어.”

“방금 전까지는 이수혁 교수 어쩌고 했잖아요.”

“아아. 그쪽에서도 궁금해했다, 이 말이지.”

“아……. 그럼 그렇지. 흉부외과는 잘 못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생각보다……. 프락치가 여기저기 뻗어 나가 있긴 하던데…….’

이수혁도 이수혁인데 그 아버지인 이현종이 문제였다.

대체 왜 의사인 주제에 그런 일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에라 모르겠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수술 한 번만 봐 주면 그때 가서 정정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어, 잘 몰라.”

“그렇구나.”

해서 저질러 버렸다.

누군가는 추하다고 하겠지만, 집도의의 순수한 실력 개선 욕구라고 생각하면 또 그럴싸하긴 했다.

그리고 그 개선 욕구가 대단한데 충족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산부인과 박태식 교수였다.

“영상이…… 없다?”

“네, 없습…… 니다?”

“그러니까 있었는데 없다?”

“아뇨, 없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냥 없습니다…….”

박태식은 그날, 그러니까 수혁 덕에 신들린 듯한 수술을 했던 날의 영상을 찾고 있었다.

보통 교수급이 이러면 나와야 하는데 오늘만은 예외였다.

“녹화를 안 했어?”

“누르기도 전에 너무 빨리 수술이 진행되어서요.”

“하……. 씨…….”

“죄, 죄송합니다.”

“아, 아냐.”

뭔가 올락 말락 한 상황이었다.

뭔가 계기만 있으면 치고 올라갈 수 있는데…….

“하아…….”

“죽여 주십쇼!”

“아니라고.”

아무래도 흉부외과처럼 음흉하게 케이스를 좀 모아야 할 성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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