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0화 태화가 좀 수상하지 않아? (3)
‘녀석…….’
칠성 병원 과장은 껄껄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화 의료원에 대해 내심 이제 더 이상 우리 경쟁 상대는 아니게 되었구나 싶게 된 것이 최근 일도 아니지 않나.
저 멀리 혼자 천장 열고 달려 나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헌데 산부인과만큼은 자기네가 후달린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나.
어찌나 흡족했던지, 즉시 케이스를 뒤져서 던져 버렸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남의 환자도 아니고 응급실 통해 새벽에 온 자기 환자였다.
“과장님.”
“응?”
그렇게 웃고 있으려니 밑에 교수 하나가 찾아와 불렀다.
칠성 병원 내과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위기 개판일 거라 확신하고 있겠지만…….
기실 모든 과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랬으면 병원 망하지 않았겠나.
워낙에 칠성 그룹 분위기가 빡세다 보니 병원도 영향을 안 받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괜찮은 분위기의 과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산부인과가 보통 병원을 막론하고 으쌰으쌰하는 과로 유명한데, 칠성도 그랬다.
그렇다 보니 과장하고 주니어 교수들 사이도 제법 돈독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아, 아아. 태화에서 드디어 숙이고 들어왔거든.”
“네……?”
주니어 교수는 의아하단 얼굴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화의 과장이…….
아주 유명인이라서 그랬다.
김승규급은 아니긴 했다.
그거야 뭐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니 당연한데, 그런 불세출의 기인이사를 빼고 나면 태화의 과장 또한 장난이 아니긴 했다.
“아, 아아. 홍 과장 말고. 그 밑에 박태식.”
“아……. 아니, 근데. 그 친구도 어지간히 충신이긴 한데요?”
“그래, 홍 과장이 밖이나 위에 들이받아서 그렇지, 밑에는 또 잘하긴 하지.”
보스 기질이 있다고나 할까.
타 병원으로서는 안 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런 사람이 과장을 하면 일치단결해서 평소엔 할 수 없던 일들을 막 해 버리거든.
아무튼, 그중 핵심 멤버인 박태식이 숙여서 좋았는데 주니어가 그걸 다시 되짚어 주자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이놈이 갑자기 왜……?”
“뭔가 이상한 걸 요구한 거 아닙니까?”
“아냐, 어려운 환자만 달라고 했는데.”
“흐음……. 그거……. 제가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요.”
“통합진료센터 말하는 거지?”
“네.”
2차 병원만 가도 산부인과는 적자 및 소송의 위험 그리고 의사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들의 당연시되는 응급 대기 때문에 메이저 과 중 하나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규모가 작거나 없기도 한 과다.
하지만 대형 병원에서는 아예 얘기가 다르다.
말 그대로 메이저 과다 보니 교수도 상당히 많고, 레지던트 TO도 많다.
TO가 많다고 해서 다 차는 건 아니라지만, 칠성 정도면 그래도 꽉 차기 때문에 규모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곳의 과장을 맡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겠나.
설령 정치적인 감각만큼은 평범했다 해도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었다.
현 칠성 병원 과장 또한 크게 다르진 않아서, 다른 병원의 일이라 해도 주요 이슈 정도는 싹 체크하고 있었다.
“걔네가 산부인과는…… 좀 안 보지 않던가?”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그래도 모르는 일 아닌가요? 지금 병원 확 벌어진 게 쉬쉬해도 내과 탓인데요.”
“그건 그래. 아니, 대체 우리 병원 내과 새끼들은 뭐 해? 산부인과를 보라고. 태화도 숙였다고.”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니어 교수의 말에 과장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냉정하게 돌이켜 봐도 자신이 홍 과장보다는 여러모로 부드러운 편이긴 했다.
하지만 더 예전을 떠올려 보면, 주니어급이 과장에게 그거 아닌 거 같다고 말하는 게 어디 쉽나?
상대가 허허 웃는 낯이라 해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더 진중해졌다.
“말해 봐.”
“네. 그……. 이거 혹시 박태식이 아니라 이수혁이 배후에 있으면 어쩌죠?”
“이수혁이……?”
“네. 레지던트 교육 목적이라고 하면 사실 케이스 이거 얼마든지 줄 수 있습니다. 근데 그 목적이라면 케이스 리포트를 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작은 병원들은 환자가 적다 보니 그런 식으로 교육한 지 오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어……? 이 미친놈이. 진짜로?”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만……. 저는 가능성이 좀 높아 보입니다.”
“이수혁……. 그 교수가 그 정도라고? 나이 어리다며.”
주니어는 그런 과장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또한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점점 더 진중한 얼굴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과장 또한 귀를 더 기울였으면 기울였지, 집중을 풀 수는 없었다.
“어리다고 얕볼 게 아닙니다. 태화 원장이 연속 내과가 된 게……. 사실 전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거 배후에 이수혁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뭐…… 태화 쪽 아들도 아니고 그게…….”
“그렇다는 말도 있어요.”
“이현종 교수님 아들이라며.”
“연막이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무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실력이 미쳐 가지고, 내과에서는 굴복한 지 오래잖아요.”
“그건 그래. 멍청한 놈들…….”
“문제는 소아과도 비슷하다는 건데……. 산부인과라고 그냥 둘 거 같진 않아서요. 어쩌면 이거…….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함정…….”
상식적으로 어려운 환자를 설령 좀 다른 뜻으로 요청했다고 해서 함정까지 운운할 일은 없긴 할 터였다.
하지만…….
이미 이들은 심각했다.
내과가 박살 나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일단 환자는 어때요?”
“뭐……. 좀 놀라긴 했는데, 수술 들어갈 예정이야. 응급은 아냐.”
“아……. 그렇구나. 그럼 뭐 이 케이스를 저기서 해결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겠네요?”
“그렇지 뭐. 어려운 케이스 찾는다고 찾긴 했는데, 그게 뭐 막 나오나?”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안심하게 되었다.
일단 내과 의사가 암만 똑똑해도 산부인과까지 잘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외과계 과는 최종 진단이 수술방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지금 이 환자 또한 아직 확진은 못 했지만 뭐가 되었건 출혈이 있는 것 같으니 수술방을 잡아 둔 참이었다.
예정 수술 다 끝나고 들어갈 거다 보니 오후 늦게 또는 저녁 넘어서 들어가게 되긴 하겠지만…….
들어가면 뭐가 되었건 진단이 되지 않겠나?
설마하니 그 전에 진단이 될까 싶었다.
‘자료를 너무 많이 보냈나?’
과장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괜찮을 거야.”
“그렇겠죠? 설마.”
대신 괜찮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괜찮을 거라고 했다.
“으음.”
그 시각 수혁은 박태식 교수 연구실에 있었다.
칠성에서 보내온 케이스를 살피면서였다.
지금이야 칠성 과장의 마음에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이걸 보낼 때까지만 해도 불안감이 다 뭔가.
그저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료를 엄청 자세하게 보냈네요?”
“네. 절박한가 봅니다.”
박태식 교수는 칠성 과장에게 가서 하소연하던 때와는 정반대로 칠성을 깔아뭉개고 있었다.
난이도를 굳이 따지자면 이편이 훨씬 쉬웠다.
맨날 하던 짓이라 그랬다.
“아시지 않습니까. 칠성…… 지원자들부터가 우리랑은 좀 다르죠.”
“하긴, 그렇다고 들었어요.”
“과장님 실력도…….”
“홍 과장님이 진짜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네네. 어려울 겁니다. 속으론 이 환자가 태화로 갔으면 더 예후가 좋았을 텐데, 뭐 이런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칠성 과장이 들었다면 칼 물고 뛰쳐 나올 소리를 해 대는 박태식에게서 케이스로 수혁은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분위기 또한 급변했기 때문에 남 까는 일이다 보니 살짝 흥이 오르고 있던 박태식 또한 입을 다물게 되었다.
과연…….
한 나라의 의학 시스템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환자 34세. 미혼……. 한 번 유산 경험이 있어.’
[초경은 15세부터도……. 주기는 28일로 아주 규칙적이군요.]
‘기간도 3, 4일이면 적당한데. 월경통도 심각하지 않다고 보고했고.’
[주된 호소 증상은 복통입니다. 월경통이 아주 심할 때처럼 아프다고 진술했군요.]
‘사진은……. 음. 생리통이 심할 때라고 하기엔…….’
[상당히 아파 보이네요.]
의사가 돼 가지고 상당히 아파 보이네 마네 하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어떻게 보이냐는 꽤 중요한 사안이었다.
평소 겪어 보지 못한 통증이라면 통증에 비해서 더 아파 보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도 하기에 그랬다.
둘의 차이가 현격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환자를 봄에 있어 늘 중요한 것은 지금껏 경험해 본 통증이냐 아니냐이기에 구분은 나중 일이었다.
‘혈압도 살짝 낮고……. 체온은 정상에 맥박은 92회면 꽤 빠르네.’
[나이를 고려하면 확실히 출혈을 의심해 볼 만한 상황인데…….]
‘혈색소는 정상이야. 13이면 뭐……. 정상 범주고……. 백혈구가 좀 올라가 있네.’
[출혈이 있을 때 백혈구가 올라갈 수 있긴 하죠.]
‘그렇긴 하지.’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환자 파악 또한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속도야 뭐 늘 그렇듯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박태식은 수혁의 진료를 벌써 몇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상 좀 띄워 주시겠어요?”
“아, 네.”
수혁의 요청이 있을 때 좀 놀랐을 정도였다.
천재라 그런가 읽는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구나 싶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수혁은 그렇게 뜬 영상을 확인했다.
‘자궁경부 근처로 덩이가 있는데…….’
[근종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그 주변으로 혈종이 있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요.]
‘자궁경부 근종 파열로 인한 출혈이라면……. 지금 이 환자처럼 좀 천천히 두고 봐도 되긴 해. 혈역학적으로도 안정적이니까.’
[수혁.]
‘응?’
[우리가 보고 있는 기록은 환자가 내원했을 당시의 기록입니다. 지금 혈역학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릅니다. 무엇보다…… 자궁경부 자궁근종 파열이라면 무언가 자극이 있거나 혹은 외상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첫 증상으로 우리한 통증을 호소하는 건 드물지.’
[맞습니다.]
자궁경부 자궁근종 파열이라는 것도 사실 드문 질환이었다.
그렇기에 급히 찾은 케이스에 이게 들어간 건데…….
수혁이나 바루다의 추론처럼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기도 했기에 더더욱 적절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계가 있다면 그 미심쩍은 부분에 있어서 수술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칠성 병원 과장도 박태식도 못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박태식은 이수혁이라면 해낼 거라는 믿음으로 부른 거긴 했지만…….
역시 영상을 보고 있으니 다른 생각보다도 배를 열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말 그대로 연다기보다는 복강경으로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CT를 볼까요?”
“아, 네.”
당연하겠지만, 수혁은 이미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잡은 채였다.
그렇게 초음파 영상이 열린 지 수 초 만에 닫히고 이제 CT 영상이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