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2화 (1,282/1,303)

1282화 태화가 좀 수상하지 않아? (5)

“여보세요?”

원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들 하지 않던가.

이번 수술도 그랬던지 위기가 지나자마자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다.

칠성 병원 과장은 펠로우에게 뒷정리를 맡긴 채 전화를 받았다.

힐끔힐끔 수술 장면을 보면서였는데, 아무리 봐도 잘되어서 이제 와 문제가 생기거나 할 것 같진 않았다.

-아, 네. 과장님.

그럼 기분이 좋아야 정상이었다.

더럽게 어려운 수술을 끝낸 참이니까.

허나 지금은 예외에 해당했다.

일단 박태식에 대해 주니어를 통해 들은 게 있지 않나.

‘함정…….’

이걸로 뭘 어떻게 해야 대체 함정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화 놈들이 내과를 어떻게 집어삼켰는지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지 않았나.

보다 자세히 봤다면 오 원장이 스스로 분장하고 갔다가 걸려서 목줄 찼다는 것까지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보니 그저 막연한 두려움만 안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갑자기 듣게 된 진단명도 황당했다.

좀 그럴싸한 진단명을 댔다면 기분이 나빠지는 대신 어? 그런가? 싶었을 텐데…….

그럼 적어도 불안해지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허나 지금은…….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산부인과는 내과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보편적인 상식이라기보다는 칠성 과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겪게 되면 좀 황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교롭게도 박태식은 홍혜리 과장을 모시는 사람이었다.

-네네. 저도 십분 이해합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반응할 수 있었다.

오히려 과장 쪽이 좀 놀랐을 지경이었다.

내심 개소리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자기도 흠칫했기 해서였다.

헌데 이렇게 그냥 받아 준다니…….

‘과연 꿍꿍이속이 있는 걸까?’

전 같았으면 칠성을 존경하는구나 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함정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들어 보십쇼.

“으음.”

여튼 들어 보라는데 어쩌겠나.

게다가 상대가 너무 자연스레 욕 비슷한 것조차 받아 주고 있다 보니 화난 마음이 조금 줄어들고, 그 틈새로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혹시 진짜면 어쩌지.

‘어쩌지!’

그렇다 보니 으음이 튀어 나갔다.

-환자 초음파 소견과 CT를 비교해 보면…….

이미 비교해 본 지 한참이고 한 번 한 것도 아니고 여러 번 했으며,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여러 명이 했으며, 심지어 영상에서도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가만히 있었다.

화는 언제든지 낼 수 있지 않나.

상대가 다른 병원이라는 게 좀 걸리지만, 가까운 병원이다 보니 어차피 학회만 열렸다 하면 볼 수 있을 터였다.

화내다가 홍혜리에게 걸리면 좀 그렇긴 하겠지만 얼마든지 피해서 화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으려니, 박태식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개소리를 꺼낼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박태식 교수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약간 열 받게 똑똑한 교수 특처럼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다는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초음파에서는 아티팩트나 시술자의 미숙함 등을 고려해도…….

“그거 내가 찍은 거야!”

-그럼 상당히 정확하다고 치고 보죠. 아무튼, 그렇게 따졌을 때 보이는 영상에서 보이는 덩이는 직경이 대강 3.5cm입니다. 그에 반해 CT를 보면 그보다 1cm는 더 커요.

“응……?”

더 화를 내고 싶었는데 직경이 무려 1cm가 늘었다고 하니까 좀 쫄았다.

칠성 병원 과장이라는 게 아무렇게나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자연히 사고의 흐름이 출혈로 흘러갔기에 그랬다.

-지금 바로 환자 혈압이랑 좀 보시죠.

“어……. 저기. 한번 봐 봐. 뭐 노티 온 건 없지?”

그렇다 보니 혈압을 봐야 할 것 같았다.

해서 요청을 하면서 물어보니 다행히 따로 연락이 온 건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확신을 했으면 다른 병원 놈이 전화까지 했을까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기에 이수혁이 연루되어 있다면……. 이건 100%다.’

괴물 자식이라지 않나.

그래 봐야 내과고, 그러니 산부인과 지식을 많이 알 것 같진 않지만.

한 사람의 별명이 천재를 넘어 괴물이 되었다면 상식을 뛰어넘어도 보통 뛰어넘는 게 아니지 않겠나.

그럼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네, 교수님.

“그 어제 응급실 통해 와서 오늘 입원한 사람 있지?”

-아……. 오늘 수술 예정인 분이요?

“어어.”

-안 그래도 자꾸 좀 배가 더 아프다고 해서 약 주긴 했는데…….

“배가 더 아파? 혈압은?”

-혈압이요?

안 쟀구나 싶었다.

교수도, 수술방에 들어온 교수조차 조심하고 있는데 밖에 나가 노는 놈이…….

“빨리 가서 확인해!”

-엇. 네.

혈압을 안 쟀을 리는 없다.

간호사 업무니까.

뭐…… 산모들 중에 워낙 급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8시간마다 재라고 처방을 낸 거 같긴 하고…….

다시 생각을 해 보니까 아직 수술방 들어온 지 8시간이 지나진 않았으니 아침에 잰 혈압 그대로일 것 같긴 했다.

괜히 소리를 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동시에 박태식 새끼 때문에 인내심을 잃었구나 하는 핑곗거리도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 되고 나서야 레지던트가 돌아왔다.

-어……. 지금 이게.

“왜.”

-일단 심장박동 수가 분당 130회가 넘습니다.

“이런. 혈압은?”

-혈압은…… 지금 재고 있습니다. 일단 치료실로 빼고 있습니다.

“치료실……?”

레지던트의 말에 과장의 심장박동 수도 100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왜냐.

여기가 산부인과라서 그랬다.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보니 당연히 지원자들 성적은 떨어진 지 오래였다.

9등급들도 꽉 채운 해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이라는 건 만만한 과정일 수가 없지 않나.

특히 산부인과에서는 출혈과 같은 응급을 아주, 아주 많이 보기 마련이었다.

인기가 없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아무튼, 그런 레지던트가 치료실 얘기로 자체적으로 옮기고 있다는 건 응급이 확실하다는 뜻이었다.

드륵.

어느새 과장은 수술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건 자신이 본 환자 아닌가.

그 환자가 자신이 생각했던 질환이 아니라 다른 응급한 질환이었고, 지금 응급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긋할 수 있는 인간은 산부인과에 올 수 없었다.

“뭐야, 왜?”

-혈압은 그나마 90에 60인데……. 일단 약 들어갑니다! 바로 혈액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증도 꽤 심하고…… 식은땀도 흘리고요. 바이털이 전체적으로 다 흔들립니다. 이거…… 이게 왜…….

레지던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출혈로 인한 응급 상황이란 판단이 들자마자 그에 맞는 처방을 딱딱 때리고 있었다.

물론 이유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이유라는 걸 들은 과장조차 당황한 상태이니 뭐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저기, 환자 안 좋습니까?

그때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본인 휴대폰에서 박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리나 싶었지만, 이놈 아니었으면…….

‘정해진 시간에 혈압 재는 거면 지금부터 2시간 후…….’

환자가 그대로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아마 넘어갔을 터였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병동에 응급이 많았으니까.

과장이 아, 이 환자는 응급이 아니니 천천히 보자고 했던 환자를 눈여겨보기에는 너무 지나치게 바쁜 날이라는 뜻이었다.

“그, 그래. 안 좋아.”

-늦진…… 않았죠?

-그러진 않았을 거예요. 이제 막 혈압 좀 흔들릴 정도? 물론 환자는 힘들어하고 있겠지만요.

“옆에 누구지?”

해서 순순히 답을 해 주었더니만 옆에서 누군가 떠들어 대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란 뜻이었다.

-아…….

-제가 누군지 알아볼 게 아니라 우선 자궁동맥 파열부터…… 제 생각에는 우측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복강경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물어봤으니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동문서답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내기도 어려웠다.

왜냐면 수술 계획을 딱딱 짚어 주고 있어서 그랬다.

그저 그런 계획이었으면 무시할 만도 할 텐데 이게 너무 그럴싸했다.

확실히 과장이 생각하기에도 영상에서 보였던 그게 다 출혈이라면…….

아직까지는 복강경으로 어떻게 비벼 볼 만한 수준이긴 하지 않겠나?

더 늦으면?

개복이다.

그게 곧 죽음으로 이어질 리야 없겠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사람 개복술을…….’

수술 후 회복까지 갈 것도 없이 미용만 놓고 봐도 개복술에 비하면 복강경이 압도적으로 좋지 않겠나?

무엇보다 이 환자 처음부터 출혈을 의심했다면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어제 아니면 오늘 오전에만 들어갔으면…….

‘시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과장은 상대가 누군지 묻는 일은 까맣게 잊은 채로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뛰나?

-뛸 만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수혁과 박태식은 그런 과장의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다.

과장은 귀가 나이에 비해 꽤 밝은 편이었고, 사실 일반적으로도 아직 난청이란 게 찾아올 만한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 들었다.

허나 뭐라 할 시간은 없었다.

“교수님!”

“어어.”

“환자…… 일단 혈압은 돌아왔는데 심장박동 수가 너무 빠릅니다!”

“바로, 바로 내리자!”

“아, 네!”

“수술방에 전화해서 다음 수술 아직 들어가지 말라고 해 봐!”

“네, 교수님!”

예상은 했지만 직접 마주친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필 아직 과장이 어릴 적 잘못되었던 환자와 외형적으로 닮았다 보니 트라우마까지 자극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여간에 다른 생각 따위는 품지도 못할 만큼 급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드르륵.

우선 침대를 끌어 수술방으로 이동해서 불만 가득한 얼굴의 마취과를 향해,

“빨리 걸어! 환자 죽어!”

협박으로 들리는 부탁을 했다.

“같이 닦아!”

“네!”

레지던트, 펠로우와 함께 드랩을 하고 바로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복강경을 넣자마자 붉은 핏덩이가 보였다.

석션을 하면서, 대체 어디서 이렇게 피가 나지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궁동맥 파열부터…… 제 생각에는 우측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말이다.

하지만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이수혁…….’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우측을 뒤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건가 싶을 때쯤, 빼꼼히 우측 자궁동맥이 고개를 내밀었다.

당연하다는 듯 파열이 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파열 부위가 그렇게 크진 않았다.

“크, 클립 줘.”

“네.”

해서 자궁 절제술이나 기타 더한 시술 없이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응급이 끝나고 나서야, 수혁에 대해 본격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깊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가해의 존재란 생각만 들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