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3화 (1,283/1,303)

1283화 태화가 좀 수상하지 않아? (6)

수혁은 칠성 병원에서 온 케이스를 해결하자마자 즉시 아선 병원에서 온 케이스 또한 해결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그렇게 만만한 케이스는 아니었기 때문에 골머리깨나 썩고 있었는데…….

수혁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알았지?’

칠성 병원 과장이야말로 머리가 터져라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답을 알고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과 같은 수준의 추론은 불가능했다.

그래, 여기서 이렇게 보이잖아? 라는 생각을 억지로 하고 있었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초음파와 CT 소견이 딱 구분이 된다고 했는데…….

“과장님.”

“응?”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봐도 뭔가 튀어나오는 것이 있다면 애꿎은 머리카락뿐이었다.

나이를 고려하면 딱히 숱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그냥 멀쩡한 머리카락 빠지는 걸 보는 게 고통스러웠던 주니어 스탭이 그를 불렀다.

아주 집중하고 있었다면 잠시라도 머뭇거렸을 테지만, 답 없는 고민만큼 하기 싫은 것도 드물지 않겠나.

과장은 그 즉시 주니어 스탭을 돌아보았다.

스탭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 말이 맞았죠?”

이런 소리를 하면서였는데, 두렵게도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렇긴 했지. 이수혁이 배후에 있었어.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지만……. 그 여유…….”

그 말투에 더해 그 말도 안 되는 정확한 조언이라니…….

태화에 그만한 인재가 하나 더 있을 거란 가정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수혁 하나만으로도 병원 순위가 확 고정이 되어 버렸는데, 그런 놈이 1+1으로 하나 더 있다고?

그랬다간 아선과 칠성 모두 태화 의료원 분원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따위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방금 겪은 일 때문에라도 도저히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요. 이놈들…… 이제 산부인과도 정복하려고.”

“근데 내가 그게 좀 이상해서 말이야.”

“뭐가요?”

“정복이라는 게……. 우리는 내과가 아니잖아.”

“내과가 아닌데도 이만한 진단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주니어 스탭 또한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황급히 달려온 참이었다.

말이 주니어지, 사실 전임 조교수 아니던가.

실력이 썩 괜찮은 놈이었다.

수술도 잘할뿐더러 벌어진 일을 보면 대강 어떤 식으로 돌아갔는지 파악하는 능력도 좋았다.

‘원격으로…… 영상 소견과 환자 기록만 보고 진단을 해낸 거야……. 이게 뭐 흔한 질환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주니어 스탭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장님이야 연세도 있고 이미 쌓아 둔 명성도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원래 집에 돈 좀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냥 이렇게 살다가 은퇴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칠성이 오래오래 잘 나가야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누군가는 고리타분한 목표라 하겠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에겐 그 비슷한 가정 일구는 것이 가장 원대한 목표인데 그게 불가능해질 수도 있겠단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과 꼬라지 보세요. 레지던트…… 그쪽으로 다 몰립니다. 이제 태화에 파견 실습 가고 싶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니까요?”

“아니, 아니. 들어 봐. 우리는 내과가 아니라는 게 단지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

“뭐, 뭔데요.”

“우린 수술을 하잖아.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야.”

“네?”

“어차피 태화 산부인과…… 거기도 포화야. 우리도 포화고. 환자 더 뺏길 수가 없다니까? 서글픈 얘긴데, 우리가 설령 환자를 좀 뺏기더라도 지방 산부인과 망하면서 올라오게 될 환자가 훨씬 많을걸.”

“아……. 그건 그렇네요?”

주니어 스탭은 멍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과장님쯤 되면 시야가 상당히 넓구나 싶었다.

물론 안심하기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아직 모르지 않나.

다행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과장도 그에 대한 의문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상한 건…… 박태식 그놈에게도 딱히 유익이 없다는 거야.”

“음……. 저희 환자가 거기 간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 게다가 우리가 입 싹 닦으면, 도움받은 사실도 아무도 몰라. 당장 우리 환자는 태화랑 통화했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어……. 그렇네요? 혹시 과장님을 흔들려고…….”

“흔든다고 흔들리나? 그러기엔 이미 우리 과 자체가 나락인데.”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과장은 우리 과 망했다는 말에 너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주니어 스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진 못했다.

괜히 그러다가 전 아직 젊으니까요 하면서 미용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 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설마하니 교수 임용까지 받은 놈이 그럴까 싶겠지만…….

흉부외과 임상 부교수 하나가 모발 이식 병원으로 가 버린 이후로는 설마 따위 잊는 게 좋았다.

경기 안 좋다, 안 좋다 하는 게 다 거짓말인지 뭔지는 몰라도 미용 시장은 나날이 거대해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망한 과 전문의들이 우린 망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이야 하고 견뎠는데, 이제는 미련 없이 미용으로 슥슥 빠지고 있는데도 다 품어 줄 수 있을 만큼 성장 속도도 빨랐다.

“아선 병원 과장도 케이스 하나 줬다고 하는데…….”

“네? 우리만이 아니에요?”

“그래. 그뿐만이 아냐. 이제 보니까 여기저기 박태식 놈이 어려운 케이스 있으면 달라고 한 모양인데.”

“여기저기요……? 한두 개가 아니란 말씀이시네요?”

“그래. 그것보다 더 이상한 일도 있어.”

해서 과장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다시 궤도 위에 올려 두었다.

다행히 조교수는 상황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들어와서 교수까지 해 먹고 있을 만큼이나 산부인과에 대한 애정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보니 대화는 여전히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과장은 이놈이 혹 딴 데 가려나 하는 걱정은 던 채로 마음 편히 입을 열 수 있었다.

“흉부외과 친구한테도 어려운 케이스 있으면 달라고 했다네.”

“박태식 교수님이요?”

“아, 아니. 태화 흉부외과가. 왜 이러나 하다가 주긴 줬는데 그걸 귀신같이 해결했대.”

“그쪽도 이수혁……?”

“그래, 배후에는 이수혁이 있겠지. 문제는 그쪽도 딱히 이득은 없었을 거란 거야. 오히려 정식 의뢰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원래 같으면 알려져야 할 게 안 알려졌으니, 환자 이탈도 없겠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조교수는 과장의 넋두리 같은 말을 들으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릇이 작은 탓인가?’

이수혁이 대체 왜 그런 것들을 요구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그랬다.

아니, 단순히 궁금하기만 한 건 아니고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뭐지?’

조교수는 혹시 과장님이라면 좀 다를까 싶어서 과장 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과장이라고 해서 일반인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애초에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은 보통 이렇게 큰 병원에서 과장 노릇 해 먹지 못하지 않겠나.

결국, 둘은 거의 동시에 천장을 보면서 의미 없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럴 때가 아냐.”

아무리 그래도 과장이 좀 다르긴 달랐다.

“산부인과랑 흉부외과…… 이 둘만이 아냐.”

“네?”

“보니까 외과도 그렇잖아. 걔들은 옛날부터 그랬다던데?”

“아……. 맞습니다. 학회에서…… 근데 김승규 교수님이 말한 거라는데요?”

“그 뒤에 이수혁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아……. 설마…… 그 뒤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요?”

조교수의 말에 과장은 저도 모르게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 봤던 김승규를 떠올렸다.

“으.”

지옥에 있던 악마를 현생에 불러오면 아마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이타가키 케이스케가 캐릭터 조형할 때 김승규를 참고했을 게 분명하단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당연히 배후가 있을 거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는데, 산부인과와 흉부외과를 보니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그 목소리.

은은한 똘기가 배어 있지 않던가.

물리력이라면 말이 안 되겠지만 이수혁이 정말 태화가의 자식이라면 저 김승규라 할지라도 별도리가 없었을 터였다.

그렇게 나름의 논리를 펼치고 나서야 과장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던 몸을 추스르고 입을 열 수 있었다.

“외과계 케이스를 이수혁이 모으고 있어.”

“대체 왜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좋은 일은 아닐 거야. 일단 박태식 그놈이 말이 아예 안 통할 놈은 아니거든?”

“으음……. 그렇긴 하죠. 그나마.”

“술 진탕 먹여서 불게 해야겠는데.”

“어떻게 먹여요.”

“오늘 덕분에 살았잖아, 환자.”

“아.”

아닌 게 아니라 박태식 아니었으면…….

아마도 뒤에 있는 이수혁 덕분이긴 하겠지만, 아무튼, 환자 큰일 날 뻔했다.

죽지야 않았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할 수는 없었을 거다.

“이거 고맙다고 술 사겠다고 하면 나와야지. 걔 돌싱이잖아.”

“과장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갑자기 술 드셔도?”

“아……. 나 별거 중이야.”

“아.”

“괜찮아. 사이 안 좋은지 몇 년 됐어. 너 뭐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나?”

“네. 그…… 뭐라고 하셔도 저는…….”

“아니, 뭐라 할 생각 없는데? 한 번쯤 다녀오는 것도 나쁘진 않지 뭐.”

조교수가 상상도 못 한 발상에 잠시 스턴에 걸려 멈춰 있는 동안, 과장은 박태식을 꾀어내었다.

마침 박태식은 벌써 수혁이 두 개의 케이스를 해결했고, 무엇보다 아주 만족했다는 얼굴로 자신을 칭찬하고 센터로 돌아간 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자네 덕에 환자 살았다고 술 사겠다고, 다른 놈도 아니고 경쟁 병원 과장이 전화한 건데 거절할 생각이 나겠나?

“그럽시다!”

무엇보다 수혁이 왔다 간 덕에 병동 환자들도 더없이 안정적이었다.

다들 별문제 없이 회복 중이다, 이 말이었다.

해서 박태식은 칠성 병원 과장이 부른 곳으로 별 의심 없이 나갔다.

“맛있네요.”

“그래, 내가 회식할 때면 거의 여기서 먹어. 메뉴에 없는 것도 주신다니까?”

“정말 좋네요. 인연이 있으신 거예요?”

“아……. 그렇지. 이 음식점 집안 애들은 다 내가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하, 그거 좋네요.”

분위기도 좋은 데다가 맛도 있다 보니 술도 쭉쭉 들어갔다.

조금만 경계를 했다면, 과장이나 같이 온 조교수 놈이 술을 먹지 않고 어딘가 따라 버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겠지만…….

그럴 만큼 눈치가 있었다면 아마 가정생활도 좀 더 지킬 수 있었을 터였다.

“으…….”

게다가 의사들은 원래 다음 날 일 때문에라도 술을 급하게 먹는 편이지 않나.

빨리 먹고, 빨리 취해서 12시 전에 자는 게 국룰이라 그랬다.

습관대로 막 먹다 보니 만취였다.

“된 거 같은데요.”

“좋아.”

심장박동과 혈압, 혈색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박태식이 꽐라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 둘은 고개를 끄덕인 후, 본격적인 심문에 들어갔다.

“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아니, 이수혁 교수가 뒤에 있잖아!”

“그분께서 진단하는 건 맞는데…… 제 목표는 실력을 키우는 겁니다.”

“이 새끼가 이거 뭐래는 거야?”

별 소용은 없었다.

“전생에 독립운동이라도 했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암만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이수혁이 진단하는데 지 실력이 대체 왜 는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