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4화 (1,284/1,303)

1284화 신경외과 (1)

“이거 참…….”

흉부외과 과장은 수혁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방금 자신이 해낸 수술 때문이었다.

사실 해냈다는 말을 쓰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하던 수술이긴 하니까.

생전 못 해 본 수술이라면 모를까…….

돌이켜 보면 벌써 몇백 번은 가슴을 열었더랬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했던 수술이 오늘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어.’

케이스 들고 오는 데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간절했던 건 아니었다.

집도의로서 마지막 남은 기회라고 생각은 드는데…….

그렇다고 해서 간절하기엔 좀 미신 같은 말이라 그랬다.

내과 의사인 이수혁 교수와 들어가면 실력이 늘더라는 게, 이게 말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소문의 주인공인 이수혁 또한 들어가면서 이걸 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음…….

-호오.

그 때문에 믿음이 점차 식어 가던 찰나, 딱 피부에 칼을 대자마자 수혁이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흐음, 호 돌림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라고 하면 좀 지나친 감이 있고 옛시조 정도의 음률이 있다고 하면 딱 맞을 터였다.

뭘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저 시끄럽다고 여겼을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들은 게 있었다.

프락치를 심은 정돈 아니더라도, 흉부외과 과장쯤 되면 원내 아는 사람이 많아지기에 그랬다.

물론 김승규 교수의 입단속 때문에 정보 입수가 아주 쉽지는 못했지만…….

수혁이 수술방에 들어오면 흐음, 호를 하는데 그 의미를 집도의라면 모를 수가 없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미쳤지, 진짜…….’

흐음은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호오는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모르고 들어도 흐음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구나 내지는 저 사람이 언짢구나 정도는 알 수 있을 만큼 대단히 노골적이었다.

당연히 호오도 마찬가지였고.

동시에 술기에 대한 평가 또한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흐음이 더 나오지 않을 때까지 칼을 움직여서, 호오를 들을 때 움직였더니…….

-교수님. 이거…….

-오늘 미쳤는데요?

-녹화했지?

-네? 아, 네. 네?

-이 시발놈들이?

녹화를 안 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긴 했지만, 그럴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원래 수술 녹화라는 게 당연히 하는 건 또 아니지 않던가.

평소에도 요청이 있어야 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전에, 그러니까 흉부외과가 지금처럼 비인기과가 아닐 때만 해도 어느 정도 루틴으로 녹화를 하고 편집도 시키곤 했지만…….

지금은 혹 학생 때라도 흉부외과에 관심 있다고 하면 과장은 물론이거니와 시니어 교수들까지 버선발 뛰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니 조금이라도 잡일로 인식되는 것들은 다 줄이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아쉽군…….’

개흉 수술이라는 건, 당연히 어려운 수술이다.

가슴이라는 게 상식적으로 한 번쯤 열어 보라고 만들어 둔 건 아니지 않겠나.

그렇게 따지면 배도 함부로 열라고 만들어 둔 건 아니겠지만, 뼈가 없는 시점에서 난이도가 수직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가슴 안에 든 장기는 폐랑 심장인데 둘 다 움직이지 않나.

심지어 심장은 엄청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걸…… 오늘처럼 수술할 수 있는 날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분명 이전과는 달라지긴 했을 거다.

한 발자국 정도가 아니라 도약한 수준으로 수술을 잘해 놨으니까.

이걸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실력이 늘 거다.

무엇보다 꿈을 꾸게 되었다.

수혁 없이도 오늘처럼 수술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번에 김승규급으로 성장하진 못하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위로 올라가긴 할 터였다.

“아뇨, 뭐. 제가 한 게 있나요.”

“너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그런가요? 희한하네요. 다른 외과 계열 교수님들도 자꾸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하하.”

녹화 동영상이 없다지 않나.

물론 그게 있다고 한들, 수혁이 직접 들어와 주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닐 터였다.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바로 옆에 붙어서 이건 아니고, 이게 맞고를 알려 주는데 혼자 정답지 보고 공부하는 게 어찌 비빌 수 있겠나.

심지어 이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수술이다.

몸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고, 당연히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정작 집도의는 객관적인 시야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수혁 교수님 눈에 의지하면 수술이 잘되고 실력까지 늡니다라는 말을 직접 하면…….’

너무 귀중한 경험이다, 이 말이었다.

이걸 굳이 다른 사람과 공유할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 자신의 실력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에 딱 맞게 성장한다면…….

그러니까 이제 수혁 아니라 수혁 할애비가 와도 실력이 늘진 못하겠구나 싶은 수준이 된 후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아니었다.

‘왜 외과에서 음흉하게 입 꾹 다물고 있는지 알겠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과장은 하하하고 의뭉스럽게 웃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수혁 교수님이 계시니까 제가 안심이 되어서 잘된 모양입니다.”

“아……. 하긴 제가 있으면 그럴 수는 있죠.”

“하하하.”

구라가 막 숨 쉬듯 나왔다.

대학 병원 과장씩이나 되어서 이런 일로 거짓말한다는 게 좀 그렇긴 했지만…….

수혁이 뻔뻔하게 받아 주니까 죄책감이 훅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죄책감이 0이 된다면 원래도 양심이 좀 부족한 사람일 터였다.

허나 외과의들에게는 일종의 면죄부가 있었다.

인체 해부가 금지되어 있거나 철저히 제한되어 있던 시절…….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실력 하나 늘리겠답시고 오만 지랄을 다 하지 않았나.

심지어 살인도 저질렀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지금 하는 짓은 귀여운 수준일 터였다.

“아무튼 오늘 감사했습니다. 위험한 케이스 있으면 또 불러도 될까요?”

“뭐…… 어려운 케이스 주시면요. 제가 시간을 맞춰야 돼서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얼마든지요. 제가 또 열심히 모아 오겠습니다.”

흉부외과 과장님은 진짜로 흡족해서 껄껄 웃으며 수혁을 배웅했다.

그러곤 뒤로 돌아 환자가 향했을 중환자실로 걸음을 옮기는데…….

“과장님.”

“앗.”

먼저 외과 쪽 소식을 전해 왔던 흉부외과 교수가 다가왔다.

짬으로 비교하면 이렇게 길 막고 서면 안 될 놈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사뭇 당당했고, 과장은 좀 쫄았다.

“다음에도 과장님이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려서요. 제가 좀 화가 납니다.”

왜냐.

애초에 이놈 덕에 케이스 모아 던질 생각을 했기에 그랬다.

심지어 한 개는 이놈이 들고 오기도 했다.

헌데 마침 수술 시간이 겹쳐서 아예 이번 수술에는 들어오지도 못했다.

수혁의 ‘흐음, 호’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감히! 갈!’ 하고 외쳐 보겠지만 이미 겪어서 실력이 늘었는데 어찌 그런 짓을 하겠나.

“아, 아니. 다음에는 당연히 자네지.”

“저죠? 혹시 시니어 교수님들이 들어가시겠다고 해도 저죠?”

“하하……. 시니어 교수님들은 자세한 사안은 모르잖아.”

“몰라야 할 겁니다. 저…… 진짜 과장님이니까 말씀드린 거예요. 그 외에는 제 아내도 모릅니다.”

“아내 없잖아…….”

“그럴 정도로 입 다물었다, 이 말입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게. 그러다 혹시 누구라도 눈치채면 어쩌나.”

“레지던트, 펠로우들 입단속도 철저히 하세요. 결국, 외과 쪽에서 말 새어 나온 것도 레지던트 애들 통해서니까.”

“아……. 그래야겠네.”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과장님.”

주니어 스탭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과장은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라보다가, 이내 중환자실로 향했다.

“과장님?”

펠로우는 그런 과장을 영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과장이 사람 죽이는 걸 저 양반이 목격한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저자세로 나갈 일이 있나 싶어서였다.

‘혹시 그런 거면 나도 알고 싶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도 교수 임용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기왕 심장 만지는 인생을 선택해서 고생하고 있는데 임용 안 되면 말짱 꽝이다 보니 절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어. 환자 어때.”

“환자는 너무 좋습니다. 이런 거 처음 봅니다.”

“그래……. 그럴 거야.”

“오늘 진짜 잘하시던데…… 혹시 이수혁 교수님이 뭔가 한 건가요?”

반면 과장은 펠로우를 보면서 이 새끼는 눈뜬장님인가 싶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뻔히 흐음 호를 듣고도 이걸…….

아이구…….

‘너 그래서 심장 수술하겠냐…….’

물론 상대는 비인기과 아니라 기피과 수준이 되어 버린 흉부외과에 들어와 레지던트를 한 것도 모자라 전문의 따고 나서는 펠노예까지 2년 넘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 중간에 교수까지 임용되었던 사람이 내 길은 이 길이 아닌가 보다고 머리 심으러 나간 일이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뉴스만 틀면 흉부외과 망했다고 하고, 술자리 가면 미용하는 일반의 친구들 돈 번 얘기 듣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 운이 좋았지.”

“운…….”

“에이, 자네만 알려 줄 테니까 조용히 있어야 하네. 알았어?”

“아, 네. 교수님.”

그게 고마워서, 또 미심쩍어하는 모습에 양심이 찔려서 아까 조교수가 했던 말도 잊고 속삭였다.

멀리서, 돌아가는 시늉만 하고 있던 조교수가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나중에 분명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질 텐데…….

딱히 나중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지금도 좋지 못한 일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야, 웬일이냐? 너? 오늘 개흉이라며.”

“어, 근데 귀신같이 일찍 끝났어.”

“어떻게? 혹시……. 테이블 데스?”

“아니, 미쳤어? 그랬으면 내가 여기 있겠냐?”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지, 나도.”

“이건 비밀인데…….”

펠로우가 오늘 기분이 얼마나 좋겠나.

맨날 늦게 끝나다가, 심지어 오늘은 진짜 늦게 끝날 거라는 게 확정이 되어 있던 상황인데…….

일찍 끝나지 않았나.

사람이란 원래 기분이 너무 좋으면 입이 가벼워지는 법이었다.

“진짜로……?”

“어, 그러고 보니까 오늘 변수가 그거 하나야.”

“그게 말이 되나……?”

“근데 이 수술도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거든. 진짜…… 우리 교수님이지만 오늘은 월드 클래스였어. 진짜 개잘하시더라고.”

“허어……. 그럼 우리 교수님도 수술 일찍 끝낼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지. 넌 하나 더 남았지?”

“어…….”

“뺑이 쳐라. 나는 나가서 올만에 생맥이나 먹어야겠다.”

“와……. 부럽다…….”

“근데 밖에 날씨 어떠냐? 여름인가?”

흉부외과 펠로우는 제대로 외출해 본 기억이 무려 2개월 전이라는 걸 상기하면서 물었다.

슬프게도 신경외과 펠로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니 제대로 된 답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인계 사항대로 하기로 하고 나갔다.

얇은 옷을 겹쳐 입고 나가서 더우면 벗는다, 였다.

그렇게 흉부외과 펠로우가 나가서 즐기는 사이, 신경외과 펠로우는 수술방에서 교수에게 속닥거리기 시작했고, 자연히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케이스를 모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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