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5화 (1,285/1,303)

1285화 신경외과 (2)

“이상하네.”

말을 꺼낸 것은 이현종이었다.

불만이 있어 보일락 말락 한 얼굴을 하고서였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사안이긴 했다.

“이상하긴 합니다.”

이제 그의 충신임을 자처하게 된 지도 오래인 김인수 또한 이현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모니터에 두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모니터에 뜬 협진 의뢰 통계였다.

원래도 내과 계열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협진을 내고 있긴 했더랬다.

가령 내과와 타 병원 내과 그리고 소아과와 일부 우호적인 외과계 과들인 이비인후과나 외과 같은 과들은 원래도 많았고 지금도 많다는 말이었다.

허나 눈치 보는 최낙필 때문에라도 협진 내는 시늉이나 하던 신경외과는 물론이거니와 흉부외과, 산부인과와 같이 평소 딱히 협진을 내지 않던 과들이 확 늘었다.

“이제 와서 우리의 실력을 알았다고 하기엔 이상하잖아.”

“맞습니다. 알 거면 처음부터 알았어야죠.”

“그러니까 말야. 뭔 계기라도 있었나?”

“음……. 딱히…… 사고 칠 만한 거 막은 건…… 뭐 찾아보면 있을 텐데, 그건 이제 그냥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겁니다.”

이현종은 흐음 소리와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사할 일을 당연히 여기고 있을 거라는 말이…….

기분이 나빠서만은 아니었다.

그거야 오래된 일이지 않나.

‘생각하니까 열 받긴 한데.’

가서 뒤집어엎어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지만, 지금은 강력한 억제기가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수혁이…… 일이 아니라…… 놀러…….’

왜냐면, 지난 여름 총동문회 이후 본격적으로 수혁이와 함께하는 ‘휴가’가 가시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최근에 진료 외에 바빠진 것도 그 스케줄 잡느라 그런 것 아니겠는가.

오붓하게 부자끼리만 가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기실 이현종도 평생 교수로 살아온 데다가 그 시절 교수라는 게 워낙에 대우받던 직종이지 않던가.

결혼이라도 했으면 따로 여행을 다녔겠지만 이현종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학과 결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학회로만 다녔더랬다.

심지어 이현종은 원내뿐만 아니라 학회 내에서도 입지전적인 사람이었다 보니 그게 레지던트가 되었건 펠로우가 되었건 조교수가 되었건 수발드는 사람이 있었다.

‘현태, 이 새끼는 원장이라는 놈이 펑펑 노네.’

그 이유라면 원장인 데다가 딱히 기수 차이도 몇 안 나는 신현태가 갈 이유는 없긴 한데…….

아무래도 휴가만 써서 가기엔 멀리 가기가 빡세고, 병원 눈치가 많이 보이니만큼 학회를 끼고 가려니 신현태를 내치기가 어려웠다.

‘근데 과연 이놈들 중에 누가 가게 되려나……?’

수혁에 이현종 그리고 신현태까지 하면 벌써 셋이지 않나.

차 한 대로 짐까지 싣고 민활하게 움직이려면 최대 넷이 한계다 보니 한 명만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보통 이 수발드는 자리가…….

-네? 아, 저 수술 예정입니다.

-아……. 저는 애가 아파서.

-저희 부모님 3년 상 중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아플 거 같습니다, 교수님.

이런저런 핑계가 마구 튀어나올 만큼 기피되는 자리라 할 수 있었다.

세상천지에 어떤 미친놈이 높으신 분들 수발드는 걸 자발적으로 하겠나.

뭐, 가끔 있긴 하겠지만 교수 자리 노리는 게 아니라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통합진료센터는 좀 달랐다.

-교수님들을 홀로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저 아닌 다른 이에게 돌릴 수는 없는 법이지요.

-갈! 이 안대훈을 빼고 수발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저보다 이수혁 교수님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난 이현종 교수님하고 한 달이나 같이 있었어! 나이 드신 분이 더 중하지. 막말로 이수혁 교수님은 나보다도 젊으시잖아!

-가, 감히……? 신성 모독이다! 사람의 나이를 들먹이다니!

서로 수발들겠다고 나서는 것을 넘어서 싸움이 벌어질 뻔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에 가까운 싸움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뭐, 특히 다른 과 교수들이 보기엔 부럽기만 한 일이었다.

자기들은 윗사람 싫어도 수발들고 했는데 요즘 애들이 어디 그래 준다던가?

소 닭 보듯 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도 있을 지경이었다.

헌데 저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설마…… 우리 교수법을 배워 가려고 이러는 건가?”

아마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이상한 추론을 내진 않았을 터였다.

“네?”

“너네들은 나나 수혁이를 진짜 존경하고 사랑하잖아.”

“아.……. 뭐, 그렇죠. 맞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지 배우려고 아부하려는 거 아닐까?”

“아……. 아!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추론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해서 그랬다.

우선 제자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걸 넘어 사랑한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이게 되려면 보통은 자기 자신부터 자기애가 미쳐 돌아가야 하는데, 이현종의 자기애 수준은 사실 유명할 정도니 과하게 충족한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환자 많이 보게 하는 게 아부라고 생각해야 했다.

요약하면 자기애와 진료 욕구로 똘똘 뭉친 사람들만이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는 건데, 희한하게 통합진료센터는 이런 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뭐……. 나쁜 일은 아니네. 근데 이런다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매력’을 어떻게 교육한단 말이야.”

“맞습니다.”

“그래도 시늉은 내 봐야지. 오늘 네가 주도해서 펠로우랑 성진이랑…… 레지던트들한테 나는 왜 이현종, 이수혁 교수님을 좋아하는지 설문 조사 좀 해 봐. 그거나 보내 보지, 뭐.”

“아…….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저번 달보다 협진 건수가 거의 서너 배 늘었잖아. 특히 산부인과. 여긴 아예 우리 센터 상종도 안 했었는데……. 이 정도면 뭔가 하긴 해야지.’

“하긴,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벌써부터 나는 왜 이현종을 존경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더더욱 심혈을 기울여 고민하고 있는 건 가을에 LA에서 열릴 학회였다.

보통 국제 학회 강의를 펠로우 레벨에서 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보니 강의만 승인돼도 학회 가고, 그 뒤에 이어질 여행까지 따라가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통합진료센터의 수준은 그 정도가 아니지 않나.

냈다 하면 강의 정도야 다들 따낼 터였다.

건방진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펠로우 1년을 보낸 전원이 다른 과 교수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랬다.

‘특히 안대훈…… 그놈이 문젠데.’

미안하지만 김성진이나 장종우, 이태원은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뭐……. 뛰어나긴 하지만, 광기에 가까운 총기는 없기 때문이었다.

단순 진료라면 관련 과에 따라 우열이 나뉘겠지만, 강의는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나?

한 분야의 대가가 되었다면 또 모르겠으나 아직 경험이 일천하고 명성도 없는 사람이 국제 무대에서 강의로 호평을 받기 위해서는 어딘가 하나쯤 나사 풀려 보이는 강의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한 광기의 대가가 바로 안대훈이었다.

‘하윤이는…… 내년에나 도전하라고 하고.’

요즘 가만 보면 우하윤, 이 친구도 좀 위험해 보이지만…….

어차피 수혁이 따로 이틀인가 휴가 냈을 때 짧게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통합진료센터 내에서의 경험이 아직 나머지에 비하면 1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짬 때문에라도 경쟁 상대는 아니었다.

‘이 자식이 대체 뭘 준비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김인수가 이토록 가을 여행 수발을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시각, 안대훈은 수혁과 함께 있었다.

김인수의 예상과는 달리 안대훈은 딱히 학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았다.

다만 수혁과 함께 있는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지금 당장은 수혁보다 학회 준비를 하는 것이 멀리 보면 오히려 수혁과 더 오랜 시간, 동시에 더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수혁과 함께 있다 보면 몸이 절로 움직이는데.

“이상하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좀 이상한 날이었다.

이현종뿐만 아니라 수혁 또한 그렇게 느낄 만큼이나 이상한 날이었다.

“신경외과에서 따로 연락이 오다니…….”

“최낙필 교수님이 후달려서 협진 내는 거 말고는 딱히 뭐가 없던 과인데 말입니다, 교수님.”

“그러니까. 흐음……. 요새 좀 이상하긴 하단 말이야.”

“산부인과, 흉부외과 말씀이시죠.”

“응.”

“아무래도 소문이 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 사람들…… 진심으로 교수님이 같이 수술방 들어가면 수술이 잘된다고 믿고 있는 거 같습니다.”

원래 안대훈이 믿음 운운하면 안대훈이 이상한 게 맞을 텐데, 지금은 예외였다.

수혁이 보기에도 자신을 토템 취급하고 있는 게 분명해서 그랬다.

문제가 있다면 한 명이 아니라 다수가 그러고 있다는 점이었다.

집단이 광신도 집단이라면 다수가 그런다고 해도 그냥저냥 넘길 수도 있는데, 이 사람들 나름대로 이성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뭔가 진짜 토템인가……?’

[모르죠. 아무튼, 지금 온 케이스는 재밌어 보이는데요? 잘된 일 아닙니까? 요새 따로 연락 오는 케이스들 다들 퀄리티가 좋습니다.]

‘아무래도 좋긴 해.’

[괜히 들이파서 케이스 뚝 끊지 말고 가만히 있죠.]

‘그래. 그래야겠어.’

[좋습니다.]

그럼 확실히 뭔가 있다는 건데…….

바루다도 그렇고 수혁도 그렇고 환자 진료하는 것 외에는 딱히 100점짜리 삶을 추구하는 존재들은 아니지 않던가.

오히려 너무 대충대충 넘기는 감이 있어서 문제였다.

실제로 그래서 진료에 더 힘을 쓸 수 있는 거긴 하겠지만, 아무튼, 둘은 이번에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에 반해 안대훈은 수혁에 대한 모든 것에 100점을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다만 수혁의 관심이 더 이상 거기 없다면, 굳이 지금 당장 들이팔 위인 또한 아니지 않나.

해서 둘은 아무런 갈등 없이 아까 연락 온 환자 얘기로 화제를 되돌릴 수 있었다.

“아까 환자가…….”

“한 달 전부터 구토 증상이 발생한 46세 남자입니다.”

“그래, 그렇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게 참 묘하단 말이지.”

“네, 급성이라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만성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

수혁의 말에 안대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른 화제 때문에 멈춰 있던 발걸음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자라고 하면 원격 진료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수혁이긴 하지만…….

역시나 실제 환자를 보는 것을 가장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거기서 다른 의사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 않던가.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 벌어진 현상을 분석하는 데 도가 틀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기에 그러했다.

“이번에 입원하게 된 건 두통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토에 두통. 머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증상들이지. 동반된다면…… 더더욱.”

그래서일까?

대훈과 단둘이 대화를 하면서도 표정에 설렘이 번져 가는 걸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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