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6화 (1,286/1,303)

1286화 신경외과 (3)

수혁과 대훈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경외과 병동에 들어섰다.

사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긴 했다.

돌려돌려 돌림판이 아직 없던 때에도 신경외과 협진 정도는 봤기 때문이었다.

그냥 랜덤으로 와서 본 적도 있지만, 신경외과 과장이자 장차 태화 의료원의 당당한 원장단이 될 거라는 포부를 품고 있는 최낙필이 그 포부를 위해 뇌물조로 협진을 낸 덕택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형식적인 협진이 주를 이루다 보니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고는 제자들이 다 해결하고 있긴 하지만…….

“어! 이수혁 교수님!”

그럼에도 여러차례 와 본 적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때마다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반대로 말해야 옳을 터였다.

-누구…….

처음엔 말 그대로 ‘네가 누구냐’ 수준이었다.

-아……. 통합진료센터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소속과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환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짜 알아봐 주는 수준이었다.

-네네. 이쪽입니다.

허나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 특히 병동에 계속 있는 간호사들은 수혁의 뛰어남을 가장 빨리 캐치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맨날 얼굴 보던 환자가 수혁이 왔다 간 이후로 확확 좋아지는 걸 체감한 후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환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신경외과 구세정입니다.”

하지만 레지던트로만 가도 반응이 확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경외과는 온 과를 통틀어서 제일 힘든 과 중 하나인 덕에 병동 환자에게는 아무래도 신경을 쓰기가 어려웠다.

레지던트 수에 비해 환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평이 신경외과 내부뿐 아니라, 밖에서도 있을 정도였다.

다들 힘든 와중에 ‘그래, 너네가 제일 힘든 거 인정’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이 말이었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이 반응이 얼마나 대단한지 바로 알 수 있을 터였다.

누구나 자기가 제일 힘들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외과는 예외로 치는 것이니.

“아, 네.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안대훈입니다.”

막상 레지던트는 좀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전문의 숫자는 더 뽑을 경우 지금보다 대우가 후져질 거라는 전망 때문에, 산아 제한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더 늘린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을 터였다.

이만한 고생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봐야 할 테니.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 뭐 수혁의 활약에 관심이 있으면 뭐 얼마나 관심이 있겠나.

당장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틸까, 잠은 얼마나 잘 수 있을까, 밥은 먹을 수 있을까 등등을 골몰하기 바쁠 터였다.

‘주교님.’

‘어, 그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혁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안대훈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매일같이 일수혁, 이수혁 명의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이니만큼 그에게 감화된 이들이 세상 곳곳에 널리 퍼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주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구세정은 딱히 그렇진 않았다.

수혁교 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이들을 탄압하는 포지션에 있었더랬다.

‘우리가 신경외과인데 왜 내과에 숙이냐고 뭐라고 했었지…….’

당장 옆에 있는 레지던트만 해도 가끔 이수혁 교수 칭찬을 했었는데, 그때마다 뭐라 했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도 그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신경외과니까.

머리를 다루는 과…….

그중에서도 머리에 칼을 대는 과는 신경외과가 유일하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서 머리 때문에 환자가 잘못되는 경우엔 내과를 부르지도 않았다.

진짜 의사니 뭐니 호들갑 떨면서 내과 부르는 과는 이비인후과처럼 진짜 마이너 과들……. 그러니까 사람 생명을 다룬다기보다는 자신이 다루는 부위에 정통해 가는 일종의 장인 같은 애들이나 그러는 거 아니겠나?

신경외과는 스스로 기관절개술도 하고, 심폐소생술도 하고 거기에 더해 그 어렵다는 머리 수술까지 하는 위대한 과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네.”

지나치게 위대한 과라서 그럴까?

-잉? 너 1등 아냐? 근데 신경외과 간다고……?

-야, 피부과나 영상 가지…….

-네가 체력 좋은 편이라는 건 아는데…… 거긴 황소 같은 남자애들도 도망가는 곳이야.

구세정은 1등 졸업자였다.

거기에 더해 인턴 점수도 최우수.

신경외과 갈 때 진심을 다해 말려 줄 친구가 셋 이상이나 있을 정도로 인성도 썩 괜찮았다.

동기끼리 다 친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병원 실습 돌 때 한번 본성 나오고, 인턴 돌 때 바닥 나오는 특성을 지닌 의대에서 동기끼리 마냥 다 친하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구세정이 암만 전문의 대우가 좋은 신경외과라 하지만 빈말로도 피부과, 성형외과에 비해 돈 잘 벌긴 어렵고, 영상, 재활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데 지원했다는 건 정말이지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도망갈걸……?

이러한 반응이 태반이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구세정은 교수까지 다이렉트로 달렸다.

심지어 동기 남자 놈들 지쳐서 자고 있을 때 홀로 일어나 그 녀석들 처방에 빵구 막아 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실제로 교수가 될 때, 동기 평판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역할을 했단 것만 봐도 구세정의 위대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근데 이런 내가 벽에 부딪칠 줄이야…….’

신경외과가 어려운 과이긴 했다.

머리에 칼을 대고 때에 따라서는 뇌의 일부분도 과감히 잘라 내는 과가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모든 과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양보한 과라고 스스로 떠들 만한 과다 이 말인데…….

그 때문에 구세정은 나이에 비해 조금 빨리 실력이 정체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절대적인 실력이 달리는 건 아니었다.

동년배 아니라 위 선배들과 비교해도 썩 괜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외과의 김승규와 비교하면 그 명성이나 분야 내의 실력이 많이 처지는 것도 사실인데, 세월이 지나도, 그 세월 동안 노력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올라가기 어렵겠단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흉부외과랑 산부인과에서 이수혁 교수한테…… 수술 실력 키우려고 아부 떠는 거라던데?

그러던 차였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지금처럼 반응하게 된 것이었다.

아니었으면 대체 왜 수혁을 부르겠나.

지금까지처럼 무시하고 말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진짜…….’

마침 잘된 것이 실제로 어려운 환자가 하나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칼을 대 보면야 확실해지긴 하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문제는 외과처럼 그냥 막 열어 보기도 애매하단 점이었다.

머리이지 않은가.

‘신경외과가 어렵지…….’

머리를 다루지 않는 과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충이라 할 수 있다.

“이 환자분이시군요.”

“네네.”

그렇게 속으로 고뇌를 쌓아 나가는 동안에도, 구세정 교수는 환자에게 수혁과 대훈을 안내할 수 있었다.

아직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증상이 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는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동에 있었다.

“흐음…….”

“음.”

수혁와 대훈, 스승과 제자는 거의 동시에 신음을 토해 냈다.

말이 신음이지 사실상 집중력을 올리기 위한 한숨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둘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미 환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까 연락에 따르면 1달 전부터 두통과 메스꺼움이 있었다고 했지.’

[그게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종양이나 머리 쪽 염증을 의심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죠.]

거기에 더해 환자의 정보도 붙여 생각하고 있었다.

관찰만 잘한다고 해서 진단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문진만 잘한다고 해서 진단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서 그랬다.

제대로 된 진단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이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했다.

‘내원 3일 전부터는 실제로 구토까지 했다고 하고…….’

[하지만 응급실 내원 후 시행한 혈액 검사상에서는 딱히 이상 소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CT를 찍었지.’

[영상 띄웁니다.]

대훈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순전히 우연인지는 몰라도 딱 그 타이밍에 옆에 있던 컴퓨터를 조작해 CT 영상을 띄웠다.

수혁은 그쪽을 힐끔거렸지만 실제로 들여다본 것은 이미 단기 데이터화해 둔, 그러니까 지금 바루다가 띄우고 있는 영상이었다.

같은 영상이 아닌 바루다가 한번 처리를 한 영상이기 때문에 훨씬 더 명확한 판독이 가능했다.

‘좌뇌교 주심에 괴사와 부종을 동반하는 종괴가 있었어.’

[네, 제1 뇌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였습니다.

‘그러니……. MRI를 바로 찍었겠지.’

[네, 뭐…….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어제 입원한 환자인데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구세정 교수의 끗발이 좋았는지는 몰라도, 밤새 빈 캐파에 낑겨 들어가 MRI를 찍을 수 있었다.

사실 밤새도 아니긴 했다.

수혁과 대훈이 병동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영상이 올라와 있지 않았으니까.

-어허! 머리야, 머리!

아마 다른 MRI를 조금 미루고 들어갔을 터였다.

산부인과만큼은 아니겠지만, 신경외과도 응급이 워낙 많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신경외과 쪽 동의서 받는 것을 보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게 보통이었다.

이미 심각한 상황에서는 수술한다 해도 50%는 사망할 수 있고, 30%에서는 남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하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떠들 수 있는 과니까.

물론 그런 경우 수술을 안 하면 100% 죽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방금 영상이 떴습니다. 제가 볼 때는 역시 종괴 같아서…….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 할 거 같긴 한데……. 이 림이 좀 불안해서요.”

구세정은 MRI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을 준비했다.

그 말은 곧 바루다와의 토의를 시작했다는 말이었다.

MRI 판독이 거의 실시간으로 되는 존재들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DIFFUSE 뷰에서 대략 2cm가량의 종괴가 있는데……. 주변 림까지 다 포함하면 상당히 커. 조영증강 강도는 주변부에 비해서 낮거나 같고.’

[관류 강조 MRI에서……. 국소 뇌혈액량(rCBV) 비율을 계산하고 정상 백질에서의 rCBV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좋아. 얼마나 걸려?”

[관류 강조 영상을 잘 찍어 놓긴 했는데, 그래도 바로 뜨진 않아서……. 한 3초? 커피 마셨으면 2초면 될 텐데요.]

‘떠드는 시간에 했으면 벌써 말했겠다.’

[음.]

수혁은 계산 때문인지 아니면 기분이 나빠서인진 모르겠지만, 입을 앙다문 바루다를 뒤로하고 구세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림……. 헌데 신경아교종에서도 이러한 림 형태의 농양이나 출혈성 괴사를 나타낼 수 있지 않습니까?”

“네, 그래서 현재로서는 신경아교종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뭐……. 아무래도 이쪽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는데…….”

“일반적으로 신경아교종에서 보이는 국소 뇌혈액량보다 좀 낮아서 그러는 거죠?”

“아……. 네.”

그사이에 바루다는 이미 데이터 분석을 완료해 낸 참이었다.

예전이었으면 깐죽거렸을 텐데, 지금의 바루다는 수혁에게 깐죽거리는 것보다 남들한테 잘난 척하는 것을 훨씬 좋아하게 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즉시 계산값을 알려 주었다.

그 순간 수혁은 이제 이 환자를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은 살짝 턱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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