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7화 (1,287/1,303)

1287화 신경외과 (4)

수혁이 턱을 치켜세우는 순간, 대훈과 더불어 구세정 교수 뒤편에 서 있던 신도 레지던트는 이어질 말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경험상 이럴 때마다 놀라운 설명이 이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다만 구세정 교수는 잿밥에 관심이 있어 부른 것이지, 수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다 보니 이게 뭔가 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여. 턱을 왜 들어.’

사실 남 앞에서 돌연 턱을 치켜세우는 행위가 딱히 선호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지 않던가.

평소 구세정 교수 성격이었다면 상대도 교수다 보니 뭐라 하진 않아도 얼굴로 불쾌함을 표현하긴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일단 참았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수혁의 설명이 거의 곧바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혈액 검사를 보죠. 정상이라고 퉁 치고 넘어가기에는 몇 가지 짚어야 할 지점들이 있습니다.”

“아……. 어떤……?”

외과 계열 의사들이라고 해서 혈액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었다.

특히 감염과 연관된 지표나 빈혈과 연관된 지표라면 오히려 외과 계열 의사들이 더 열심히 보기도 했다.

수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표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외 지표들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붉은 표시가 없는 것들은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왜?

마취하는 데 필요한 결괏값을 충족했다는 뜻이기에 그랬다.

대개 그래도 되지만…….

내과는 그럴 수가 없는 법이었다.

“지금 헷갈리는 게 염증인지 종양인지 아닙니까?”

“아……. 그렇죠.”

“그렇다면 환자의 검사 지표를 보다 자세히 살필 필요성이 있습니다.”

“아…….”

“일단 백혈구 수치. 정상이죠? 오히려 약간 높습니다. 8000대면……. 만 이상부터 붉게 잡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높다고 봐야겠죠.”

“아……. 네.”

수혁은 내과 의사 중에서도 모든 지표를 꼼꼼히 살피는 사람에 속하지 않나.

이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당뇨도 없어요. 아마 이전에 기저질환이 없었다는 환자의 진술은 사실일 겁니다.”

“네, 40대 직장인이면 국가 검진에 더해서 회사 검진까지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 질환을 모르기가 쉽지 않죠.”

구세정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신경외과 의사라고 하기엔 최낙필에 비해 상당히 섬세한 편이란 생각을 하면서였다.

뭐, 그러니까 태화 신경외과를 이끌 차세대 의사라는 평을 듣고 있지 않겠나.

여기서 이런 말 듣는 게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구세정이 얼마나 우수한 사람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우습단 생각마저 들 터였다.

“다시 말해 환자는 면역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다시 영상을 보죠. 영상에서 이 종괴가 만약 염증이라고 하면, 어떤 염증으로 보이십니까?”

“아……. 음. 아무래도…….”

구세정이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고민을 하기 시작했단 뜻인데, 한때 구세정 동기 중 여럿이 이 모습에 반해 고백 공격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지금도 매력적이긴 매한가지였지만 그 앞에 선 게 수혁과 안대훈이다 보니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하나는 하윤밖에 모르는 바보고, 또 다른 하나는 수혁밖에 모르는 바보지 않나.

“크립토코커스 종괴 병변과 가장 흡사해 보이죠.”

“네, 맞습니다. 뭐 다른 질환일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이런 형태의 염증을 일으키는 병원균 중에서는 크립토코커스가 가장 흔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주로 기회감염을 일으키죠. 아……. 그럼 이 환자는 종양이겠네요.”

수혁의 말에 구세정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괜히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아마 정확할 터였다.

해서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면서까지 말했는데, 돌아오는 수혁의 말이 가관이었다.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어느 정도로 충격적이었냐면 수혁교 신도마저도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을 지경이었다.

물론 수혁과 훨씬 더 가까운 사이인 대훈은 대화의 흐름상 이럴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실히 환자의 면역이 정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크립토코커스는 주로 면역이 저하된 환자들에게서 기회감염을 일으키는 곰팡이라는 것도 맞습니다.”

“그럼 종양을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두 개가 헷갈려서 교수님을 부른 건데요.”

“자, 그럼 반대로 종양이라고 생각을 해 보죠. 어떤 종양을 의심하시죠?”

수혁의 질문에 구세정은 방금 전까지 이놈이 왜 이러나 하던 것을 관두고, 질문에 집중하게 되었다.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온 의사들의 숙명과도 같은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질문을 들으면 답을 찾아 헤매게 되는데 거의 불치병이었다.

그렇다 보니 수혁처럼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놈들도 적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칼 쓰는 외과 계열에서는 이렇게 비열한 술수를 쓰는 사람들이 드문 만큼, 구세정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역시 신경아교종이죠.”

“그래요, 이런 식으로 보일 수 있는 종양은 아까 말했듯 신경아교종입니다. 헌데 신경아교종의 증상에 뭐가 있죠?”

“두통……. 메스꺼움이죠.”

“아 환자는 수막 자극 증상을 일으키고 있어요. 경부경직이 확 올라가 있습니다. 그건 어떻습니까?”

수혁의 질문이 툭툭 이어지고 있었다.

생뚱맞은 질문이라고 해도 일단 답을 하기 위해 골몰할 텐데, 이건 방금 내뱉은 답과 연관이 있는 질문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모르는 질문도 아니고,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직접 경부경직도 검사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음……. 그건 염증의 특징이니 신경아교종의 특징은 아니죠. 하지만……. 신경아교종이 지금처럼 주변에 고리 형태의 농을 형성했다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가 흔합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죠.”

그래서 고민이 된 거다, 따지고 보면.

괜히 뇌종양과 염증이라는 극히 다른 두 질환군이 헷갈렸겠나?

얼치기 의사도 아니고 태화에서 신경외과 교수까지 해 먹고 있는 사람이?

다 그럴 만한 소견이 있었다.

수혁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비난하는 어조로 말을 잇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반발심이 생겨서 진심으로 감복하는, 다시 말해 수혁과 바루다가 제일 좋아하는 반응을 보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여간, 수혁은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또 하나, MRI를 보시죠.”

“MRI?”

여태 보고 있던 것이 MRI지 않나.

종괴의 형태니 뭐니 하면서 벌써 수십 번은 들여다봤더랬다.

물론 제대로 된 판독은 아직 뜨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신경외과 의사가 이런 영상보고 병변의 위치나 형태를 특정하지 못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임상적인 특성이 지금처럼 모호할 때는 지극히 높은 확률로 영상의학과 전문의라 해도 제대로 된 답을 주긴 어렵기 마련이었다.

아마 1번에 종양, 2번에 염증을 주고 진단에 있어 임상적인 고려를 하시라는, 약간은 면피에 가까운 판독을 줄 확률이 제일 높았다.

“일부러 관류 MRI 컷을 잡아 둔 거 아닙니까?”

“아…….”

불만이 잠시 생겼다, 이 말이었다.

허나 수혁이 관류 MRI를 언급하자 금세 사그라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 당황해서 그런가, 이걸 계산해 볼 생각을 못 해서 그랬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구세정 교수는 아……. 하는 사이에 벌써 계산을 마칠 수 있었다.

“이 종양에서 국소 뇌혈액량 비율은……. 1.2 정도 되겠…… 어?”

“낮죠. 종양인 경우 그 종류를 막론하고 보통 3 이상이 나옵니다.”

뇌혈액량 비율이란 정상적인 뇌 조직에 흐르는 혈액의 양과 병변에 흐르는 혈액의 양을 비교한 결괏값을 말한다.

종양이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뭐가 되었건 정상 조직에 비해서 더 자란 것을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일반적인 뇌 조직에 비해 혈액량이 많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

“그나마 신경 초종 같은 것이 낮은데 3 정도 되죠. 림프종은 더 낮아서 1보다 살짝 높은 수준에 머물지만……. 이 종괴의 형태는 림프종과 너무 다르죠.”

“그렇…… 습니다.”

“그렇다면 뇌혈액량과 형태만 보고 판단할 경우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질환은 농양이 됩니다. 아까 추론과는 정반대의 진단이죠?”

“어……?”

그에 따른 추론을 이어 나가면 방금 수혁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구세정 교수는 이제 다른 모든 것을 잊은 채, 그저 놀란 얼굴만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이스의 특징도 특징이거니와 일부러 수혁이 추론의 흐름을 이런 식으로 유도해서 끌고 왔으니까.

그나마 이런 식의 추론 놀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구세정 교수는 아직 어린양에 불과했다.

수술장에서라면야 어마어마한 실력자겠지만 세 치 혀를 놀려야 할 때는 한없이 약하단 말이었다.

“자 그럼 이걸 다 종합해서 다시 보죠.”

“아……. 네.”

“크립토코커스가 물론 기회감염을 주로 일으키는 병원균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정상 면역 환자에게는 아예 병을 일으키지 않는 병원균일까요?”

“그럴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기회감염이란 숙주가 약해졌을 때 그것을 기회 삼아 감염을 일으키는 개념을 뜻했다.

비겁한 놈이란 건데…….

이런 놈은 평소에도 조심하는 게 맞지 않겠나?

비유가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기회감염을 일으키는 놈들 중 드물게 정상 면역 상태에서도 감염을 일으키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우연히’라는 말을 모든 과학자가 참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종종 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네,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뇌간에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보고된 적이 있죠. 이렇게 뇌종양과 헷갈리는 형태를 띄진 않았지만요.”

“어……. 하지만 모양이…….”

“면역이 떨어진 환자에서 발생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주로 보는 감염 형태와 다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면역 저하 환자에서는 전격적으로 감염이 번지니까, 초기 형태의 감염이나 이런 식으로 갇힌 형태의 감염은 볼 수 없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을 해 보면……?”

“아……. 그렇구나. 아……. 정상 면역이라서 오히려 뇌간 감염이 일어났을 때 이런 식으로 보이는군요.”

“네. 그렇죠. 물론 더욱 정확한 진단은 수술장에서 조직 검사를 해 보거나 물리적인 제거를 해 보고 나서 내려야 할 겁니다. 하지만 계획은 감염에 준해서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 약도 좀 써 보고요.”

“아…….”

수혁이 말은 이렇게 하지만 감염일 거라 확신하고 있다는 것쯤은, 구세정 교수가 제아무리 수혁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랬다.

뿐만 아니라…….

‘확실해. 이건 이수혁 교수 말대로야. 뭐지……. 이건?’

완전히 설득된 탓이기도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