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89화 (1,289/1,303)

1289화 휴가 (1)

"어, 아빠."

"응, 여기 앉아 봐."

"뭐...... 아."

수혁은 이현종이 있는 곳, 그러니까 센터장실로 향했다.

이현종뿐만 아니라 신현태도 있었다.

심지어 신현태는 당연하다는 듯 주인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이 말이었다.

이현종은 그 옆에 작은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있었고, 수혁 또한 옆에 앉을 수 있었다.

"대훈이는 저기 앉을래?"

이현종이야 안대훈이 서 있건 말건 딱히 신경 쓰지 않겠지만 신현태는 아무래도 좀 더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아......."

안대훈은 신현태가 가리킨 곳을 돌아보았다.

더 좋은 의자긴 했다.

소파니까.

하지만 회의실 쪽이었다.

이들끼리 뭔 얘기하는지 결코 들을 수 없는 자리다. 이 말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서 있겠습니다."

"근데 우리 휴가 얘기할 건데.”

"저도 가려고 합니다."

"학회에 뭐 냈어?"

"세 개 냈습니다."

"허."

신현태는 안대훈의 말에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안대훈이 미친놈인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수혁과 연관이 되는 일에는 더더욱 그렇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 학회에 세 개나 냈어?

"몇 개나 됐는데?"

"두 개요."

"허."

안대훈의 일정은 빈말로도 편하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일단 통합진료센터라는 곳 자체가 환자가 엄청 몰리는 곳 아닌가.

물론 이현종과 이수혁이라는 두 미친 교수가 있다 보니 해결하는 속도가 쌓이는 속도보다 빠르거나 비슷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펠로우 레벨이 놀아도 된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현종, 이수혁은 둘 다 없는 환자도 만들어서 보는, 말 그대로 창조 진료 영역의 개척자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교육은 또 얼마나 빡세던가.

조태진의 야심 찬 계획이 아직 시동도 걸리지 않은 상황이지만, 통합진료센터만큼은 조태진 학장표 일정이 풀가동해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교육 일정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주도하면서........ 동시에 국제 학회에 세 개를 내서 두 개를 받아?'

이거 솔직히 팽팽 노는 새끼들한테 시켜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러십니까?"

그걸 해 놓고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건........

어렵다기보다는 그냥 미친 짓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신현태는 뭐라 말을 보태려다가, 이현종, 수혁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참. 여기 통합진료센터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 않던가.

통합진료센터에 왔으면 이쪽에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들 미친놈들인데 그거 볼 때마다 미쳤네 어쩌네 하면 감정 소모만 될 뿐이지 않겠나.

다행히 신현태는 이런 놈들한테 둘러싸인 지도 오래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친하게 지낸 지도 오래고 심지어 솔직히 좋아하기까지 하고 있다 보니 순식간에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작은 한숨과 함께, 신현태는 본인이 짜 둔 여행 계획을 읊기 시작했다.

"일단 금토일 학회거든? 이러면 학회 휴가가 오고 가고까지 해서 5일까지 나오잖아. 목요일에서 월요일까지는 학회 휴가야. 비행기 표는 각기 준비하도록 하고."

"그래. 그래야지.”

"네, 삼촌."

"그렇게 하겠습니다."

중간에 끼어든 안대훈이 조금 거슬렸다.

아직 휴가 가는 것도 확정되지 않은 놈이지 않나.

하지만.......

통합진료센터에서 실력이란 곧 광기와 같은 말이 된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애들이 다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실력도 느니 무시할 수 없는 격언이 되었다.

다들 미쳐 돌아간다, 이 말이었다.

실제로 김인수 걔가 얼마나 얌전했던 친구인가.

'돌았지, 이제는'

자기는 혼자 늙어 죽어도 이현종 교수님 수발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을 혼잣말도 아니고 학회 회식에서 했다.

다 같이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면 좀 심한 아부쟁이가 되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친구들 앞에서 주절거리는 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걔만 그런 게 아니라 장종우, 이태원, 김성진, 우하윤 다 그렇다.

오죽하면 우창윤 교수가 딸애 뺏어 간 것도 이해하고, 시집도 거기 가게 된 것도 이해하는데 왜 애를 미친 애를 만드냐고 지랄했겠나.

하지만.......

-제가 질 거 같습니까?

안대훈은 좀 다르다.

만들어진 광기로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광기라는 게 있다. 세상에는

그렇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이놈이 휴가에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보니 안대훈이 중간중간 끼어드는 것도 딱히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뒤에다 휴가를 4일만 붙이면 일요일에 돌아올 수 있어."

"오........ 이렇게 길게 쉬어도 되는 건가?"

"불법 아니에요? 10일을 쉰다고?"

"제가 법무부 쪽에 알아보겠습니다."

해서 말을 이었더니 기이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 사실 반쯤은 예상하긴 했더랬다.

실제로 대학 병원에서만 있었던 놈들은 휴가 쓰는 데 익숙하지 않기에 그랬다.

그중에서도 알짜배기들만 모아 놓은 통합진료센터 쪽 놈들이야 이러는 게 당연했다.

"아니, 합법이야. 애초에...... 교수들은 휴가 일 년에 21개라고."

"그거 그냥 말만 그런 거 아냐?"

"네, 저도 다 써 본 적이 없는데."

"저는 휴가 가는 게 딱히 좋지 않던데요. 교수님들도 없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반응이 온당한가 싶었다.

다음에 노무사 초청 강연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신현태는 말을 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토요일에 잡자고 그럼 와서 하루 쉬고 올 수 있으니까"

"왜 쉬어. 그동안에 어려운 환자 쌓였을 텐데.

"저는 그거 기대하고 가는 것도 있어요"

"저는 교수님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여전히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 새끼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걸 선택한 마당인데.

"아무튼, 예약을 그렇게 하고 호텔은...잘 봐. 우리 학회가 LA거든? 학회장이 시내에 있으니까 일단 금토일은 호텔 거기다 잡아 놨어."

"잡았어?"

"전에 카드 받았지."

"누구?"

형.

이라는 말을 신현태는 참았다.

암만 봐도 모르는 거 같은데 굳이 말해서 뭐 하나.

"병원이지, 뭐."

"아. 좋네. 원장은."

"요즘 제일 돈 잘 벌어다 주는 센터 교수님 두 분 모시고 가는 건데 돈 안 쓸 이유가 있나."

"하긴, 우리가 요새 잘나가긴 해?"

실제로 이현종 카드로 다 긁는 것도 아니긴 했다.

병원에서도 일부 지원이 나오고, 당연히 신현태 개인 카드도 쓰였다.

거짓말은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 신현태는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여기 호텔 좋아. 옆이 바로 학회장인 것도 그렇고 먹는 것도 대박이야. 이 앞에 넷플릭스 파이널 테이블인가? 거기 우승한 집도 있고."

"오......... 맛있겠다."

"좋네요. 거긴 혹시 예산 빗나가면 제가 살게요"

"흐윽."

일단 LA 내에서의 식사 계획부터 떠들었다.

다들 먹는 게 인생 최대 행복 중 하나인 사람들 아닌가.

조금은 슬픈 일일 수도 있는데.........

그 외에 다른 취미 활동을 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수혁은 몸이 좀 불편하기도 하고.

뭐 정작 당사자들은 불행한 인생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긴 했다.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다음에 디X니 랜드 쪽으로 이동해서 거기 호텔에서 묵을 작정이야. 이틀. 이틀이면 되겠지? 월드랑 랜드 하루씩 해서."

"음........ 근데 우리가 꼭 디X니 랜드를 가야 하나?"

"그래도 가 봐야지. 스타워즈 재밌대. 형은 옛날 것도 다 실시간으로 본 거 아냐?"

"그건 맞지. 거긴 가야겠네."

그다음 일정은 디X니 랜드와 유X버셜 스튜디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와이너리 관광 등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렌트가 문제인데....... 네 명이라고 승용차 빌리려고 했더니 짐 싣는 게 좀 문제더라고. 그래서 큰 걸 빌리려고 했는데 이건 또 운전이 빡세서."

"아........ 네가 하면 되잖아."

"나? 나 요새 기사 써서 운전 잘 안 해......."

"수혁이........ 수혁이가 운전하면 속 터져서 뒤지는데."

"왜요? 정속 운전이 어디가 어때서."

운전.

미국처럼 땅덩이 넓은 곳에서의 운전은 필수라 할 수 있지 않겠나.

문제는 같은 이유로 운전이 힘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장거리를 쉴 새 없이 뛰어야 하니 당연했다.

"저 국제 면허증도 있고, 미국에서 운전해 본 경험도 많습니다."

"그, 그래?"

"네. 혹시 이럴 날이 있을까 해서 따 놨습니다."

그때 안대훈이 손을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따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허나 표정이 워낙 당당했기 때문에 표정 분석의 달인인 바루다조차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사실 안대훈의 광기가 더해져 갈수록 분석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

"대단하구나!"

"대훈이가 영어도 잘해요, 이제"

자신이 있기도 했다.

영어도 못했다가 잘하게 되지 않았나.

수혁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진 못했지만, 바루다 없이 해냈다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수혁보다 더 대단한 감도있었다.

'운전은 거짓말이 아냐'

게다가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GTA5.........

LA 배경의 게임이지 않나?

거기서 운전을 꽤나 해 봤더랬다.

게임 할 시간이 어딨냐는 말이 나올 텐데, 솔직히, 하려면 다 할 수 있다.

남들과는 달리 하루 20, 30분씩밖에 못 하다 보니 오히려 더 빨리 질려 버려서 많이는 못 하기 마련이지만

'그래, 나는 떳떳하다.'

대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교수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대훈이가 발표도 두 개나 하고 운전도 할 줄 알고 하면 역시 얘가 낫겠는데?"

"나도 뭐........ 사실 이 녀석이 수혁이 있으면 수발도 잘 들잖아."

"수발들라고 데려가는 거야?"

"아냐?"

"맞긴 하지. 그래도 입 닦으면 안 되니까........ 야, 대훈아."

이미 가는 건 기정사실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훈은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득의양양하게 나머지를 바라보았다.

"네, 말씀하소서."

"영어는 이런 말 잘 없지?"

"고어 말고는 없을 걸....... 아무도 안 쓸 거야."

"그래, 그럼 됐지. 넌 돈 한 푼 없이 가는 걸로 하자. 비행기 표도 사지 마."

"아...... 아니, 그건.......”

"인마.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닌데 교수 수발드는 게 당연하겠냐?"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만."

"알지, 아는데,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꼭 이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해 주기까지 하기에 대훈은 수혁과 이현종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정이 되었다고 해서 변동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김인수나 김성진 등등도 진심으로 달려들고 있었으니.

하지만.......

"미쳤구나, 안대훈은."

모의 발표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안대훈이었다.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났냐면, 나머지 모두가 무릎을 꿇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가을 휴가 4인팟 결성이 완료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