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91화 (1,291/1,303)

1291화 휴가 (3)

“사위.”

우창윤은 산부인과 과장의 말을 떠올리면서 수혁을 불렀다.

“네?”

수혁은 생맥주를 330이 아니라 500으로 먹은 상황이었다.

그게 뭔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입가심용인 양이 어떤 사람에게는 만취하기에 충분한 용량일 수 있지 않겠나.

효소 차이가 만드는 차이인데, 수혁은 그 효소가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었다.

우창윤은 붉다 못해 시꺼먼 느낌까지 주게 된 수혁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게 아니라 심폐소생술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 괜찮은 거야?”

“아, 오빠 원래 그래. 얼굴만 그렇지, 정신은 멀쩡해.”

“진짜야?”

“네네. 괜찮습니다.”

“아니, 술은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한 잔 했습니다, 한 잔.”

“한 잔…….”

우창윤 교수는 수혁이 이런 걸로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의학적으로 이럴 수 있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본인도 술을 잘 먹는 편이 아니라서 더 그랬다.

‘뭐……. 정신이 멀쩡한 거 같아도 실제론 그럴 수가 없지.’

더욱이 우창윤 교수는 기본적으로 좋은 의사긴 하지만 동시에 또 야망도 있는 사람 아닌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소시오패스로 남았을 거란 친구의 말도 있을 정도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이건 이용할 만하겠어.’

상대가 예비 사위임에도 불구하고도 이럴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사위.”

“네.”

“혹시 요새 수술방 좀 들어가나?”

“아……. 네. 자주는 아닌데, 가끔요.”

일단 들어간다는 것까지는 알았다.

확실히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최근 태화에 다방면에서 밀리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엄밀히 말해 피해망상에 가까운 가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가 되었건 겸사겸사 온 참이고 수혁을 데려다주려면 차 타고도 앞으로 10분 이상 가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좀 슬픈 말이지만 달리 이 외에 수혁과 할 만한 얘기도 아직 없기도 했다.

“그래, 그렇구나. 주로 어떤 과?”

“아……. 원래는 외과만 그랬어요. 근데 요새는 신경외과, 산부인과도 좀 들어갔어요.”

“그렇구나.”

이야기는 공교롭게도 대충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그래 봐야 순 우연이겠지만…….

‘내 사위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렇지, 토템도 될 수 있을 리가 있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토템이라니…….

이거 뭐 군대 같은 얘기다.

총 쏘는데 내과 의사 데려다 놓는 건 양반이다.

이비인후과, 심지어 정신과 의사 데려다 놓고 사고 안 나길 바라지 않던가.

막말로 총 맞은 사람한테 지금 심경이 어떠냐고 물을 것도 아닌데 정신과 의무 지원이라니.

한정된 자원 때문에 하는 일이라지만…….

‘아니, 아니지.’

토템이란 단어 때문에 잠시 생각이 급발진했다.

우창윤은 생각을 고쳐먹고 수혁과의 대화에 다시 집중했다.

“왜 들어가는거야?”

“글쎄요. 자꾸 들어와 달라고 해서요.”

“그래? 어떤 이유로? 말을 안 해 주나?”

“아……. 뭐 제가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고 하는데……. 사실 태화 의료원 마취과도 대단히 우수한 수준이거든요? 위험한 환자면 또 모르겠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부를 때가 있긴 해요.”

“그래?”

뭐지 싶었다.

아선이 최고긴 하다.

지금이야 이수혁, 이현종이라는 재앙에 가까운 천재 듀오 때문에 잠시 밀리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역시나 아선이 최고다.

‘최고여야 하고.’

그렇다고 태화가 모자란가?

아니다.

잠시라도 아선을 누를 수 있을 만큼이나 대단한 놈들이지 않나.

그런 놈들이 괜히 토템 돌림병이라도 돈 것처럼 수혁을 부르지 못해서 안달일까?

뭔가 있는 거다.

진짜로 실존하는 뭔가가.

“흐음……. 네가 볼 때 그 사람들 실력은 좀 어때? 느는 거 같아?”

“아……. 뭐 일단 태화 교수니까요. 다들 원래도 잘하시죠.”

“으응.”

해서 더 캐려고 물었다가 원치 않는 답을 듣게 되었다.

일부러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시큰둥한 반응이 튀어 나가 버렸다.

다행히 수혁은 취하기도 했거니와 딱히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도 아닌 만큼 여상한 태도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요새는 더 잘하는 거 같기도 해요. 그게 좀 이상하긴 한데……. 저도 자꾸 수술 부르고 그러면 귀찮긴 하거든요.”

“어어, 그래서?”

귀찮으면 안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메커니즘이야 우창윤 교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토템은 아닐 텐데…….

그렇다고 해서 달리 설득력 있는 방법을 떠올리기엔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랬다.

하지만 당사자인 수혁이라면, 심지어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 천재인 수혁이라면 알지 않을까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뭐……. 굳이 긁어 부스럼 일으킬 거 있나 싶더라고요.”

“으응……?”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려운 케이스를 세 개씩 가져오시고 수술방에 한번 들어와 달라고 하시거든요.”

“으응……?”

일반적으로 어려운 케이스 들고 오는 건 짐 던지는 거 아닌가?

그냥 환자 던져도 힘든데 어려운 환자를 던지는 건 진짜…….

‘아니, 아니지. 얘는 이수혁이야.’

통합진료센터에 수맥이 흐르는 건지 아니면 이수혁이 수맥 그 자체인지는 몰라도 거기 있는 놈들은 다 미쳐 가고 있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운 하윤마저 그렇게 되지 않았나.

‘저거……. 집 말고 병원으로 가자고 할 수도 있어.’

수혁과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수혁과 이현종 없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두근댄다고…….

술도 안 처먹은 맨정신으로 어제 떠들었다.

“그럼……?”

“가만두면 어려운 환자 들고 오는데 뭐 하러 캐물어요. 그랬다가 이거 끊기면 아쉽잖아요.”

“허…….”

“아무튼, 감사합니다. 저 여기서 내릴게요. 하윤아, 영통할게!”

“네, 오빠!”

통합진료센터 놈들 이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학회에 강제로 낑겨 들어가 팔자에도 없는 이사직까지 하게 된 우창윤 교수는 다른 병원 교수 아니라 태화 의료원 다른 과 교수들보다도 더 잘았다.

하지만 워낙에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일이다 보니 떠올릴 때마다 스턴 비슷한 게 찾아왔더랬다.

해서 잠깐 정신 놓고 운전만 했더니 어느새 수혁이 사는 오피스텔이었다.

“어어, 잘 가라.”

오피스텔 또한 언제 봐도 참 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 강남 오피스텔들이야 대개 세련된 외양을 지니고 있다지만, 이건 두바이 왕자가 괜히 왕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말로만 럭셔리, 럭셔리 떠드는 주거 단지와는 달랐다.

애초에 럭셔리라는 단어 자체가 여긴 없었다.

굳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가 없으니까.

‘되게 좋긴 좋더만.’

신혼집을 그냥 여기다 차려도 될 터였다.

애 키우기엔 주변 환경이 좀 우려되지만…….

수혁이나 하윤이나 강남 거리에서 노는 것보다는 병원에서 환자 보는 거나 좋아하는 놈들이지 않나.

수혁도 여기가 좋아서 산다기보다는 그냥 누가 살라고 줬으니까 사는 걸 거다.

‘그래……. 우리 사위 잘났지…….’

어찌나 잘났는지 수술 실력도 키워 줄 수 있다는 것이 일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위이자 아선의 기조실장인 나는 어째야 하는가.

‘어쩌냐, 이거……?’

잠시 고민하고 있으려니 차가 멈춰 서 있는 동안 조수석으로 옮겨 탄 하윤이 입을 열었다.

“뭔 생각해?”

“아……. 아니. 사위 생각이지, 뭐.”

“수술? 실제로 요새 오빠 자꾸 귀찮게 하긴 하던데. 설마 그거……. 아빠 아선 프락치야?”

“아니…….”

‘프락치가 아니라 아빠가 아선이란다’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까지 합세해서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냥 태화로 가면 안 되냐는 말까지 듣고 있지 않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가정도 중요하지만…….

아선에서 받은 게 대체 얼마인데 배신을 때린단 말인가.

“그럼 그냥 말하지 마.”

“어……. 어차피 이걸 어떻게 그럴싸하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지.”

“잉…….”

“다시 병원 가자. 나 환자 볼 거야.”

“어…….”

“아빠도 같이 볼래? 교수님들 없어서 아빠 와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난 아선인데?”

“우리도 아선 아닌데 아선 가서 진료 보잖아.”

그거야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예전엔 했었더랬다.

하지만 그 둘이 있는데 왜 간단 말인가.

애초에 거기서 해결이 안 된 환자라면 우창윤이 가 봐야 답이 없기도 하다.

“없지? 이현종 교수님도.”

“어? 어어. 이기자 교수님이랑 데이트하러 가셨지.”

“그래, 그래. 그럼 가 보자.”

빈집털이라면 어떨까.

우창윤은 묘한 배덕감을 느끼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기분뿐일 테지만 갑자기 머리가 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우창윤이 앞으로 일주일간 매일 빈집털이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동안 수혁은 술 취한 채 영상 통화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가 다음 날 비행기에 올랐다.

“환자 생길까요?”

“매번 생길까?”

“기도하겠습니다.”

“그런 기도는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수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훈은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신이 분별력이 있어서.

그렇게 무사히 LA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빌린 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학회는 다음 날인 데다가 당일이라 해도 발표에는 도가 튼 인물들이다 보니 여유가 넘쳐 흐르는 상황이었다.

“이게 파이널 테이블 우승?”

“응. 예약하는 거 진짜 힘들었다.”

“잘했네, 원장님. 하하. 확실히 다르긴 한데?”

“그렇지? 아니, 방송 보는데 침 나와서 혼났다니까.”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다음 날부터는 학회에 참석했다.

본 목적은 휴가에 있었지만, 다들 공부벌레들이지 않나.

막상 학회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평생 공부 못 해서 한이 맺힌 사람들이라도 된 양 굴었다.

발표?

“와…….”

“젊은 사람이 강의 잘하네.”

“저 사람이 이수혁이잖아. 코비드 때.”

“아……. 그 사람이구나? 뉴욕 마운틴 시나이 병원 초토화시켰다는.”

“어어. 우리 병원에서도 스카우트하려고 안달났대.”

“그럴 만하네.”

수혁을 필두로, 이현종, 신현태 모두 인상적인 강의를 해냈다.

“저 사람은 누구지?”

“글쎄. 연륜 있어 보이는데…….”

“일단 강의 수준도 그렇고……. 교수 중에서도 꽤 연배가 있어 보이는데 왜 처음 보는 거 같지?”

안대훈조차 강의 들은 사람들이 수군댈 만큼이나 대단한 강의를 해내고야 말았다.

“펠로우 대상 젊은 의학자상 수상자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수상자는……. 태화 의료원의 닥터 안입니다!”

“잉?”

“나이 속였다!”

상 받을 때 잠시 소란이 있긴 했다.

동양인은 보통 젊어 보이기 마련인데 서양인보다도 더 늙어 보일 수는 없으니 이 사람은 펠로우가 아닐 거다라는 의견과 펠로우가 했다기엔 너무 강의 내용이 훌륭했다는 의견이 합쳐져 벌어진 일이었다.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물론 헤프닝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수상까지 해서 기분이 최고조로 향한 일행은 본격적인 수혁의 제대로 된 첫 해외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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