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92화 (1,292/1,303)

1292화 휴가 (4)

“저기 이수혁 교수님!”

“한번 얘기만 들어 보십쇼!”

“어어……. 어디 가셔.”

이번 학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건 네 명 전부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그러나 스카우트 제의 대상이 된 건 여전히 수혁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이야 이미 심장 학회에서 대가가 된 사람이고, 신현태는 태화의 현직 원장이지 않나.

여전히 한 직장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정년 퇴임하기 전까지는 스카우트 대상이 되기 어려운 법이었다.

‘저 사람은 어때?’

‘정보가 없어…….’

‘잘하긴 하던데, 발표하는 거 보니까.’

‘그렇긴 한데……. 나이도 얼굴도 모두 불명이야.’

그러한 기준에서 보면 사실 안대훈이야말로 스카우트 대상으로 적합할 테지만, 어리다고 다 스카우트하는 건 아니지 않나.

능력을 보여야 했다.

그것도 이사회에서 다 인지할 만큼의 능력을.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단지 논문 작성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 진료와 교육 등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 국내가 아닌 외국인이 이사회가 욕심낼 만큼의 능력을 보이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 노골적으로 아니, 노골적인 것도 넘어서 천박해 보일 정도로 노력 중인 사람도 있었다.

백지 수표를 툭 하고 떨어뜨렸으니 뭐…….

“아,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희는 미 전역에 브랜치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환자 중 어려운 환자에 대한 원격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오.”

“수혁아, 일단 가자.”

“아, 네.”

그거까지는 이현종, 신현태 모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관심없다는 사람만큼 돈에 미친 사람 없다지만, 수혁은 진짜라서 그랬다.

엄밀히 말하면 이미 본인이 원하는 수준의 삶을 영위하기엔 충분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초연해진 것이긴 하지만…….

하여간 저따위 수표로는 마음을 뒤흔들 수 없었다.

‘브랜치 원격은 위험하다.’

‘알지, 형.’

‘귀 막어.’

‘이미 막았지.’

‘굿.’

하지만 환자 볼 수 있다는 얘기는 안 된다.

그건 수혁을 통으로 뒤흔들 수 있는 얘기였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수혁은 그 말이 있자마자 ‘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나.

다행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체격이 제일 작은 사람이 수혁이라는 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술을 받았다 해도 한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다 보니 질질 끌고 나가기 상당히 쉬웠다.

“아니……. 지금 얘기 나누시려고 한 거 같은데요!”

“나중에, 나중에!”

“그럼 명함이라도 받아 주십쇼!”

“나중에, 나중에!”

“에잇.”

“이런 미친.”

사실 나이 든 성인이 타의에 의해 끌려가는 장면은 빈말로도 보기 좋다고 하긴 어렵지 않겠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이 말이었다.

스카우트 실적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결정체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스카우터들조차 지금만큼은 망설이고 있었다.

허나 딱 하나 앞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는데, 마운트 사이나 병원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그는 놀라운 실력으로 명함을 날려 수혁의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현종과 신현태, 심지어 안대훈조차도 그 명함만큼은 빼내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그랬다.

‘우리 병원 회장단이 원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사실 던진 사람도 좀 놀라긴 했다.

어제까지 계속 기도해서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진짜 절박하긴 했더랬다.

‘참……. 마운트 사이나의 스카우트 메일하고 연락이 이렇게까지 씹힌 적이 있었나……?’

본래 스카우트 제의라는 게 이렇게 대면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않겠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19세기라면 또 모르겠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전화 또는 이메일이라는 신문물이 나온 덕에, 대면 만남은 이미 어느 정도 간을 본 후에나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수혁만큼은 예외였다.

-안녕하세요, 이수혁 교수님. 마운튼 사이나에서 스카우트 제의드립니다.

처음 메일은 일반적으로 보냈다.

근데 읽씹당했다.

해서 몇 번 더 보냈는데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운트 사이나입니다. 원하시는 연봉 제시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마운트 사이나입니다. 최소 연봉 300만 보장합니다.

조급해진 담당자는 거의 무슨 피싱 메일 비슷한 제목으로 폭탄 드랍까지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아, 답장이 오긴 했다.

-관심 없어요.

짤막하게.

그때 보냈던 메일에서 제시한 연봉이 350만 달러였고, 거기에 더해 집, 차, 기사에 각종 편의까지 다 봐주는 조건이었는데도 그랬다.

한국이랑 똑같이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한국에서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왜 가야 되냐는 답이 왔었다.

듣고 보니까 또 그렇긴 해서 수긍이 되었지만…….

아무튼, 맡은 바 임무가 있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전미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저 사람은.’

이 새끼가 대체 어떤 새끼길래 이렇게 콧대가 높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마운트 사이나 병원의 의뢰를 몇 번인가 받았었는데, 그때마다 성공한 건 아니었어도 일단 만나는 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러시아 최고의 내시경 의사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통역사까지 붙여 주는 조건으로 지금 뉴욕에서 일하게 되기도 했더랬다.

물론 더 뛰어난 의사가 등장하자마자 팽당해서 지금은 다시 돌아갔지만…….

그만큼 마운트 사이나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전 세계 어딜 가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을 당하니 불만이 안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근데 진짜 천재야, 이 사람은…….’

허나 오기로 알아본 수혁의 실력은 진짜였다.

아니, 오히려 마운트 사이나에서 알고 있는 것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 가네.”

“하씨…….”

“태화에 꿀이라도 발라 놨나…….”

“영어를 못하면 또 몰라. 저렇게 잘하는 사람이……. 미국 오면 훨씬 더 부유하게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수혁은 이미 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이번 제안도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거의 모든 스카우터의 머릿속에 엄습했다.

벤X 스프린터.

저 큰 차를 타고 휴가라니.

이미 한국에서도 너무 부유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교수님들. 걱정 마시고 주무시죠.”

그 커다란 차의 운전대를 잡은 건 역시나 안대훈이었다.

오기 전에 나름 운전 연습을 했더랬다.

시간이 없다 보니 직접 하진 못해도, 미국 도로 주행 유X브도 보고 또 주차 시뮬레이션도 하고, 무엇보다 큰 차 주행 감각에 익숙해지기 위해 유X 트럭이라는 게임도 깔아서 해 봤다.

“아니, 불안한데.”

“왜요. 잘 가고 있는데.”

“아냐……. 너무 불안해.”

수혁과 신현태는 그런 대훈을 믿고 뒷자리에 탔다.

애초에 이 벤X 스프린터라는 차가 뒷좌석이 편한 자리 아닌가.

그게 당연한 건데, 굳이 조수석을 고집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현종이었다.

“교수님…….”

“너 인마. 미국 교통 법규 잘 알아?”

“네?”

사고가 날까 봐 무서워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미국 경찰이 무서웠다.

한국에 있을 때도 경찰만 보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덜덜 떨고 하지 않았나.

평소에도 그런 사람인데 하필 미국 와서 머리 잠깐 식힌다고 유X브 돌렸는데, 구글이 검열이라도 하는 건지 뭔지 미국 영상이 피드에 막 떴더랬다.

그중에서도 이현종이 자꾸 경찰 얘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미국 경찰이 누군가를 제압하는 영상이 떴는데 그 후로 내내 이 상태였다.

“내가 공부를 해 봤는데……. 여기서는 너무 느려도 잡아. 지금 몇으로 달리고 있어.”

“음……. 잉? 50? 이거밖에 안 되나?”

“야야! 고속도로 진입했는데 이러면 잡지, 인마! 100으로 맞춰! 크루즈 모드 있잖아!”

“아, 네. 죄송합니다.”

“이거 이러니까 내가 불안하지, 인마.”

“네네.”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다면 마냥 불안해하는 대신 대비를 한다는 점이었다.

평생 공부를 해 온 사람답게 이번에도 교통 법규를 달달 외웠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도 외웠다.

예를 들어 경찰이 세웠을 때 어딜 뒤적거리고 있으면 총 맞을 확률이 있으니 반드시 핸들 위에 두 손을 얌전히 둬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100으로 맞췄습니다.”

“좋아, 잘했어. 아……. 근데 좀 그런데.”

“왜요?”

“원래 이 길이 잘 막히는데……. 차가 너무 없어. 이렇게 되면 경찰이 꼭 나온다던데. 저, 저봐라. 저기 있잖아.”

“아……. 그렇네요. 그래도 저희는 속도 맞춰서 가고 있으니까요. 옆에 차가 문제죠.”

“그러네. 이놈은 대마라도 빨았나. 왜 이렇게 느리게 달려?”

그렇게 대비를 한 덕분일 터였다.

이현종이 경찰을 보고도 불안해하는 대신 옆에 차를 보면서 꾸짖을 여유까지 부릴 수 있는 건.

왜 왜왜애앵 왜애애앵-

그때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니지?”

“아닙니다. 보십쇼.”

“그래.”

상향등도 깜빡깜빡하고 있다 보니 천하의 이현종도 불안해져서 안대훈과 계기판을 봤는데 별 잘못은 없어 보였다.

해서 안심한 채 달리길 몇 분이나 되었을까?

돌연 앞에도 경찰차가 하나 더 나타났다.

왜 왜에에 왜에에에엥-

사이렌을 울리면서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 타고 있는 차 앞을 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

또 한 대의 경찰차가 나타나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데, 경찰이 창문을 내리고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야야! 빨리 세워! 이러다 총 맞아!”

“어…….”

“뭐가 ‘어’야 새꺄!”

“아, 알겠어요.”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세우라니 세웠다.

똑똑.

경찰이 다가와 문을 두드리고, 안대훈은 얌전히 앉아서 창문을 내렸다.

안을 슥 훑은 경찰은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계기판을, 그중에서도 단위를 가리켰다.

“아, 이런.”

“이런 멍청한 놈아! 시속 100킬로로 달리랬지, 시속 100마일로 달리랬어?”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다 보니 보자마자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휴. 빨리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인마!”

“네네.”

“네네가 아니라!”

“네.”

허나 반응이 좀 격했는데, 너무 겁이 난 이현종이 안대훈의 어깨를 퍽퍽 소리가 나게끔 때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경찰이 밖에 서 있던 다른 경찰에게 눈짓을 보냈고, 조수석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현종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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