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93화 (1,293/1,303)

1293화 휴가 (5)

안대훈은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눈이…… 돌아갔다.’

뭐…… 알 만한 상황이긴 했다.

이 사람 이거 평소에는 대단히 강직해 보이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공권력 앞에서만큼은 취약한 모습만 보여 주는 사람 아니었던가.

심지어 뭔 잘못을 한 상황이 아닌데도 벌벌 떨던 양반이다.

그런 사람이니만큼 지금은 뭐…….

“아이구, 이 새끼 이거! 어?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너무 무서워서 사방이 안 보이는 듯했다.

거의 발광을 해 대는데…….

학회장 가는 길이었다면 양복이라도 입고 있었을 테니 좀 나아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디X니 랜드 가는 길이다 보니 하와이안 셔츠 차림이었다.

말이 하와이안이지, 어떻게 보면 5공 시절 깡패들이나 입던 화려하고도 복잡한 패턴 남방 같기도 했다.

“형, 형. 너무 소리 지르지 마. 그러다 진짜…….”

“안 지르게 생겼냐! 어?”

하여간, 너무 소리를 질러 대는 바람에 뒷자리에 앉아 편안히 숙면을 취하던 수혁과 신현태도 깨 버렸다.

우선 신현태가 차분히 이현종을 말리려 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사실 신현태도 소용이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릴 때 뭐……. 어디 안기부에라도 끌려간 경험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늘 경찰만 보면 난리 법석을 피워 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안대훈은 자신을 멈춰 세운 경찰과 대화를 시도 중이었다.

다행인 것은 상대 경찰이 차량 및 안에 탄 사람들을 보고 아, 이 사람들 관광객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판단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안대훈이 자신이 호언장담했던 대로 영어가 꽤나 능숙해진 덕도 있었다.

“제가 이거 단위를 헷갈려서요.”

“아……. 네, 이해합니다. 하지만 경고를 듣지 않고 계속 달리셔서요.”

“네네……. 죄송합니다.”

“운전 면허증 좀 볼 수 있을까요?”

“면허증…….”

안대훈은 자신도 모르게 반바지에 달린 주머니 위쪽을 더듬거리다가 이현종의 말을 떠올렸다.

-미국 경찰은 주머니에 손 넣으면 쏜다고!

어찌나 반복적으로, 또 커다란 소리로 외쳐 댔던지 그사이에 벌써 머릿속에 인이 박인 것 같았다.

퍼뜩 제정신이 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벌써부터 총 맞은 기분이랄까.

“뭐 해요?”

물론 당사자인 경찰은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숨을 헐떡거리나 하는 얼굴이었다.

“인마! 주머니에 손은 왜 갖다 대!”

그러곤 옆에서 여전히 소리 지르고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안대훈의 어깨를 때리고 있는 이현종을 노려보았다.

‘관광객이…… 아닌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보통 관광객이면 기분이 좋아야 정상 아닌가.

이건 편견일 수도 있는데 그중에서도 동양인 관광객들은 꽤 조용한 편이었다.

사진은 많이 찍지만 소란을 피우거나 하진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헌데 이건…….

‘근데 문신은 없네.’

그나마 손이 나가지 않은 건 다들 몸이 깨끗해서였다.

무엇보다 뒤에 탄 젊은 친구는 옆에 둔 지팡이로 미루어 보건대 다리가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바지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다리 굵기가 조금이나마 차이가 나지 않은가.

언제고 총격전으로 벌어질 수 있는 미국 상황상 차 안에 타고 있는 승객 전원을 주의 깊게 살피는 훈련을 받게 되는데, 그게 지금도 쓸모를 입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저……. 제 운전 면허증이 조수석 앞에 함에 있는데 그거 빼도 될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대훈이 이렇게 물었다.

인상만 보면…….

솔직히 어디 마피아라고 해도 믿을 만한 놈이었다.

단순히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조차 긴장도 안 하고 여유롭게 웃는 게 그랬다.

밖에는 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있지, 옆에는 두들겨 패는 보스가 있지.

근데 이렇게 웃어?

“네, 그렇게 하시죠.”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영화를 보면, 거기 경찰들은 딱히 무서워할 이유가 없어 보이긴 했다.

일단 총을 안 쏘지 않나.

심지어 한국 영화 보면 앞에서 막무가내로 개기는 경우도 있더랬다.

영화다 보니 아무래도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어어! 이놈이 미쳤나! 다라이 닫아!”

“아야. 아니, 교수님. 면허증 빼야 돼요.”

“지랄 마! 총 맞는다니까!”

“아니……. 방금 다 대화를…….”

“다라이 닫으라고!”

좋게 생각해서 면허증을 빼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조수석에 앉아 있는 반백의 사내가 문제였다.

함을 열려고 하는데 그걸 강제로 퍽 쳐서 다시 닫아 버리지 않는가!

‘저 속에 뭐가 있나……? 그걸 운전자는 모르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봐.’

‘오케이.’

이현종 쪽에 다가와 있던 경찰 또한 그렇지 않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 새끼는 좀 수상하지 않은가.

운전자를 두들겨 패질 않나.

약이라도 빨았는지 소리는 있는 대로 지르고…….

심지어 저기서 면허증 빼서 보여 달라는 분명한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쾅쾅 닫고 있다.

덜컥.

“어? 어어어!”

해서 경찰은 조수석 문을 열고, 이현종의 뒷목을 잡아끌어 강제로 내리게 했다.

“아, 아임 코리안 프로페서!”

당황한 아니, 겁먹은 기색이 역력한 이현종이 더듬거리면서 외쳤다.

영어 실력이 이보단 훨씬 대단한데…….

너무 놀라서 그런가. 그저 더듬거리고만 있었다.

“아이고…….”

그렇게 끌려 나간 이현종은 보닛에 뺨을 뭉개게 되었다.

팔은 뒤로 꺾인 상태였는데 하필이면 안대훈과 딱 눈이 마주칠 만한 위치에 있었다.

안대훈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렸다.

“아, 아임 코리안 닥터!”

그 와중에도 이현종은 소리를 질러 해명하고 있었다.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의사이고 교수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조수석에서와는 달리 너무 더듬거려서 뭔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다가 끌려 나갔는데 왜 나가서까지 또 저러고 있다니…….”

“에휴……. 우리 아빠…….”

신현태에 비해 조금 더 늦게 깬 수혁은 바루다 덕에 금세 상황 파악을 하곤 쯔쯔 혀를 찼다.

대체 왜 저렇게…….

“저, 이제 면허증 빼겠습니다.”

“네, 근데 하나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네?”

안대훈은 이현종이 사라져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라이를 열었다.

그러곤 면허증을 빼서 경찰에게 건네주는데, 경찰이 불길한 소리를 했다.

안 좋다니.

이게 그냥 한국에서 들어서 겁날 만한 얘기일 텐데 여긴 미국이지 않나.

이현종이야 지나치게 겁을 집어먹어서 저렇게 된 것이긴 한데…….

아무래도 미국 경찰이 한국 경찰보다는 무섭기 마련이었다.

경찰은 턱으로 보닛 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저렇게 밖으로 끄집어내면 단순 신호 위반으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자기 옷에 달린 보디 캠을 두드리기도 했다.

이게 다 보고가 되고 있거나 혹은 보고가 될 예정이라는 뜻이었다.

듣고 보니 확실히 단순 신호 위반으로 넘어가긴 어려울 거 같았다.

보닛에 부벼져 얼굴이 찌그러진 이현종을 보고 있으려니 확실히…….

“내일 법원으로 가셔야 할 겁니다. 약식 재판을 받으셔야 해요.”

“네?”

“벌금형일 테니까 너무 걱정은 마시고. 근데 출두 안 하면 상당히 곤란해질 겁니다.”

“아……. 어쩌죠?”

안대훈은 이건 큰일이라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신현태는 답 대신 한숨을 푹 쉬었다.

‘나야……. 미국 여행 많이 가 봤지…….’

그러곤 수혁을 돌아보았다.

얘는 관광으로 온 게 처음이지 않나.

근데 법원이라니……?

한국에서도 갈 일이 없는데……?

“오……. 신기한데? 가 보지 뭐.”

“응?”

“미국 법원을 언제 가 보겠어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근데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거죠?”

“모르겠다. 저대로 구치소 가는 거 아니냐? 아닌가 보네.”

안대훈은 수혁의 반응이 딱히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경찰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뒤에 있는 사람들 분위기 때문에라도 기분이 다시 나아진 참이었다.

얌전한 것이 확실히 관광객 같지 않나.

게다가, 그사이 이현종에게 시행한 간이 마약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왔기 때문에 이 이상 이들을 붙잡아 둘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안대훈의 맑은 눈이 미쳐서가 아니라 선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눈짓으로 이현종을 풀어 주라고 지시한 참이었다.

“벌금은 아마 1100달러 정도 나올 겁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저 사람 때문에.”

“아닙니다. 총 안 쏴서 다행이죠.”

“행색이 조금만 더 이상했어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하하.”

“네네. 아이구…….”

잠시 후, 경찰들은 다 떠나갔다.

조수석으로 돌아온 이현종은 보닛에 밀려서 그런가, 뺨에 땟국물이 줄줄이었다.

안대훈은 그가 주먹질이라도 더 할까 봐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저 조용할 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앞만 보고 있었다.

안대훈은 그런 이현종을 보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어쩔까요?”

다시 돌아가냐, 아니면 디X니 랜드로 가냐를 묻기 위함이었다.

신현태는 이번에도 본인이 답을 하는 대신 수혁을 돌아보았다.

같이 놀러 온 참이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수혁이 메인이지 않은가.

과장 좀 보태면 수혁 접대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가야지. 속도 낸 덕에 빨리 왔잖아. 잡혔어도 지연이 안 된 거 같은데?”

“그……. 센터장님 이러신데요?”

“아빠는 낙천적이잖아. 가다 보면 좋아질 거야. 언제 또 오겠어.”

“법원은…….”

“내일 잠깐 다녀와야지 뭐.”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수혁이 명확하게 말을 해 준 덕에 안대훈은 고민 없이 액셀을 밟을 수 있었다.

이현종이 다시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30분 정도 후의 일이었다.

“하아…….”

입을 연 것이지,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하진 않았다.

나머지 모두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했다.

이현종이……

이들 앞에서야 우스운 모습 보일 때가 많은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석좌 교수 아닌가.

태화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석학이라 할 수 있었다.

분야를 의학에서 전체로 넓혀도 그럴 거다.

헌데 그런 사람이 지금…….

“시발…….”

이런 꼴을 당했으니 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이제야 하는 것만 해도 이현종의 마음 수양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실제로는 그냥 그만큼 놀라서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현종은 욕을 하고도 또 5분인가 가만히 있었다.

여행 가는 와중에 이렇게 마가 뜨면 다른 누구라도 떠들 법한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차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도 침묵을 깬 것은 이현종이었다.

그는 아주 진중한 얼굴로 안대훈과 수혁, 신현태를…….

그중에서도 특히 신현태를 보며 말했다.

“이거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말하면 죽이겠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뜻을 전해 듣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뭔 소리야. 영상도 찍었는데.’

그렇다고 말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신현태는 여행보다 돌아갈 날을 더 기대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