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4화 존경하는 재판장님 (1)
LA 디X니 랜드는 두 개의 테마파크로 구성되어 있다.
좀 덜 무섭고, 아기자기한 놀이 기구들이 주로 있는 랜드와 좀 더 와일드한 느낌의 기구들이 포진해 있는 파크가 그것이다.
“누구 때문에 내일은 거의 다 날렸으니……. 오늘 들어갈 곳이 메인이 되겠는데?”
“음.”
신현태의 말에 이현종이 보여 준 모습은 정말이지, 유구무언 그 자체였다.
괜히 난리 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벌금도 100만 원 넘게 나가게 생겼고, 거기에 더해 법원까지 가게 된 마당 아닌가.
다행히 수혁이 법원 구경도 좋다고 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짜 죽을죄를 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이었다.
“파크로 가죠. 거기 카도 재밌다고 하고, 스X워즈도 있다고 하니까요. 그 뭐지……? 갤럭시 오브 X디언즈도 재밌대요.”
“오……. 수혁이 그거 다 보기는 했어?”
“비행기 타고 오면서 이번에 봤죠. 스X워즈는……. 안 보긴 했어요. 어릴 때 뭔 경주하는 거 단체로 볼 때 보긴 했는데.”
“아.”
신현태는 수혁의 말에 이 친구가 보육원 출신이었다는 걸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편견이겠지만, 수혁과 친하게 지내게 되기 전까지는 보육원 출신이라고 하면 어쩐지 어두운 사람이 떠올랐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신현태는 이럴 때 아니면 대체 언제 이현종을 놀려 보겠나 싶어서 적극 활용하는 중이었다.
“대신……. 한국에 돌아가면 비밀…… 이다?”
“당연하지, 형. 나를 뭐로 보는 거야.”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저지르고 용서받으면 되겠지 싶어서 그랬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이현종이 지금까지 저질러 온 흑역사 중에 이번 에피소드 못지않았던 것들도 많지 않나.
‘아닌가? 이 정도는 없나?’
아닐 수도 있는데…….
뭐가 중요하겠나 싶었다.
지금 너무 행복한데 꼭 깊이 생각을 해야 하나?
신현태는 눈을 반짝이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 새끼…….”
왜 저러는지 대강은 알 것 같은 이현종이 욕설을 입에 담았지만.
“하하하! 여기 진짜 좋네요!”
휠체어를 타고 입장하고도 좋아 죽는,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게 인생 최초 테마파크 입장이라는 수혁을 보고 있자니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그래……. 와서 분위기 띄워 주는 것도 일이지.’
어떻게 보면 아까 그 에피소드도 이 작업의 일환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너무 비참하긴 했지만…….
생각의 힘이랄까?
아까보단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으아…….!
무엇보다 모든 놀이 기구가 진짜 재밌었다.
반드시 입장하자마자 타라는 평이 있던 카는 진짜 레이싱을 방불케 할 만큼이나 빠르고 흥미진진했다.
스X워즈?
대기실에서부터 감탄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그 모든 경험을 특별하게 해 주는 어트랙션이라니…….
“미쳤다…….”
[또 타고 싶다…….]
어지간해서는 환자 보는 것에 비해 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편인 수혁이 이렇게 말할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뿐 아니라 바루다 또한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다.
“으, 으으!”
갤럭시 오브 X디언즈 또한 재밌었다.
10층도 넘는 건물 안에 들어가 위로 올라갔다가 추락하듯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가는 식의 어트랙션이었는데, 층 전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언급한 것 외에 다른 어트랙션들 또한 하나같이 특색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괜히 디X니 랜드가 아니라고나 할까?
“진짜 좋네요…….”
마지막 퍼레이드까지 알차게 즐기고 들어온 일행은 한국 음식 못 먹은 지 그래도 며칠이 지난 김에 북X동 순두부찌개에서 한국보다 맛있다는 LA 갈비까지 시켜 먹었다.
가격이야 한국 가격과 비교하면 사악하게 느껴질 만큼 비쌌지만, 맛은 진또배기였다.
심지어 여기 모인 넷은 딱히 그 정도 돈에 연연할 만한 형편도 아니다 보니 그저 즐거운 밤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즐거움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지진 못했다는 점이었다.
“법원이라니…….”
늘 긍정적인 수혁조차 어제와는 달리 막상 갈 생각을 하자 우울해질 정도로 커다란 문제였다.
오히려 한번 제대로 논 다음 날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미안하다……. 아빠가 할 말이 없다…….”
“하유.”
“근데…… 이놈이 애초에 속도를…….”
“그 속도 아빠가 설정하지 않았어요?”
“그, 그래. 미안하다…….”
원래 같았으면 오늘도 개장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가지 않았겠나?
심지어 디X니 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은 원래 시간보다 30분 이상 먼저 들어갈 수 있다 보니 남들 다 타고 싶어 하는 어트랙션을 한 개 내지 두 개 타고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데…….
그것도 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젯밤 늦게 놀았으니 원래도 못 가는 거 아니냔 말은 통하지 않았다.
적어도 디X니 호텔에서 투숙하는 한국인에게는 그 누구에게라도 통하지 않을 말 아닌가.
여행만 갔다 하면 아무리 게을렀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군인 빙의해서 유격 훈련이라도 하듯 움직이는 게 한국인이니 이현종의 고개는 점점 더 숙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우우웅.
그렇게 조용해진 이현종을 맨 뒤에 태운 일행은 급히 오렌지 카운티 법원으로 향했다.
그나마 경찰이 사정을 봐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더 먼 LA 법원으로 갈 뻔했다.
그랬으면 갈 때는 몰라도 돌아올 때 딱 트랙픽 잼에 걸려 기껏해야 퍼레이드나 보게 될 것이 뻔했다.
오렌지 카운티는 그에 비하면 훨씬 가까운 곳이다 보니 여유가 있긴 할 터였다.
“와……. 이렇게 생겼구나.”
일행은 법원에 들어섰다.
안쪽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거대하거나 하진 않았다.
약식 기소를 주로 처리하는 곳이다 보니 배심원 앉을 곳도 작았고, 뒤에 참석객이 앉을 자리도 작았다.
그마저도 오늘은 정말 약식 기소밖에 없는지 텅 비어 있었다.
대기실에 경범죄자들만 가득했는데, 일행은 그사이에 뻘쭘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이봐 넌 뭔 죄로 왔어?”
“소…… 속도위반.”
“잉? 총 쏜 거 아니고?”
“아니……. 진짜로…….”
“근데 왜? 원래 갱인가?”
“아니……. 의사야…….”
양옆에 앉은 사람들은 인상이 참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에 비해 순박하게 미소 지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긴 했지만, 보면 볼수록 팔자에 없는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으음.]
이현종이나 신현태 심지어 안대훈도 양옆의 사람 또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는 동안, 오직 수혁과 바루다만은 전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순번이 된 사람들이 들어갈 때마다 열리는 문 틈새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판결을 내리고 있는 판사를 보고 있었다.
땅땅.
아무리 약식이라고는 해도 판결을 내릴 때마다 망치를 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표정을 잔뜩 찡그리는 것이 보였다.
판결을 받고 나오는 사람이나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나 다들 판사님이 오늘 기분이 안 좋나 보다, 진짜 조심해야겠다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현종도 그랬다.
‘하필……. 인상도 더럽네, 저 사람.’
지은 죄가 있는 데다가, 사실상 법원에 소환된 장본인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평소의 놀라운 관찰력이나 추론 능력 모두 디버프를 받아 반의반 토막도 더 난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신현태야 원래 어디서든 진료하고자 하는 병이 없는 사람이니 넘어가고…….
안대훈은 수혁을 따라 그 병에 걸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이지만, 아무리 이현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뭐가 되었건 그 발단이 된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평소보단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픈 거 같지?’
[네. 확실히……. 손목 통증이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통증입니다.]
인상만 쓰는 게 아니라 연신 손목을 주물러 대는데, 그런다고 딱히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판사는 지금 오른쪽 손목에 파스까지 붙이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 말은 곧 근육통일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통증이 발생할 때 표정 짓는 속도나 그 정도로 미루어 보건대 저건 꽤 심한 통증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날카로운 통증이야.’
[어딘가가 찢어졌을까요?]
‘외상의 흔적은 없어 보이는데…….’
[그러니까요. 이상한데요?]
드디어 수혁과 바루다의 추론이 ‘이상하다’는 영역에 돌입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참기가 어렵게 되는 법이었다.
어느새 수혁의 머릿속에는 재판보다는 저 판사의 병이 무엇일꼬 하는 고민만 가득하게 되었다.
“다음! 미스터…… 안? 앤 리.”
이름이 불린 대훈과 이현종은 벌벌 떨며 안으로 들어갔다.
하필이면 이현종이 어제 본 유X브 중에 미국 법정 사이다 선고, 즉 징역 200년 이상의 선고 장면들이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허나 수혁만은 ‘드디어’라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히려 운전한 당사자나 난동 부린 당사자가 아니라 못 들어가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동승자라 그런가 막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조차 들었다.
‘흠…….’
벌금이 무려 100만 원이 넘는 선고였지만, 일단 외국인이고 미리 제출한 서류 때문에라도 신원도 확실한 사람들이라는 걸 판사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선고 자체는 거의 분 단위로 이루어졌다.
이현종을 일으켜 세워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긴 했지만, 그것조차 유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일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해서 다들 웃고 있었는데, 단 하나 수혁만은 예외였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얘, 얘! 수혁아!”
몸을 일으켰다.
이현종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어제 그 사건만 없었다면 암만 아끼는 아들이라 해도 가서 두들겨 팼을 텐데, 그러다가 온 게 이곳 법정이지 않나.
“아니……. 이놈이 또 왜.”
어제까지만 해도 당황하지 않던 신현태도 오늘은 놀랐다.
법정 모독은 또 다른 일로 번질 거 같아서 그랬다.
어제 일도 뉴스에 나올 만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교, 교수님!”
안대훈은 그나마 수혁의 옷자락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금세 놓치고 말았다.
수혁이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걸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주위를 지키고 있던 경찰들이 바로 나섰다.
그나마 수혁이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얻어맞았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니, 수혁의 말이 한 수 빨라서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되었건 명료한 발음으로, 또 지적인 목소리로 튀어나온 이 말은 성급한 행동을 막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황당한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뭡니까?”
판사로 하여금 되묻게는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