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6화 친애하는 가이드님 (1)
다시 디X니 랜드.
이현종 때문에 오전부터 오후 일부를 통으로 날린 까닭에 일행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제 갔던 파크에 비하면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어트랙션의 숫자가 적다 보니 이 정도 시간만 투자해도 충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수혁이 특히 더 만족스러워 보이는 건 또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아, 판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소개해 주신 병원에서 지금 수술받고 나왔습니다.
판사는 휴정에 그치지 않고, 그 길로 병가를 내고 병원으로 향했더랬다.
원래는 보험으로 커버되는 병원에 가려 했는데 수혁이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아직 LA에까지 태화 의료원 분원이 있는 건 아니었음에도 소개가 가능했던 건 수혁의 명성 덕분이었다.
스카우터가 주었던 명함을 써먹었다, 이 말이었다.
-네? 물론이죠. 저희가 보겠습니다. 지역 판사님이면 저희로서도…… 근데 저희가 제시한 조건은…… 아, 생각해 보신다고요? 감사합니다.
감언이설로 넘어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운트사이나 병원 LA는 최선을 다해 판사를 돌보았다.
판사 입장에서는 거의 횡재라 해도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마운트사이나 병원의 모체가 되는 과는 정형외과가 아닌 흉부외과이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세계 최고를 노리는 병원 중 하나이지 않나.
거기서 멀쩡히 진료를 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일인데 이건 뭐 숫제 VIP 대접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 은혜는 이미 갚았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있는 생색 없는 생색을 다 냈을 테지만…….
수혁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또 담백한 인간이지 않나.
진료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잘난 척을 하지 못하면 안달복달하는 사람인 데 반해 이렇게 백을 이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수혁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법정에서 잠깐이나마 즐거움을 준 것에 만족하고 있기도 했기에 이런 말도 했다.
-네? 아, 설마. 여보세요?
상대로서는 오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데…… 그걸 설마 알고서……?’
평소라면 판사도 정상적인 상식이 박힌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까지 이어 나가진 않았을 텐데, 마운트사이나에서 너무 뜨겁게 환영을 해 준 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인이 아닌 듯하지 않나.
게다가 아까 법정에서 본 것만 하더라도 나머지 셋보다 이수혁이란 사람이 더 위로 보였다.
실제론 그냥 당황해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우열이 있어 보일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그러한 연유로 판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많이 아파요?”
“아, 아닙니다.”
“근데 왜…… VIP이시니까 언제든 진통제 원하시면 말씀하세요. 더 놔 드릴게요.”
“네네, 감사……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는 트위터에 서류상 첨부되어 있던 수혁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화제가 되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뭐 그런 걸 바라겠나.
그저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마 이 훌륭하고도 고마운 코리언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린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당장 화제가 되진 못했다.
“어우, 피곤해. 대훈아, 넌 괜찮아? 대리 부를까?”
“네? 아닙니다. 크루즈 모드 있어서 밤이 오히려 더 편합니다.”
“그래, 뭐…… 설마 또 법원 갈 일이야 있겠니.”
“제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글이 올라간 지 한참 후에도 수혁 일행은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냥 평온한 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가, 100% 즐기지 못하고 있던 이현종이 오늘 완전 흥분해서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이라기엔 꽤 나이가 있었을 텐데도 디즈니에 대한 동심이 남아 있던 것인지 뭔지 퍼레이드까지 봐야 한다고 박박 우기는 통에 체크아웃한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11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졸지에 밤길 운전을 하게 된 안대훈은 그러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열심히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비버리힐즈의 어느 한 저택이었다.
에어 비앤비에서 박당 거의 200만 원 주고 예약한 곳이었는데, 수영장이 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안에서 파티도 가능할 정도로 널찍한 데 더해 이런저런 기기도 완비되어 있었다.
-굳이 이런 델 가야 하니? 우리끼리 파티할 것도 아닌데.
-그래도 한번 가 보시는 게…… 어차피 돈도 있는데요.
-그래…… 언제 우리가 비버리힐즈에서 자 보겠냐.
뭐 이런 주장 때문에 잡게 된 숙소였다.
괜히 잡았나 싶게 된 것은 도착하자마자 일행이 다 뻗고 나서의 일이었다.
‘아니, 뭐 내일이 있으니까…….’
안대훈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잡은 숙소가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일정이 있기에 애써 잠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아침이 되자 수혁이 눈 앞에 펼쳐진 전경에 나름 감탄을 터뜨렸다는 점이었다.
유X버셜 스튜디오 VIP 투어가 잡혀 있기에 서둘러야 해서 그 감탄의 시간이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와……. 여기 진짜 멋있다. LA가 괜히 천사들의 땅이 아니구나.”
이 말 한마디에 안대훈은 물론이거니와 신현태, 이현종 모두 마음이 씻겨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래서 얘랑 온 거지.’
‘우리 불쌍한 수혁이……. 이제라도 많이 보고, 많이 다니자.’
반농담조로 삼촌이네 애비네 했던 적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젠 누가 뭐래도 가족이었다.
특히 이현종은 수혁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겠다 여기고 있었다.
신현태는 진짜 자식들이 있는 만큼 그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보통 삼촌이 품을 만한 애정은 넘어선 지 오래였다.
‘충성을 다해 수발들겠습니다.’
안대훈?
이 녀석이야 뭐…….
거의 예수님, 모세 섬기겠다는 베드로보다 더한 충심 아니, 신앙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셋은 어느새 마음이 충만해진 채로 오늘의 목적지인 유X버셜 스튜디오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VIP 투어 전담 직원이 그들을 맞이했다.
주차마저 따로 발렛이다 보니 딱히 혼잡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유X버셜 스튜디오.
디X니 랜드, 헐리우드와 더불어 LA 근교 관광의 핵심이다.
LA는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도시이자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는 곳이고 또 아시아와 인접한 도시이니만큼 사시사철 관광객이 많은 도시고.
그렇다 보니…….
“미쳤다, 사람…….”
“어제보다 더 많은 거 같은데요?”
“여기가 디X니 랜드보다 어트랙션이 좀 더 재밌긴 하대.”
“와……. 근데 우리는 VIP 투어라 그냥 들어가는 거죠?”
정말이지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날씨가 온화하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덥다는 말도 되지 않나?
뭐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은 건조해서 그늘에 들어가면 아무리 더운 날도 시원하다고 하는데…….
해의 뜨거움이 달랐다.
물론 그늘에 들어가면 좀 나은 건 사실이지만 그늘이 있어야 들어가지.
“그렇지. 너랑 언제 또 온다고 저기서 기다려. 그냥 돈 펑펑 썼지.”
“감사합니다, 아빠.”
“이 정도 가지고 뭘. 하하.”
실제로 서 있는 사람들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코앞에 세상에서 제일 즐거울 만한 테마파크를 두고 있음에도 그랬다.
허나 수혁 일행만큼은 그저 웃고 있기만 했다.
쾌적하기도 하거니와, 그냥 쾌적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다는 걸 보면서 들어가고 있으니 상대적인 즐거움이 더해진 덕이었다.
“이곳에서 간식 드시면서 기다리면 담당 직원이 올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입구를 지나쳐, 일행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 2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안내받은 대로 간식이 있었는데 이건 뭐 딱히 먹을 만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물병이 있었는데, 이건 반갑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LA 물가가 비싸다 비싸다 하더니 500mL 한 통에 거의 5천 원씩 하기 때문이었다.
돈 펑펑 쓰는 걸 테마로 하는 여행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소비하던 가락이 어디 가는 건 또 아니기에 일행은 물 사 먹는 걸 극도로 아끼고 있었다.
헌데 이렇게 공짜 물이 그득히 쌓여 있으니 어찌 싫겠나.
“어우.”
“살겠다.”
해서 물을 마시고 있으려니 담당 직원이 나타났다.
딱 수혁 일행 넷만 데리고 다닐 사람인데, 비용이 인당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10명까지 정액이기 때문에 그 또한 넷만 있는 걸 보고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아니, 당황한 것을 넘어 조금은 기분이 상해 보였다.
‘왜 그러지?’
[뭐…… 돈 많은 동양인들을 미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너무 그러면 우리한테 안 좋은 거 아닌가?’
[100달러 주시죠. 팁으로.]
‘100달러나?’
[어차피 쓸 돈이면 미리, 좀 크게 주는 게 나을 겁니다.]
수혁은 긴가민가했지만 바루다의 조언에 웬만하면 따르게 된 지 오래다 보니 그러면서도 돈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 그 사람이 미소를 잔뜩 짓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말이지 열과 성을 다해 가이드를 해 주었다.
첫 번째 코스인 영화 세트장 및 킹X 및 트X스포머 체험 어트랙션부터 해서 트X스포머, 쥐X기월드 라이드, X슨에 최근 가장 핫하다는 해X포터 어트랙션과 워터 월드라는 쇼까지. 다리가 불편한 수혁이 정말이지 다리 생각조차 한번 들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다.
그러는 중간중간에도 인상을 쓰긴 했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수혁은 처음 그를 보며 혹 오해한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미안합니다.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마……. 너 때문에 100달러 생돈 나갔잖아.’
[그래서 더 잘해 주긴 했잖아요. 그보다 잘 보세요.]
‘잘 보고 있어.’
왜냐면 인상 쓰는 모양새가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불편해서인 듯해서 그랬다.
아니, 자꾸 보다 보니 그냥 그런 것 같은 정도가 아니라 100% 확실했다.
“그럼 남은 시간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VIP 투어자는 명찰을 받는다.
그 명찰이 있으면 그 어떤 어트랙션도, 몇 번을 타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설명을 다시 한번 마친 가이드는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도 해X포터 성을 배경으로 찍어 준 후 뒤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수혁이 그 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있자 이현종은 또 짠한 느낌이 들었다.
“이 녀석 그렇게 좋았어? 그럴 만하지. 나도 좋긴 했어. 돈값 하네 진짜.”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눈이 뿅 갔는데.”
“저 가이드분…… 걸음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까보다 더 이상한데…… 관절 문제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잉?”
그러다 우리 아들이 진짜 제정신은 아니구나 싶었다.
세상에 법정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까지…….
“그래야 내 아들이지.”
나쁠 건 없었다.
이현종도 제정신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