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97화 (1,297/1,303)

1297화 친애하는 가이드님 (2)

시각은 오후 3시.

젊은이들이라면 테마파크에 왔으니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각이었다.

사실 일반 표를 끊고 들어온 상황이라면 암만 개장 시간에 맞춰 왔다 해도 인기 어트랙션의 반도 못 탔을 시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은 제일 어린 안대훈조차 31살이다.

이현종은 65세고.

평균 연령이 40을 훌쩍 웃돈다는 말인데, 그렇다 보니 말만 안 했을 뿐 조금 지친 상황이었다.

‘VIP 표가…… 엄청 비싸지…….’

열 명 기준 400만 원 정도 하는데 이들은 네 명이서 들어오지 않았나.

푯값이 인당 100만 원이라는 얘기다.

근데 뽕은 못 뽑을만정 3시에 끝을 내자고?

진짜 재벌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냥 이번 여행 콘셉트만 그렇게 잡고 온 마당이었다.

물론 이현종, 신현태가 지금까지 벌어 온 돈이 적지 않고 수혁 또한 수입이 상당한 데 반해 평소에는 구두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돈을 안 쓰고 있다 보니 큰 타격은 없겠지만…….

마인드 세팅은 어찌 되었건 일반인 혹은 조금 부유한 사람 정도에 맞춰져 있을 뿐이었다.

“따라가 볼까요? 어차피…… 느려서요, 저분.”

“그럴까?”

다행히 VIP 투어는 가이드를 따라 움직이게 되고, 중간중간 이동 거리가 긴 구간에서는 버스나 카트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다들 정신적으로 지친 것이지 다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수혁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지금 얌전히 대훈이 운전하는 휠체어에 몸을 맡긴 상황이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약자에 대한 배려가 상당하다 보니 휠체어 그림자만 봐도 사람들이 슥슥 옆으로 피해 주는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열과 성을 다해 가이드를 해 주었던 직원은 과장 좀 보태면 비틀거리는 수준으로 걷고 있었다.

“그래, 가 보자.”

“가지, 뭐.”

“근데 진짜 좀 이상하긴 하다? 왜 지금까진 몰랐지?”

신현태와 이현종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 그대로 총총걸음으로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신현태는 원래 체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이고, 이현종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골프 대회 준비하면서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한 덕에 지금도 제법 좋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수술까지 받게 되긴 했지만…….

-니네 새엄마가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하랜다.

이기자 교수의 특명이 있었다고 들었다.

뭐…… 수혁은 의료인인 데다가 서른 살도 넘은 성인이다 보니 그러한 대화에서 딱히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에 남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떻게 봐도 더 젊은 것이 확실한 직원에 비해 힘이 넘쳐 보이는 이현종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난다, 이 말이었다.

‘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저 사람이 어떤지를 보시죠.]

‘그래, 안 그래도 나도 그러고 싶었어.’

[그럼 걸음걸이 분석 들어갑니다.]

‘오케이, 좋아.’

[눈 떼지 말고 꾸준히 보세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혁은 바루다 덕에 금세 머릿속 화제를 전환할 수 있었다.

앞에 걸어가고 있는 직원의 보행 분석을 위해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에, 사실 화제가 전환되지 않았다 해도 머리에 남는 용량이 얼마 되지 않기도 했을 터였다.

[오전에 보아 둔 보행 상태는 이러했습니다.]

‘그래, 이것 때문에 관절이 안 좋나 했었지?’

[네. 처음 나타날 때의 보행인데…… 이후 호전이 되었죠?]

‘돈 줘서 그런 줄 알았는데…….’

[기억을 되짚어 보니 약을 복용하더군요.]

‘약…… 음, 무슨 약인지는 불명이지?’

[네, 그거까지 확인하진 못했습니다만 약 복용은 100% 확실합니다.]

단순히 지금 당장 어떻게 걷고 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까 어떻게 걸었는지에 더해 약 복용과 같은 특이 사항을 싹 정리하고 있기에 그랬다.

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용량이 딸리네 어쩌네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긴 할 터였다.

심지어 수혁은 지금 걷고 있는 것도 아니고 휠체어에 있다 보니 평소보다 쓸 수 있는 용량이 더 많았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약이 세던데.’

[그렇죠. 특히 진통제 종류를 진짜 세게 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타이레놀이었다면 아마도 뭔지 보였을 터였다.

사이즈가 꽤 큰 약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에서 추론 가능한 약은 울트라 셋이나 진통 소염제였다.

헌데 하지 통증이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걸음을 걸어야 하는데 약 한 알로 걸음걸이 상태가 확 호전이 된다?

진통 소염제보다는 울트라 셋 혹은 그 이상 가는 약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그건 처방을 받아야겠지?’

[그렇죠. 그리고 지금은 약효가 거의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분석해 본 결과 저 걸음걸이는 단순히 통증 때문도 아니에요. 실제로 근력의 저하가 있는 거 같아 보입니다.]

‘으음……. 그렇지. 약간의 강직도 있어 보이고?’

[경추 척수병증일까요?]

‘아무래도 그게 제일 확률이 높지. 하지만 언제나 아닐 수도 있지.’

[그건 맞습니다.]

미국은 진짜 잘사는 나라다.

대한민국에 비해서도 그렇지만 그냥 봐도 아, 이 나라는 진짜 잘사는 나라구나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숙소를 LA 뮤지엄 근처, 디X니 랜드 호텔과 비버리힐즈에만 잡아 두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미국인이 한국보다 좋은 의료 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긴 너무 비싸니까.

그리고 여기 직원이 그렇게 고소득자는 아닐 터였다.

그에 비해 LA 물가는 지독하리만치 비싸기 때문에, 더더욱 의료비 부담이 될 거란 추론이 가능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아.’

[저도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몸이지 않나.

그들이 내거는 조건은 하나같이 한국 병원에 비하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수십억에 달하는 연봉에 저택이라고 해야 할 거 같은 집 또는 펜트하우스 급의 고급 맨션 그리고 사치품에 해당하는 차와 개인 버틀러까지 더해져 있지 않던가.

수혁 개인으로서는 영광이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역시나 엄청난 의료비를 받고 있다는 반증도 되었다.

‘LA에서 제일 좋은 병원은 요구하는 보험 자체가 엄청나더라.’

[약 먹으라고 약 담아 주는 종이컵도 몇만 원씩 청구하던데요, 뭐.]

대한민국 의사들도 뭐……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잘 버는 편이고, 대학 병원 교수들도 당연히 1억에서 2억 가까운 연봉을 받긴 하지만 이 정도는 없지 않던가.

심지어 보는 환자의 수를 감안하면 진짜 의료비가 수십 배에서 백 배 이상 간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항간에서는 그래서 의사들이 미국처럼 민간 보험을 원한다는 말도 하지만…….

의료는 언제고 서비스 제공자와 필요자가 뒤바뀔 수 있는 분야 아닌가.

심지어 그 서비스라는 게 목숨과 연관이 되어 있거나 목숨 그 자체다.

의사도 악마가 아닌 같은 사람인 만큼 그런 일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불만이 아주 없지야 않겠지만 큰 틀에서의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지금 같이 쭉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아이구…….”

수혁이 의학적인 추론과 함께 잡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직원은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한적한 곳에 이르자마자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연신 다리를 주무르면서였는데 땀이 비 오듯 했다.

역시나 통증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생이 수반되는 모양이었다.

“저기.”

“어잇.”

수혁은 이제 걸음걸이 분석은 더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NURICK 분류상 grade III야.’

[네, 저도 동의합니다.]

통상적인 직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만큼의 보행장애가 있지만 부축 없이 혼자 걸을 수 있는 상태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지의 어느 부분에 주로 힘이 빠져 있고 또 어느 부분에는 강직이 있는지도 알아차렸다.

해서 대훈에게 신호를 보내 슥 다가간 참이었다.

당연하게도 직원은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아까 헤어졌던 VIP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여긴 뭐가 없는 곳이지 않나?

배고파서 왔다고 하기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VIP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기다릴 필요 없는 뷔페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 모두 해결이 가능하니까.

“다리가 아프신 거죠?”

“아……. 네, 그건 그런데…….”

“저 의사입니다.”

“아.”

의사라고 하길래 ‘아’라고 했지만,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는 건 마찬가지였다.

의사라고 해도 안 노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여긴 테마파크다.

그것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테마파크인 유X버셜 스튜디오.

여기까지 와서 일을 대체 왜…….

‘눈이 왜 이렇게 초롱초롱하냐…….’

라는 생각을 하다가, 수혁의 얼굴을 본 직원은 이내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방금 떠올린 생각처럼 수혁이 너무나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다리가 아프신 거죠?”

게다가 휠체어 탄 사람이 다리 아프냐고 하는데 마냥 무시하고 있기도 좀 그랬다.

내가 물어야 할 말을 이쪽에서 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아무튼,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어쩐지 이 사람이 좀 대단한 의사 같단 생각도 들어서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네, 아픕니다. 아니…… 뭐라고 해야 하지……?”

“힘이 잘 안 들어가죠?”

“아, 네네. 그래서…….”

“억지로 안 쓰던 근육을 쓰는 느낌이 들고요.”

“아. 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외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영어를 이렇게 잘한다니.

거기에 더해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던, 심지어 자기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증상을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을 해 줄 수 있다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이유도 있기야 하겠지만, 직원은 크게 이 두 가지 이유로 크게 놀라 입을 벌렸다.

수혁은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해서 잠시 데이터화해 둔 후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 몇 가지 물으면서 검사도 하겠습니다.”

“아, 네.”

수혁은 환자의 다리 대신 팔로 시선을 옮긴 채 질문을 던졌다.

“혹시 고혈압이나 당뇨 진단받은 적이 있나요?”

“아…… 아뇨.”

“검진은 제때 하고 계시고요?”

“여기 취직하고부터는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신 게……?”

“올해 초요.”

“그때 뭐가 없었던 거죠?”

“네.”

병력 청취를 하고 있다는 얘긴데, 그러면서도 팔에 대한 검진도 쉬지 않았다.

들었다가 놨다가, 감각도 확인하고 다 했다는 얘기였다.

‘딱히 상지 쪽에는 증상이 없어 보이는데?’

[네. 이상하네요?]

‘뭐……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럴 수 있잖아.’

[환자는 불편감을 호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 검진에서는 경미하게라도 이상이 보여야 정상입니다. 만약 척수 병변이 있다면요.]

‘그건…… 그래. 확실히……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네.’

[네. 단순 척수 병변이 아닐 수도 있을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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