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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98화 (1,298/1,303)

1298화 친애하는 가이드님 (3)

단순한 척수 병변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 좀 어폐가 있는 말이긴 했다.

척수 병변이 어떻게 단순한가.

심하면 진짜 마비까지 오는 병인데.

하지만 수혁과 바루다의 기준에서 보면 또 얘기가 달라지는 법이었다.

“응……?”

직원은 눈앞에 있는 수혁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아까까지만 해도 수혁의 시선은 대개 팔 아니면 다리에 머물고 있었더랬다.

헌데 지금은 그 범위가 확장되어 온몸을 투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투시는 좀 너무 나간 거 같긴 한데…….’

실제로 그런 느낌인데 뭐 어쩌겠나.

물론 아까부터 벌써 압도되고 있던 참이다 보니 달리 말을 하진 못했다.

상대가 VIP라는 것만 해도 좀 그렇지 않나.

말이 인당 100이고 50이지, 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막 대하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더해 미친놈이기까지 하면?

암만 상대가 자기보다 몸집이 작고 해도 바짝 쪼는 게 정상이었다.

“어디…… 흐음.”

수혁은 그렇게 쫀 상태의 직원을 그러니까 환자를 면밀히 살폈다.

딱히 뭐가 보이는 건 없었다.

다만 얼굴 표정을 보다 보니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기긴 했다.

“머리가 아파요?”

“아……. 아주 조금요. 근데 일하다 보면 원래 두통이 있습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엔.”

수혁은 진중하다 못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물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환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만도 해 보였다.

하늘을 보면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해가 쨍쨍하니까.

그늘 밑에 있으면 선선하니 진짜 좋은 날씨지만 저 밑에 있으면 거의 구워지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가이드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VIP 고객들의 편의 때문에라도 저 무시무시한 땡볕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일 테니 두통이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열로 인한 두통이 지금도 있을 수는 없어.’

[컨디션에 의해서 무거운 두통이야 유지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방금 표정은 이상했어. 다리나 팔 모두 통증을 일으킬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일반적인 두통이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단순 척수 병변이 아닐 경우, 우선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질환군에 머리 쪽 질환이 포함됩니다.]

‘그렇지.’

수혁은 환자보다 더 포괄적인 사고와 관찰이 가능한 사람이지 않나.

더군다나 바루다가 있다 보니 남들에 비해 훨씬 더 세밀한 분석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머리 쪽에 초점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당뇨와 고혈압이 없다고 했고, 지금 이렇게 봐서는 달리 신경 증상이 두드러지는 게 없어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접근하기로 했다.

“환자분. 혹시 아스피린 드시나요?”

“아…… 아뇨. 주변에서 슬슬 그거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먹으라고는 하는데, 아직 안 먹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스피린을 그냥 먹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고 보면 되었다.

일단 허용이 안 되어 있기도 한데, 인종과 식이와 같은 차이 때문에 미국과 호발하는 뇌질환에 차이가 있어서이기도 했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미국은 피가 굳는 경색이 흔한 데 비해 한국은 출혈이 더 흔하다.

헌데 아스피린은 피를 묽게 하는 약이기에 뇌경색이 훨씬 흔한 미국에서는 예방 효과가 있어 좋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더 연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제아무리 아스피린이 피를 묽게 하는 것 외에 항염증 작용 등으로 인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먹으라고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이긴 하지.’

[그렇죠. 아스피린 허용하라는 사람들 주장도 대개 미국 상황을 근거로 하고 있고요.]

반대로 미국에서는 중장년층에서는 아스피린 먹는 것이 대중적인 일이 된 지 오래였다.

해서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란다.

“흠.”

자연히 수혁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튀어 나갔다.

단서가 잡힐 듯 말 듯 하다가 안 되는 상황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랬으면 애초에 유X버셜 스튜디오에서 이렇게 따라오지도 않았겠지만.

포기했을 타이밍인 데 반해 수혁은 오히려 씨익 웃었다.

이런 상황이 재밌기도 하거니와 이 와중에 또 짚이는 구석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혹시 머리 다친 적은 없나요?”

“머리요……? 음…….”

환자는 나이가 꽤 있는 편이었다.

어쩌면 다른 직업으로 살다가 이제 이 직업을 택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스포츠를 즐기면서 다칠 일은 적겠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다칠 만한 나이라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근데 이건 오래된 일입니다.”

“얼마나요?”

“한 한 달……?”

“한 달이라.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현대 의학의 발전과 주변 환경의 발달로 인해 외상은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인식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긴 했다.

특히 다친 지 오래된 경우라면 이건 이제 문제가 없겠거니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외상은 여전히 위협적인 녀석이었다.

의사들이 볼 때는 그러했다.

“그냥…… 그때 늦잠 자는 바람에 허둥대다가 벽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의식을 잃지는 않으셨고요?”

“네, 전혀…….”

“통증은요?”

“있기는 했죠. 목까지 아팠는데…… 그건 약 먹고 바로 좋아졌어요.”

“약은 병원에서 처방받으셨나요?”

“네?”

환자는 뭔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그저 벽에 부딪힌 이 가지고 병원에 가냐는 뜻일 터였다.

의료 접근성이 좋은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거리만 나가도 눈에 보이는 병원이 열 개는 넘어가는 동네가 태반이니.

하지만 여긴 상황이 다르다는 걸 수혁은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협진 진료도 보아 왔기에 그랬다.

“병원엔 안 가 보신 거죠?”

“아……. 네. 그냥 CVS 가서 약 사 먹었습니다.”

“그렇군요.”

역시나 약을 사 먹기만 했다.

약사와 상담이라도 했으면 다행이겠지만…….

일행 모두 의사다 보니 CVS를 관광 차 들른 적이 있어서 아는데, 거기 구비되어 있는 약이 진짜 센 것들이 많았더랬다.

처방전 없이, 약사 상담 없이 살 수 있는 약들조차 그랬다.

의료진이라면, 그러니까 의학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귀찮은 절차 없이 필요한 약을 살 수 있을 테니 오히려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금처럼 병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 일쑤일 게 분명했다.

“어디 부딪치셨죠?”

“여기요.”

“흠.”

수혁은 환자의 옆통수를 살폈다.

당시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던지 딱히 외상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수박 두드리듯 두드려 봐도 별 느낌은 없었다.

“윽.”

통증은 별개였다.

“아프세요?”

“네. 음…….”

“그렇군요, 잠시 일어나 보시겠어요?”

“어…… 네.”

환자도 뭔가 느낀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두드리자마자 아프니 당연한 일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거나 또는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미리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급격한 가족 해체 현상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렌지 카운티처럼 도시를 벗어난 베드타운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 변화를 예민하게 캐치하는 이웃들과 지낼 수도 있겠지만…….

LA와 같은 대도시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덜컥 솟아오르는 불안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허리를 숙여서 머리를 아래로 보내 보세요. 대훈아, 시범 보여 드려.”

“어떤…….”

“뇌압 올라가는 자세 해 보라고. 뇌압 유발 두통 환자들처럼.”

“아, 네!”

그런 그의 앞에 대훈이 숙달된 조교가 되어 시범을 보였다.

양다리를 어깨너비보다 살짝 더 넓게 벌리고 허리를 숙여 머리를 양 무릎 사이 안에 끼우는 자세였다.

남자는 유연성 때문에 이 자세를 못 취하는 경우가 태반이긴 했지만 느낌만 그렇게 가져가도 충분했다.

오히려 유연성이 부족한 사람은 이렇게 할 때 복압이 올라가면서 같은 자세를 취하더라도 뇌압이 더 잘 올라가기에 그랬다.

“이렇게 해 보시죠.”

“네. 음.”

환자는 남자고 나이도 꽤 있는 편이다 보니 아무래도 안대훈처럼 자세를 취하진 못했다.

하지만 아까 설명했던 이유 덕에 이 자세의 목적인 뇌압 상승은 오히려 초과 달성할 수 있었다.

“으.”

“부축해 드려.”

“네!”

어지럼증이 발생한 걸까?

환자가 살짝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안대훈이 습관처럼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거…… 왜…….”

이미 간당간당했던 모양이었다.

“수혁아 이분 이거.”

“네, 임계를 넘은 거 같아요.”

“머리가…… 으…….”

일단 말이 어눌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발음이 어눌해졌다고 보면 되었다.

거기에 더해 두통이 심해지는지 머리를 짚기 시작했다.

“이거 여기서 빨리 나가려면 어디다 연락해야 하죠?”

“여기…… 제 명찰 뒤…….”

“네.”

명찰 뒤를 보자 과연 위급 상황 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가 있었다.

수혁은 직원의 무전기를 이용해 바로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이죠?

“직원분…… 마이크. 마이크가 쓰러졌습니다! 뇌졸중이 의심됩니다.

-네? 어디시죠? 누구시죠?

“오늘 VIP 투어 대상자인 수혁 리입니다. 여긴…… 옆에 안내소가 보입니다. 입구 쪽 안내소요.”

-즉시 차량 보내겠습니다!

“네.”

워낙 사람이 많이 오는 데라 그럴까?

아니면 미국이란 데가 위급 상황에 예민하게 구는 나라라서 그럴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차량은 진짜 금세 달려왔다.

직원 둘이 함께였는데 그들은 여기 있는 네 명 다 VIP 명찰을 메고 있는 것과 진짜로 자신들의 동료가 머리를 짚은 채 반쯤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달려들었다.

“자, 여기 일단…… 타시고. 바로 응급 수술 가능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뇌출혈이에요.”

“뇌출혈……?”

직원 중 하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으로 치면 응급 구조사인 모양이었다.

그렇다 보니 수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뇌출혈이라는 게 땅바닥에서 진단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그랬다.

“아, 저 의사입니다.”

수혁은 그런 그에게 스카우터에게 받았던 명함을 반쯤 보였다.

병원 이름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상대는 영락없이 수혁을 여기 의사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럼…….”

“바로 응급 수술 가능한 병원이요. 앰뷸런스는 불렀죠?”

“네네. 불렀습니다. 근데…….”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대훈아, 너는 아빠랑 삼촌 모시고 놀고 있어. 환자 인계만 하고 다시 올 테니까.”

“아…….”

“같이는 못 가. 차 좁아서.”

“그리고 아빠 해X포터 다 봐서 지팡이로 하는 그거…… 꼭 하고 싶다고 했었단 말이야. 네가 좀 챙겨. 지금도 아쉬워하시잖아.”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차피 오래 안 걸릴 거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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