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00화 (1,300/1,303)

1300화 경애하는 이수혁 님 (1)

발단은 사소했다.

-그 의사분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미…… 값을 지불했다고. 그러나 저는 단언컨대 돈을 내기는커녕 지갑조차 내비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붙잡으려 했을 땐, 이미 사라진 후였죠. 수술이 끝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할아버지께서 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다는 게 기억이 났습니다.

-그럼 설마 그때의 은혜를 갚은 건가?

-그 의사분 성함이 뭐야?

-엄청 멋진 분이네!

처음 판사가 글을 올렸을 땐 사소하다는 말도 쓰기가 애매할 지경이었다.

그저 그의 지인들이나 와서 멘션을 달아 주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 의사 혹시…… 유X버셜 스튜디오도 간다고 했나?

판사의 지인 중에 팔로워가 좀 되는 사람이 있던 게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는 그 지인이 최근 자기 거주지 주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모든 것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동시에 딱히 별거 아닐 수 있는 일조차 들들 파서 기어코 진짜 ‘화제’로 만드는 방식으로 팔로워를 끌어모은 사람이라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어…… 그런 거 같은데? 디X니 랜드는 법원 오느라 제대로 못 즐겼으니까 유X버셜이라도 뽕을 뽑아야겠다고…… 했던 거 같아.

-VIP 투어?

-그거까지는 모르겠는데…… 아, 그래. 그…… 대머리.

-대머리야?

-아니, 그분 말고. 부하로 보이는 사람이 그랬는데 옷이 명품이었어. 그래서 중국인인가 했는데 한국인이더라고.

-한국인인데 명품을 휘감았으면 VIP 투어도 갔겠네.

한류 때문도 있긴 할 터였다.

국뽕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 북미에서도 BTS만큼은 관련한 굿즈나 잡지 등을 거의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대단하기에 그랬다.

최근 한 멤버의 신곡 발표가 얼마나 화제를 끌어모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덕택이라고 할까.

한국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꽤 좋아지고 있었다.

뭐, 중국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반사 이익도 있긴 할 터였다.

-그럼 유X버셜에서 사람 살려 준 사람하고 같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

판사는 이제 집이었다.

수술받고 하루 만에 집에 간다는 게 대한민국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겠지만, 의료비가 미친 듯이 비싼 미국은 조기 퇴원이 일반적이었다.

보험이 커버해 준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인색하게 구는 경우도 있었다.

이마저도 원래 같으면 당일 퇴원일 텐데 마운트사이나 병원에서 수혁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덕에 하루라도 더 있게 된 참이었다.

뭐 당일보다는 낫겠지만, 하루 더 있다가 온다고 해도 통증이 다 가라앉는 건 아니지 않겠나.

진통제 센 걸 먹고 있다 보니 머리가 잘 돌지 않아 다소 충격적인 멘션에도 그저 물음표 하나만 띄울 수 있을 뿐이었다.

-맞는 거 같은데. 지금 유X버셜 스튜디오에 수술받고 입원한 VIP 투어 담당 직원…… 그 사람 뇌출혈인데 리수히억? 이라는 사람이 살려 줬대.

-아, 맞네. 그 사람 맞아.

그래도 이름을 잊을 정도는 아니라 맞다고 컨펌은 해 줄 수 있었다.

-대단한 사람이네. 진짜…… 은혜 갚기 여행 중인 걸까?

-뭔 소리?

-그 유X버셜 직원 아버지도 참전 용사래.

-아…….

타자를 치다 말고 판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그랬다.

2차 세계 대전에 이어 한국 전쟁까지 참전했던 그는 참으로 참혹한 시대를 살다 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셨다.

한 가정을 일구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문을 일구었으니.

그게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눈물이 참 적은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초청장이 왔더구나.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런 그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했던 말이 돌연 떠올랐다.

손에는 정말로 한국에서 보낸 초청장이 있었는데, 사진도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흑백으로 된, 완전히 파괴된 도심과 그 옆에 총천연색의 마천루가 솟아오른 도심이 맞붙은 사진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옳은 일을 하고 가는 것 같아 기쁘구나.

마지막 말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만 기억에 남은 듯한 기분이었다.

원래 할아버지를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진통제 때문에 정신도 없던 탓에 한참을 울고 나니 현재 있는 지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트윗 명단에 ‘dr.lee from KR’이 떠 있었다.

“교수님, 여기가 바로 산타모니카입니다.”

그 시각 수혁은 유X버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산타모니카 해변에 도달해 있었다.

바다가 보인다 싶을 무렵부터 화려한 상점들이 눈길을 끌었다.

사시사철 날씨가 좋은 곳인 만큼 거의 모든 음식점들은 야외 테이블을 비치해 두었다.

하늘을 향해 일자로 쭉 뻗은 팜트리가 일렬로 줄 서 있었는데, 그 뒤로 푸른 태평양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바다를 향해 들어가자 미국 영화에 으레 나오는 해변가 주변에 위치한 작은 놀이 공원과 바다를 향해 쭉 뻗어 있는 나무 선착장과 그 옆으로 작은 상점들이 있었다.

상점 양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한 모래사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와…….”

수혁이 대체 언제 이런 곳에 와 봤겠나.

한국에서도 바닷가에 가 본 기억이 손에 꼽을 지경인 데다가,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그 바닷가라는 것도 가장 가까운 인천이 고작이었다.

서해안의 낙조 또한 그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아무래도 태평양의 이 광활한 느낌은 따라오기 힘들었다.

“그래, 이게 캘리포니아지.”

“여긴 언제 와도 참 좋네.”

그에 반해 이현종, 신현태는 당연하게도 이곳조차 처음은 아니었다.

비단 학회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예 연수를 이쪽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하려면 미국을 와야 하는데 서부가 아무래도 한국과 가깝지 않은가.

동부에 비하면 동양인을 비롯한 이민자들도 많다 보니 환경도 훨씬 좋았다.

이현종도, 신현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쪽에서 1년을 있었다 보니 화려한 경치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아까 가게에서 사 온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었다.

“와…… 미쳤다, 진짜.”

감탄하고 있는 수혁을 구경하면서였다.

뭔가 해 줄 때 해 줄 맛이 있는 느낌을 주는 애가 있고 아닌 애가 있지 않나?

수혁은 전자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처음엔 얘가 너무 가난하게 커서 이런가 싶었는데, 그냥 성격인 것 같았다.

사실 지금의 수혁이 상황이 나쁜 편은 아니지 않나.

아니, 엄밀히 말해 또래 친구들에 비해 훨씬 유복한 환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뭘 먹어도, 어딜 가도 감회에 젖는 걸 보면 그냥 쉽게 감동받는 놈인 듯했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형이 자식 하나 잘 뒀어.”

“하하. 그래, 쟤가 내 아들이지. 얼마나 귀엽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면 이런 게 더 좋아 보이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둘은 지금 유X버셜 스튜디오라는, 어른 아니라 죽기 전 노인이 가도 동심에 젖을 만한 희대의 테마파크에 다녀와 술까지 들이켜는 있는 상황 아닌가.

주변 경관이라도 후지면 또 모르겠는데 절경으로 꼽힐 만큼 훌륭한 곳이다 보니 이미 둘은 감성 만취 상태였다.

“흐하하하.”

“하하하하.”

수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하윤이랑도 와야겠네.’

[신혼여행…… 아니, 왜 상상에 손주까지 있는 겁니까?]

‘기왕 상상할 거면 스케일을 크게 가져가야지.’

[그…… 뭐, 자유긴 하죠.]

상상을 넘어 망상의 나래를 훨훨 펼치고 있었다.

지금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멍청한 표정을 짓고서였다.

심지어 LA는 낮에는 해가 뜨거워 기온이 올라가지만 밤이 되면 해변이고 어디고 간에 건조한 덕에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곳이다 보니 반팔에 반바지만 덜렁 입고 나온 수혁으로서는 슬슬 오돌오돌 떨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으…….”

“교수님, 옷 벗어 드려요?”

“아니, 너도 반팔만 있잖아.”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아냐…….”

수혁은 희대의 충신인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태양에 하루 종일 가열되어 벌겋게 달아올랐던 정수리가 허둥지둥 식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수혁보다는 안대훈이 훨씬 추울 것 같았다.

뭐라도 한 겹 쓰고 있는 거랑 아닌 거랑은 차이가 나지 않겠나?

겨울철에 모자를 쓴 것과 아닌 것의 체감 온도 차이가 대략 5도 정도는 된다고 하는데,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거 같진 않았다.

“저기…… 저 사람 아냐?”

“응? 뭔 소리야. 에이…….”

“맞잖아. 사진을 봐 봐.”

“아무리 봐도 저기 있는 사람은 좀 모자라 보이는데…….”

“아냐, 얼굴 똑같아. 방금 옆에 사람 머리 볼 때 표정 날카로울 때 보니까 똑같아.”

“어디, 오. 그렇네?”

수혁이 그렇게 기이한 추론을 이어 나가는 동안에도 수혁과 관련된 트윗은 격렬하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몇 가지 키워드 때문이었다.

우선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

안 그래도 미국은 군인에 대한 생각이 대한민국과는 좀 다르지 않나?

군바리라는 멸칭을 군대 다녀온 사람들조차 서슴없이 쓰는 데 반해 미국은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인종과 성별 무관하게 어디서나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

또 법정에서 판사 치료, 테마파크에서 직원 치료.

자연히 사연의 주인공이 뛰어난 의사라는 얘기가 되는데, 여기에 더해 VIP 투어를 달랑 넷이서 할 정도의 재력이 있다는 것이 더해지니 의사와 셀럽 좋아하는 미국 정서상 수혁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이미 만취한 이현종과 신현태는 논외로 두더라도, 안대훈과 수혁도 어느 정도 정신이 없었기에 그들을 둘러싼 이들이 모두 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다가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응?”

“혹시 닥터 리 맞습니까? 한국에서 오신?”

“잉…… 네. 맞긴 한데, 누구시죠? 아, 학회에서 봤었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기억이 안 나서. 닥터…….”

상대는 레게머리를 한 흑인이었다.

입에는 담배인지 뭔지 모를 것이 물려 있었는데, 냄새로 미루어 보건대 대마가 확실했다.

이 풀 타는 냄새는 한 번이라도 맡아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이니까.

다시 말해 아무리 복색이 자유로운 미국이라 해도 의사일 가능성은 많이 떨어진다, 이 말이었는데 수혁은 편견 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했다.

자연히 상대로서는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례하거나 언짢은 반응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선했다.

“하하하. 아뇨, 아뇨. 당신 유명인이잖아요!”

“유명……?”

“드디어 교주님의 명성이 이곳에까지 번졌나 봅니다.”

“너 교주라고 했다, 방금.”

“아, 실언입니다. 실언.”

안대훈은 흥분했다.

혹 자신이 돈 들여서 꾸린 미국 사이트가 대박이 터졌나 해서였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아, 네. 근데…… 그전에.”

“그전에?”

수혁도 흥분했다.

대훈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어디 아픈 데가 있는 거 같은데.”

여느 때와 같은 이유로 흥분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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