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01화 (1,301/1,303)

1301화 경애하는 이수혁 님 (2)

수혁의 말에 말을 걸었던 사내는 제법 당황했다.

레게 머리에 근육질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살이 별로 없는 몸매에 웃통을 완전히 까고 있던 그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을 정도였으니, 당황한 것을 넘어 놀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허나 그와 같이 있던, 마찬가지로 상당히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은 좀 달랐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말만 들으면 좀 놀란 건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얼굴까지 보면 그렇다기보단 숫제 반가워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반면 그녀가 끼어들자 레게 머리 사내가 손을 휘휘 젓기 시작했다.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그날 좀 컨디션이 이상했던 거야.”

“아냐……. 컨디션이 이상하다고 그럴 수는 없어.”

“아니라니까! 대체 왜 이래?”

“뭘 왜 이래!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쪽팔리다고, 그런 얘기는! 어디 둘만 있을 때 하든가.”

“닥터 리를 먼저 알아본 건 너잖아.”

그러고는, 그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성과 돌연 논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와서 말을 걸더니만 이쪽에서 뭔가 되묻거나 하기도 전에 둘이서 싸우는 상황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새끼들 뭔가 이상한 놈들이구나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터였다.

꼭 이동하지 않더라도 무시하거나.

하지만 수혁은 누누이 말하지만 보통 사람은 아니지 않나.

심지어 그 안에 탑재하고 있는 바루다 또한 점점 괴랄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음…….’

[으음…….]

둘은 자리를 피하기는커녕 실눈을 뜨고 둘을, 특히 먼저 말을 걸어왔던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냥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관찰 아니, 진찰을 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약간의 뇌경색이 있는 거 같아 보이지?’

[네. 정확히 말하면…… 뇌경색의 병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 아마…… 일시적으로 왔다가 풀렸을 거야.’

[뭐…… 혈전 같은 것도 아주 작은 게 날아가서 막은 경우라면 저절로 풀리거나 아주 작은 부위에만 문제를 일으켜 크게 증상을 못 느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30대로 보여. 다른 질환이 있어 보이진 않고. 아마도 혈관 수축이 있었던 거 같은데.’

[한국이라면 보다 많은 고려가 필요하겠지만…….]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어떤 병을 진단해 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렇지 않겠나?

괜히 인류가 여지껏 CT니 MRI니 하는 영상 의학 기기들을 만들어 온 게 아니었다.

실제로 이러한 진단 기기가 나온 이후로 진단율 및 치료율까지 올라갔더랬다.

이런 얘기를 굳이 입 아프게 떠들지 않더라도, 진단 기기를 통한 진단이 육안으로 하는 진단에 비해 훨씬 정확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나 모든 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법이다.

-태권도가 세요? 복싱이 세요?

하는 우문에 대한 현답으로 ‘센 놈이 셉니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다른 동물들도 어느 정도 그렇긴 하겠지만, 인간만큼 개체 차이가 심한 종이 또 있을까?

범인으로서는 아예 상상도 불가할 정도로 뛰어난 인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세상에는.

‘대마 냄새가 나.’

[네, 방금도 피운 거 같은데…….]

‘아니, 방금만이 아닌 거 같아.’

[네,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거 같습니다.]

LA, 즉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마리화나 사용이 합법이다.

대마 피우는 것이 합법이라는 얘긴데…….

그렇다 보니 날씨 좋은 날이면 어딜 가도 이 역한 대마 냄새가 나기 마련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아예 상상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일상이었다.

다른 마약에 비해 독성이나 중독 경향이 약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미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이거까지 잡아들이기엔 경찰력 및 행정력이 부족해 일어나게 된 현상인데…….

‘옷에도 대마 섬유 조각이 잔뜩 끼어 있어.’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흠.]

‘둘의 대화를 들어 보니 확실히 맞는 거 같지?’

[네. 아마도요. 뭐 더 자세한 것은 우리가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긴 합니다.]

미국이 어떤 상황인지 수혁이나 바루다가 알 바는 아니지 않나.

둘에게 아니, 의료진에게 중요한 것은 이 약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여부였다.

어떤 질환을 볼 때 증상만큼 중요한 것이 그 질환이 생길 가능성이니까.

제일 흔한 것부터 의심해서 지워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단 과정의 기본이었다.

“저, 환자분?”

“아니, 나 환자 아니라니까. 그냥 당신이 지금 트위터에서 뜨길래 말을 건 거예요.”

어느 정도 추론 방향을 잡은 수혁은 마침내 레게 머리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아픈 사람이라고 진단을 내렸기 때문에 호칭은 자연스레 환자가 되었다.

당연히 듣는 환자로서는 기분이 좋진 않았다.

멀쩡히 해변 놀러 와서 노닥거리다가 트위터에 뜬 사람이 있길래 와서 말을 걸었는데, 저보고 환자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묻는 말에나 답해. 기회잖아?”

“아니……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자기가 유명한 사람한테 말을 걸었으니까 그런 거 아냐.”

“하…….”

허나 옆에 있는 사람의 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안 그래도 아플 거라고 확신을 갖고 있던 차에 저명한 의사가 당신 애인이 아플 거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게 머리는 한숨을 푹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타모니카는 해변이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사실 뭐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해서 질리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트위터에 뜬 의사가 난데없이 해변에서 누군가를 진단하는 모습은 상당히 재미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 있다, 이 말이었다.

‘이 사람도 이쯤 되면 좀 부끄러울 거 같은데……?’

환자는 쪽팔렸지만, 그러면서도 나름 합리적인 생각을 해낼 수 있었다.

그래, 의사이지 않나.

혹여나 여기서 틀리기라도 하면…….

환자 쪽은 좀 부끄럽고 말 일인 데 반해 이쪽은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저쪽에서 물러날…….

“환자분?”

“아니.”

그런 생각은 1초도 채 가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수혁이 주변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을 걸어와서 그랬다.

얼굴 표정이나 말투만 보면 정말이지, 어느 외래 진료실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네네. 어떤 게 궁금하세요?”

여자친구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레게 머리 사내보다는 주변에 신경을 덜 쓰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보다는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이 훨씬 커서 그랬다.

“혹시 최근에 머리 아프다고 한 적은 없나요?”

본래 문진이라는 건 환자 본인에게 해야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경우라면 그에 대해 잘 아는 보호자에게 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실제로 소아나 노인에서는 보호자 문진이 주를 이루는 경우도 많지 않던가?

지금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한 수혁은 숫제 여자친구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를 둘러싼 인파 중에서는 남몰래 카메라를 켜거나 심지어 인X타, 유X브 라이브까지 켜는 이들이 있었지만 알 바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환자였으니.

이렇게 말하면 되게 숭고해 보일 수도 있는데, 실은 흥미로운 케이스라고 여기는 마음이 더 컸다.

“아! 그걸 어떻게……?”

“걸음걸이나 습관을 보면 대강 알 수 있는 법이죠.”

“와……. 진짜 대단하시다…… 어떻게 이걸.”

그 흥미로운 마음은 질문에 답하는 걸 보면서 더해지고 있었다.

당연했다.

사실 걸음걸이나 습관을 봐도 대강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니까.

반쯤은 때려 맞힌 거다, 이 말이었다.

뭐, 어느 정도 대화를 통해, 그리고 역으로 부끄러워하는 환자를 통해 알아낸 것도 있었고.

“아무튼, 그게 언제죠?”

“한…… 이틀 된 거 같아요. 근데 그 후로도 계속 아파했어요. 그러다가 이제야 좀 나아져서, 놀러 나온 거긴 한데…… 제가 봤을 땐 완전히 나은 거 같진 않아요.”

“그렇군요. 흐음. 이틀 전이라.”

수혁은 이틀 전, 이틀 전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면서 환자를 살폈다.

환자는 두통 얘기에 이미 한 번 스턴이 걸렸고, 이틀 전이라는 말에 또 한 번 스턴이 걸린 상황이었다.

사실 본인 몸 상태를 본인이 제일 잘 안다는 건 어폐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예 모를 수도 없긴 해서 그랬다.

그걸 그렇게 정확하게 꼬집고 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한데…….

‘놀란 마음보다는 불안해하는 거 같지?’

[네. 그 아픈 상황이 뭔가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대마를 피웠을 거야. 우리나라 같으면 부끄럽다기보다는 불안해할 만한 일이지?’

[그렇죠. 명백히 불법이니까요.]

대한민국은 마약이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불법이지 않나?

사실 그게 가능한 사회라면 그렇게 하는 게 여러모로 좋긴 했다.

아무리 대마가 다른 마약에 비해 해악이 적다손 치더라도 게이트 드러그(gate drug, 다른 약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약물)로써의 역할을 너무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대마가 만연한 지역인 경우 다른 마약 중독률도 높다는 건 통계로 증명된 사실이다.

아무튼,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적어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마 피우는 건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불안해할 일은 더더욱 아니지.’

[맞습니다.]

방금 말한 대로였다.

불법도 아니고…….

심지어 지금도 사방 천지에서 대마 냄새가 풍겨 오고 있지 않나.

여기는 해변이다 보니 어린애들도 되게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는 피우고 있다는 말이었다.

절대 부끄러워할 만한 일도 아니란 얘기가 되었다.

“어떻게 할 때 아팠죠?”

“그건…….”

근데 부끄러워한다.

다른 의사였다면 아무리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해도, 일단 상대가 이런 반응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보니 반응 자체를 알아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뿐더러 설령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해도 추론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확률이 극히 낮았을 터였다.

허나 수혁은 달랐다.

“혹시 성관계 후에 아파했나요?”

“네? 아, 네. 그걸 어떻게.”

“아니, 야!”

“완료하려다가 못 했을 거 같은데요. 맞습니까?”

“아…… 그…… 맞아요. 완료하지 못했어요.”

“완료라니! 그게 적절한 단어…… 아니, 지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당신 미쳤……. 야! 카메라 안 꺼? 이 새끼들이!”

묵직하게 추론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수혁은 표정 변화 없이 그대로 찔렀다.

어찌나 돌직구로 꽉 박히는지 여태 호들갑을 떨던 여자친구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러니 남자 쪽은 어떻겠나.

졸지에 완료 못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아마 그 후로는 발기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네, 네. 그래서 제가 걱정이에요. 무슨 이틀 동안…….”

“야. 야! 너 미쳤어?”

“걱정 마세요.”

“걱정 안 해도 돼요?”

“뭘 걱정 안 해! 이게 평생 이렇게 되면…… 아니,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당황한 그는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있었다.

방금 피운 대마 때문이라기보다는 수혁 때문이었다.

원래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같은 의료진에게만 어려운 일인 게 아니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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