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2화 (12/209)

12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는 국내 프로야구 구단은 물론이고, 대학 야구를 하는 대학교 야구부도 관심을 가지는 대회다.

그러다 보니 2라운드를 시작하는 오늘, 수많은 프로 구단과 대학 야구부의 스카우터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선수를 보기 위해 나온 상태였다.

특히나 최대 구속 150㎞의 강속구를 가진 성남고의 강보석과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 1라운드에서 4연타석 홈런이란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깜짝 등장한 영광고의 3번 타자 정대호의 대결을 보기 위해서다.

‘얼마 전까지 무명인 선수가 첫 공식 경기에서 4연타석 홈런이라고? 이건… 물건이다! 하지만 플루크가 아니라는 걸 알려면 좀 더 지켜보는 게 맞겠지.’

둘 중에서는 강보석보다는 대호에게 좀 더 시선이 많이 몰렸다.

원래 주목 받던 유망주보다는 깜짝 등장한 신인이 이목을 더 끌기 쉬웠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나이.

강보석은 아직 2학년이지만, 대호는 3학년이었다.

즉, 이번 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준다면, 드래프트에 또 다른 대어가 등장하는 셈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전혀 자료가 없었고, 첫 경기를 치를 땐 아직 대호의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셈이라 그렇게 많은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대호에 관한 자료를 쌓는 셈이기도 했다.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볼 때 지금 당장 프로에 데려다 놔도 최소한 20홈런을 칠 수 있는 강타자라고 판단했지만, 아직 많은 데이터가 쌓인 게 아니었으니까.

그중에는 대호의 열렬한 지지자인 오클랜드의 한국 정보원 정대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낭중지추라고는 하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두드러지면 안 좋은데…….”

대일은 타석에서 강보석의 공을 커트하는 대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처음으로 발굴한 선수가 시합에서 활약을 하는 것은 좋았지만, 첫 시합에서 기대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 주었다.

그 때문에 경쟁자들이 모두 대호를 알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곳이 눈독 들이지 못하게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니, 솔직히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경기 4홈런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한 선수라고 금세 판단할 수 있으리라.

‘솔직히 지난번 17:0, 그리고 4홈런이 충격적이어서 생각 못했던 건데, 다른 영광고 선수들도 생각보단 나쁘지 않군. 그냥 정대호 원 맨 팀은 아닌 것 같아.’

그 말대로였다.

영광고는 전체적인 전력이 한 수 위로 평가 받는 성남고, 그리고 특출 난 선수로 꼽히는 강보석을 상대로 팽팽한 승부를 이어 가고 있었으니까.

비록 투 아웃 상황이기는 하지만, 영광고는 상대방 선발이 고작 1회에 열여덟 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만든 상태였다.

‘계속해서 커트하는 게… 작전인가?’

1번 타자에 이어 2번 타자까지 배트를 짧게 잡고 악착같이 파울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던 대일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웃!”

그 사이 영광고의 2번 타자는 10구째에 헛스윙을 하고 아웃 되었고,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대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스포츠의 세계에서 룰에 어긋나는 것만 아니면 어떤 전략이든 사용하는 게 맞다.

비겁하다고 가만히 있다가 대회에서 탈락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영광고의 감독도 성남고의 선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나 보군.’

대호가 조금산에게 정보를 준 걸 알 수 없는 대일으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악명만 있는 건 아니고, 그런대로 정보와 작전 능력도 갖췄나 보군. 하기야 썩어도 준치라고, 감독으로 있었던 게 몇 년인데.’

사실 어떤 고교 야구 선수가 다음 날 상대할 상대 투수의 정보를 알고 감독에게 작전을 건의하겠는가?

프런트나 에이전트에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프로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하는 선수가 더러 있는데, 일개 고교 야구의 개인이 그런 일을 했다고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가만히 있던 조금산으로서는 엉뚱하게 점수를 딴 셈이었다.

“파울!”

심판이 또다시 파울 선언을 하였다.

‘역시…….’

대일은 한동안 공을 지켜보다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상태가 되자마자 마구 파울을 만들어 내는 대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딱!

“파울!”

어느새 투구 수는 열 개가 넘어가고 그중 몇 개는 파울 홈런이 되었지만, 대일은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침착하게 타석에 있는 대호를 주시했다.

‘작전 수행 능력도 뛰어나네? 플러스.’

메이저리그 팀의 정보원을 할 정도로 안목이 뛰어난 대일은 간간히 나오는 파울 홈런과 외야 깊은 곳까지 날아가다 파울이 되는 장타성 파울이 대호가 일부러 그런 것임을 알고 조용히 자신이 들고 있는 태블릿에 정보를 입력했다.

따아악!

정신없이 지금 타석의 정보를 기록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대일은 느닷없이 들리는 엄청난 타격음에 하던 것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헉!”

“우와아아악!”

대호가 친 타구는 큰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솟더니, 텅 빈 외야 상단을 맞췄다.

“홈런이다!”

좌익수와 중견수 중간 방향의 스탠드 상단에 적중한 대형 홈런이었다.

그런데 대일이 놀란 것은 홈런이 스탠드 상단에 맞은 대형 홈런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놀란 것은 전적으로 홈런을 만들어 낸 대호의 타격 폼 때문이었다.

무릎은 거의 지면에 다다를 듯 굽혀진 상태였고, 자세는 주저앉은 모습, 거기에 상체는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대일은 홈런을 치고 천천히 베이스를 도는 대호의 모습보다 방금 전에 보여 준 타격 폼이 계속해서 잔상처럼 뇌리에 남았다.

‘그런 자세에서도 홈런을 만든다고? 그것도 스탠드 상단을 맞추는 대형 홈런을?’

정말이지 괴물과도 같은 균형 감각과 파워였다.

무너진 균형 때문에 휘두를 때 제대로 체중을 실을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호가 홈런과 장타를 만들어 내는 어마어마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프로필상, 대호는 188㎝의 키에 몸무게 80㎏인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전형적인 홈런 타자의 체형은 아니란 소리다.

대체 그런 몸에서 어떻게 엄청난 파워가 뿜어져 나오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호가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삼아 불법 약물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기에 대일로서는 좀처럼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괴물이군.”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나오는 결론이 ‘괴물’이라니……

일전에 대호와 면담해 봤을 때, 신체 어디를 봐도 불법 약물을 한 증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과학이 발달하면서 불법 약물으로 도핑하는 것도 점점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약물을 사용하게 되면, 숨길 수 없는 몇 가지 신체적 특징이 있었다.

눈이 충혈된다거나, 힘줄이 징그럽게 튀어나온다든가 등등 내추럴이 아닌 약물 사용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것들 말이다.

그런데 대호는 아주 멀쩡했다.

그렇기에 대일은 방금 전 대호의 홈런 타구를 확인하고 경악한 것이다.

“…저 정도면 파워에 최소한 70점은 줘도 되겠군.”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정확하게 타격하여 홈런을 만들어 낸 능력을 보며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

“아니, 타격과 컨택에 줘야 할까?”

좀처럼 쉽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지만 대일은 오클랜드의 정보원이었기에 정확한 정보를 기록하고 담당 스카우터에게 이를 전달할 의무가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5연타석 홈런 아냐?’

대일은 태블릿에다가 대호의 능력에 대해 기록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고교 야구라고 한다지만 5연타석 홈런이라는 건 기록적인 일이었다.

단순히 ‘쉽지 않다’ 따위로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대일은 주위의 스카우터들과 국내 프로 구단에서 나온 사람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러면… 경쟁이 더 심해질 수도 있겠는데?’

그때, 대일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전에 작년 보스턴과 계약한 일본의 히데오 소이치로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했었나?”

작년 스토브리그에서 고작 200만 달러 차이 때문에 일본 고시엔(甲子園)의 괴물 히데오 소이치로를 보스턴 블루삭스에 내줘야 했다.

그런데 올해 그를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칭하는 한국 고교 야구 선수를 보게 되다니.

이는 마치 운명적인 만남과도 같은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하였기에 대일은 이전보다 더 집중해 대호를 관찰하고, 또 기록했다.

* * *

따아악!

“와아! 이번에는 곧게 뻗는다!”

둥둥둥둥!

강보석은 자신이 던진 공이 맞는 순간 홈런이 된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 볼이었으니까.

3일전, 1라운드에서 4타수 4홈런을 친 대호였기에 신중하게 승부를 했다.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벗어나는 공을 던져 보기도 했고, 강한 패스트볼로 승부를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풀카운트 상황.

벌써 열네 개나 되는 공을 던졌는데 아웃을 잡지도 못했고, 볼카운트는 변함없었다.

그는 14구째가 되니, 점점 수세로 몰리는 느낌을 받았다.

‘젠장, 저놈이 친 파울이 다 외야 쪽으로 가네…….’

더군다나 일부는 파울 홈런이 되기도 하니, 가슴이 철렁하고 심장이 멎는 듯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보석은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대호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15구째.

드디어 성남고 프런트에서도 결정을 내렸고, 그는 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 왼쪽 하단, 그러니까 우타를 치는 대호의 입장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위치로 공을 던졌다.

배트를 휘둘러서 아웃 되면 좋고, 아니면 그냥 볼을 골라내 볼넷으로 나가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볼이 홈런이 되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로야구 선수도 아니고… 아니, 프로라고 해도 조금 전 자신이 던진 공은 절대로 홈런이 나오면 안 되는 공이었다.

물론 프로 선수가 쳐서 맞았는데, 홈런이 안 나오는 코스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야구 천재들이 전부 모이는, 그중에서 괴물이라 불리는 메이저리거들 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기껏해야 국내 프로야구 선수, 혹은 고교 야구 수준의 강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 강보석은 너무도 억울해 눈이 화끈거렸다.

‘자기가 메이저리거도 아니면서 어떻게…….’

강보석이 이렇게 억울해하고 있을 때, 덤덤히 베이스를 돌고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영광고 야구부원들은 반대로 홈런을 치고 들어온 대호를 향해 모두들 축하를 보내 주었다.

“와 씨, 어떻게 그 자세에서…….”

“홈런 축하한다.”

“와, 너만 작전대로 하지 않고 홈런을 친다고?”

한 명은 무너진 자세에서 홈런을 친 것을 말하고, 또 누구는 다른 말없이 홈런을 축하를 해 주었으며, 다른 부원은 원래 작전처럼 파울 테러를 하지 않고 홈런을 친 것에 놀라워하며 대호의 등을 두드리며 기뻐했다.

물론 작전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대호는 성남고 선발이 무려 열다섯 개의 공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 말은 1회에 한 타자 더 투수를 상대로 투구 수 테러를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마지막 말은 분명 홈런을 축하함과 동시에 대호의 야구 실력에 대한 부러움이 담긴 게 분명하리라.

“자자, 축하는 그만하고. 아직 시합 끝난 것 아니다.”

축하 자리가 길어질 것 같아 보이자, 조금산 감독이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넵!”

부산스럽던 더그아웃은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세 진정되었다.

* * *

따악!

다다다다!

대호에 이어 영광고의 4번 타자로 나선 재홍은 투수가 던진 3구째에 스윙을 하고는 빠르게 달렸다.

원래 영광고의 계획은 타자가 한 번 일순하기 전까진 최대한 투구수 테러를 하는 것이었다.

― 야, 박재홍. 강보석 지금 멘탈 털렸어. 그냥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들어오면 바로 받아 쳐 버려.

재홍은 대호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교대하던 순간, 자신에게 건넨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분명 감독의 지시에 위배되는 일이었지만, 대호의 말이 맞다면 흔들리는 상대방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확신이 가득 담긴 목소리.

재홍은 대호를 믿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대호 말 듣길 잘했네.’

“우와아악!”

“나이스 박재홍!”

그렇게 재홍이 2루타를 치자, 영광고 쪽에서는 기쁨의 함성이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그 가운데, 5번 타자 최수호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강보석이 흔들리고 있으니까 평소보다 치기가 훨씬 쉬울 거라고?’

수호 또한 대기 타석으로 들어서다가 대호에게 재홍과 비슷한 조언을 들었다.

원래는 홈런을 축하하기 위해 다가간 것인데, 대호가 낮은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 재홍이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 저놈은 더욱 흔들릴 거야! 그러니까 만약 초구에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면 2루수 방면으로 그냥 때려!’

타석에 들어선 수호는 조금 전 대호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배트를 짧게 잡고 속으로 심호흡을 하며 투구를 기다렸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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