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짝!
먼저 홈으로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재환과 양손으로 하이 파이브를 한 대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성남고 포수를 뒤로 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정대호! 진짜 미친 거 아냐?”
짝짝짝!
더그아웃으로 들어서자 응원석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홈으로 들어와 점수를 낸 재환과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영광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수고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산 감독이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조금산 감독에게 대호와 재환은 밝게 웃으며 감사하다며 답변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스코어는 4:0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 영광고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따악!
5번 타자 최수호도 바뀐 투수의 공을 받아쳤다.
이전 타석에서 마주했던 강보석보다 공이 느린 투수 정도는 최수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편, 3회 초 영광고의 공격을 지켜보고 있던 대일은 조금 전 대호가 홈에서 보여 준 플레이에 감탄했다.
타구의 판단과 주루 센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속도와 성남고 수비수의 수비 능력을 감안한 과감한 홈스틸은 대일로 하여금 다시 한번 반하게 만들었다.
‘프로에서도 저런 센스는 흔치 않아.’
대일이 판단하기에 조금 전 홈에서의 승부는 가히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명장면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3루까지 가는 건 흔한 플레이였다.
어느 정도의 주루 능력을 보유했다면, 외야 깊은 곳으로 흘러가는 타구가 나오면 두 베이스를 진루하는 것도 간단하니까.
하지만 그대로 홈으로 내달린다?
그렇게 되면 웬만한 주루 능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홈스틸 당시의 모습은 또 어떤가.
한쪽 팔을 미끼로 주며 몸을 틀어 베이스만 살짝 터치하는 센스를 고교 야구 선수가 가지고 있다는 건 믿기 힘들었다.
‘역시… 정대호. 저 녀석은 절대 놓치면 안 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대호는 역시나 타격 능력도 타격 능력이지만, 야구 지능이 프로나 다름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슥슥.
대일은 조금 전 대호가 펼친 플레이에 대한 정보를 태블릿에 기록하며, 오늘 사무실로 돌아가 보고할 내용을 정리했다.
* * *
뉴월드배 전국 고교야구대회 2라운드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조나단은 조사원인 대일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영광고가 성남고를 잡았다고?”
“예, 7회 콜드게임으로 승리했습니다.”
성남고와 영광고의 시합은 7회, 영광고의 9:1 8점차 콜드게임이 선언되면서 영광고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조나단이 가지고 있는 두 학교의 전력 분석 보고서와 정반대의 결과였다.
“혹시 성남고의 선발인 강보석이 출전하지 않은 건가?”
조나단은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 2라운드 경기 중, 영광고와 성남고의 경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고교 야구의 강호인 공주일고와 광주상고의 경기를 보러 갔기에 제대로 된 경기 내용을 알지 못했다.
“아닙니다. 강보석은 예정대로 선발로 출전했습니다.”
“그럼 혹시 부상으로 조기 강판되었나?”
그것이 조나단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쉬운 시나리오였다.
부상으로 인한 조기 강판이라면, 영광고가 승리하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대일의 대답은 달랐다.
“일찍 마운드를 내려오긴 했지만,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래?”
조나단은 일찍 마운드를 내려왔다는 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일을 주시했다.
그러자 대일은 자신의 태블릿에 녹화한 영광고와 성남고의 시합 장면을 플레이 하며 이를 보여 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광고는 뜻밖의 작전을 가지고 2라운드에 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작전?”
“예, 아마도 강보석의 내구력이 약하다는 약점을 어디에서 입수한 것인지, 그것을 집요하게 노렸습니다.”
1회 초에 있었던 영광고 타자들의 행동을 조나단에게 설명했다.
대일의 설명을 들으며 태블릿 영상을 보던 조나단 역시 선두 타자부터 풀카운트 이후로는 무조건 공을 커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의미를 깨달았다.
조나단은 태블릿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굳은 의지와 불타는 눈빛 때문에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음…….”
고등학교 야구 선수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착실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에 감탄한 것이다.
‘무슨 고교생이 이렇게 잘해?’
1, 2번 타자들이 펼치는 작전 능력도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자료보다 더 뛰어났는데, 대일이 주목하고 있던 3번 타자의 능력은 그것을 훨씬 능가했다.
아니, 1라운드에서 보여 줬던 4홈런이라는 정보와 연결해서 판단을 내리면, 가히 초고교급… 아니, 지금 당장 마이너리그에 데려다 놔도 루키 리그는 곧바로 건너뛰어도 될 정도로 보였다.
특히 마지막, 중심이 무너진 상태에서 투수의 공을 정확하게 힘을 실어 받아쳐 홈런을 만드는 센스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게 정말 조작이 아니라 실제 경기였다고?”
조나단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대호의 타격 능력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마디 하였다.
“제가 그랬지 않습니까? 정대호는 결코 흔히 보이는 타자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대일은 상급자인 조나단의 탄성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조나단은 그런 대일의 대답이 전혀 들리지 않는지, 태블릿에 완전히 코를 박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경악하게 만드는 장면이 다시 한번 나왔다.
그것은 3회 초, 대호가 빠른 발을 이용해 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허어…….”
1회 초, 대호가 무너진 자세에서 홈런을 쳤을 때는 그래도 감탄성을 터뜨렸지만, 방금 홈에서의 플레이를 보고는 도저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의 사구로 1루에 진출했던 대호가 기회를 얻자마자 뛰어서 홈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프로 레벨에서도 쉽지 않은 판단과 과감한 홈스틸은 다년간 오클랜드의 스카우터로 활약해 온 그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이 정도면 반칙이지.”
겨우 3회, 두 번째 타석을 봤음에도 조나단은 그러한 판단을 내렸다.
대일에게서 2월 초 친선경기 후 보고를 받았다.
원래는 광영고 최윤열을 관찰하기 위해 보낸 것이니만큼, 그땐 단순히 스카우트 대상으로 할 타깃이 늘어났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런데 고작 한 달 남짓 지났을까.
3월 초에 시작한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고작 2라운드 만에 독보적인 재능을 뽐내는 대호를 보면서 조나단도 놀라고 말았다.
‘이 정도면 작년에 놓친 히데오 소이치로 못지않은 재능을 가진 선수라 볼 수 있겠는데.’
조나단은 곰곰이 생각했다.
일본의 천재 타자 히데오 소이치로.
작년 오클랜드의 주요 영입 대상 중 하나였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보스턴에 빼앗긴 선수였다.
그를 놓쳐 자신이 단장인 조엘에게 얼마나 큰 질책을 들었던가.
‘분명 히데오 소이치로를 놓친 건 내 실수가 맞아. 그렇지만… 내 판단엔 700만 달러는 오버 페이였어.’
미국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남미 선수도 아닌 아시아의 선수에게 주기에는 큰 금액이라고 판단했다.
단장의 말처럼 유니폼만 팔아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맞지만, 그렇다고 시작부터 거액을 안겨 준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심지어 계약에 성공한 보스턴조차 팬들의 항의를 무마하기 위해 천재 타자라는 타이틀을 엄청나게 광고했다.
뭐, 보스턴이야 지금 라이벌 뉴욕 킹덤스에 한창 밀리는 중이니 화제성을 끌어모으고, 또 터지면 대박이라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우리 오클랜드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그렇게 끌려가면서 협상할 필요는 없었어. 그리고 일본 고교 야구의 악명을 생각하면 더 그렇지. 물론 히데오 소이치로는 타자니까 조금 더 낫겠지만.’
일본의 고교 야구부는 선수의 팔을 갈아 넣어 고시엔에 진출하는 걸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곳이다 보니, 조나단이 5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선수라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사실 조나단은 히데오 소이치로와의 계약 불발에 대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아시아에서 또 한 명의 천재 타자를 발견했다.
히데오와 같은 외야 자원인데다가 타격, 수비, 작전 능력까지 완벽한 선수를 말이다.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 그러면서 훌륭한 판단으로 위기의 순간에 슈퍼 플레이를 펼쳐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 주는 능력.
이걸 보면 적어도 히데오 소이치로에 비견되는 야구 실력을 보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놈들도 이제는 다 알았겠지?”
조나단은 금세 흥분을 가라앉히며 중얼거렸다.
“그건 1라운드에서 4연타석 홈런을 쳤을 때 이미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일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 하였다.
“그렇겠지.”
“예. 그렇지 않아도 킹덤과 다윈스 스카우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뭐라고!”
킹덤과 다윈스라는 말에 조나단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킹덤과 다윈스는 오클랜드와 달리 빅 마켓 구단이었기 때문이다.
쓸 수 있는 페이 롤에 한계가 있는 자신들과 다르게 뉴욕 킹덤스나 LA 다윈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빅 마켓 구단들이었다.
특히나 뉴욕 킹덤스의 경우 재능이 있는 신인들을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LA 다윈스의 경우 한국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구단이었기에 조나단으로서는 두 구단의 스카우터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정대호 선수와 접촉한 정황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조만간 접촉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젠장!”
대일의 이야기에 조나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조엘과 통화를 해 봐야겠어.”
잠시 고민을 하던 조나단은 올해에도 작년처럼 뭉그적거리다 다른 팀에 유망주를 빼앗겼던 결과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조금 빠르게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 * *
대호가 속한 영광고는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 받던 성남고를 2라운드에서 7회 콜드게임으로 이기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돌풍에도 끝이 있는 법.
그들은 6라운드, 준결승에서 강호 광주상고를 맞아 접전 끝에 7:6으로 패하며 4강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영광고는 이번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고교 야구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솔직히 그동안 영광고는 전국대회에서 무명에 가까웠고 큰 활약을 하던 학교는 아니었다.
보통 1~2라운드에서 조기 탈락을 하거나, 정말 운이 좋았을 때 겨우겨우 3라운드에 진출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올해는 전력이 급상승해 무려 준결승까지 진출한 것이다.
특히나 2라운드에서 초고교급 강속구 투수인 성남고의 강보석을 상대로 2점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투구 수를 40개 이상 허비하게 만든 작전이 성공한 이후로 야구 관계자들의 관심도 많이 받게 되었다.
비록 6라운드에서 고교 야구 전통의 강호 광주상고를 만나 패하기는 했지만, 7:6의 접전을 펼치며 그동안의 승리가 결코 플루크가 아님을 알렸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번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의 홈런왕이 우승을 한 광주상고에서 나온 게 아니라, 준결승에서 떨어진 영광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 주인공은 당연히 정대호.
작년까진 그 어떤 기록도 없던 대호는 이번 대회에서 무려 여덟 개의 홈런을 치며 당당히 홈런왕의 자리에 올랐다.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비록 2라운드까지 홈런 다섯 개를 쳤음에도 이후로는 고작 세 개밖에 치지 못했지만, 이는 대호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3라운드 상대부터는 대호의 실력을 여실히 알았기 때문인지, 제대로 된 승부를 해 주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한 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대부분 장타를 두려워해서 고의 사구로 내보냈으니까 기회가 없었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투성 타구 하나를 노려 친 것 덕분에 하나라도 칠 수 있었다는 말이 맞았다.
그렇게 지지부진하던 와중에 준결승전.
광주상고는 투수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었는지, 대호와 맞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닌 만용에 불과했고, 그들은 두 개의 홈런을 얻어맞고 나서야 이전까지의 상대들처럼 볼넷으로 대호를 내보냈다.
우승 학교조차 피하는 타자.
대호는 그렇게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전국, 그리고 야구 관계자들에게 알렸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