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특별 모드를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빛이 나를 감쌌고, 좁은 원룸에 있는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한참을 멍하니 방을 바라봤다.
볼을 아무리 꼬집어도.
“아야!”
얼얼한 통증만 느껴질 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어떻게 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아이돌 육성 게임을 하다가 과금을 했더니 그 게임 속으로 들어오다니.
농담으로라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내 앞에 펼쳐졌다.
방에서 두 시간.
혹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방을 내내 뒤져봤지만.
‘건진 건 이거뿐이지.’
찢어진 사진이 꽂혀 있는 액자와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앨범.
그리고 몇 벌 되지 않은 낡은 옷.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전부인 이 좁디좁은 방에 있는 건 이런 것뿐이었다.
서랍에 고이 모셔둔 중학교 학생증에는 낯선 얼굴과 함께 윤건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건하.
나와 똑같은 이름.
그러나 다른 얼굴.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이 아이돌 특별 모드라고 했지.’
나는 게임 속에서 존재했던 아이돌 연습생 윤건하에게 빙의된 것이 틀림없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똑같은 결론이 나왔다.
그게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거든.
나는 거울에 비친 낯선 내 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이는, 낯선 얼굴을 가진 남자.
잘생겼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말하기엔 약간 특출난.
부드러운 인상의 앳된 남자.
사업을 할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던 습관 때문에 갖고 있던, 미간의 주름과 관리를 했음에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푸석한 피부대신, 탱탱한 피부와 주름 하나 없는 말끔한 얼굴이 자리했다.
학생증에서 봤던 사진보다 조금 성숙한 멋을 가진 남자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건하.’
많게 잡아야 스무 살.
사업가였던 내 삶이 사라졌음을 개탄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새로 얻은 젊음에 기뻐해야 하는가.
혼란스러웠다.
‘빙의라.’
재밌는 일이다.
게임 속의 동명이인인 캐릭터가 되는 일은 말이다.
이 ‘윤건하’에 대한 정보라도 얻어 볼까 싶어 핸드폰을 열었다.
때가 타고 오래된 핸드폰에 남아 있는 연락처라곤.
-MAE 양현우 실장님.
-아버지.
이게 전부였다.
‘MAE?’
분명 이 게임에 나오는 경쟁 엔터테인먼트 회사 이름이었다.
‘얘가 원래 여기 소속이었나?’
글쎄.
거기까지는 가물가물했다.
이 게임을 즐겨 했지만, 프롤로그 스토리는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옛날 일.
쉽게 기억나진 않았다. 다만, 이 MAE가 게임에서 계속해서 플레이어 회사인 GH와 경쟁했던 기억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쫓겨나서 거기로 가는 건가?’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폰에 있는 연락처가 연예계 담당 실장이랑 아버지가 전부라니.
‘동료들 번호는 저장을 안 한 건가?’
서로 친하지 않은 거 같은데.
“심지어 최근 통화는 양 실장이 전부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전화를 나눴다.
전화 내역은 3분, 5분, 7분….
아마 안부와 최근에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다.
그나마 연락처가 있는 아버지와 마지막 전화가 1년 전이라.
심지어 부재중 전화.
아버지의 전화마저 받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무슨 과거를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순탄치 않다는 건 명확했다.
액자의 찢긴 사진은 아마도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아닐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고, 사교성도 부족하다.’
그리고 사진첩을 살펴봤다.
“이야….”
사진첩에는 수많은 영상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 1분에서 3분짜리 영상들.
배경은 전부 사방이 거울로 가득한 연습실.
나는 영상 하나를 틀었다.
-안녕하세요. 윤건하입니다. 오늘 출 곡은 블루커버 선배님의 ‘My Love’입니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숨을 고른 화면 속 윤건하가 반주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노래를 따라 춤을 추는 건하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춤을 추는 걸 멈추지 않았다.
3분이 넘는 노래가 끝나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건하가 달려와 핸드폰을 집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런 영상이 수백 개.
거의 하루에 하나씩 찍은 듯,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안녕하세요. 윤건하입니다. 오늘 부를 노래는….
춤은 물론 노래까지.
핸드폰에 저장된 양만으로도 그의 연습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차마 찍지 못한 것들도 많겠지.
무려 5년 전, 중학생으로 보일 때 영상도 있었다.
“그래서 이 바닥이 이렇게 닳아 있던 건가.”
방바닥이 닳아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한 연습도 모자라 방에 들어와서 혼자서 연습한 흔적이었다.
처절했던 윤건하의 노력의 흔적은 방 곳곳에 보였다.
-오늘 한 일: 춤 연습 5시간, 노래 연습 3시간, 운동 2시간, 검정고시 준비 3시간.
-오늘 음식: 아침 고구마 한 조각, 점심 계란 2개, 닭가슴살 100g, 샐러드….
캘린더엔 건하가 매일 해온 일과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무얼 했는지, 뭘 먹었는지 등을 매일매일 적었다.
오늘이 5월 11일인지, 그날부터는 따로 메모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적힌 커다란 별.
-우리 팀 데뷔.
그래도 데뷔조에 포함되었던 건가?
노란 사인펜으로 그린 커다란 별이 건하의 기대감을 가득 담고 있었다.
‘용케도 됐네.’
그러나 화면 속 윤건하의 노래와 춤은 객관적으로 봐도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에 확 들어오는 뭔가가 없었다.
이러니 게임에서도 F급 아이돌 연습생이라고 천대받았지.
게임 속 아이돌 캐릭터들에게도, 플레이어들에게도.
‘열심히 하는 연습생.’
재능이 없는 건하에겐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이게 한계였을 거다.
그나저나 검정고시라.
달력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검정고시 준비.
설마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건가?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앨범이 있는데, 고등학교 앨범은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 이후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아이돌 판에 뛰어든 게 아닐까 싶었다.
“너도 만만찮은 삶을 살아왔구나.”
그저 게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F급 연습생 윤건하가 아니라, 게임에선 볼 수 없는 ‘사람’ 윤건하에 대한 것들이 곳곳에 보였다.
‘게임 속…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곳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나는 이 윤건하의 몸에 들어왔고,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다시 스무 살의 젊은 몸에 들어온 건 좋다.
그러나 다시 그 고생을 하라면 절대. 네버!
마이 아이돌에서 커가는 내 아이돌을 보며 흐뭇해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돌들을 보는 것이 즐거운 거지, 내가 그런 고생을 직접 하고 싶진 않단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글쎄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쿵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야, 윤건하!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
날이 선 목소리.
호감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윤건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나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실장님이 너 찾으신다.”
“실장님?”
실장이라면 설마.
양현우 실장을 얘기하는 건가?
“양 실장님이?”
“그래.”
남자는 더는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느낌이 같은 데뷔조에 속해 있는 연습생인 거 같은데.
윤건하랑 한 판 싸웠나?
“왜?”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거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나.
“네가 존나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대놓고 무시하는 녀석의 말에 나는 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귀찮고 피곤하거든. 이런 놈들 상대하면.
“패배자 새끼가 자존심은 있어서.”
놈을 무시하고 지나가자, 뒤에서 메아리처럼 들리는 목소리.
사람을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상대를 멸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 놈이었다.
불현듯 녀석의 이름이 떠올랐다.
이진우.
‘이진우라.’
아무래도 이놈의 이름은 절대 까먹지 않을 거 같다.
* * *
“왔냐?”
“안녕하세요.”
사무실에 들어가자, 미간을 구긴 채 한숨을 내쉬는 양현우 실장이 보였다.
“앉아라.”
테가 얇은 원형 안경에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를 쓸어올린 양현우 실장은 나를 보며 한숨을 퍽퍽 내쉬었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왔다.
‘잘리는구나.’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던 프롤로그 스토리가 이제야 생각났다.
이런 식으로 기획사 MAE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시작했었지.
데뷔 한 달을 앞두고, 역량 부족으로 쫓겨나는 스토리.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며, 이제는 내게 닥친 일이었다.
“잘리는 겁니까?”
그 말을 들은 양 실장의 표정이 웃겼다.
내가 그 말을 먼저 꺼낼 줄은 몰랐겠지.
“진우가 말하더냐?”
“아뇨. 그런 표정으로 제게 하실 말씀이 그것밖에 없을 거 같아서요.”
“미안하게 됐다.”
역시.
양 실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위쪽에서 내려온 의견이야. 대표님은 너 없이 데뷔조를 짜는 게 훨씬 이득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고.”
“…네.”
핸드폰 갤러리에 있는 영상으로 느꼈다.
나, 윤건하는 노력 원툴. 무매력 아이돌이라는 걸.
그나마 이런 노력이라도 있었으니, 데뷔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거다.
“네가 제일 힘들었겠지.”
내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 걸까?
나를 바라보는 양 실장의 얼굴에 연민이 가득했다.
“네가 노력을 많이 했다는 건 안다. 그 노력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노력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양 실장이 어떻게든 나를 변호하기 위해 말을 덧붙였지만,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더 듣던 결국 내가 MAE에서 잘린다는 걸.
“아이돌을 그만둬야 한다는 뜻인가요?”
MAE는 좋은 회사다.
비록 플레이어의 경쟁회사로 부딪치지만, 작중 설정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좋은 소속사는 몇 없었다.
그러나 내가 데뷔하기 좋은 회사는 전혀 아니었다.
쟁쟁한 연습생이 너무 많다.
애매한 재능으로는 자신만의 빛을 절대 나타낼 수 없는 곳이 MAE였다.
“그렇진 않을 거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건하, 너를 믿고 있어.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무대에서 빛날 사람이라는 걸.”
고마운 말이었다.
아마 원래 건하가 들었다면 눈물을 펑펑 쏟지 않았을까.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은 이에겐 눈물이 날 정도로 소중한 말이었다.
아쉽게도.
정작 들어야 할 건하는 듣지 못하고 다른 건하가 듣고 말았다.
‘아리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욱신거렸다.
양 실장의 말에 몸이 반응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요?”
“그래.”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나를 보던 양 실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GH 엔터에 네 추천장을 보냈다. 그곳에 아는 선배가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아이돌을 보는 눈만큼은 확실한 분이다. 소속사 대표 일을 하시는 분인데, 그분이 너를 보러 여기까지 오신다고 했다.”
잠깐, GH 엔터 대표라고?
그럼 플레이어인데, 설마 원래 내가 오는 건 아니겠지?
“MAE 엔터 소속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거기로 가서 성공적으로 데뷔한다면 너를 무시했던 MAE 엔터 사람들의 콧대도 누를 수 있을 거야.”
양 실장은 진심으로 내 성공을 응원하고 있었다.
‘윤건하, 너 진짜 복 받은 놈이네.’
너를 이렇게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래의 윤건하가 해야 할 인사를 내가 대신 전했다.
아마 펑펑 울며 인사했겠지만, 나는 눈물이 없어서.
그러나 그에게 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와 동시에.
띠링!
귓가에 알람이 울리고, 눈앞에 작은 창이 하나 떴다.
[메인 퀘스트: GH 엔터 소속 아이돌로 데뷔하세요.]
[실패 시: ‘윤건하’ 캐릭터 삭제]
캐릭터 삭제?
그거 사망이라는 뜻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