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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6화 (6/236)

<제6화>

나는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으며 말똥말똥 눈망울을 빛내고 있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

아니 아직 소년티를 완전히 벗겨내지 못한 앳된 아이였다.

투블럭에 살짝 볼륨펌으로 스타일을 낸 그는 눈에 띌 정도로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가 앞으로 건하 네가 쓸 숙소인데, 멤버들이랑 같이 쓸 거야. 여기는 부엌이고 세탁기는 이쪽….”

황이서가 내 방을 소개해 주는데, 집중을 하나도 하지 못하겠다.

마치 강아지처럼 나와 황이서 프로듀서 뒤를 졸졸졸 따라오며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최우주 때문에.

뭔가를 기대하는 건지 몰라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잔뜩 들뜬 얼굴이었다.

그리고 저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이해했다.

“여기 침대에서 자면 돼. 우주랑 같이 쓰게 될 거야.”

“역시 그렇죠?”

황 프로가 내가 머물 방을 가리키자마자, 나보다 우주가 먼저 신나게 외쳤다.

마치 같이 방을 쓸 사람을 여태껏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드디어 저도 룸메이트가 생기는 거네요! 혹시 성훈이 형이랑 같은 방이면 어쩌나 싶었어요. 헤헤.”

“마침 잘됐네. 룸메이트끼리 친해지고 있어. 그리고 최우주.”

“넵!”

“왜 이 시간까지 여기에 있었는지 묻진 않겠는데, 연습 빠지거나 게을러지지 마라. 데뷔도 안 했는데 해이해지면 안 된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우주를 본 황 프로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침 잘 됐다. 우선 우주가 숙소 안내 좀 해주고, 1시간 정도 친해진 다음에 연습실로 나와. 나는 일정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거 같다.”

황 프로가 시계를 두드리며 멋쩍게 웃었다.

“건하야, 앞으로 잘 해보자. 아까 보여줬던 그 패기, 계속 보여줬으면 좋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우선 애들이랑 좀 친해져 봐. 그럼 우주야, 잘 부탁한다.”

“넵!”

황 프로는 서둘러 숙소 밖으로 나갔다.

반짝반짝.

시선이 부담스럽다.

얘가 최우주.

오는 길에 GH 엔터 데뷔조의 이야기는 다 들었다.

막내인 최우주와 메인 댄서인 안호진, 작곡과 프로듀싱을 할 수 있는 정민, 메인 보컬이자 현재 리더인 유성훈.

총 4명.

전부 ‘마이 아이돌’에서 한 번씩 얼굴을 본 애들이었다.

그중 가장 포텐셜이 높은 최우주를 먼저 볼 줄이야.

게임에서도 최우주는 많지 않은 막내 속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돌이었고, 예능력이 충만해서 유저 중에서 이 친구를 애정캐로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170이 조금 넘는 키에 소년미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외모,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성격까지.

S급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무과금 유저들에겐 필수 아이돌로 선정 받은 무과금계의 아이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우주]

[나이: 19]

[노래: B]

[춤: C+]

[외모: B]

[예능: A]

[스킬: ??(더 높은 호감도가 필요합니다.)]

예능 스텟이 A급으로 시작하는 연습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막내 속성까지 지니고 있는 연습생은 게임 내에서 드물었다.

확실한 캐릭터와 흔치 않은 능력치.

거기다가 지금은 잠겨져 있지만, 우주가 가진 고정 스킬은 예능 스텟과 아주 찰떡궁합인 걸로 알고 있다.

아마 A급 스킬인 친화력일 거다.

그리고 우주를 팀에 데리고 있으면, 거의 확정적으로 추가 능력치를 얻을 수 있는 특수 이벤트가 나타났기 때문에 다들 없어서 못 쓰는 가성비 연습생이었다.

여러모로 멤버를 조합하는 데 최상이었기 때문에, 다들 최우주를 얻으려고 난리였었지.

게임에서 볼 때는 정지된 평면그림으로 봤었는데, 이렇게 입체적인 실물로 보니 뭔가 어색했다.

나를 이리저리 보는 저 반짝이는 시선도 묘하게 부담스럽고.

물론 새로운 멤버에 룸메이트가 된 내가 신기하긴 하겠지.

“나는 최우주, 형은 이름이 어떻게 돼?”

“윤건하, 나이는 스무 살이고 이번에 MAE에서 GH로 옮겼어. 이직이라고 해야 하나?”

“오오, 대기업 출신. MAE 엔터면 퓨처스 선배님들도 봤겠네?”

아니, 못 봤다.

본 사람은 이진우랑 양 실장이 전부였는데 무슨.

“아니. 못 봤어.”

“진짜? 아쉽다. 퓨처스 선배님들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유명해지면 알 수 있지 않겠어?”

“그랬으면 좋겠다.”

그 당시 프로필 나이가 열아홉이었던가?

고3. 아직 미성년자라 호기심이 활발할 나이긴 하지.

그러나 세상에 찌들고 찌든 30대 정신이 박힌 아저씨의 입장에선 글쎄, 걔들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물론 그건 생각일 뿐. 굳이 애들의 환상을 깨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우선 짐은 여기다 둬.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한다고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 헤헤.”

깔끔했다.

먼지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헤실거리는 성격에 비해 꽤나 깔끔한 모양이었다.

“사실 새로운 멤버가 올지 모른다고 해서, 급하게 치우느라 연습 시간에 조금 늦었어. 아마 가면 트레이너 형이 혼내시겠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최우주는 상당히 수다쟁이였다.

내가 짐을 놓고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조금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집안일은 요일별로 당번이 정해져 있는데, 요리는 정민 형이 대부분 맡고 있어. 그 형이 요리를 진짜 잘하거든. 지금까지 우리가 식단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정민 형의 요리 실력 덕분이야.”

“그리고 성훈이 형은 조심해야 해. 그 형이 우리 팀의 리더인데, 조금만 실수해도 화를 엄청 내거든. 꼭 우리 체육 선생님 같아.”

“호진이 형은 말수는 없긴 해도 춤을 진짜 잘 춰. 그 형 춤추는 거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 저번에는….”

덕분에 심심할 틈은 없었다.

내가 질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대답해 주는 우주 덕분에 숙소의 간단한 규칙을 외울 수 있었다.

집안일은 당번제.

통금이 있고, 12시가 넘어가면 숙소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식단은 매일 챙기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치팅 데이가 있다.

매일 9시에는 사무실에 있는 연습실에 출근해야 하고, 최소 8시간을 채워야 퇴근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테스트 성적이 좋지 않으면 추가 수업이 있다.

데뷔하기까지 두 달 남았다.

메인 스케줄은 연습과 연습. 조만간 데뷔곡이 정해지면 이보다 더 심하게 연습한다고 하더라 등등.

데뷔를 위해 빡빡하게 준비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장난 없네.’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연습생들의 치열한 노력이 느껴졌다.

화면 속에선 이 모든 스케줄이 전부 SD 캐릭터와 텍스트 몇 줄로만 묘사되었으니까.

‘아니면 과금해서 이 과정을 스킵하거나.’

현금성 재화로 육성 과정을 스킵할 수 있다.

마이 아이돌이 극악한 과금 게임인 이유이기도 했다.

현실에선 그런 식의 과금이 불가능하니, 아무래도 불가피한 과정일 것이다.

“쉽지 않겠네.”

“MAE에선 어땠어? 우리보다 더 심했으려나?”

내가 뱉은 혼잣말에 우주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아이돌 엔터 쪽에선 대기업으로 불리는 MAE의 생활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핸드폰 갤러리에 저장된 윤건하의 춤과 노래 영상을 떠올렸다.

하루도 쉬지 않았던 건하의 연습.

녀석도 여기에 있는 애들만큼이나 치열하게 버텼을 거다.

식단을 조절하고,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지쳐 쓰러질 거 같아도 다시 일어나면서.

“다를 거 없지. 똑같아.”

나는 건하의 연습 연상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참, 우리 사무실 가볼 거지? 아니면 조금 더 쉬고 있을래? 아무래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

“괜찮아. 가보자.”

궁금했다.

GH 엔터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하지만 그 전에.

“잠깐 옷 좀 갈아입을 테니까 밖에서 기다려줄래?”

“응, 알겠어.”

이번 퀘스트로 얻은 포인트를 확인해 보자고.

우주가 방문을 닫고 나가고,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켰다.

황 프로와 최 대표에게 인정을 받고 얻은 퀘스트 보상.

[오픈 마일리지 포인트: 3]

이 오픈 마일리지 포인트라는 게 뭐지?

보상은 받았는데, 소속사를 옮기기 위해 짐을 챙기고 바쁘게 움직이는 바람에 자세히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오픈 마일리지가 뭔데?

나는 포인트 옆에 붙어 있는 물음표를 눌렀다.

[업적과 퀘스트로 획득한 오픈 마일리지로 어플을 해금할 수 있습니다.]

맞네.

잠긴 어플을 열 수 있는 재화.

그래서 오픈 마일리지라는 거지?

네이밍 센스 하고는.

주식, 부동산, 코인 어플을 잠금 해제하려면 이 마일리지를 모으라는 거다.

-오픈 마일리지를 모아서 어플을 해금하고, 어플에서 얻은 돈으로 과금해라.

과정은 조금 복잡하지만, 원리는 심플했다.

결국 퀘스트를 클리어하라는 거지.

잠깐, 그럼 업적은 뭔데?

나는 화면 구석에 새로 생긴 느낌표를 보았다.

[!업적]

[업적 - 첫인상 - 멤버들을 소개받기]

[업적 - 데뷔 - 첫 무대를 마치기]

[업적 - 완벽한 기술자 - 모든 능력치를 A 이상으로 만들기]

[업적 - 실버 버튼 - 팔로우 10만 달성하기]

[업적을 클리어할 경우, 난이도에 따라 마일리지가 지급됩니다.]

보아하니, 업적은 조금 더 쉽게 공략할 수 있도록 설계된 나름대로 배려인 모양이었다.

퀘스트처럼 실패 페널티가 없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 퀘스트로만 버는 건 짜긴 했어.

첫인상 업적은 멤버 전원을 소개받아야 깨지는 건가.

그때, 핸드폰 화면에서 어플 구매 창이 열렸다.

‘패스’, ‘KH뱅킹’, ‘유민금융’, ‘KA뱅크’, ‘열린투자’, ‘다운비트’, ‘나스닥’, ‘코스피’, ‘이 땅 어때’ 등.

내가 돈을 넣어둔 수많은 어플이 구매창의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50억이 들어 있는 유민금융은 200 마일리지.

17억이 들어 있는 KA뱅크는 68 마일리지.

7억이 들어 있는 패스는 28 마일리지.

1 오픈 마일리지는 곧 2500만 원이자 25만 포인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25만 포인트라면 F급에서 E급으로 올릴 수 있는 정도의 포인트.

이 정도의 포인트로 외모 스탯을 더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동안은 마일리지를 모으기만 하자고.’

쓸 필요성을 느낄 때까진 잠시 킵하는 게 좋을 거다.

깨작깨작 쓸데없이 능력치를 올리는 것보단, 중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능력치를 적재적소에 올리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내가 벌었던 돈을 포인트로 다시 사야 한다는 게 화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상 끝까지 공략해야지. 그러기 위해선 포인트가 필수적이고.

도둑놈 같다고 생각이 들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건하 형, 다 갈아입었어?”

“아, 잠시만.”

우선 나머지는 천천히 생각하자.

아직 급하지 않다.

데뷔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당장 중요한 건 지금 마일리지보다, 멤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거다.

[서브 퀘스트: 멤버들에게 인정을 받으세요.]

[기간: 2주일]

실패했을 경우, 메인 퀘스트에 페널티가 가해지는 서브 퀘스트를 잘 마무리하는 것.

그게 주된 목표였다.

갈아입을 옷이라고 해봤자, 검은색 티 아니면 회색 후드밖에 없었다.

패션 센스 하고는.

건하의 무감각한 패션 센스에 한숨을 내쉬며, 품이 큰 회색 반팔 후드로 갈아입은 뒤 문을 열었다.

첫인상을 위해 나름대로 꾸미고 싶은데, 옷이 없으니 원.

“오호. 건하 형, 스타일 좋다. 키가 커서 그런가?”

“고맙다. 우주 너도 괜찮네.”

이미지에 맞는 밝은 톤의 옷을 입은 우주와 함께 다른 멤버들이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은 멀지 않아. 나랑 같이 가면 될 거야. 가는 길에 수다나 좀 떨면 금방이야.”

우주의 말처럼 사무실은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왜 황 프로가 굳이 숙소를 먼저 들렸는지 알 거 같았다.

걸어서 10분?

최우주와 같이 가니 시간도 금방 흘렀다.

진짜 수다가 끊이질 않더라.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왜 예능 A급인지 알 거 같았다.

이 상태로 TV 예능 나가면 패널 한자리 차지할걸?

분명히.

*    *    *

금방 GH의 연습실에 도착한 내 앞엔.

“하아, 하아.”

사방이 유리로 된 연습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을 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진짜 잘생겼네.’

한눈에 봐도 잘생겼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청년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우리를 보았다.

퇴폐미라고 했던가?

끝이 살짝 올라간 날카로운 눈매에, 짙은 눈썹, 오뚝한 코, 거기에 얼굴을 적시는 땀까지.

순수하게 외모만으로 숨이 멎을 것 같이 생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아닌 우주를 보았다.

표정으로 묻는 거 같았다.

이 사람 누구냐고.

“아, 호진이 형! 오늘 새로 우리 멤버로 합류했다는 건하 형이야.”

네가 안호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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