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한진성.
내가 ‘마이 아이돌’에서 아꼈던 아이돌이었다.
게임에서 넷밖에 없는 SS급 아이돌.
내가 가장 정성을 들였던 캐릭터.
넷밖에 없는 SS급 아이돌 중에서 얘를 뽑겠다고 내가 얼마를 과금했는지 모른다.
능력치는 SS급 아이돌 중에서 가장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다른 아이돌에 비해 아득히 높은 능력치.
그리고 유독 많은 캐릭터 스킨과 잘생긴 외모 때문에 유저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미남.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외모를 가진 그는 화난 표정도 잘생겨서 관련 스크린 샷으로 게임 덕후들끼리 토론을 하곤 했었다.
-한진성은 왜 이렇게 잘생겼는가.
날카로운 눈매 속에서 다정함이 엿보이고, 부드러운 입가의 미소만으로도 매혹적인 연출을 할 수 있는 미남.
무엇보다 한진성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컨셉이든 잘 어울린다는 거지.’
섹시 컨셉, 귀여운 컨셉, 가끔은 짐승돌이 되고, 가끔은 순한 양이 되는 그 카멜레온 같은 매력에 유독 많은 스킨을 갖게 됐다.
나중엔 저 얼굴에 19금 돌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캐릭터가 다양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왜 GH에서 나와?
만약 나온다면 최고의 기획사에서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국내 대형 기획사인 MAE나 롤링, 델리트 같은 곳에서 말이다.
물론 게임 속 한진성과 지금 GH에 소속한 한진성이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한진성이 있었다면 진작 나왔어야 했을 노래들이 없다는 것.
‘For You’, ‘New Taste’.
전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아는 한진성과 지금의 한진성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찬란한 재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잘만 한다면 그래미에서 상을 휩쓸 수 있는 아이돌.’
SS급 아이돌은 그 정도의 존재감을 가졌다.
“진성 선배가 오는 거 정말일까?”
진성이 무대를 보러 온다는 말에 멤버들은 벌써 설레는 얼굴이었다.
마치 오랜 워너비를 만나는 팬처럼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눈이 반짝거렸다.
연습생들에게, 특히 GH같은 중소 소속사의 연습생들에겐 진성이란 대스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대상이 자신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온다는 말에 설레지 않을 연습생은 없을 것이다.
“몬스터즈 선배님 전원이 오시는 건 아니겠지?”
“몬스터즈가 설마 한진성이 속해 있는 팀이야?”
내 한마디에,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동시에 홱 나를 돌아보았다.
그들 모두의 눈에는 똑같은 감정이 깃들었다.
경악.
왜 몬스터즈를 모르냐는 눈빛.
“아이돌 연습생이 어떻게 몬스터즈 선배님들을!”
“너 연습생 맞아?”
“다른 건 몰라도 몬스터즈는 알아야지!”
“새로운 멤버가 몬알못이라니.”
차례대로 성훈, 호진, 정민, 우주였다.
거의 동시에 내게 쏘아붙이는 기세가 말벌보다 더 독했다.
다들 눈에 광기를 매달고 내게 달려들었다.
내가 그들의 덕심을 건드린 걸까.
당장이라도 나를 나무에 묶어 화형대에 올릴 기세였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거야?
네 사람이 동시에 나를 몰아치니 뭐라고 반응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우호적인 눈빛을 보내던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드니, 어떻게 반응하기도 어려웠다.
“하긴, 건하는 MAE에서 왔으니 모를 만도 하겠네. 소속사 선배님 중에 쟁쟁한 분들이 많으니까.”
“에이, 건하 형이 아무리 MAE였어도 몬스터즈 선배님은 알아야지.”
어떻게든 포장하려는 정민의 말을 우주가 막아섰다.
우주야, 너까지 이러기야?
“모른다는 말에 죽자고 덤빌 거면 적어도 알려주고 덤벼. 한진성 선배가 몬스터즈 리더야?”
“당연하지. 진성 선배랑 몬스터즈는 우리 GH 엔터의 전설적인 분들이라고. 데뷔하자마자 차트를 점령하고, 당시 최고로 불리던 MAX 선배님들이랑 차트 경쟁에서 밀리지도 않으셨던 분들이야. 데뷔곡이 그랬으니 2집은 어땠겠어. 미니 앨범으로 인터넷에서….”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중엔 우주가 가장 한진성을 동경하는 건 확실했다.
무슨 백과사전처럼 정보를 끝없이 쏟아내는데 듣는 내가 어지러웠다.
그나저나 한진성이 몬스터즈라.
씁쓸하네.
그래도 올리오스의 한진성으로 남아줬으면 했는데.
내가 정들였던 올리오스가 사라졌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적어도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됐으니까.
“아무튼 진성 선배가 정말 공연 때 오는 거라면, 우리도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네. 대선배님 앞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
의외의 상황이지만, 오히려 좋다.
애들의 의욕을 더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잠깐, 건하 형. 지금 화제 돌리는 거 같은데, 형은 진성 선배님과 몬스터즈 선배님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어?”
“내가 알려줄게. 우리 몬스터즈 선배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주가 갑자기 덕후 모드로 전환하더니 내 팔목을 잡았다.
“형도 우리 선배님들의 위대한 모습을 알면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뭐? 잠깐, 우주야.”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자.
“잘 갔다 와.”
“오늘 건하가 조금 고생하겠네.”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우린 연습하러 가자.”
그들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와 우주를 보냈다.
“진짜 이대로 보내는 거야?”
“형, 쉬는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둘러요.”
“야, 우주야. 우리 연습….”
“이게 연습보다 더 중요해요!”
“야야, 잠깐!”
우주에게 끌려간 나는 몬스터즈의 역사와 앨범과 입덕 직캠 영상을 비롯한 레전드 클립들을 강제로 시청했다.
우주, 너 진심이구나?
* * *
테스트 공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연습에 매진했다.
마지막 점검을 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꾸며 공연을 준비했다.
모두가 의지를 불태웠다.
마치 이번 무대에 모든 걸 걸었다는 듯이.
오늘이 대망의 분기 테스트.
많은 것이 걸린 이 테스트 때문에 우주는 어젯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했는지, 숙소에서 내내 하품을 했다.
제대로 잠을 못 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긴장하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좋은 아침….”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침 인사를 하는데, 오늘따라 다들 말이 없었다.
“아, 건하 형도 일어났어?”
으으, 낮은 신음을 내던 우주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보았다.
“설마 밤샌 거 아니지?”
아까 일어날 때도 침대에 없었는데.
“아니야. 잠은 잤는데 눈이 금방 떠졌어. 너무 긴장했나 봐.”
우주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긴장에 떠는 건 우주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식단 음식을 준비하는 정민의 칼질이.
통. 토동. 통.
엇박을 타고 있었다.
부지런한 정민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멤버들의 아침 식단을 준비하는 건 일상이었지만, 이렇게 칼질이 불안한 적은 처음이었다.
호진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너무 많이 먹지는 마. 괜히 컨디션 흐트러지면 곤란하니까.”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건 성훈.
이제 막 씻고 나왔는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는 그는.
잠깐.
“성훈이 형, 그거 발수건 아니야?”
“아, 이런.”
흠, 다들 정상은 아니네.
당장 오늘이 테스트를 보는 날이었다.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한 오늘.
한진성이 온다는 소식 때문에 다들 평소보다 긴장한 기색이었다.
“다들 준비 다 했지?”
정민이 준비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자, 성훈이 박수를 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무대 의상은 소속사 드레싱 룸에서 픽업하고 갈 거라고 하니까 각자 가장 편한 옷 입고…. 몬스터즈 선배님들 보러 사람들 많이 올 테니까 열심히 하자.”
다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떨린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춤을 춰야 하는 거잖아?”
“나는 진성 선배 앞에서 춤추는 거 때문에 심장이 떨려.”
“다들 좀 진정해. 아직 무대 의상은 입지도 않았어.”
담담하게 내뱉는 성훈의 말에도 흥분한 멤버들의 호들갑을 막을 순 없었다.
“건하 형, 만약 진성 선배님이 우리 보고 실망하시면 어쩌지? 그게 꼴찌 하는 것보다 더 못 견딜 거 같은데.”
“그런 걱정은 다 추고 해도 돼.”
나는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건하 형은 침착하네.”
“그러게. 지금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쉴 거 같은데.”
나도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멤버들이 더 요란이라 상대적으로 덜해 보이는 거지.
“너희가 오버하는 거야.”
내 말에 다들 낄낄거리며 웃었다.
첫 무대라는 것이 우리를 상기시켰다.
* * *
무대 의상까지 갖춰 입자, 다들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더운 여름, 컨디션 관리를 위해 에어컨을 가볍게 틀었음에도 다들 식은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더 세게 틀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과하게 튼 에어컨 때문에 차 안에 습기가 사라지는 것이 무대에 오르기에 좋지 않았으니까.
차에는 침묵이 자리했다.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노래 가사를 외우고 있거나 창밖을 보며 박자를 맞추는 등 다들 긴장을 풀기 위해 연신 노력했다.
그중에서 유독 심한 사람이 있다면, 호진이었다.
간헐적으로 부르르 떨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
“다 준비됐니?”
황이서 프로듀서의 말에도 짧은 시간,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앞으로 있을 무대에 정신이 팔렸다.
“네! 다 탔습니다!”
“너무 긴장하지는 마라. 오히려 망친다.”
내 대답에 황이서가 빙긋 웃었다.
이례적으로 황이서가 운전대를 잡았다.
원래 아이돌을 프로듀싱 할 정도의 짬이면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다고 하던데.
아직 우리를 담당하는 매니저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통은 데뷔 전부터 매니저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팀이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너희도 매니저 없이 고생이 많다. 저번에 그 일 아니었으면 굳이 나랑 같이 안 가도 됐는데 말이지.”
“저흰 오히려 이서 형이랑 같이 가서 좋아요.”
“맞아요. 괜히 이상한 소리도 안 듣고요.”
그 일?
무슨 말이지?
“우리랑 김광수 배우님 담당했던 전 매니저 얘기야. 회사 내에 있던 배우님들이랑 직원들 데리고 다른 기획사로 도망쳤거든.”
우주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아이돌만 담당하는 게 아니었네?
“이서 형이 그 일 때문에 우리 맡아주시는 거고.”
“그래?”
예전에 내홍(內訌)이 좀 있었나 보네.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재원 중학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