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9화 (19/236)

<제19화>

New Taste의 2절이 시작되고 무대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다시 한번 메인 보컬인 성훈의 파트.

노래가 점점 고조되고, 다시금 들어온 반복되는 훅에 무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였다.

어떻게든 내 파트를 완벽하게 보여 주겠다며 춤에 집중하는 와중에도, 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를 즐기고 있다는 게 보였다.

그게 보였다.

참 웃겼다.

노래에 집중하고 있는데도 그게 보이다니.

어떻게 보이는 거지?

스스로도 놀랄 일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내 노래 파트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도.

무대 아래에서 우리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이라도 더 흥이 났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위치를 이동하며 잠깐 스치듯 마주친 멤버들의 눈빛과 미소, 몸짓에는.

우리만 느끼는 변화가 있었다.

아주 조금, 들뜬 모습이 보였다.

우리 다섯 명은 이후에도 오차 없는 똑같은 동작으로 군무를 이어갔다.

New Taste라는 제목답게 최대한 신선하고 밝은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골든트랙보단 못하지만, 우리 역시 연습을 많이 했다고.

동작이 흐트러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노래는 거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고조되는 분위기는 절정에 도달했고, 이제 가장 마지막 파트만 남았다.

자연스럽게 사이드로 밀려났던 호진이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마지막 파트였다.

솨아악.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인어와 같은 몸놀림으로 부드럽게 무대 가운데로 파고들어 온 호진이 유연한 몸을 비틀며 피날레 동작을 취했다.

호진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무대 중앙에 섰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바닥에 앉으며 마치 꽃의 잎사귀처럼 호진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펼쳤다.

작은 체육관 무대에는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

“하아, 하아.”

연이은 타이트한 안무로 숨이 차올랐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깊은숨이 올라왔다.

폐부는 더 많은 산소를 원했다.

나는 헐떡이며 무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춤을 췄을 때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노래를 즐기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

짝짝짝!

카메라를 든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셔터를 눌렀고, 우리는 그에 화답하듯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백 명? 이 무대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건 결코 아니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대다수는 관계자.

그럼에도 우리에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응원이 빛바래는 건 아니었다.

저들 중에 한 명이라도 우리를 기억해 준다면.

우리가 진짜 데뷔 무대에 올랐을 때, 우리의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 아닐까.

뭐랄까.

단순히 사업 설명회를 할 때와는 다른 감각이 내 몸을 지배했다.

단순 성취감으로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완전한 무대를 만들고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줬다는 만족감.

그래, 그 만족감.

그 만족감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얼굴에 맺힌 미소가 떨어지지 않았다.

GH의 대표인 최강훈 대표와 황이서 프로듀서, 수많은 아이돌 선배들과 기자들.

그들도 팬들과 함께 우리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조금은 재밌네.’

과거, 사업 설명회를 올랐던 컨벤션 센터에서의 무대.

그때와 같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격한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았다.

“형, 눈물 흘리는 거야?”

우주가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우주의 눈시울도 꽤나 붉어졌다.

“지는.”

“나는 아직 안 맺혔거든? 형 눈 엄청 반짝거려. 긴장 안 했다면서 엄청 떨었던 거구나?”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했던가.

진짜 데뷔 무대도 아닌, 이 작은 체육관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말이다.

무대 위 다른 멤버들도 다들 각자 벅찬 얼굴로 무대 아래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지금 이 장면, 평생 못 잊을 거 같아.”

정민의 말에 적극 공감했다.

정말 작은 무대다.

앞으로 우리가 설 무대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무대였지만, 나는 오늘을 기억할 거다.

가장 즐거웠던 무대였다고.

가장 신났던 무대였다고.

이 강렬한 이미지는 나중에도 잊지 못할 거 같았다.

‘만약 진짜 데뷔 무대에 오른다면 어떤 기분일까?’

기대가 되었다.

*    *    *

“쟤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서울 미디어 S의 연예부 박성동 기자는 무대 위에 오른 아이돌을 보며 중얼거렸다.

올리버스? 올리오?

“맞다, 올리오스.”

몬스터즈의 성공 이후로 큰 대박을 내지 못한 GH 엔터가 야심차게 준비한 5인조 남자 그룹.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는 들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솔직히 최근 몬스터즈를 제외하면 GH 엔터에서 데뷔한 가수들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발라드 가수, 여자 아이돌, 심지어 댄스 가수까지.

전부 야심 차게 등장했다가 처참한 성적으로 고꾸라지고 사라졌다.

“역시 몬스터즈를 키운 짬은 어디 안 간다는 건가.”

솔직히 말해서, 경력 있는 기자인 그가 여기까지 온 건 MAE 엔터에서 준비한 골든트랙 때문이었다.

4년 만에 나오는 MAE 엔터의 신인 아이돌.

아무리 몬스터즈를 키웠다고 하더라도, 몬스터즈를 제외하면 볼 것 없는 중소 엔터보다는 훨씬 더 기삿거리가 됐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골든트랙보다 더 눈이 가는 그룹이 나타났다.

“분명 춤은 골든트랙이 더 잘 추는 거 같은데….”

왜 자꾸 저 애들한테 눈이 가는 거지?

박성동 기자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는 올리오스를 보았다.

소년이라기엔 성숙하고, 청년이라기엔 어려 보이는 다섯 명의 풋풋한 남자 아이돌.

그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저거 때문인가?’

그들은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약간의 초조함이 보였지만, 궁극적으로는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4분이라는 짧은 시간, 100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이었음에도 그들은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즐겼고, 관객과 함께 호흡했다.

“잘 키웠네.”

처음엔 골든트랙을 1등으로 여겼던 박성동 기자의 머릿속에 새로운 1등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

공연이 끝나고.

“하아아.”

우주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슴을 쓸어내는 그의 이마에는 땀으로 흥건했다.

“형들 봤지? 관객들이 우리보고 박수 치고 환호하는 거! 나 진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다 같이 우리 노래를 들으면서 박자를 탈 줄 몰랐다니까!”

들뜬 목소리로 외치는 우주의 말에 공감했다.

그렇게 다들 같이 즐겨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아직도 가슴이 떨려….”

호진이 순정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여기 선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고생했다 모두.”

성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진심으로.”

성훈의 눈이 내게 향했다.

“건하는 특히 더 고생했어.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공연을 함께 만들어줘서.”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뭘.”

고맙고 말고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네가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공연을 하지 못했을 거다.”

성훈의 인정이라.

이건 좀 귀한데?

그렇게 무대의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애들아, 고생 많았어.”

한진성이 대기실로 찾아왔다.

“아, 선배님!”

“다들 잘하더라. 진짜 놀랐어. 준비를 정말 많이 했던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 무대 자작곡이라면서? 누가 작곡한 거야?”

우리는 거의 동시에 정민을 가리켰다.

“이야, 능력 있던데? 정민이라고 했던가? 이번 무대 자작곡으로 하자고 했던 건 정민이 아이디어였니?”

“아, 그게요.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건하 아이디어에요.”

“건하?”

의외의 대답이었던 걸까.

한진성이 놀라며 나를 보았다.

“진짜 네가 낸 아이디어야?”

“예, 그렇습니다.”

“호오. 그래?”

턱을 쓸며 감탄하는 진성의 입술이 오므려졌다.

정말 놀란 눈치였다.

“얼마 전에 MAE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습니다.”

“그 사이에 의견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한 거구나.”

가만히 나를 보며 뭔가를 생각하던 한진성이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불렀다.

“잠깐 나와볼래? 따로 물어볼 게 있어서.”

“어?”

“엥?”

“헉!”

“…….”

밖으로 나오자는 말에 멤버들이 다들 놀라며 나와 진성을 번갈아 봤다.

“별거 아니야. 어떻게 자작곡을 할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통하지 않을 변명을 둘러댄 한진성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대기실 밖으로 나오자, 한진성이 외투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이거 받아.”

명함이었다.

하얀 종이에 ‘몬스터즈’의 로고가 새겨진.

“이건….”

한진성이 내미는 명함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스토리 모드에서 몇 번이고 나왔던 장면이다.

한진성은 늘 스토리에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후배에게 명함을 건넸다.

같은 팀 동료가 왜 명함을 줬냐는 질문에 그는 항상 똑같이 대답했다.

-얘는 무조건 성공할 거야. 미리 인맥이 돼서 나쁠 건 없지.

그리고 그 이벤트가 발동한 아이돌의 기량이 평소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그 이벤트인 거다.

“앞으로 필요한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

“이거 아무한테나 주는 거 아니니까 잘 챙겨두고.”

그래. 귀한 명함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톱스타 아이돌의 개인 연락처니까.

한진성의 몬스터즈는 국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톱스타.

이 명함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웠다.

“미리 찜해두시는 건가요?”

“그치. 잘 될 떡잎은 미리 잘 봐둬야 하니까.”

한진성의 미소가 해맑았다.

“팔 떨어지겠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늘 공연 정말 즐겁게 봤어. 앞으로 이런 공연 자주 보여줘. 머지않아 같은 무대에서 콜라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감사합니다.”

“편할 때 연락해도 돼. 따로 스케줄이 없으면 받을 수 있을 거야. 궁금한 게 있으면 이 전화로 물어보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다 도와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따로 부를 필요가 있었나요?”

“당연하지. 너한테만 연락처를 주면 다른 애들한테는 나름대로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럼 다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조금 곤란해서. 하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명함을 유심히 보았다.

명함 중간에 비스듬히 새겨진 ‘몬스터즈’.

올리오스가 아닌 몬스터즈 한진성.

몬스터즈의 로고를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기억에 혹시 올리오스가 남아 있는지.

과연 지금이 아니면 물어볼 기회가 있을까?

아니.

감히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있다고 해도 한참이 지난 후일 거다.

물어본다면 지금뿐.

그에게는 뜬금없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입을 열었다.

“진성 선배님, 혹시 올리오스라고 아십니까?”

내가 만들어주었던 그룹 ‘올리오스’.

진성은 그 팀 소속으로 그래미 상까지 타고 세계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다.

소속사의 대표로서, 소속사의 최고의 아이돌로서 우리는 최고의 콤비였다.

적어도 게임에선 그랬다.

비록 게임 캐릭터와 유저의 관계였지만, 내가 가장 아꼈던 애정캐였던 그였기에. 아주 조금은 그의 머릿속에 올리오스가 남아 있길 바랐다.

“응? 너희 그룹명 아니야?”

태연하고 순박한 얼굴로 우리 그룹명이라 물은 그가 사슴처럼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너 설마 내가 너희 그룹명도 모르고 불렀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이건 좀 섭섭한데?”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즐겼던 게임과 이 세계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물어본 건.

내가 조금이라도 이 세계에 투자했던 시간과 돈이 남아 있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씁쓸하네.

“그럼 혹시 그래미는 타셨나요?”

“그래미? 하하하!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못 갔어. 나름대로 목표로 삼고 있긴 한데,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가.

적어도 이 세계의 한진성은 진엔딩을 보지 못했구나.

아쉬웠다.

그러나 동시에 즐거웠다.

왜냐고?

한진성에게 진엔딩을 선사한 유일한 프로듀서가 나라는 것 때문에.

이 세계의 대표인 최강훈이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진성을 최고의 자리를 올리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그런 묘한 승리감이 가슴 속에 차올랐다.

진성에게 그래미 상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는 내 최애 아이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내가 아이돌이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

내가 아이돌이 된 이상.

최애 아이돌이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제가 선배님께 하나 공약할게요.”

“공약?”

“예.”

“무슨 공약인데?”

나는 친한 동생을 바라보듯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진성에게 말했다.

“선배님보다 제가 먼저 그래미 상을 탈 겁니다.”

그러니, 그래미를 타더라도, 내가 먼저 탄다.

진성이 너는 그다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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